[펌] 친구의 죽음

Leehu 작성일 14.01.27 01: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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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라믄 된다. 그란디.. " 



2013년의 해가 저물고 14년의 새로운 해가 떠오르던 그날이었다. 진주와 단둘이 떠난 정동진 여행이었는데
우린 그곳에서 새해 첫날의 새로운 생명과.. 마지막 생명을 함께 마주하게 되었다... 띠딩. 난 짐작할수가 
없었다. 또 복 많이 받으라는 문자이겠구나 하고 폰을 열어 방금 내게 수신된 문자를 확인했는데. 
하지만, 내 예상과 달리 내게 온 문자는 다름아닌 친구 정식이의 사망 소식이었다. 나는 굉장히 혼란스러워
했고, 그 두려운 표정 조차 숨기지 못했다. 그런 모습을 본것일까... 마냥 옆에서 웃고있던 진주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 왜그래? 무슨일이라도 생긴거야?... "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그 무엇도. 그 어떤 말도 나오지가 않았다. " 답답해. 왜그러는거야.. " 내 옆에선
진주가 막무가내로 내 휴대폰을 집어갔고, 진주 역시 휴대폰 속 정식이의 사망 소식 문자를 보고 얼음이
된채로 내게 물었다. " 이거 뭐야..? 장난치는거지?.. 그치??... " 한두살 먹은 어린 아이들도 아니고..
오늘은 만우절도 아니다. 새해 첫날이다... 이렇게 좋은날 이런 기분나쁜 장난을 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저 한숨밖에 나오질 않았다. 주변을 잠시 바라보자 다른사람들은 새롭게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좋아하고 있었다. 



우리와 같은 커플도 있고. 가족들.. 모두..다 기쁜 마음으로 태양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런데 왜.. 
나에게만 이런일이 생긴걸까... 다시금 휴대폰을 들어 문자를 확인했다. " 영호야.. 어제 새벽에 
정식이 교통사고로 사망했대.... 가봐야 할거같아.. " 후..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거의 10년을
봐온 친구가 한순간에 이세상을 떠났다고 하니 정말이지 너무나도 슬프고 괴로웠지만. 정말 이상하게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 가자... " 그리고 멍 하니 주저 앉아있던 진주에게 말을 걸었다. 넋을 놓고 
허공만을 바라보던 진주는 조금 시간이 지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나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고.. 




우리 둘다. 그저 말없이... 내 자동차에 올라탔다. 나는 정동진을 빠져나와서야 전화를 걸었는데...
" 어.. 상민아. 어느병원이야..? " 조용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주변의 소리는 그저 조용했다... 
보통 장례식장이라면 통곡소리가 들리는게 아니던가 생각해본 나였다. " 사거리 병원..이야... " 
상민은 내게 병원의 위치만 알려주고 전화를 끊었고. 나 또한 네비게이션에 위치를 찍고 있었다. 
아직까지 주변에서 누군가 죽었다는 소식은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것은 물론이거니와.. 장례식 또한 
처음 가보는 장소였다.. 



하지만 그것은 중요치 않았다.. 무엇보다 나의 학창시절과, 방황하던 20대 초반의 시절을 같이 보내왔던
친구가 죽었다는 사실이 내게 가장 중요하게 여겨졌던것 같았다. 그때였다.. 갑자기 진주와 내 폰이
동시에 벨소리를 내며 울리고 있었다. 이런 경험도 처음인 우리 둘은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다가 진주에게
내 폰을 건네주며 운전중이라 확인을 못하니 무슨 문자인지 좀 봐달라고 제촉하던 나였다. 그러자 진주는
자기 휴대폰에 온 메시지와 내게 온 메시지를 번갈아 보더니 이내 말을 꺼내왔다. " 정식이 죽은거랑..
장례식장 위치. 단체메시지인거 같아.. " 




하아... 조금은 실망스러웠다. 차라리 장난이었다고 보내온 문자였더라면 이렇게까지 기분이 우울하진 않았을 텐데 말이다... 그리고 난 글로브 박스를 가르키며 진주에게 말을 걸었다. " 물 있을거야.. 좀 꺼내줄래 " 서울에서 출발하기 전에 사두었던 500ml 짜리 물병을 꺼내들고 나는 바짝 마르는 입안에 물을 머금고는 잠시 정식이의 죽음에 대해서 생각을 했다.. 진주에게도, 정식이의 죽음을 알려준 상민이 에게도..
말하지 못한 사실이 한가지 있었는데... 때는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추위가 온몸을 뒤덮고 눈발이 날리던 어느날 이었다는것만 기억한다. 당시 난 친구들과 포차에서 오돌뼈에 소주를 한잔 하고 집으로 들어가던 길이었다. 추위도 추위였지만. 온통 길바닥이 얼어있어서 안그래도
취기가 올라오던 나는 계속해서 미끄러지고, 엉덩방아를 찧어가며 이동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정체 모를 무언가에 의해 뒤로 고꾸라졌는데.. 한참동안 기절을 해 있다가 일어나 보니 왠 풀밭에 누워
있었다. 머리를 다친것인지 두통에 어지럼증 까지 더해져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난 의아해 할수밖에
없었는데, 이리봐도, 저리봐도 온통 풀밭이었다. 원래부터 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나였지만.. 




생전 듣도 보도 못한 꽃들로 가득차 있었고 그 범위는 정말이지 머리가 어지러워 핑 돌아 쓰러질 정도로
광대했다.. 대체 이곳은 어디고, 난 왜 이곳에 있는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아직 통증이 
가시지 않은 머리를 난 손으로 어루만지며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걸어도 걸어도 끝은 보이지 않고... 꽃밭 또한 계속해서 수평선을 유지하고 있었다. 대체 얼마나 걸은것인지 갈증도 나고 다리도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도저히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을것만 같은 그 
꽃밭에서 난 강을 발견했다. 그 강에는 왠 할머니와, 할아버지 두분이 서계셨는데. 마치 나를 기다리는
듯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난 지푸라기 라도 잡는 심정으로 냅다 뛰어서 그 노인들 곁으로 향했다. 그리곤 이내 소리쳤다. 이봐요!
" 대체 여기가 어딥니까?? " 그러자 굉장히 인자하게 생긴 할머니께서 낄낄거리며 내게 대답해주셨다. 
" 삼도천이다 이눔아! " 삼...도천? 처음엔 그 이름이 낯설었으나, 점차 기억을 되살리면서 난 곧 
생각해낼수 있었다.. 불교에서 사람이 죽으면 저승으로 가기 위해 건넌다는 그 삼도천....이었다. 
그..그렇지만 내가 왜 이곳에 있는거지... 난 다시 그 노인에게 물었다. " 전 죽지 않았어요! 제가 왜
여기에 있나요..?! " 꿈 이라고 하기엔 너무 생생했다... 





그리고 이상한것은 한가지 더 있었다. 책으로나, 티비로나.. 사람들이 말하는 삼도천은 사람들이 강을
건너기 위해 줄을 서고.. 배를 탄다고 했는데. 이곳에 사람이라고는 나와, 두 노인.. 그리고 아무도 
없다... 한참 생각을 하던 내게 할머니가 다가와 말을 꺼냈다. " 보아..하니 죽고싶지도 않은 모양인가본데
그라믄.. 나랑 약속 하나 할래..? " 난 간절했다. 빨리 이곳을 벗어나 집으로 가고만 싶었기에 나는 바로
그 할머니의 약속 이라는 것을 하겠다고 대답해버렸다. 하지만 그 약속이 무엇인지 난 듣지 못했기에. 
다시 할머니께 되물었다.. " 그런데.. 그 약속이 뭡니까?.. " 





그러자, 두 노인은 다시 기분나쁜 웃음 소리를 내며 말을 꺼냈다. " 낄낄.. 별거 읎다.. 니가 제일로 싫어하는 아 하나를 니 대신 보내그라, 그라믄 된다. 그란디.. " 그때였다. 할머니의 말을 다 듣기도 전에
갑자기 물 고문 이라도 당한 사람처럼 허헉 소릴내며 깨어날수 있었는데.. 눈을 뜨고 주변을 바라보자, 
풀밭은 온데간데 없고... 나는 한 병실에 누워 있었다. " 깨나셨네.. 아이고.... " 순간 목소리를 듣고 
놀라 옆을 바라보자 왠 아저씨 두분이 서 계셨고, 내게 말씀을 덧붙이셨다. 그날 새벽 시장에서 생선장사를
하시는 아주머니께서 귀가를 하시던중.. 길가에 쓰러져 있는 나를 보았고. 




급히 신고를 해 병원으로 이송이 되었다고한다. 아주머니 께서는 집에 어린 아이들이 있어 급히 가봐야
한다며 간단히 조서를 꾸미시고 바로 귀가조치를 했다고 한다. 휴.. 그렇담 과연 내가 꿈에서 본 그것은 
무엇일까.. 그저 꿈이었을까. 생각하던 나였는데.... " 야!! " 보조석에 앉은 진주가 날 부르는 소리에 난 깜짝 놀라 " 어어... " 소리를 내며 눈을 부릅뜨고 앞을 보았다. 뒤에선 클락션을 울리고 있었고, 진주는 내게 소리쳤다. " 너 방금 사고낼뻔했어... 알아?! " 잠시 잠깐 그날의 일을 생각하고 있었던것 뿐이
었는데..정신을 놓고있었나보다.. " 어..어 미안. 놀랬지. 딴생각좀 하느라... " 잔뜩 흥분해 있는 진주를 진정시키며 나는 다시 운전에 집중했다.... 





그리곤 서울 톨게이트로 빠져나와 난 좀더 빨리 운전하려 했으나, 옆좌석에 앉은 진주는 절대안된다며 
천천히 달리라고 말하고 있었다. 네비게이션 에서는 목적지 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안내 음성을 흘려
보내고 있었고.. 얼마 더 가지 않아 이내 곧 상민이가 알려준 병원 앞에 도착을 하게 되었다. 나는 진주
에게 주차 하고 갈테니 먼저 들어가 있으라고 하고, 마땅한 자리를 찾고 있었다. 앞,뒤,옆을 봐도 죄다 
꽉꽉 막혀있는 탓에.. 결국 난 병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유료 주차장에 잠시 주차를 해두었고..
이내 차에서 내려 걸음을 옮겼다. 장례식장을 간다는것이 이렇게 무거운 발걸음 이구나 라고 난 잠시 생각했다.. 





하늘은 맑고... 사람들은 바삐 움직인다. 그 와중에도 누군가가 죽는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참으로 소름
끼치는 일이 아닐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는 곧 병원 장례식장 입구에 다다랐고.. 식장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동창들 여럿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여전히 울고있는 여자 친구들.. 미간을 찌푸리고 
소주를 훅 털어 마시는 남자 친구들.. " 하아.. " 그 풍경을 보고있자니 한숨밖에 나오질 않았다.. 
그때, 어디선가 상민이가 내 옆으로 와있었고. 이제 오냐며 나를 반기고 있었다. 이녀석도 운것인지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 향 꽂고. 절 두번 반 하면 되... " 소곤대며 내 귓가에 방식을 알려주고는 
멀찌감치 떨어져 있던 상민이었다.. 





그리고 나는 향을 꽂으며 무의식중에 정식이의 영정사진을 보게 되었는데.. 친구이지만 소름이 끼치는건
어쩔수가 없었나보다.. 다시 고개를 숙이고, 뒤로 물러나 절을 한뒤에.. 정식이의 어머니를 뵈었다.
잠시 손을 잡아드리고 위로의 말씀을 전해드리는것, 나로써 해드릴수 있는건 그것밖에 없었다. 그리고는 
옆쪽으로 이동을 해 친구들을 만났다. 종이로된 잔에 소주를 가득 부어 훅 털어 마시자 알코올 향이 코를
찌르는것이 참 씁쓸했다.. 나는 장례식장에서 친구들과 이런 저런 대화를 오가며 이미 주량을 넘어섰지만
이상하게도 술이 취하지가 않았다. 전혀 멀쩡해 있었다... 알딸딸한 기분도 들지 않았고.. 물을 마시듯
참 기분이 묘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진주는 내게 다가와 다들 일어나려는 분위기니까.. 우리도 그만 일어나자고 
말을 꺼내기에. 알겠다고 대답을 하고서 주섬 주섬 옷을 챙겨 잠시 화장실에 들어가 볼일을 보고 있는데..
다시 내 머리속을 파고들듯 생각이 났다.. 정식이가 사망하기 한달 전쯤이었을까. 술을 마시며 재밌게
놀던 어느날이었는데. 이제와 하는 소리지만 사실 학창시절 진주와 연애를 했었다는 사실을 내게 정식이가
밝힌적이 있었다. 난 술김에 그 발언이 너무나도 화가났고, 나도 모르게 주먹이 날아갔다. 그때 까지만
해도 난 정식이에게 괜한 시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랬었는데 생각을 하면서 문득... 3년전 꿈속에서 만난 
할머니의 말이 떠오르며 난 온몸에 소름이 돋는것을 느낄수가 있었다... 





" 니가 제일로 싫어하는 아 하나를 니 대신 보내그라, 그라믄 된다. " 설..마..그럴리가 없겠지.. 라며 
난 애써 나를 다독이고 있었다.. 그리고는 다시 장례식장으로 들어가 진주를 데리고 식장을 빠져나왔다. 
다급히 행동하는 나를 보니 무언가 이상해 보이긴 이상해 보였던건지 진주는 내게 물었다. " 왜그래..! "
오늘따라 정말 이상하다며 날 쏘아대던 진주였다. 난 그저 술이 좀 취하는거 같다고 대충 둘러대고는 
피곤할테니 오늘은 먼저 들어가라고 진주를 택시에 태워 집에 보내고.. 난 다시 차를 주차해두었던 유료
주차장으로 걸음을 옮겨 내 차에 시동을 걸고 마냥 생각하고 있었다. 꿈.. 노파. 정식이... " 으으 아닐거야.. " 혼잣말을 하며 난 얼른 가서 샤워를 좀 하고 쉬어야 겠다 싶은 마음에 운전대를 잡았다. 




기어를 올리고 엑셀을 밟으며 주차장을 빠져나와 도로로 향했는데.. 운전을 하는 와중에 갑자기 막걸리를 먹은것 처럼 취기가 한꺼번에 올라오는것이 느껴졌다. 집까지 얼마 걸리지 않는 거리 이지만.. 기분이 
이상했다...하지만 그것도 잠시 난 결국 사고를 내고 말았다... 차선을 변경한다는게 유턴을 해버려서 
마주 달려오던 차량과 접촉사고가 난것이다. 그런데... 굉장히 조용했다... 아무일도 없었다는 것 처럼..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가 않았는데... 그때 누군가 내 귓가에 속삭이듯 목소리가 들렸다....... 






" 별거 읎다.. 니가 제일로 싫어하는 아 하나를 니 대신 보내그라, 그라믄 된다. 그란디.. 그 놈아 저승
보내고... 그 다음에 니 델러 가도 되겠나... 낄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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