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크보의 미스테리

눈물을부탁해 작성일 14.04.09 23: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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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현곤 타격왕


   이전까진 타격이랑 거리가 멀었으나 이 해에 타신이 들렸는지 양준혁과의 타율 경쟁에서 1리 차이,
   정확하게는 0.3378과 0.3371의 7모 차이로 타격왕 + 최다 안타왕에 등극했다.
   그리고 2007년을 제외한 모든 시즌에서 3할은커녕 그 근처도 가지 못했다.
   대신에 광고소환에 눈을 떴다. 2013시즌 NC 다이노스에서도 처참한 성적을 보여줬다


   이후 세이버메트릭스의 스탯 중 하나인 BABIP를 계산해본 결과 이현곤의 2007년 BABIP는 .379로,
   개인 커리어 평균이었던 .308, 리그 평균 .311에 비해 터무니없이 높았다.
   쉽게 말해서 세이버매트리션들의 입장은 "천운을 타고난 시즌".

 

2. 이승화, 이대형의 3할


  타율 3할이랑 거리가 멀었던 그들이지만 이 해 들어 이승화는 비록 규정 타석은 채우지 못했지만
  .301의 타율을 기록했고, 이대형은 .308의 타율을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골든 글러브까지 수상했다.
  그런데 2007년 이후에는 3할은 커녕 2할도 힘든 이승화와 도루말고는 깝깝한 이대형으로 돌아왔다.
  근데 2013에는 도루도 깝깝하다.이에 대한 분석으로 가장 유력한 것은 내야안타의 비율이 높았고,
  이에 대한 시프트를 포함한 대응책이 마련된 뒤로는 그 시절 성적이 안나오고 있다는 것.
  두 명 모두 실질적으로는 2007년이 첫 풀타임 시즌이었기 때문이다.

 


3. 김동주 두 자릿수 도루 + 최준석과의 더블스틸

 
  도루랑은 거의 관계가 없는 김동주였으나 이 해에만 11개를 기록했다.
  참고로 11개는 전준호(타자), 이승화와 동률이었으며 정수근, 박한이보다 1개 많은 수치였다.
  역대 커리어 상에서도 이 해를 제외하면 두 자릿 수 도루를 한 적이 없다.


  사실 그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그 최준석과의 0.2톤 더블스틸에 성공했다는 것이었다.

 


4. 투수 20승 및 200이닝


  약빤 리오스가 234⅔이닝 투구에 22승을 거두었고, 류현진은 211이닝을 투구했다.
  이후로 20승 및 200이닝은 나오지 않다가 2012년에 넥센의 나이트가 208⅔이닝 던지면서
  5년 만에 200이닝을 넘긴 투수가 나왔다.
  그리고 2013년은 리즈가 또다시 202⅔ 이닝을 투구하면서 또다시 200이닝 투수가 나왔다

 


5. 우규민 30세이브


  후반기 체력이 떨어지면서 13블론세이브를 기록하긴 했지만 우규민은 2007년 30세이브로
  오승환의 뒤를 이은 세이브 2위자리를 찍으며 LG의 새 수호신으로 우뚝 서는 듯했다.
  LG팬들은 김용수, 이상훈의 뒤를 잇는 철벽 마무리 투수의 계보에 이름을 올리길 바랬지만….
  현실은 서울 불바다.. 다행이도 이후 경찰청 야구단에서 선발 투수로서 준수한 성적을 냈고,
  2013시즌 우규민은 선발 투수로 뛰면서 완봉승도 거두고 이젠 우규민 완봉하는 소리란
  드립을 칠 수 없으려나 두 자릿수 승수도 올렸다.

 


6. 양준혁의 20-20


  양준혁이 이전에 20-20을 달성했던 적은 3번 있었지만 가장 최근이 1999년,
  2002년 이후로는 두 자릿수 도루는 커녕 5개 이하의 도루 개수를 기록하다가,
  2005년에 10개를 하고 2006년에 12개를 하더니 2007년에는 20개를 해서
  만 38세의 나이로 덜컥 20-20을 달성해버렸다(…). 이로써 역대 최고령 20-20 달성.
  발 빠르던 선수들도 나이를 많이 먹으면 도루 개수가 점점 주는데
  마흔이 다 되던 나이에 20도루를 했으니…

 


7. 이호준의 3할


  1998년 해태 시절 때 0.303의 타율을 기록한 것을 제외하고 평생 3할 타율과는
  인연이 없을 것 같던 이호준은, 공익근무요원으로 이탈했다가 부상으로 1년만에 돌아온 후
  복귀한 2007년에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391 타석으로 규정 타석(390타석)을
  아슬아슬하게 채우며 타율 .313을 달성했다.
  103경기를 뛰면서 당시 팀내 타점 1위, 타율은 정근우에 이어 팀내 2위이자 전체 8위,
  홈런은 팀내에서 4위를 기록하며 2007년 SK의 통합 우승에 큰 이바지를 하였다.


  2008년 이호준이 FA 신분을 획득하였고, 팬들은 프랜차이즈라 할 수 있는 그를 꼭 잡아야
  한다고 하며 FA 릴레이까지 펼쳤다. 그리고 결국 4년 34억에 FA 계약을 체결했고
  팬들의 기대는 컸다. 하지만 2008년은 달랑 8게임 뛰고 시즌을 접고 말았고 2009년에는
  타율 .298을 기록하면서부터 다시 반등세(?)를 타는 듯 했지만
  2010년과 2011년에는 기대에 못 미치고 말았다.그리고 2012년 시즌,
  504타석에 .300의 타율과 18홈런, 78타점으로 괜찮은 성적을 기록했지만
  이호준이 이렇게 괜찮은 성적을 낸 이유가 다음 해가 FA라
  FA로이드를 빨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팬들의 의견이었다.

 


 기타

  6월 13일에 그 나오기도 어렵다는 무보살 삼중살이 나왔다.
  2013년 현재 한국 프로야구를 통틀어서 유일무이한 기록. 자세한 내용은 무보살 삼중살 항목 참고.

  이와 비슷한 시즌으로 2009년이 있다.
  백업 내야수에서 역대급 플루크 시즌을 보내며 MVP를 차지한 KIA 타이거즈의 김상현이나
  CK포로 같이 활약한 최희섭, 역대급으로 운이 따라주면서 BABIP과 FIP에 비해 0.53이라는
  터무니없이 낮은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유동훈, 준수한 성적과는 거리가 멀던 삼성 라이온즈의
  강봉규와 신명철이 동반으로 20-20 클럽에 가입하기도 하는 등, 커리어에 길이 남을 플루크 시즌을
  보낸 이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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