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영물이라는 걸 처음 느낀 건 아마 중학교 때일 겁니다.
당시 저희 집은 서대문구 홍은동에 있는 2층짜리 단독주택이었는데, 2층은 세를 주고 1층에서 부모님과
언니 둘과 저 이렇게 살았습니다.
집구조는 1층은 지금으로 따지면 약간 1.5층처럼 약간 계단 위쪽으로 올라가 있고, 지하실은 반지하로
베란다 밑쪽에 창문이 나있었고, 입구는 현관에서 내려와 집 뒤쪽으로 돌아가면 있었습니다.
지하실 내부는 꽤 넓었지만, 겨울만 되면 그 내부가 다 연탄으로 꽉꽉 찼었던 게 기억납니다.
80년대였으니 지금처럼 가스보일러가 없이 연탄 보일러가 대부분인 시절이었죠.
겨울이 되면 길냥이들(지금은 길냥이라 부르지만, 옛날엔 그런 호칭이 없이 그냥 다 도둑고양이)이
저희 집 지하실에서 겨울을 나곤 했었습니다.
중학교 1학년 겨울방학이 지나, 중학교 2학년 올라가기 전 봄방학 때일 겁니다.
베란다에서 지하실 창문쪽을 보고 있는데
지하실 창문 앞쪽에 묘한 형태가 눈에 띄더군요.
나뭇잎이 떨어져서 누렇게 변색된 거라고 보기는 뭔가 형태가 있는 것처럼 보여서
저게 뭘까 하고 자세히 보니
미라처럼 겉가죽은 버석버석하게 되서 남겨진 고양이 시체였습니다.
아마도 초겨울쯤 얼어죽은 녀석 같았는데, 겨우내 눈 밑에서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면서
겉거죽만은 누렇게 변색이 되었어도 그대로 고양이 얼굴 형태를 유지한 듯 합니다.
방에 있던 언니들을 불러서 저거 보라고 하니 언니들은 난리를 피면서
하여간 희한한 것만 찾는다고 오히려 저보고 뭐라 하더군요.
너 때문에 괜히 봤다며, 네가 찾았으니 네가 치우라고...
저 역시 만지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 고양이 시체를 놔두고 베란다 왔다갔다 할 생각을 하니
왠지 싫은 겁니다.
어쩔 수 없이 긴 갈고리 같은 걸 찾아내서 그 고양이 시체를 끌어냈죠.
끌어내고 보니 다행히 뼈를 감싸고 있는 가죽 덕분에 뼈가 흩어지지 않더라구요.
끌어낸 고양이 시체를 쓰레기 통에 버리자니, 뭔가 불쌍한 맘이 들었습니다.
홍은동 집 안방 창문 밑으로 제가 어릴 때 어머님이 장미묘목을 많이 심어두셨었는데,
다른 장미들은 다 잘 자라서 해마다 예쁘게 꽃을 피워줬지만,
어머님이 특별히 구하셨던 특이한 색의 장미묘목만은 뿌리가 썩어 뽑아버린 바람에 빈 공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그 고양이 시체를 장미묘목이 있던 자리에 땅을 파고 묻어줬습니다.
고양이를 묻어주고 난 후 며칠이 지나 일요일 아침이었을 겁니다.
8시쯤 아침 먹고 잠깐 놀다 보니, 10시였는지 11시였는지
소파에 잠깐 누웠는데, 식곤증때문에 까무룩 선잠이 들었고 꿈을 꿨습니다.
꿈에 제가 우리집 정원에서 예쁜 삼색이 새끼 고양이 한 마리랑 놀고 있었는데,
새끼 고양이가 갑자기 어디론가 마구 뛰어가는 겁니다.
나비야~ 어디 가니 하면서 쫓아가니, 정원에 있는 장미 나무에 올라가더군요.
장미 가시에 찔릴까봐 새끼 고양이를 내려주려고 손을 뻗는 순간, 새끼 고양이가 사라졌습니다.
고양이가 사라진 순간 저도 잠에서 깼습니다. 깨고 보니 잠들었던 건 10분 가량...
10분 잠든 사이에 꿨던 꿈이 너무 생생해서 정말 삼색 새끼고양이가 정원에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깨자마자 정원에 나가보니 그 새끼고양이가 사라진 그 장미나무 있던 자리가 제가 묻어준 자리더군요.
꿈에서는 너무나 생생하게 그 자리에 장미나무가 있었고, 새끼고양이가 올라갔었는데..
사실 꿈에서 깨서 밖에 나가 확인하기 전까지만 해도 전 묻어준 고양이는 까맣게 까먹고 있었네요.
근데 나가서 확인하고 보니 고양이 시체 묻어줬던 일이 생각나면서,
아. 얘가 나한테 고맙다고 인사하려고 꿈에 그렇게 나왔나보다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한낱 미물이라도 묻어줘서 고맙다고 하고 싶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그 이후로 고양이는 진짜 영물이라고 느끼게 됐죠.
그래서 지금은 여섯 고냥씨들을 모시고 사는 독거노친네 집사가 됐다는 뭐 그런 시시한 얘기입니다.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