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가 태평양 전쟁 당시 겪은 일이라고 한다.
현재 할아버지는 95세로, 노인보호기관에 들어가 계신다.
이 이야기를 해주실 무렵에는 이미 치매끼가 조금씩 오고 있었으니 진위 여부는 나도 모른다.
할아버지는 당시 해군 항공대에 소속되어 야간 공격대에서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했다고 한다.
야간에 공습을 하러 날아오는 B-29 폭격기를 요격하는 게 주 임무였다고 한다.
쇼와 19년 말부터는 수도권에도 폭격이 빈발해졌다.
그리고 종전을 맞게되는 쇼와 20년 3월 10일 일어난 것이 바로 도쿄 대공습이었다.
전날 밤 23시 무렵에 공습경보가 발령되었지만
어째서인지 곧 해제되어 할아버지는 마음을 놓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날이 바뀌고 얼마 지나지 않은 0시 30분 무렵,
다시금 공습경보가 발령되고 출격 명령이 떨어졌다.
할아버지는 다른 동료 두 명과 함께 비행기에 올라타고 출격했다.
고도를 높여 도쿄 방면으로 기수를 향했다.
아래로 보이는 도쿄는 이미 불바다에 휩싸여 있었다.
하늘은 불길로 인해 새빨갛게 물들고, 연기는 몇천미터 위 상공까지 퍼져있었다.
열기 때문에 일어나는 상승기류가 격렬해서, 수도권 상공을 비행하는 게 곤란할 정도였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필사적으로 조종에 온 신경을 집중해서 서쪽으로 기수를 돌렸다.
그 때였다.
동료 중 레이더 탐지를 맡았던 이가 [레이더에 뭔가 잡혔어.] 라고 입을 열었다.
레이더 신호를 따라가니, 수도권을 이탈해 도쿄만 상공으로 나왔다.
잠시 후, 꽤 낮은 고도에서 기관총 예광탄이 빛나는 게 보였다.
아무래도 전투 중인 듯 했지만, 주변에 비행기라고는 그 한 대 뿐이다.
할아버지는 아군인지 확인할 의도로 그 비행기를 향해 다가갔다.
만약 적기일 경우 너무 가까워지면 선제공격을 당할 수도 있으니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그러던 도중, 할아버지는 이상한 점을 깨닫고 말았다고 한다.
아래에 있는 비행기는 틀림없이 B-29였다.
4개의 엔진 중 3개가 검은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완전히 만신창이가 된 채였다.
하지만 이상한 건 그게 아니었다.
그 B-29는 기체 중앙에서 기관총으로 상공으로 공격을 퍼붓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봐도 주변에 다른 비행기는 없다.
그 뿐 아니라 B-29는 기체 중앙에 기관총 포탑 같은 게 설치되어 있는 비행기도 아니다.
할아버지는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그것을 보고야 말았다고 한다.
B-29는 기체 중앙부에 심각한 손상을 입어,
천장이 다 벗겨져 안이 훤히 들여다 보였다.
아무래도 전면 포탑에서 떼어낸 것 같은 기관총을 들고,
기내에서 미군 병사가 무언가를 향해 난사하고 있다.
그리고 그 총구 방향에는 믿을 수 없는 것이 보였다.
몸은 인간과 비슷하지만, 비쩍 마르고 온 몸에 털 한 터럭 보이지 않는다.
피부는 거무스름하고, 얼굴은 사람인지 짐승인지도 알 수 없었다.
그것의 귀는 삐쭉하고 등에는 날개가 솟아,
마치 박쥐, 아니.. 악마의 형상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놀라운 것은 그 크기였다.
눈대중으로 보아 5m는 될 키에, 날개를 펼치자 그 폭이 20m는 족히 되어 보였던 것이다.
그 녀석은 한 손에 목이 없는 미군 병사의 시체를 든 채,
한 손으로는 비행기에 매달려 기관총을 든 병사를 잡아채려 하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곧바로 동료들에게 의견을 구했지만, 한 명은 위치 때문에 목격이 불가능했고
다른 한 명은 할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충격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공격할까 싶기도 했지만,
더 관여했다가는 자신도 위험해질 것 같다는 생각에 도망쳤다고 한다.
점점 멀어지는 B-29는, 점차 고도가 떨어져간다.
하지만 병사는 전투를 포기하지 않은 듯, 예광탄의 궤적은 밤하늘에 퍼져 갔다.
할아버지는 차마 끝까지 지켜보지는 못했다고 한다.
그 후 도심부로 돌아가 요격 임무에 임했지만,
그런 광경을 보고 나니 뭘 어찌할 생각도 들지 않았다고 한다.
이른 아침에 기지로 돌아온 후, 할아버지는 전과가 없었다고 보고를 했다.
그런 이야기를 꺼내봐야 미친놈이라는 소리나 들을 테니까.
이 이야기는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여름방학 숙제 때문에 할아버지에게 전쟁 당시 이야기에 관해 물었을 때 할아버지가 들려주셨던 이야기다.
출처 : VK's Epita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