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아틀로프 실종 사건 」
('Dyatlov' 탐사대 당시 사진)
다음은 10명의 탐사대 실종자 명단이다.
* Igor Alekseievich Dyatlov, the group’s leader, born January 13, 1936
* Zinaida Alekseievna Kolmogorova, born January 12, 1937
* Ludmila Alexandrovna Dubinina, born May 12, 1938
* Alexander Sergeievich Kolevatov, born November 16, 1934
* Rustem Vladimirovich Slobodin, born January 11, 1936
* Yuri Alexeievich Krivonischenko, born February 7, 1935
* Yuri Nikolaievich Doroshenko, born January 29, 1938
* Nicolai Vladimirovich Thibeaux-Brignolles, born July 5, 1935
* Alexander Alexandrovich Zolotariov, born February 2, 1921
* Yuri Yefimovich Yudin, born July 19, 1937
이 탐사대는 북부 우랄 산맥에서 스키 여행을 위해 결성되었다
이 사건은 1959년 러시아 북부 우랄산맥 'Kholat Syakhl'산 에서 일어난 일이다.
산악 대장 디아틀로프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팀으로 팀명은 대장 '이고르 디아틀로프'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탐사대 대장 '디아틀로프(Dyatlov)'의 당시 사진)
1959년 1월 28일 10명으로 구성된 탐사대가 러시아 우랄산맥을 거쳐 오토르덴 산을 등반한 후, 2월 12일까지 베이스 캠프인 '비즈하이 마을'로 복귀할 예정이었다.
등반 당일, 함께 동행키로 했던 대원 '유리 에딘'의 급작스런 체열(통증)로 열외되고, 결국 나머지 9명(남자 7명, 여자 2명) 만이 등반을 시작했다.
등반 5일차, 기상 악화에 의한 눈보라로 남아있던 대원 '유리 에딘'은 탐사대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등반한 탐사대에 무전을 했고, 당시 탐사 대장인 이고르 디아틀로프가 자신들은 임시 캠프를 두고 휴식 중이라며 전원 무사하다고 회신했다.
하지만 바로 다음 날 연락이 두절되고, 귀환하기로 했던 날짜가 지나도 탐사대와 연락이 되지 않으면서 행방불명이 되고 만다.
이후 탐사대를 찾기 위해 수색대를 파견하였고, '임시캠프'를 발견하게 되었지만...
캠프 근방에서 5명의 싸늘한 시체가 발견되고, 나머지 4명은 행방불명 되었다가 두 달 후 추가로 시체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당시 'Kholat'산에서 발견된 시신 사진)
- 발견된 시체 -
(2월 26일)
- 캠프 주변에 나무가 한 그루 있었는데 이곳을 기준으로 각각 Dyatlov (300m), Zina Kolmogorova (480m) and Rustem Slobodin (600m) 떨어진 지점에서 발견되었다.
- 이곳 캠프 주변 화재지에서 'Yuri Krivonischenko'와 'Yuri Doroshenko' 가 속옷만 입은 채 죽어 있었다. (스키는 나무에 걸려 있었다.)
(5월 4일)
- 향나무 숲과 계곡 사이 75m 지점에서 마지막 4명의 대원 시신을 발견했으며 마지막에 발견된 시체의 옷은 이전 대원의 옷을 껴 입은 채 죽어 있었다.
('Zolotaryov'는 'Dubinina'의 모피 코트와 모자를 쓰고 있었다.)
탐사단의 흔적과 시체를 발견한 수색대는 탐사대의 기묘한 죽음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의문점을 발견하게 된다.
의문①
최초 발견된 5구의 시체는 모두 화상의 흔적이 전혀 없었으나, 하나 같이 모두 '겁에 질린' 표정을 한 채로 죽어 있었고, 속옷을 입은 채로 저체온증에 걸려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산악 베테랑들이 설산에서 속옷만 입고 나간 것과, 임시 캠프장의 모든 장비를 두고 밖에 나갔던점.)
의문②
2월 26일 'Kholat'산 우거진 숲 아래쪽으로 1.5km 지점에서 9명이 설치 후 머문 것으로 추정되는 임시 캠프의 텐트 안쪽에서 급하게 찢은 것으로 확인되는 흔적이 발견되다. (무언가 그들을 습격했다면 텐트는 밖에서 안으로 찢겨져야 한다.)
의문③
시신이 발견된 곳 인근의 모든 나무가 새까맣게 타서 재가 되어 있었다. (영하 30℃/화씨 -22 ° F, 의 우랄산맥에서는 불을 지필 수가 없으며, 게다가 불을 피운 도구조차 발견되지 않았다.)
의문④
두 달 후 발견된 시신 4구 중 3구는 끔찍할 정도로 훼손되어 있었다. 한 남자 대원은 가슴뼈가 완전히 으스러져 있었고, 다른 남자 대원은 머리가 완전히 으깨져 있었으며, 여성 대원 중 한 명인 '루드밀라'는 혀가 아주 반듯이 잘려나가 있었다. (주변에는 살인에 사용된 도구가 일체 발견되지 않았다.)
의문⑤
9구의 시신 모두 피부색이 주황빛으로 착색되어 있었고, 머리카락은 새하얗게 변해 있었으며, 입고 있던 옷에서는 상당한 양의 방사능이 검출 되었다.
(심하게 훼손된 시신들 사진)
- 이 밖의 미스터리한 소문들 -
소문⒜
탐사대가 임시 캠프를 설치한 이 산은, 옛부터 멘시족이라는 원주민이 죽음의 사자가 떠도는 저주받은 땅으로 여겨 부족에서는 금단의 지역이라 한다.
소문⒝
멘시족에 따르면 조상대대로 붉은색 광체가 이산 어딘가에서 가끔 떠오르는 것을 목격했다고 한다. 탐사대와 연락이 두절된 날 전후로 이 지역에서는 붉은색 발광체의 목격담이 하나 둘 나타났으며, 연락이 두절된 당일 날 밤에는 이 발광체들이 탐사대의 임시 캠프가 있던 방향으로 날아갔다고 원주민 한 명이 말했다.
- 위 의문들을 토대로 나온 다양한 주장 -
주장①
- 미국의 칼럼니스트인 "마크 모르포드曰 : 탐사대는 독초 때문에 환각에 빠져 저체온증에 걸렸다." 라고 주장.
= 그 증거로 캠프 주변엔 많은 독초들이 발견됐지만 추위에 이기기 위해 불을 피운 흔적과 나중에 발견된 대원들이 몸을 보호하기 위해 먼저 죽은 사람의 옷을 입었다는 반론 등으로 이 주장은 무시된다.
주장②
- 원주민의 공격 때문이다.
= "웬만한 원주민들의 공격으로 이런 교통사고에서나 나올법한 훼손은 나오지 않는다." 라는 말로 이 주장도 무시된다.
주장③
- 미국의 과학 분석가 "브라이언 더닝曰 : 사망 원인은 눈사태이다." 라고 주장.
= 눈사태를 피하기 위해 텐트를 찢었다고 주장했지만, 탐사대가 있던 텐트는 지형적으로 완만하여 눈사태의 위험이 없었고, 그 위급한 상황에 불을 왜 지폈는지 설명이 되지 않아 이 주장도 무시되었다.
주장④
- 탐사대 10인 중 열외자인 유일한 생존자 "유리 에딘曰 : 당시 소련 정부가 비밀리에 군사무기를 실험하고 있다." 라고 주장.
= 정부에 재수사 요청을 했지만 묵살되었다.
('Dyatlov' 일행 사건의 전말 맵)
- 현재 소문 -
- 러시아 정부가 당시 수사기록과 사본을 모두 제거하고, 원문도 일부분만 남겨놓고 나머지는 찢어버려 철저히 비밀리에 보관 중이라 한다. (자체 은폐 음모론)
그리고 이후 이 사건을 모티브로 영화와 게임으로 나오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