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발단은 중종 6년인 1511년 5월 9일에 시작되었다. 실록에 의하면 "밤에 개같은 짐승이 문소전(文昭殿) 뒤에서 나와 앞 묘전(廟殿)으로 향하는 것을, 전복(殿僕)이 괴이하게 여겨 쫓으니 서쪽 담을 넘어 달아났다. 명하여 몰아서 찾게 하였으나 얻지 못하였다."라고 적고 있다.
이 괴수의 형상에 대해서는 삽살개같이 생기고 크기는 망아지 같았다라고 하며, 대단히 빠른속도로 사라졌다고 한다. 이런 괴수가 나와서 돌아다니자 궁이 크게 소란해졌다고 한다.이후에도 이 괴수가 나타났다는 이야기가 돌고 거기에 귀신까지 보태지면서 괴수인지 귀신인지를 두고 조정에서 설왕설래했다고 한다. 괴물소동이 얼마나 궁을 소란스럽게 했던지 중종 22년인 1527년 6월 26일에는 사헌부에서
“요괴로 인하여 이피(移避)하려는 계획을 세운 것은 자전의 뜻에서 나온 것이므로 신들이 감히 아뢰지 못하겠습니다. 당초 괴물을 보았다면서 떠들 때에 병조·도총부(都摠府) 및 위부장이 엄히 금지하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또한 스스로도 두려워하고 겁냈기 때문에 어리석은 군사들이 더욱 경동하였습니다. 또 병조의 입직 당상(入直堂上)과 낭관(郞官)은 의당 율에 의하여 죄를 정해야 할 것인데, 버려두라고 명하셨으므로 군령이 더욱 엄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뒤엔 감히 전같이 경동하여 떠드는 자가 있으면 모두 율에 의하여 죄를 정하게 하소서.”
라고 상소를 올렸지만 중종이 비답을 내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중종 27년 5월 21일에는 "금군(禁軍)이 밤에 놀랐다. 어떤 자가 망령된 말로 말(馬)같이 생긴 괴물이 나타나 이리저리 치닫는다.고 하자, 금군들이 놀래어 소리치면서 소동을 피웠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궁궐을 수비하는 금군이 소란스러웠을 정도였으니 당시 괴수 출현이 얼마나 사람들을 놀라게 했는지 알만할듯.
심지어는 중종이 죽고난뒤 인종이 즉위한 뒤에도 이 괴수는 나타났는데 인종이 죽기 불과 나흘전인 인종 1년 7월 2일에
"경성(京城)에 밤에 소동이 있었다. 상께서 승하하시던 날에 경중(京中) 사람들이 스스로 경동(驚動)하여 뭇사람이 요사한 말을 퍼뜨리기를 괴물이 밤에 다니는데 지나가는 곳에는 검은 기운이 캄캄하고 뭇수레가 가는 듯한 소리가 난다.하였다. 서로 전하여 미친 듯이 현혹되어 떼를 지어 모여서 함께 떠들고 궐하(闕下)로부터 네거리까지 징을 치며 쫓으니 소리는 성안을 진동하고 인마(人馬)가 놀라 피해 다니는데 순졸(巡卒)이 막을 수 없었다. 이와 같이 3∼4일 계속 된 후에 그쳤다."
라고 기록하기도 한다. 이 사건이 있은후 나흘뒤인 7월 6일에 인종이 사망했다.
대체로 실록의 기록을 보면 괴수를 직접적으로 목격했다기 보다는 괴수를 목격했는 소문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실제 이 괴수가 존재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중종 시기에 중종반정과 조광조 일파 숙청, 김안로 숙청등의 정치적 혼란이 일으킨 심리적인 동요가 괴수라는 형상으로 나타난거라는 지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