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장마차 아저씨..

신들어라 작성일 16.07.10 15: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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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앉아도 되나?”

 

포장마차에서 홀로 술을 마시던 내 앞에 주인아저씨가 다가오며 말했다.

 

마침 손님도 나뿐이고 심심하던 차에 심각한 얼굴로 술을 마시는 나를 본 모양이다.

 

“앉으세요. 안그래도 심란했는데 제 말상대나 해주시겠어요?”

 

내 말에 아저씨는 간이 의자를 끌어와서 내 앞에 앉았다.

 

“나도 한잔 줘. 보아하니 오늘 장사는 끝난거 같으니 같이 한잔 하면서 네 얘기나 들어보지.”

 

난 아저씨에게 소주를 따라주며 입을 열었다.

 

 

 

 

 

“아저씨. 아무래도 전 겁쟁인가 봐요.

 

누구보다 용감하고 대담한 그런 멋진 사람인줄 알았는데, 그냥 쓰레기였어요.”

 

술을 한입에 털어 넣은 아저씨는 잠자코 내 다음 이야기를 기다렸다.

 

“한번 들어보세요. 한 남자가 있어요. 20세 건장한 청년이죠.

 

그런데 그 남자가 우연히 창문을 통해 살인사건을 목격한 거에요.”

 

그 말에 아저씨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살인사건을 목격했다는 말이 꽤나 충격적인 모양이다.

 

난 다시 아저씨에게 술을 따라주며 말을 이었다.

 

 

 

 

“그 남자는 범인이 피 묻은 칼을 든 채 쓰러진 아이를 내려다보고 있는 모습을 목격했어요.

 

죽은 애는 어린 여자애였죠. 이제 갓 고등학교에 들어갔을 법한 아이였어요.

 

그런데 그 남자는 그걸 보고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죠.

 

당장 뛰어 내려가서 범인을 제압하지도 않았고,

 

하다못해 경찰에 신고하거나 소리쳐서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았어요.

 

 

 

 

난 내 앞에 놓인 소주를 마시고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남자는요, 범인이 자리를 벗어날 때까지 그저 한심하게 쳐다보고만 있었어요.”

 

아저씨는 내게 술을 따라주며 말했다.

 

“이해할 수 있어. 막상 그런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면 당황해서 얼어버리지.

 

부끄러운 일은 아니야.”

 

난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네 그럴 수 있죠.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에요.

 

범인이 자리를 떠나고 나서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어요.

 

아이의 시체가 집밖에서 싸늘하게 식어가는 걸 알면서도 가만히 있었죠.

 

결국 시체는 다음날 동네 사람에 의해 발견되었어요.

 

뉴스가 나오고 경찰이 범인을 찾아 돌아다니는데도 그 남자가 한 일 이라고는 침묵을 지킨 것 뿐이에요.”

 

 

 

 

 

아저씨는 멍하니 소주잔만 노려보고 있었다.

 

이야기가 이야기인 만큼 아저씨도 심란한 모양이었다.

 

난 아저씨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저씨. 만약 아저씨가 그 남자라면 이제 어떻게 할 것 같으세요?

 

이대로 침묵할까요? 아니면 조금 늦었지만 용기를 내서 경찰서를 찾아가 자신이 본걸 이야기 할까요?”

 

“....안주가 없네. 잠깐만 기다려 봐.”

 

아저씨는 대답을 피하듯 자리에서 일어나 안주거리를 가지러 갔다.

 

난 쓴웃음을 지으며 소주를 들이켰다.

 

 

 

 

칼을 들고 재료를 썰던 아저씨는 한참 지난 후에야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범인의 얼굴. 확실히 봤어?”

 

난 대답하지 않았다.

 

아저씨는 칼질을 멈추고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 그렇군. 네 얘기가 아니라 어떤 남자의 이야기였지?”

 

다시 칼질을 시작하며 아저씨가 말을 이었다.

 

“한심한 생각이 들겠지. 용감하게 나서지 못한 자신이 싫을거야.

 

하지만 그것보다 더 싫은 건 지금도 용기를 내지 못하고 숨어있는 자신의 모습이겠지.

 

무서워서 침묵하는 자신에게 누군가 용기를 주길 원할거야. 앞으로 나설 용기를 말이야.”

 

아저씨는 식재료를 접시에 쓸어 담고는 칼을 든 채 내게 다가왔다.

 

그리곤 갑자기 내게 칼을 겨누며 말했다.

 

 

 

 

“대답하기 전에 반대로 내가 질문 하나하지. 살인범인 한 남자가 있어.

 

그런데 그 남자가 어쩌다가 자신의 살해 장면을 누군가에게 들킨거야.”

 

난 날카로운 칼끝을 바라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아저씨는 살기마저 느껴지는 표정으로 날 내려다보며 이어서 말했다.

 

“그래서 그 목격자를 죽이려 하고 있어.

 

만약 네가 그 목격자라면 넌 어떻게 할까?”

 

난 천천히 손을 움직여 앞에 놓인 젓가락을 쥐고는 아저씨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아저씨는 이내 칼을 내리고 돌아서며 조용히 말했다.

 

“좋은 눈빛이네. 겁쟁이의 얼굴이 아니야.”

 

그리곤 도마위에 칼을 내려놓으며 이어서 말했다.

 

“그 남자는 겁이 났던게 아니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던 것 뿐 일거야.

 

그런 상황을 처음 겪었으니까 어찌할 바를 몰랐겠지.

 

자. 그럼 이제 네 질문에 대답해볼까?

 

내가 만약 그 남자라면 지금 당장 벌떡 일어나서 경찰서를 찾아가겠어.

 

늦게 와서 죄송하다고 말하곤 내가 본걸 하나하나 다 말하는 거지.

 

이젠 그렇게 할 수 있어.

 

왜냐하면 내가 겁쟁이가 아니라는 걸 알았으니까.”

 

 

 

 

난 조용히 아저씨를 바라보았다.

 

“너. 급하게 갈 곳이 있지 않아? 그만 가봐. 술값은 안받는걸로 할테니.”

 

난 자리에서 일어나 아저씨에게 깊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아저씨 덕에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곤 그대로 밖으로 나갔다.

 

 

 

 

 

무언가 답답하던 것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내가 겁쟁이가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아저씨는 내가 겁쟁이가 아니라고 말해 주었다.

 

난 심호흡을 하고 최면을 걸듯이 작게 중얼 거렸다.

 

“난 겁쟁이가 아니다. 난 겁쟁이가 아니다.

 

그 남자 따윈 무섭지 않다. 그 남자도 간단히 죽일 수 있다.

 

난 약한 애들만 죽이는 쓰레기가 아니다. 난 용감한 사람이다.”

 

마음을 다잡은 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아저씨가 대답한 대로 그 남자가 갑작스레 용기를 내어 경찰서를 찾아갈지도 모르니 서둘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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