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 칠흑같이 어두운 새벽에 인천에서 부산으로 향하는 고속도로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는 것을 다시 한번 절실히 느꼈습니다.
사실 그날을 더욱 잊을 수 없던 이유는 오랫동안 교제해온 여자친구와 헤어진 날이기 때문이기도 했지요...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했던가요...
저도 원래 인천에서 거주하고 있었는데 업무상 부산으로 가게 되면서 삐꺽거리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반년을 그렇게 장거리 연애를 하다가 어느 날 그녀에게 다른 남자가 생겼다는 소식을 통보받고 일을 마치자마자 초저녁부터 인천으로 향했습니다.
운전을 하는 내내 분노에 차올라 영원히 이별할 것을 다짐하고 또 다짐했습니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혼자 끙끙 앓을 바에야 직접 만나 깔끔하게 끝맺음 짓고 오고 싶었죠.
자정에 다 돼서야 도착했고 그녀와 얘기를 나누다가 자신에게 더 신경을 썼어야 됐다는 둥, 적반하장 식으로 저를 대하는 그녀의 가증스러운 태도에 저도 모르게 남자로서 여자에게 하면 안 될 짓을 해버렸습니다...
맞아요.. 홧김에 그녀의 얼굴에 손을 댄 것입니다.
사실 다시는 그녀를 보지 않을 생각으로 올라왔던 것이기 때문에 크게 개의치 않았고 한편으로는 후련한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정신차려보니 새벽 늦은 시각. 다음 날도 출근해야했기에 부랴부랴 다시 차에 몸을 싣고 부산으로 향하던 때였죠...
들어줄 사람 하나 없었지만, 나 홀로 차 안에서 그녀를 향해 하고 싶었던 말을 모두 토해내고 있던 그러한 찰나에 계기판에서 무언가 반짝거렸습니다.
아마 초장거리를 뛰었으니 진작 기름이 다 떨어진 것이겠죠...
다음 휴게소까지 거리가 다소 있었지만 이제 기름 보충 표식이 점등되었으니 아직은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가로등도 없고 차도 없고 이젠... 여자친구도 없는 그 고속도로를 혼자 외롭게 달리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음 휴게소에 도착했습니다.
새벽이라 그런지 주차장에 듬성듬성 차 몇 대와 외곽에 대형 화물차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마 졸음이 와서 잠시 눈 붙이러 들렸겠지요.
막상 휴게소에 들어오니 화장실이 급했습니다. 보통 주유소가 휴게소 출구 쪽에 있었기에 곧장 화장실 쪽으로 차를 몰아 시동도 끄지 않고 볼일을 보고 나오는데, 아까는 보이지 않던 건장한 두 남성이 화장실 입구 바로 앞에서 담배를 태우고 있더군요.
전 그냥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려 하는데 갑자기 내 손목을 턱- 붙잡고 뭔가 주절주절 강한 사투리를 쓰며 말을 건네왔습니다.
자기들이 건강식품을 파는데 지금 얼마 남지 않아서 떨이하겠다고, 싸게 줄 테니 가져가라는 말이었습니다.
보통이면 표정을 찡그리며 무시하고 갈 상황이더라도 그 남성들의 생김새라든지 풍기는 느낌이 말 그대로 조폭이었기에... 집에 어르신들도 없다고 살짝 기죽은 듯이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다고 느낀 것은 바로 그다음부터입니다.
멍하니 저를 응시하더니 대뜸 그냥 공짜로 줄 테니까 저기 가서 가져가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 남자가 가리키는 손가락으로 시선을 따라가보니 언제 세워놨는지 제 차 옆에 트럭한 대가 거꾸로 서있었습니다.
트럭 화물칸에는 냉동 탑차를 어설프게 흉내 낸 것처럼 작은 컨테이너를 올려놨는데 입구는 살짝 벌어져 있었습니다.
순간, 불현 듯 지금 이 상황과 비슷한 인신매매 수법에 대해서 들었던 기억이 떠오르더군요.
빈 컨테이너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그대로 밀어 넣고 쇠 문을 닫아버려 납치하는...
저는 등골에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식은땀과 소름, 그리고 당혹스러운 표정을 애써 감추며 최대한 기분 상하지 않게 거절하고 서둘러 차로 향했습니다.
그 남성들을 뒤로하고 살살 뛰어가는데 어렴풋이 들리는 나를 향한 욕설...
그리고 차를 타기 직전에 벌어진 컨테이너 문틈 사이를 슬쩍 보았는데, 어두컴컴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더군요... 그런데 본능적으로 안에는 건강식품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운전석에 안착하자마자 정신없이 휴게소를 빠져나왔고, 그제야 턱 끝에 맺혀있는 식은땀을 닦아 내렸습니다.
심장이 미칠 듯이 두근대었고 손이 바들바들 떨렸습니다. 하필 고속도로에 어떻게 차 한 대가 보이지를 않는지... 저는 더욱 불안한 듯 룸미러를 통해 혹시 누가 날 따라오는지 계속해서 눈알을 바삐 굴려댔습니다.
그런데,
또다시 불현 듯 떠오르는 무엇. 저는 휴게소에서 시동도 끄지 않고 바로 화장실로 뛰어갔었죠. 물론 차 문도 잠그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화장실을 나오니 내 차 옆에 트럭을 세워놨고...
아무도 없는 휴게소에서,
그 건장한 남성 둘은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나를 무력으로 제압했을 수도 있었을 텐데...
혹시. 뒷자리에 누가 웅크린 상태로 타고 있지는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니까 마른침을 꼴깍 삼키다가 사레들려 기침이 나더군요.
도저히 고개를 돌려 확인은 못하겠고, 무엇인가 찾는 척 자연스레 오른손을 뒷좌석으로 넘겨 더듬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만약 그때 손바닥에 낯선 사람의 온기라도 느껴졌다면, 그대로 저는 실신했을 겁니다.
다행히 저는 한겨울에도 히터 바람을 쐬지 않기에 차 안은 항상 차가운 공기로 가득했고, 제 손에도 역시나 그저 싸늘한 기운만이 감돌 뿐...
아주 싸늘한...
그런데, 그때 다시 뭔가 잘못됐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속도를 내려고 액셀을 밟는데 오히려 속도는 점점 떨어지는 것이었죠...
아.............. 기름..............
황급히 내비게이션을 보는데 다음 휴게소는 너무나도 먼 거리...
정말 속된 말로 그때는 멘탈이 붕괴되더군요...
그래서 비상등을 켠 채 고속도로의 갓길에 차를 세워놓고, 기름을 어떻게 하면 조달할 수 있을지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왼쪽 사이드 미러로 차 한 대가 다가오는 것을 볼 수 있었고, 제 옆을 빠르게 지나치는 듯이 하더니 급정거를 하더군요.
아. 설마.
네.
그 트럭이었습니다.
저는 순간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지만
방금 전 휴게소의 그 트럭이라고 확신하고 나서 1초도 되지 않는 그 찰나의 순간.
전조등과 비상등을 재빨리 끄고 시동도 껐습니다. 가로등 하나 없는 구간이라 그 덕분에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 연출되었어요.
그리고 그 트럭은 갓길에서 비상들을 켠 채 제가 있는 쪽으로 서서히 후진하기 시작했습니다.
숨이 막히는 듯 했습니다.
...
별달리 떠오르는 방안이 없었어요. 도망쳐야한다. 생명에 위협을 받고 있다.
그저 살고 싶었습니다.
그 와중에 다행스럽게도 그 트럭이 저를 보고 바로 급정거를 했다지만, 속도를 엄청 냈던지 저와의 거리가 꽤 된다는 걸 직시한 후 저는 밖으로 나와 버튼을 눌러 자동차 문을 잠그고 가드레일을 뛰어넘어 곧장 풀밭으로 몸을 숨겼습니다.
그리고 ‘이쯤 되면 저기서 내가 절대 보이지 않겠다.’라고 생각되는 곳까지 벗어난 후
앞으로 그들이 어떻게 할지 두려움 반 호기심 반 숨을 죽이고 지켜보았습니다.....
트럭이 곧이어 제 차의 코앞까지 다가왔고 운전석과 조수석에서 남성이 동시에 내리더군요.
운전석에서 내린 사람은 아까 두 남자 중 한명이었는데, 조수석에서 내리는 사람은 또 처음 보는 사람이더군요.
여기서 또 한번 소름 끼쳤습니다...
그리고 이내 그 둘은 주위를 살살 둘러보더니 제 차를 에워쌌습니다.
이후 차 문을 두들기면서 뭐라 말을 하는 것 같은데 그것까지는 잘 들리지 않더군요...
정말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합니다.
그 순간적인 판단이 없었다면 저는 지금 이 자리에 없을 수도 있겠죠...
제 차는 선팅이 과한 편이었는데 아마 그런 어둠 속에서는 더욱 더 자동차 내부가 잘 보이지 않았을 겁니다.
그저 제가 겁을 먹고 있어도 없는 척했을 것이라 생각했는지 차를 강하게 흔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반응이 없으니까 한 남자가 뒷좌석 쪽으로 이동해 양손과 얼굴을 창문에 바짝 붙여 안을 샅샅이 확인하는 듯 보이더군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바로 그때였습니다.
열심히 눈을 굴리던 그 남자가 갑자기 뒤로 회까닥 넘어지더니 기겁을 하며 자신들의 트럭으로 미친 듯이 내달리는 겁니다.
같이 있던 다른 남자도 덩달아 ...
곧바로 굉음을 내며 트럭은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고, 텅 빈 고속도로에는 다시 정적만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멍하니 그 광경을 보고 있다가 확실히 그들이 떠났다고 생각이 들자마자 조심조심 제 차로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운전석에 재빠르게 몸을 싣고 도대체 그들이 무엇을 보았기에 그렇게 기겁을 하고 도망쳤는지 뒷좌석으로 고개를 천천히 돌려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그들이 왜 그랬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제가 잠시 깜빡하고 있었거든요.
뒷좌석에는 피와 먼지로 범벅이 된 여자친구의 싸늘한 시체가 누워있었다는 것을.
심심한 웃음이 튀어나왔고,
차마 감지 못한 그녀의 동공은
저를 원망하듯 응시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