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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체프스키 거트루드 (Gertrude Baniszewski / 1929~1990)
이혼녀였던 거트루드는 7명의 자녀와 6명의 유산 전력을 가지고 있는 여성이었다.
몇차례의 이혼을 거듭한 그녀는 의지하고 있던 동거남마저 자취를 감추자 생계를 이어나갈 방도를 궁리하고 있던 중, 지인의 소개로 리킨스(Likens) 부부와 만나게 된다.
당시 미국의 각 주를 떠돌며 시설에서 일하던 리킨스 부부에게는 두명의 딸이 있었다.
16살이던 실비아(Sylvia Likens)와 15살의 제니(Jenny Likens)가 그들이었다.
거트루드는 이들에게 주당 20달러에 자신의 자녀들과 함께 고등학교를 보내고 사교활동은 물론 주말엔 교회에 데리고 나가는 것을 조건으로 자신의 집에 하숙 시킬것을 제안한다.
이에 리킨스 부부는 흔쾌히 응했고, 두 딸을 그녀에게 맡기고 긴 여정을 떠난다.
실비아 리킨스 (Sylvia Likens / 1949~1965)
첫 주는 별 문제 없이 흘러갔다.
그러나 부모에게서 첫번째 양육비용이 제때 도착하지 않으며 문제는 시작되었다.
거트루드는 필요한 돈이 수중에 들어오지 않자 포악한 본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아무 쓸모도 없는 개 돼지같은 년들. 돈도 없이 너희를 돌보란 말이야?」
라며 심한 화를 냈고 실비아의 옷을 내리고 엎드리게 하여 사정없이 구타하였다.
얼마 후 돌아온 리킨스 부부가 아이들을 방문하였을 때, 거트루드의 협박으로 실비아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며칠 후, 교회에서 예배를 마치고 돌아온 거트루드의 자녀들이 실비아가 교회에서 음식을 마구 먹어 보기 안좋았다고 흉을 본다.
이에 화가 난 거트루드는 조미료를 듬뿍 쌓아올린 빵을 강제로 먹게 하였다.
강압적인 행위에 음식물을 제대로 넘기지 못한 실비아가 그만 빵을 토해내자 이번엔 뱉어낸 토사물을 전부 먹게 하였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거트루드와 그녀의 자녀들은 매우 흡족해하였다.
이후 리킨스 부부가 다시 한번 딸들을 방문하였을 때, 실비아는 거트루드의 지시로 이 일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그녀의 부모는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채 다시 여행길에 올랐다.
본격적인 학대는 1965년 8월 경 시작되었다.
남자친구가 몸을 만지도록 한번 허락한 적이 있다는 실비아의 말을 우연히 듣게된 것이 도화선이었다.
이에 거트루드는 불결한 창녀라며 화를 냈고
「실비아는 매춘부이며 더러운 성생활을 일삼아 임신을 했다」라며
그녀의 자녀들로 하여금 학교에 소문을 퍼트리게 하였다.
또한 자녀들에게 실비아를 폭행하거나 계단에서 밀어 굴러 떨어트리도록 지시했다.
<사건의 배경이 된 실제 집>
한편 이 시기를 거점으로 거트루드의 학대를 눈치채기 시작한 주변 인물이 등장한다.
거트루드의 이웃으로 이사온 중년 부부인 버밀리온(Vermillion) 부부는 많은 아이들을 돌보는 거트루드의 행색을 보고 맘씨 좋은 사람으로 여겨 바베큐 파티를 열었다.
그러나 머지않아 버밀리온 부인은 얼굴에 피멍이 가득한 실비아가 음식에 손을 대지 못하고 주위를 맴돌기만 하는 것을 알아차렸다.
잠시 후 폴라(첫째 자녀/17세)가 어머니의 허락 하에 히죽거리며 실비아에게 다가가더니 뜨거운 물을 끼얻는 장면도 목격하였다.
2개월 뒤, 버밀리온 부인이 무언가를 빌리러 거트루드의 집을 방문했을 때에도
눈가에 피멍이 들어 눈을 뜰수 없을 정도의 엉망진창이 된 실비아가 집안을 멍하니 돌아다니고 하는 것을 목격하는 등,
이들 부부는 오랜 시간동안 거트루드의 상습적인 학대와 폭력을 눈치채고 있었으나 신고하지 않고 묵인하였다.
이웃소녀인 12살의 쥬디 듀크(Judy Duke) 또한 학대의 장면을 목격한 후 자신의 어머니에게
「그 집 사람들이 실비아를 마구 때리고 발로 차고 있었어요.」
라고 말했으나 그녀의 어머니는「벌받을 만한 짓을 하면 그럴 수도 있다」고 답하고는 무시했다.
또 다른 14살의 이웃 소년 리키 홉스(Ricky Hobbs)도 거트루드의 집에서 공공연하게 행해지고 있던 학대를 눈치챈다.
그러나 거트루드는 착실한 학생이었던 리키를 교묘히 조종하여 실비아의 고문을 돕는 수행자로서 역할을 다하도록 하였다.
이후 착실한 학생이었던 리키는 잔악에 가까운 잔혹성을 보이며 실비아의 학대에 적극 동참하였다.
<리키 홉스와 거트루드>
이와 같은 주변 사람들의 철저한 침묵과 묵인 속에서, 실비아에 대한 학대는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해져 가고 있었다.
이 무렵, 실비아는 참석하지도 않았던 학교의 수업에서 껌을 훔쳤다는 혐의를 받게 된다.
이에 거트루드는 절도의 자백을 강요하며 손가락 끝마다 담배불로 지지며 고문하였다.
(이후로 실비아에게 절도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켜야 한다며 집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은 실비아의 몸에 비벼 담배를 끄는 것이 법칙처럼 되었다.)
그 사건 이후로 거트루드는 실비아가 학교에 가는 것을 금했다.
등교를 금지당한 이튿날, 거트루드는 실비아에게 음료수를 사오라고 지시한다.
돌아온 실비아에게 거트루드는 매춘을 해 음료수를 얻어왔다고 비난하며 남자 자녀들과 이웃 소년들이 보는
앞에서 실비아의 몸에 코카콜라 병을 억지로 삽입하였다.
코카콜라 병의 무리한 삽입 이후, 실비아에게 요실금이 생겼다.
이에 거트루드는 실비아는 더이상 인간이 아니라고 판단, 지하실에 감금하기에 이른다.
옷가지조차 박탈당한 실비아는 옷을 벗은채 지냈으며 거의 먹지 못했다.
이와 같이 옷을 벗은 상태로 감금된 실비아를, 거트루드는 돈을 받아 이웃소년들에게 구경시켰으며 계단에서 지하실로 밀쳐 떨어트리도록 허락해 주곤 했다.
또한 감금된 실비아는 화장실이 없어 지하실 바닥에 용변을 보기 시작했고, 존 주니어(셋째 자녀/12세)는 자신의 용변은 스스로 치워야 한다며 바닥에 쌓인 배변을 먹게 하거나 오줌을 받아놓았다가 마시게 했다.
거트루드는 이러한 존의 행동을 매우 흡족해했으며, 배설물에 더러워진 실비아를 정화시킨다는 이유로「목욕요법」을 시작한다.
목욕요법이란 실비아의 몸과 마음에 깃든 오물을 씻어내야 한다는 판단 아래
그녀의 손과 발을 묶고 뜨거운 물이 담긴 욕조에 던져 넣는 것이었다.
거트루드의 자녀들은 실비아를 높이 들어 올려 욕조에 떨어트리며 매우 즐거워하곤 했다.
그리고는 화상을 입어 빨갛게 부어오른 실비아의 몸을 소금으로 마구 문질렀다.
이와 같은 목욕요법은 하루에 수차례 시행되기도 하였으며, 실비아에게 악취가 심한 날에는 불쾌감을 참을 수 없다며 넘어가기도 하였다.
<당시 실비아가 감금되어있던 지하실>
이 무렵, 실비아의 여동생 제니 리킨스는 결혼해서 살림을 차리고 있던 큰언니 다이애나(Diana Likens)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들이 처해있는 상황을 설명하고, 경찰에게 연락해 주기를 요청했다.
그러나 다이애나는 단순히 보호자인 거트루드에게 꾸중듣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자신과 함께 살고 싶어 거짓을 꾸며내는 것이라 여겨 오히려 괘씸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 편지를 무시해버렸다.
그러나 얼마 후,
약간의 꺼림칙한 기분이 든 다이애나가 여동생들을 만나러 거트루드의 집을 방문한다.
그러나 거트루드는 다이애나가 집 안에 발을 들여놓는 것을 완강히 거부했으며, 이를 이상하게 여긴 다이애나가 그녀의 제지를 무시한채 집안으로 들어가려하자 그녀의 자녀들도 합세하여 경찰에 신고하겠다며 위협했다.
이에 다이애나는 근처에 숨어 여동생들이 나올때까지 기다렸다.
몇 시간 후, 제니를 발견한 다이애나는 그녀에게 다가갔지만 자신은 실비아에 대해 말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며 도망쳐버렸다.
걷잡을 수 없는 불안에 사로잡힌 다이애나는 곧장 사회복지단체를 찾아간다.
그녀의 신고에 사회복지사가 거트루드의 집을 방문했다.
그러자 거트루드는 남자와 행위를 일삼던 실비아가 임신을 하게되어 가출했다고 진술했다.
거트루드의 협박을 두려워한 제니 또한, 실비아는 가출해버렸으며 행방을 모른다고 답했다.
이에 사회복지단체 직원은 거트루드 집에 대한 더이상의 방문은 필요 없으며,
더 이상 추적할 필요가 없는 사례라고 기록하며 사건을 마무리했다.
<제니와 다이애나>
10월 21일 저녁 무렵.
거트루드는 존(셋째 자녀/12세)과 스테파니(둘째 자녀/15세), 코이 하버드(스테파니의 남자친구/15세)에게 실비아를 지하실에서 데려와 침대에 묶어놓으라고 지시했다.
이튿날 아침, 거트루드는 실비아가 침대에 오줌을 싼 것을 보고 분노한다.
이에 그녀를 거실로 데려와 자신의 아들들과 이웃 소년들 앞에서 스트립쇼를 시켰고, 콜라병을 몸에 다시 한번 삽입하게 하였다.
스트립쇼가 끝나자, 거트루드는 실비아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바닥에 억지로 눕혔다.
이어 거트루드의 자녀들이 성냥으로 빨갛게 달군 바늘을 가져와 그녀의 복부에 낙인을 새기기 시작한다.
「나는 (I Am)」 이라는 글자가 완성되었다.
이어 거트루드는 깔깔 웃으며 바늘을 리키 홉스에게 넘긴다.
그에게 「매춘부이며, 그것이 자랑스럽다」 라는 문구를 새기도록 시켰다.
리키가 매춘녀의 철자를 묻자, 거트루드는「매... 춘.... 부」 라고 읊조리며 종이에 적어주었다.
낙인이 완성되자 거트루드는 흡족해했다. 만족에 찬 거트루드가 방을 나가자 폴라(첫째 자녀/17세)와 셜리(다섯째 자녀/10세)는
실비아의 가슴에 낙인을 새기기로 하였다.
그녀의 흉부에「S」라는 글자를 새겨 넣기로 하고, 실비아의 동생, 제니를 불러 바늘을 쥐어주며 새기라고 요구하지만 거절한다.
제니가 거절하자, 10살의 셜리가 나서서 낙인을 새겨 넣었다.
다만 지나치게 흥분한 탓에 잘못 새겨「 3 」이라는 낙인이 되어버린다.
(훗날 법정에서 S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실비아(Sylvia) 혹은 노예(Slave) 어느쪽의 S인지 자신들도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이윽고 다시 나타난 거트루드는 실비아의 낙인에 매우 만족한 듯 크게 웃었다.
그리고는 재갈을 풀어주며 실비아에게 말했다.
「 이제 너는 결혼도 할 수 없고 누구 앞에서건 옷을 벗을수도 없어. 어때? 」
아무런 반항조차 하지 않던 실비아는 가만히 대답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그냥 이대로 있는거에요」
<실비아의 몸에 새겨진 낙인>
이후 하버드(스테파니의 남자친구/15세)가 실비아를 지하실로 데려갔고, 그 곳에서 실비아를 상대로 열성적인 유도 연습을 마치고는 흡족히 귀가했다.
그날 밤, 제니가 몰래 지하실로 내려와 실비아를 찾아왔다.
실비아는 가만히 말했다.
"난 곧 죽을것같아.."
제니가 다녀간 후에는 거트루드가 다시 지하실로 내려와 실비아를 데리고 올라와 침대에서 재웠다.
실비아는 이튿날 10월 23일 점심까지 잠을 잤으며, 그녀가 잠에서 깨어나자 거트루드와 스테파니(둘째 자녀/15세)가 그녀를 욕실로 데려갔다.
따뜻한 물로 목욕을 시킨 후, 옷을 입히고는 불러주는 대로 편지를 받아 적게 하였다.
「저는 밤에 남자들과 놀았어요. 그 아이들이 잠자리를 가지면 돈을 주겠다고 했어요.
그 애들을 만족시켜줬지만, 저를 마구 때렸고 온 몸이 멍 투성이가 됬어요.
'나는 창녀이며 그것이 자랑스럽다'라고 복부에 새겨 넣었어요.」
부모에게 전해줄 편지가 마무리 되자,
거트루드는 제니에게 실비아를 근처의 쓰레기장으로 데려가 죽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포에 질린 실비아는 계단을 뛰어내려가 도주를 시도했으나, 현관 입구에서 거트루드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거트루드는 슬쩍 웃으며 그녀를 식당으로 데려가 토스트를 몇개 쥐어주었다.
그녀는 먹으려 했으나 눈물이 쏟아져 차마 삼킬 수 없었다.
이에 거트루드는 곁에 있던 커텐 봉으로 그녀의 입을 후려 갈겼다.
이후 존(셋째 자녀/12세)으로 하여금 실비아를 지하실에 감금시키도록 했다.
거트루드도 따라서 지하실에 내려가, 접시에 담긴 과자를 그녀에게 건네 주었다.
실비아는「개에게나 줘버려 개가 나보다 더 배고플테니」 라고 외쳤다.
이에 거트루드는 수차례 그녀의 복부를 걷어차고 지하실을 나왔다.
다음날, 10월 24일.
지하실로 내려온 거트루드는 야구 방망이로 실비아를 수차례 내려치다가 지나치게 크게 휘둘러 자신의 얼굴을 강타해 눈 주위에 멍이 들었다.
매우 불쾌해진 거트루드는 몇번 더 그녀를 내리치고 지하실을 나와 버렸다.
이어서는 하버드(스테파니의 남자친구/15세)가 지하실로 내려와 빗자루로 실비아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이 충격으로 실비아는 의식을 잃었다.
그날 저녁부터 다음날 10월 25일 새벽까지 실비아는 삽으로 지하실 바닥을 계속해서 두드렸다.
거듭되는 절박한 소리에 이웃들은 경찰을 불러야 한다는 생각은 했지만 아무도 연락하지는 않았다.
10월 26일 저녁 무렵,
거트루드는 자녀들에게, 실비아가 욕조에서 목욕할 기회를 주라고 말했다.
이에 스테파니(둘째 자녀/15세)와 리키 홉스(이웃집 소년/14세)가 실비아를 위층으로 옮겨 옷을 입은 채로 욕조에 넣었다.
실비아는 가만히 욕조 깊숙이 잠겼다.
잠시 후, 그들은 욕실로 돌아가 잠겨있던 실비아의 몸을 들어 올려 매트리스 위에 눕혔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런 미동도 보이지 않았다.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놀란 스테파니가 소생시키려고 노력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공포에 사로잡힌 스테파니는 경찰에 연락했고, 경찰이 도착하자 거트루드는 실비아가 적었던 편지를 차분히 내밀었다.
그러나 그 소란스러운 와중, 제니가 경찰관의 소매를 붙잡고 덜덜 떨며 속삭였다.
「 밖으로 데려다 주면 모든 것을 말하겠어요..」
<제니 리킨스>
제니의 충격적인 진술을 토대로 사건의 경위를 파악하게 된 경찰은 곧바로 거트루드와 그녀의 자녀들, 하버드와 리키 홉스를 살인죄로 검거하였다.
이웃 소년 4명도 상해죄로 체포되었다.
사체 부검 결과 2도와 3도의 담배 화상이 100여곳 이상, 수백개에 이르는 심각한 타박상과 찰과상, 근육 및 신경손상이 밝혀졌다.
죽음보다 극심한 고통 속에서 입술을 깨물어 그녀의 양 입술은 절단된 상태였다.
외부 성기는 심한 부종으로 막혀있었으나, 처녀막은 손상되지 않아 거트루드의「실비아는 매춘부이며 임신했었다」는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망 원인은 뇌부종, 뇌혈종, 장기간의 중증 피부 손상에 의한 쇼크로 판명되었다.
1966년 5월.
거트루드와 폴라(첫째 자녀/17세), 존 주니어(셋째 자녀/13세)
리키 홉스(이웃집 소년/14세), 코이 하버드(스테파니의 남자친구/13세)는 모두 사형을 구형받았다.
재판 진행 도중 임신 상태였던 폴라가 산기를 보여 병원으로 후송되기도 하였다.
당시 태어난 아이에게, 그녀는 가족간의 결속을 다지는 의미에서「거트루드」라고 이름지어 주었다.
재판 진행 과정 속에서, 각각의 변호사들은 서로 다른 사람들의 죄라고 주장하였다.
재판은 각각의 가해자들의 입장에서 쏟아져나오는 수많은 주장들과 책임 회피, 책임 전가 등이 활개하여 어지럽게 얽혀가고 있었다.
이러한 와중 거트루드는 실비아의 빈번한 매춘, 중년 유부남과의 성관계, 얼마나 반항적이고 공격적인 아이였는지 배심원들에게 전달하려고 애썼다.
뒤이어 증언대에 오른 마리(넷째 자녀/11세)는 차분히 어머니의 말이 맞다고 동조하였다.
그러던 그녀는 반대 심문을 당하던 도중, 돌연 눈물을 쏟으며 하늘을 향해 「하느님, 도와주세요! 」하고 외쳤다.
뒤이어 자신이 지금껏 한 발언은 모두 거짓이며, 어머니 거트루드와 다른 형제들이 실비아를 어떻게 학대하였고 고문하였으며 죽음에 이르게 했는지 그 참혹한 잔상을 샅샅이 고백하였다.
이 증언은 배심원 판결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Gertrude Baniszewski
<핵심 주동자>
거트루드는 1급 살인으로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판결이 부당하다고 느낀 그녀는 항소를 거듭하여 최소 18년~종신구금형에 해당하는 형량을 얻게 되었고,
감옥생활을 하는 동안 수선가게를 성실히 운영하며 다른 수감자들의 상담에 상냥하게 귀기울여주는 등,
타 어린 죄수들의 귀감이 되는 모범수로서 18년의 징역을 끝으로 가석방 처리되었다.
1985년 가석방으로 자유를 되찾을 때 까지, 그 상냥한 언동으로 감옥에서「대모(Mom)」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가석방되는 그녀의 모습>
거트루드의 가석방 소식은 인디아나 주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제니 리킨스와 그녀의 유족은 TV에 등장하여 눈물을 흘리며 반대의사를 피력했다.
이에 각종 시민단체와 범죄반대단체, 학대반대단체들이 발벗고 나서 서명운동과 가석방 반대 시위를 진행하며 유족을 지지하였다.
2개월 후, 시민단체는 인디아나 주민 4500명의 가석방 반대 서명을 제출하였으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거트루드는 모범적 행실을 연유로 가석방 처리되었다.
1985년 12월 4일 가석방 된 거트루드는 Nadine Van Fossan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아이오와 주로 이주하여 남은 여생을 살다가 1990년 폐암으로 사망하였다.
이 사망소식을 들은 제니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다음과 같은 글귀와 함께 거트루드의 사망 기사를 보냈다.
「좋은 소식이 있어요 어머니. 그 늙은 마녀가 죽었대요」
(There's Good News Mom. Damn Old Gertrude Died)
Paula Baniszewski
<첫째 자녀 / 당시 17세>
2급 살인죄를 선고받았으나 이에 불복하여 재차 항소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항소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자신의 유죄를 인정하고 형을 감면받는 유죄감면신청을 하여 3년간 수감되었다 가석방되었다.
훗날 결혼하여 2명의 아이를 두었다.
(사진 : 거트루드와 스테파니 모녀가 나란히 수갑을 차고 있는 장면)
Stephanie Baniszewski
<둘째 자녀 / 당시 15세>
훗날 플로리다 주에서 학교 교사가 되었다.
결혼하여 자녀도 두고 있다.
오늘날까지도 그녀는 인터뷰에서 당시 남자친구였던 코이 하버드와 자신은 죄가 없었다고 주장한다.
(사진 : 8개월의 형을 선고 받은 존과 그런 아들이 안쓰러워 눈물 흘리는 거트루드)
John Baniszewski
<셋째 자녀 / 당시 12세>
소년원에서 8개월의 징역을 보낸 뒤 모범수로 가석방 처리되었다.
평신도로 살며 이혼가정의 아이들을 상담하였다.
또한 존스보로 학교 학살 참사 이후 어린 범죄자들이 자신의 인생을 바꿀 수 있도록 계몽시키고자 자신의 인생을 예를 들어 열렬히 강의하곤 하였다.
결혼하여 자녀 셋을 두고, 2005년 당뇨병으로 사망하였다.
Marie Baniszewski
<넷째 자녀 / 당시 11세>
재판에서 계속 혐의를 부정해오다가 실비아의 학대를 인정하므로써 재판의 드라마틱한 순간을 구성해 낸 장본인
Shirley Baniszewski
<다섯째 자녀 / 당시 10세>
실비아의 가슴에 낙인 찍는 것을 도왔다.
「S」를 새기려다 지나치게 흥분한 나머지 「3」자를 새겨버린 장본인.
James Baniszewski
<여섯째 자녀 / 당시 8세>
이 사건을 토대로 한 영화 「아메리칸 크라임」의 개봉 이후, "모든 것은 과장되었다.
실비아는 단지 어머니를 열받게 해서 죽은거다." 라고 언급하여 논란을 일으켰다.
Dennis Baniszewski
<일곱번째 자녀 / 당시 생후 18개월>
위의 여섯 남매들과 아버지가 다른 이복 형제로, 오늘날 결혼하여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있으며, 실비아의 비극적인 죽음과 관련된 어떠한 사실도 보거나 듣고 싶지 않다고 언급했다.
(사진 : 왼쪽은 둘째 아들 존 / 오른쪽이 스테파니의 남자친구 코이)
Coy Hubbard
<둘째 자녀 스테파니의 남자친구 / 당시 15세>
감금 중인 실비아를 상대로 유도 연습을 즐겨하였으며 상습적인 구타를 즐겼다.
8개월의 징역살이를 한 뒤 가석방되었으나 이후로도 범법행위를 저질러 여러차례 구속된다.
이후 결혼하여 부인과 5명의 아이, 17명의 손주, 1명의 증손주를 두었으나
2007년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사진 : 왼쪽은 리키 홉스 / 오른쪽은 둘째 자녀 존)
Richard Hobbs
(이웃 소년 / 당시 14세)
거트루드를 도와 실비아의 학대를 주도적으로 조력했던 인물.
실비아의 복부에 낙인 찍는 것을 마무리했던 장본인으로 소년원에 8개월 수감 된 후 모범수로 가석방 처리 되었다.
1972년, 만 21세의 나이에 폐암으로 사망하였다.
이 실화는 2007년 미국에서 영화로 개봉되었다.
마지막으로, 롤러스케이트와 비틀즈의 음악을 좋아하던 실비아 리킨스와 그녀의 어머니.
나중에 아메리칸 크라임 이라는 영화 개봉 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