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ch] 불을 지키다

금산스님 작성일 17.02.27 12:5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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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게 들은 이야기다.

동료 여럿이서 캠프를 갔었다고 한다.

 


밤이 깊어져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잠들고,

불 곁에 남아있는 건 이제 그 뿐이었다.

 


하품을 하며 슬슬 불을 끄고 나도 잘까 싶을 무렵,

처음 듣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뭘 하고 있는거야?]

고개를 들자, 불 너머 저편에 누군가 앉아 있다.

 


흐릿하게 보이는 커다란 검은 그림자.

눈에 안개라도 낀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 때는 무섭다는 생각도 안 들어,

평범하게 대답했다고 한다.

 


[응.. 불을 지키고 있는거야.]

상대가 누구인지, 왜 이 시간에 이런 곳에 있는 것인지.

그런 의문조차 전혀 떠오르질 않았다고 한다.

 


방금 전까지는 멀쩡하게 깨어있었는데,

마치 잠에 취한 것처럼 머리가 돌아가질 않는다.

 


멍하니 잠에 취한건가 싶은데,

다시 말소리가 들려온다.

 


[그 불이 꺼지면 당신은 어떻게 할거야?]

[응.. 안 꺼져.]

[이런 산속이면 한치 앞도 안 보이는 칠흑 같은 어둠 뿐이겠네.]

[응.. 이 불이 꺼져버리면 그렇게 되겠네.]

 


[어둠은 깊다고. 안에 뭐가 숨어있을지 모르지.]

[응.. 어두운 건 무서워. 그러니까 불을 지켜야지.]

누군지 모를 목소리는 계속 불을 끄라고 권유한다.

 


[불 따위 안 지켜도 괜찮아. 졸리잖아. 어서 푹 자버려.]

[응.. 그러고 싶지만 그러면 안 되는거야.]

[내가 대신 꺼줄까?]

[응.. 그러지마.]

 


[불 꺼버린다.]

[응.. 하지만 바로 다시 켤거야. 어두운 건 싫으니까.]

[한 번 꺼진 불은 바로 다시 켤 수 없어. 쓸데없는 짓이니까 어서 자 버려.]

[응.. 라이터도 있으니까, 불씨만 있으면 금방 다시 켤 수 있어.]

 


[라이터인가. 그게 있으면 바로 불이 켜지는건가.]

[응... 켜질거야. 산불도 금방 낼 수 있을 정도로.]

그러자 의문의 목소리는 라이터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불이 안 꺼지면 라이터는 필요 없는거지? 나한테 줘.]

[응.. 이건 중요한 거니까 안 돼.]

[내가 대신 불을 지켜줄게. 그러니까 라이터 줘.]

[응.. 내게 아니니까 역시 안 될거 같은데.]

 


이런 입씨름을 몇번인가 반복했다.

이윽고 그림자가 슬쩍 움직이더니 일어나는 기척이 느껴졌다.

 


[불이 꺼지지 않는다니 어쩔 수 없네. 돌아가야겠다. 또 놀자고.]

그 말을 마지막으로, 그 알 수 없는 무언가는 산속 어둠으로 사라져갔다.

 


[바이바이..]

멀어져 가는 기척을 느끼며,

그렇게 인사하고 있자니 갑자기 몸이 강하게 흔들리더란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먼저 잠자리에 들었던 동료가 자기를 흔들고 있더라는 것이었다.

 


시선이 마주치자,

동료는 엄청난 기세로 질문을 던져댔다.

 


[너! 지금 도대체 뭐랑 이야기한거야!]

[뭐라니.. 어?]

그제야 겨우 사고가 돌아가기 시작하고 금방 전 대화하건 걸 떠올렸다고 한다.

 


[어, 지금 나 누구랑 말하고 있던거야!? 꿈꾸고 있던 건 아니지!?]

정신을 차리니 다른 일행들도 모두 텐트에서 얼굴을 내밀고 벌벌 떨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를 흔들어 깨운 사람이 사정을 늘어놓았다.

자다가 텐트 밖에서 말소리가 들려 깼다는 것이었다.

 


한밤중에 누가 이렇게 떠드나 싶어 밖을 내다 봤다가 기겁했다고 한다.

분명히 밖에는 한 명 밖에 없을 터인다.

 


조심스레 살피니, 모닥불을 사이에 둔 그림자 두개가 보이더란다.

한 명은 확실히 친구였지만, 다른 하나는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사람의 형태를 한 검은 덩어리 같은 것으로 보이더란다.

 


친구와 그림자는 몇번이고 끈질기게 계속 이야기를 나눴다.

아무래도 불을 꺼야한다느니 끄면 안 된다느니 하는 이야기였다나.

 


절대 불을 끄면 안 돼!

차마 말로는 못하고 마음 속으로 그렇게 빌고 있자니

곧 그림자는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고 한다.

 


그때쯤 되니 다른 사람들도 다 일어나 뒤에서 숨을 죽이고 있었다고 한다.

그림자가 사라진 순간, 텐트 속에서는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고..

 


직후에 바로 뛰쳐나와,

황급히 홀린 것처럼 불을 바라보는 친구를 붙잡고 흔들어 정신을 차리게 했던 것이다.

 


무심코, 그림자가 사라진 모퉁이의 어둠을 응시했다.

움직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발 밑에서 타닥타닥 모닥불이 타오르는 소리가 들릴 뿐.

 


그 후 그들은, 산에서 내려갈 때까지 계속 불을 지켰다.

불침번을 둘 세운 다음 불 감시하는 사람을 따로 한 명 두었다니 어느 정도였는지 알 것이다.

 


보람이 있었던지,

그 후 그 그림자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내가 그 때 무슨 소리를 하고 있었던지 원..]

생각하노라면 지금도 소름이 끼친다는 것이다.

 


출처 : VK's Epita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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