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끼리 작은 방범회사를 설립하고 8년 정도 지났다.
지방은행에서 빌렸던 큰 빚도 거의 갚고,
순조로이 이익이 늘어갈 무렵 덜컥 아내가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나는 그 이후로 일에서 손을 뗐다.
스스로도 이러면 안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비즈니스 약속도 무시하고 하루종일 불단 앞에만 앉아있었다.
폐인 그 자체였지..
당연히 사업은 망조에 접어들었고, 빚은 쌓여만 가는데다 사무실도 방치된 채 한 달이 흘렀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이미 빚도 산더미인데다 그간 쌓아온 모든 게 무너진 후였다.
나는 자살하기로 마음먹었다.
길게 자란 머리 그대로, 가장 굵은 로프를 사왔다.
집에 돌아와 천장 팬에 묶고 의자 위에 섰다.
목에 로프를 감았지만, 생각보다 그리 떨리지는 않았다.
의자를 차면 이제 죽는구나 하는 생각 뿐..
주마등이라던가 자살하려는 각오라던가,
그런건 죄다 헛소문이구나 하고 멍하니 생각하고 있었다.
슬슬 죽으려고 다시 발 밑 의자로 시선을 옮기는데, 문득 앞에 뭐가 보였다.
그것은 삼등신 정도 되어보였다.
기름기가 많은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트렸는데,
그 사이로 보이는 눈은 새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입은 기분 나쁘게 실룩실룩 웃고 있다.
내가 서 있는 의자를 보며,
빨리 넘어지라는 의사를 보내는 게 확실히 느껴졌다.
무심코 입을 떡 벌리고 바라보고 있자,
그놈도 내 시선을 눈치챘는지 시선이 마주쳤다.
놈도 꽤 놀랐는지 입을 떡 벌렸지만,
곧 실룩실룩 웃기 시작했다.
[네가 죽으면 아이는 데려가도 되지?]
아저씨 목소리로 말했다.
상황을 파악할 수 없었지만, [안 죽어.] 라고 대답했다.
그 순간 내가 무슨 바보짓을 하려는건가 정신이 퍼뜩 들었다.
나한테는 아직 다섯살 난 딸이 있고,
아내가 죽고나서는 사돈 어르신께 맡겨두었는데..
그 사실 자체는 한 달 동안 완전히 잊고 있다 그 순간에서야 떠올린 것이었다.
나는 곧바로 로프를 풀고 의자에서 내려왔다.
놈은 사라져있었지만 분명히 거기 있었다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나는 그대로 처갓집을 찾아가 무릎 꿇고 사죄했다.
그리고 딸을 꼭 껴안고 엉엉 울었다.
딸도, 장인 장모님도 울면서 용서해주셨다.
지금은 빚을 갚으며 딸을 키우고 있다.
세일즈맨으로서 필사적으로 살아가는 중이다.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나는 아직 모른다.
그러나 저런 이상한 놈은 분명 있고, 나도 딸도 그 놈이 노리고 있다는 것만 알 뿐..
출처: VK's Epita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