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ch] 물려받은 물건

금산스님 작성일 17.09.13 10: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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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우리집은 무척 가난했다.

부모님은 내가 가지고 싶은 게 있어도 사주질 않으셨다.

 


옷은 주변 이웃집에서 물려준 걸 받아다 입었고,

간식이라곤 얼음사탕 뿐이었다.

 


의무교육은 제대로 받았지만,

필기구나 교과서는 다 물려받은 것이었다.

태어나서 내내 물려받은 물건만 써왔기에 딱히 불만은 없었다.

 


다만 딱 하나, 싫었던 것은 물려받은 책상이었다.

그 책상은 물려받은 물건인데도 아직 새 것처럼 윤이 반짝반짝 났다.

 


서랍을 열면 나무냄새가 훅 풍겨와,

나는 그 향기 맡는 걸 즐기곤 했다.

 


처음 그 책상을 받고 나서는 너무 마음에 들어,

한가할 때면 분수에 맞지 않게 거기 앉아 책을 읽는 게 내 기쁨이었다.

 


하지만 책상을 받고,

일주일 정도 지났을 무렵에 이상한 체험을 했다.

 


평소처럼 의자에 앉아 책상에서 책을 읽는데,

오른쪽 다리에 서늘한 감각이 느껴졌다.

 


하지만 책을 읽고 있는 와중이었기에

다리에 느껴지는 감각 따윈 신경쓰지 않았다.

그저 다리를 조금 빼서 서늘한 감각이 느껴지지 않게 할 뿐.

 


그러나 잠시 뒤, 또 서늘한 것이 다리에 닿았다.

기분 나빠서 나는 오른발로 서늘한 것을 안쪽으로 밀어넣었다.

그러자 발 끝에 이상한 감각이 느껴졌다.

 


시선은 책에 꽂혀 있었지만, 의식은 책상 아래 발 끝에 몰려 있었다.

나는 오른쪽 다리를 슬쩍 움직여, 그것의 표면을 어루만졌다.

 


울퉁불퉁하고, 곳곳에 구멍이 나 있는 듯 했다.

부드러운가 싶으면 딱딱한 곳도 있어,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발 끝으로 그것의 표면을 훑다가, 마지막으로 위쪽을 향했다.

가는 실 같은게 수도 없이 느껴진다는 걸 알아차림과 동시에,

나는 내 발에 뭐가 닿고 있는지 알아차렸다.

 


살그머니 몸을 숙여 책상 아래를 들여다봤다.

거기에는 창백한 사내아이가 있었다.

내 발 끝은 사내아이의 머리에 닿고 있었다.

 


나는 놀라 의자에서 뒤로 넘어졌다.

하지만 시선은 여전히 책상 아래 사내아이를 향하고 있었다.

사내아이 역시 미동도 않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채 일어서지도 못하고, 나는 엉금엉금 방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곧바로 아버지를 찾아가 금방 본 걸 울며 이야기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전혀 믿어주질 않았다.

만약 믿어주더라도, 우리 집에 책상 살 돈은 없으니 바꿔줄리도 없었기 때문에

결국 나는 초등학교 시절 내내 그 책상을 사용했다.

 


책상에서 공부하고 있노라면

종종 다리에 서늘한 것이 닿을 때가 있었지만, 책상 아래를 보지는 않았다.

또 그 아이와 마주칠까 무서웠으니까..

 


있는 것은 확실하지만,

보지 않는 것으로 스스로를 속여 넘길 생각이었다.

 


중학생이 된 후, 나는 어머니에게 슬쩍 물어봤다.

내가 쓰고 있는 책상은 누구한테 받아왔냐고.

 


어머니는 조금 곤란하다는 얼굴을 하더니,

[그 책상은 와타루군네 집에서 받아온거야.] 라고 가르쳐주었다.

 


와타루군은 나와 동갑으로, 함께 유치원을 다녔던 친구였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며칠 전, 와타루군은 강에 떨어져 죽었다.

머리가 좋았던 와타루군은 입학하기 전부터 공부를 시작했던 것 같다.

 


내가 쓰고 있는 책상에서 공부하며,

앞으로 시작될 학교 생활을 두근대며 기다린 게 아니었을까..

 


사정을 알게 된 나는 책상 아래 있는 와타루군이 더는 무섭지 않았다.

와타루군이 이루지 못한 꿈만큼 내가 더 열심히 공부할 작정이었다.

 


그 후로도 와타루군은 내 다리를 만지곤 했다.

나는 와타루군이 다리를 만질 때마다 공부 열심히 하라고, 격려해주는 것이라 여겼다.

 


와타루군의 격려 덕분인지,

나는 상당히 공부를 잘하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중학교에서는 야구가 유행하게 되었다.

나도 끼고 싶었지만 야구배트나 글러브를 살 돈이 없었다.

 


나는 여느 때처럼 아버지에게 졸랐다.

그러자 아버지는 [조금 기다려라.] 라고 말했다.

 


몇 개월 뒤, 아버지는 배트와 글러브를 내게 건네주었다.

또 다시 물려받은 것이었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이제 야구를 할 수 있게 됐으니까.

 


나는 다른 아이들 틈에 끼어, 신나게 야구를 즐겼다.

그런데 어느날, 한 친구가 내 글러브를 보고 말했다.

 


[그거, 요시로 글러브 아니냐?]

요시로는 학교 야구부에서 뛰던 같은 반 친구였다.

재능이 있어 신입생인데도 주전으로 뛸 정도였다.

 


하지만 요시로는 얼마 전 죽은 터였다.

학교에서 돌아오다 강에 빠져 죽었다고 한다.

 


내가 쓰는 글러브가 요시로 것이라는 것을 알고, 나는 다짐했다.

요시로가 아쉬워하지 않게, 그 녀석 몫까지 열심히 야구하자고.

 


그때, 문득 생각했다.

요시로와 와타루군은 묘하게 닮아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다.

 


두 사람 모두 일찍 죽은데다가 사인도, 죽은 장소도 같다.

그리고 두 사람의 유품을 내가 쓰고 있다.

이런 우연이 있는걸까?

 


몇 개월 뒤, 나는 게임기가 갖고 싶어 아버지를 졸랐다.

그러자 아버지는 여느 때처럼 [조금 기다려라.] 라고 말했다.

 


2주 뒤, 아버지는 게임기를 가져다 주었다.

또 물려받은 것이었다.

 


아버지에게 게임기를 받기 얼마 전, 신문에 실렸던 기사가 떠올랐다.

근처 강에서 중학생이 빠져 죽었다는 기사가..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그날 밤, 평소처럼 방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발끝에 무언가가 닿았다.

몇 년간 나는, 그게 죽은 와타루군이 나를 격려해주는 것이라 여겼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 무언가는, 필사적으로 호소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지금도 책상 아래를 차마 바라볼 수가 없다.

 


출처: VK's Epita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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