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청년이 엄청난 돈을 들고 찾아왔다.
늦은 밤, 자신의 전 재산을 구로다 장군께 바치고 싶다면서 비밀리에 찾아 온 것이었다.
욱일교의 이실장은 그런 청년을 반갑게 맞이했다.
청년은 국가와 민족의 무궁한 발전을 위해 모든 청춘을 쏟고 싶다고 했다.
단숨에 그날 밤, 구로다 장군께 절을 올리고 간사가 되었다.
매우 열정적이었다. 꼬박꼬박 많은 비용의 헌금도 내고, 열성적이었다.
청년의 이름은 박산호, 대한민국 경제를 일으킨 박정웅 회장을 존경하여
욱일교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거기에 정웅과 같은 성씨라며 매우 자랑스러워했다.
신앙심이 높은 사람들에게 산호는 건실하고 바른 청년이었고,
대한민국 청년의 표상이었다. 물론 욱일교의 입장에서도 고마운 호구(虎口)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호는 구로다 장군께 예를 갖추고 싶다며 비싼 기모노를 맞춰 입고 나타났다.
그 누구보다 혼신을 다해서 참배했으며, 스스로 혈서를 쓰기도 했다.
더욱 나아가서 구로다 장군의 아들 박정웅 회장은 살아있는 신(身)이라며 모두들 경배해야 한다며 외쳐댔다.
산호 덕분에 욱일교의 신도들이 하나가 되었다.
결국 공로를 인정받은 산호는 몇몇 고위 간부들과 정재계 인사들만 드리는 참배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들이 드리는 집회는 분위기가 무거웠고 매우 엄숙했다.
산호는 가장 측면에서 그들의 참배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지켜봤다.
처음에는 여느 참배와 다를 것이 없었다.
그저 평소에 볼 수 없는 부교주인 오키코 영애가 나와서 구로다 장군의 갑옷과 검 앞에서 절을 했다.
그리고 일어로 ‘구로다 장군의 통치시대는 천년만년 이어지리라. 돌이 큰 바위가 되고, 그 바위에 이끼가 낄 때까지...’
모두들 주문 같은 것을 외웠다. 산호도 대충 그들이 하는 말을 입모양만 따라했다.
산호는 기도가 끝나갈 때 즘, 이상한 현상을 목격했다.
구로다 장군의 갑옷에서 무언가가 연기처럼 스멀스멀 나오고 있었다.
물리적인 방법이 아니라,
마치 갑옷이 사람의 몸이라면 영혼이 유체이탈을 하는 것처럼 빠져나왔다. 경악 할 수밖에 없었다.
키는 1미터 50센티가 조금 안 되는 조그마한 남자가, 검은 색 기모노를 입고 나왔다.
생긴 것은 일본의 변발이라 불리는 존마게 형식의 머리를 하고 있었고,
화장을 한 듯 굉장히 흰 얼굴에 눈이 매우 날카롭게 생겼다.
무엇보다 검은색의 입술이 더욱 이질감이 들었다. 산호는 그의 행동에 눈을 땔 수 없었다.
마치 어린 아이처럼 천진난만한 웃음으로 사방을 헤집고 다녔다.
여성의 신체를 만지기도 했고, 치마 속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자신을 섬기는 신도들을 보자, 기분이 좋아서 방방 날 뛰었다.
산호는 그것이 구로다임을 알아차렸다.
일반 신도들이 기도하는 날에는 코빼기도 안 보이더니,
유명인사들이 기도 하는 날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그러나 모두의 눈에는 그가 보이지 않는 듯, 구로다의 갑옷 앞에서 절만 했다.
하다못해 오키코 영애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 듯 했다.
구로다 장군이 그녀 앞에서 바지를 내리고 요상한 춤을 추듯 희롱을 해도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구로다는 다시 갑옷 안으로 들어갔다.
투구에 얼굴만 빼꼼히 내민 채로 신도들을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봤다.
1차 참배가 끝나자, 정웅의 오른팔이라 불리던 차실장이 연설 같은 것을 했다.
“오늘도 떠오르는 태양, 구로다 장군께 참배를 하러 온 귀빈님들께 감사의 인사 말씀을 올립니다.
요즘 우리 지역에는 박정웅 회장을 비난하는 불순 세력들이 종종 눈에 보입니다.
피죽도 못 먹고 살던 때에 일거리를 줘도 감지덕지 할 판에 노동 시간을 보장하라는 둥, 노동자의 인권을 보장하라는 둥...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해대는데 기가 찹니다.
누구 덕에 먹고 사는데 말입니다? 우리는 미래를 개척하는 대한민국의 산업 영웅으로서, 우리 앞길을 방해 하는 세력들을
이렇게 부릅니다. 빨갱이! 뭐라고 부른다고요?”
그곳에 있는 모든 이들이 ‘빨갱이’라 외쳤다. 차실장은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손짓을 했다.
그리고 몇몇이 누군가를 데려나왔다.
30대로 보이는 한 남자가 수족(手足)이 묶인 채로 제단 앞으로 나왔다. 입에는 재갈을 물렸다.
남자는 몹시 화가 난 듯 온 몸을 비틀고 빠져나오려고 애를 썼다.
차실장은 남자에 대해서 설명했다.
“이 자가 누구신지 아십니까?
한 때 우리 욱일기업에서 일을 했던 사내입니다.
대한민국경제 발전을 위해서 우리가 고용해서 쓴 인력이기도 하지요.
일을 하고 싶다고 해서 기회를 줬는데... 고마움도 잠시,
돈이 적다며 투덜대는 것이었습니다. 그냥 넘어가려고도 했습니다.
그런데 위에서 김일성의 사주를 받아,
함께 일하는 동료들을 꼬드겨서 데모를 하다니요.
국가 경제 활동에 제동을 걸었습니다.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이미 사내와 함께 일하는 동료들로부터 북괴와 거래한 증거들을 찾았습니다. 이 빨갱이를 어떻게 해 야 되겠습니까?”
그곳에 있는 모든 이들이 분노했다.
‘죽여야 한다’, ‘사형 시켜야 된다’ 등 잔인한 의견이 다수였다. 산호는 그 광경을 그저 지켜만 보고 있었다.
차실장은 그들의 반응을 즐기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손짓으로 선동해갔다.
그리고 손발이 묶인 사내의 재갈을 풀었다.
꾸며진 억지웃음을 지으며 마이크를 사내에게 댔다. 사내는 쌍욕을 섞어 댔다.
그걸 보고 귀빈들은 비웃기도 하고 재밌어했다.
“입이 더러운 걸 보니, 빨갱이 맞고만?”
어둠 속에 있는 사람들 중 한 명이 비아냥댔다.
투구 속에 얼굴을 빼꼼히 내민 구로다도 그 광경을 보며 재밌는지 박수를 쳤다.
차실장은 다시 사내에게 재갈을 물렸다.
“자 오늘, 이 빨갱이를 구로다 장군의 제물로 바칠 겁니다.
그전에 빨갱이는 벌을 받아야겠지요?”
귀빈들의 입에서 연이어 ‘사형’이라는 말이 나왔다.
차실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요시’라고 외쳤다. 뒤에서 흉측한 귀신 가면을 쓴 사람들 4명이 나왔다.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4개의 가면은 모두 달랐다.
눈을 게슴츠레 뜬 처녀귀신 가면, 뿔이 두 개 달린 도깨비 가면,
온통 얼굴이 붉은색인 귀신가면, 요상한 웃음을 짓고 있는 노인 가면을 쓴 자들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날카로운 언월도 같은 것을 들고, 사내 주위를 빙글빙글 천천히 돌았다.
머리와 몸이 따로 놀 듯 움직였고 그것이 매우 기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산호는 뭔가 불안했다. 속으로 죽이면 안 될 텐데, 안 될 텐데...를 반복했다.
그러나 망령의 방에 있는 사람들은 이미 많은 경험을 해봤는지 그것을 매우 재미있는 공연처럼 구경했다.
가면을 쓴 자들은 박자를 타며 걸음은 빠르게, 팔, 다리는 느리게 요상하고 절제 된 움직임을 반복했다.
그리고 일제히 멈추었다. 산호는 그 광경에 직감적으로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크억!!!!!”
사내에게 재갈이 물려있어도 고통의 외침이 들려왔다.
가면을 쓴 자들이 사내의 목과 가슴, 배와 다리를 동시에 벤 것이었다.
사내는 아직 숨이 남아있는지 ‘바르르르’ 떨었다. 산호는 차마 그것을 보지 못했다.
그러자, 방 안에 있는 귀빈들은 일제히 구로다에게 자신의 소원들을 소리 내어 읊기 시작했다.
어찌나 광적인지, 같은 공간에 있는 것조차 공포였다.
어떤 이는 통곡을 했고, 어떤 이는 무당이 작두 타듯 방방 뛰었다.
그들은 더욱 강한 권력을 달라고 했고, 더욱 많은 돈을 갖게 해달라고 했다.
그 속에 있는 인간들의 소원이 하나같이 똑같았다.
산호는 정신을 잃을 것 같았지만 그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을 머릿속으로 기록하려 했다.
사람을 죽여 제물로 바친 행위, 광신도들의 기도, 망령 구로다의 존재...
이 모든 것들을 기억하려고 했다. 빨리 잔인한 의식이 끝나기를 원했다.
한 동안 뜨거운 열기로 기도가 끝나자, 차실장은 누군가에게 눈짓을 했다.
그것을 보자, 몇몇 사내들이 박스를 들고 돌아다녔다. 헌금을 걷는 것이었다.
모두들 두둑한 봉투를 준비했는지 순식간에 박스에 돈이 넘쳐났다.
차실장은 그 모습이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헌금이 모두 걷히자, 문이 열렸다. 하나 둘 귀빈들도 기도에 만족했는지 웃으면서 나갔다.
산호는 빨리 그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했다.
하지만 이내 발걸음을 멈췄다. 사내의 시신 곁에 구로다가 다가가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구로다는 시신의 냄새를 맡으며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 사내의 팔을 한 입 베어 물었다.
입에는 붉은 혈액이 뚝뚝 떨어졌다. 만족한다는 표정으로 한 입 더 베어 먹으며 사내의 살점을 계속 씹었다.
그런데...
산호와 구로다의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순간 모든 신경이 굳어버린 산호는 구로다의 눈을 피할 수가 없었다.
구로다는 그런 산호를 조롱하듯 무서운 표정을 지었다가,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이 너무 무서워서 서둘러 억지로 몸을 이끌었다.
산호는 정웅의 집을 빠져나오자, 당장 달려 나갔다.
쏟아지는 구토를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곳에서의 충격은 말로 표현 할 수 없었다.
“이런 개자식들... 사이비 주제에 잔인하기까지 하다니.. 퉷..”
모든 것을 토해서 정신이 없는 와중에 밝은 불빛을 비추며
승용차 한 대가 멈춰 섰다.
“아이 참... 왜 이렇게 늦은 거요? 아주 역겨워 주는 줄 알았잖소?”
산호는 온갖 불만을 토해내며 문을 열었다.
차 안에는 태규가 그런 산호를 보며 빙긋이 웃고 있었다.
끝나지 않는 지배 9부에서 계속...
PS : 사실 건강이 좀 좋지 못합니다 몸살에 다리에 금이 갔네요.. 그래서 조금 늦었습니다 ㅎㅎㅎ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보잘 것 없는 글을 재미있게 읽어주신 분들 매우 감사한 마음입니다.
한분한분 언급을 못해드리지만 팬이라고 해주시는 분들, 저때문에 가입해주셨다는 분들,
재밌다고 해주시는 분들... 영원히 잊지 않고 보답하겠습니다.
아직은 실력이 부족하지만 더욱 노력해서 재미있는 이야기로 함께 하겠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백도씨끓는물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