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 귀신은 무당에게...?
태규는 구로다의 망령을 완전히 없애려면
귀신을 퇴마하는 영능력자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정웅의 집에서 급하게 나오자마자, 지역에서 유명한 무속인들을 찾아다녔다.
선녀보살, 처녀보살, 애기동자, 장군신, 도사 등을 포함한 다수에게
그 동안의 이야기를 전하며 도와달라고 부탁했지만 거절당했다.
거액의 돈을 준다고 해도 ‘박정웅’이라는 세 글자에 경악을 하며 썩 꺼지라고 면박을 줬다.
이유는 ‘박정웅’이 모시는 신의 기가 천하에 뻗쳐서 본인들이 모시는 신들이
다치거나 떠날 수 있다는 이유였다.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가려는 찰나,
한 보살이 갓 신내림을 받은 청년이 있다며 소개를 시켜주었다.
그가 바로 산호였다.
산호는 태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수락을 했다.
이유는 그 역시 ‘박정웅’에게 좋지 않은 사연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산호의 아버지는 여느 사람들과 같이 박정웅에게 단단히 미쳐서
재산을 탕진한 것도 모자라, 하나 뿐인 딸도 바쳤다.
타지에서 일을 하다가 소식을 들은 산호가 마을 사람들에게 물었을 때는
이미 아버지와 여동생은 행방불명이었다.
순식간에 모든 것을 잃은 산호는 박정웅 종교와 관계 되었다는 것을 알고
복수를 도모하려했지만 지역의 최대권력인 박정웅과 싸울 방법이 없었다.
설상가상, 이유 없이 몸이 아파왔다. 꿈에서는 죽은 망령들이 계속 찾아왔다.
병원에서는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하여, 용한 무속인 집에 갔다. 신병이라 했다.
무속인은 신을 받아드리지 않으면 요절한다고 했다. 산호는 죽을 수 없었다.
아직 생사(生死)도 모르는 아버지와 여동생을 찾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의도하지 않게 영적능력을 얻게 된 산호는
아버지와 여동생에게 분명 좋지 못한 일이 생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신에게 반드시 박정웅에게 복수를 하게 해달라고 매일 밤 기도를 하고 있었는데,
마치 운명처럼 태규가 찾아 온 것이다.
두 사내는 정작 뜻은 맞았지만 정웅이 만든 욱일교를 잘 알지 못했다.
그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무엇을 원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정웅이 태규의 정체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함부로 구로다에게 갈 수 없었다.
의심을 지워보려고 온갖 발버둥을 쳤지만 쉽지 않았다.
정웅은 태규에게 다른 것들은 관대하지만
되도록 구로다를 비롯한 욱일교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태규는 입 밖으로 말을 꺼내고 싶었으나, 행여 속마음을 들킬까 애써 묻지 않았다.
그래서 산호를 직접 욱일교의 신도로 위장시켜 잠입을 시킨 것이었다.
산호는 먼저 그들의 마음에 들기 위해 매일같이 욱일교에 나갔다.
누구보다 간절하게 기도하고,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물론 태규가 준 거액의 돈을 헌금으로 바치니, 순식간에 간부 자리에 올랐다.
계획한 것들이 순조롭게 진행 되었다.
사실 산호는 박정웅에 대한 복수도 복수지만,
실종 된 아버지와 여동생을 찾고 싶었다.
매일 신도의 얼굴을 일일이 확인하고, 몇날며칠을 찾았다.
귀빈들의 모임에 희망을 가졌지만 결국 가족들의 흔적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성과도 있었다.
태규와 산호가 무턱대고 덤볐으면 봉변을 당했을 것이 틀림없었다.
“김형, 막무가내로 움직이지 않은 것이 천만 다행이요.
욱일교 이 개 자식들...
일반 신도들이 있을 때는 가짜 갑옷이랑 칼을 재단 앞에 놓더만요.
김형 말을 듣고 구로다인지, 뭔지 하는 귀신이 나온다기에 잔득 긴장했더니...
귀신 머리카락도 보이지 않는 것이요? 만에 하나 움직였으면...
어휴, 아찔 하구만..”
정웅과 구로다는 이미 김주용과 태규를 통해 답습을 했다.
그래서 섣불리 진품을 일반 신도들 앞에 놓아두지 않았다.
혹시 누군가가 신도를 가장하여 갑옷과 일본도를 없앨지도 모르기 때문에
미연에 방지를 한 것이었다.
“비로소 귀빈들이 기도하는 때에 이상한 기운이 감돌더이다.
검고 탁한 기운들이 갑옷에서 스멀스멀 나오는 것이... 놀랐소.
그렇게 악하고 더러운 기운을 가진 귀신은 처음 봤수다.”
구로다에게 수많은 사람들이 제물로 받쳐졌음을 직감했다.
산호는 태규가 과거에 본 구로다의 모습은 미완성 상태라고 설명했다.
제물을 풍족하게 받지 못한 망령이
죽어있던 당시의 모습에서 회복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이다.
그에 반면, 산호가 본 구로다는 멀쩡하게 서서 자유롭게 걸어 다녔다.
다시 말해, 엄청난 수의 사람들을 잡아먹고 망령이 신(神)의 영역까지 온 것이었다.
진정한 신(神)이 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했다.
더욱 많은 피와 살을 원할 것이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 어쩌면... 우리 아버지와 여동생도...”
산호는 눈앞에서 멀쩡한 사람이
한순간에 빨갱이로 매도되어 죽어가는 것이 생각났다.
대의를 위한 핑계였지만 그래도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그래도 마음을 억지로 진정시켰다.
“아직 망령은 완전한 신이 되지 못 한 것 같수다.
그러니 그것이 완전한 신이 되기 전에... 소멸해야 한다오.
그렇지 않으면... 이 나라는 또 다시 일본에게 빼앗길 거요..”
태규는 아직도 일본인들이 이 땅에 미련이 많다고 했다.
물리적인 지배만으로는 어림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일제강점기에 일본 귀신을 친일파들에게 모시라고 명령 한 것이었다.
어쩌면 대한민국 땅에 구로다 말고도
한국인들이 모시는 일본 망령들이 반드시 존재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런데 김형... 한 가지 더 웃긴 사실이 있수다.
구로다라는 망령 말이오. 진짜 임진왜란 때 죽은 장군 맞소?”
태규는 아버지 김주용도 그렇고, 집에 찾아오는 일본인들도 그렇다고 했다.
하지만 산호는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사실 김형... 어쩌면 그때 한 발 늦었던 것이 화근일지 모르겠소.
그때 기다리다가 잠든 그때를 말이오.”
산호가 말하기를 구로다는 임진왜란을 이끌던 장군이 아니라고 했다.
그의 정체는 일제강점기에 넘어 온 일본 청년이었다.
허약한 몸으로 전쟁에 참가 하지 못했다는 열등감을 가지고 있어서
도망치듯 조선 땅으로 온 것이었다.
가족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에게
강한 남자가 아니라는 말을 이미 많이 들었던지라, 자존심에 많은 상처를 입었다.
유복한 가정에서 살던 구로다는 조선에서 물 만난 생선이었다.
허약하다고 괴롭히는 이들도 없고 눈치 주는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조선인들을 군림하며 자신의 머릿속에 그리던
강인한 남자의 이미지를 만들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매일 집에서 뭔가를 베다보니 칼을 꽤 잘 다룰 수 있게 되었다.
당장이라도 사람을 베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 구로다는 먹잇감을 노렸다.
마음 같았으면 당장 눈에 보이는 조선인들을 마구 베고 싶었으나,
아무리 칼을 들었어도 남자에게는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눈에 들어 온 것이 조선인 하녀였다.
아무도 없는 시기를 봐서 그녀를 집 뒤에 있는 대나무 숲으로 불렀다.
“어이 조센진, 대나무 숲에 있을 테니 차를 내어 와라.”
계획대로 그녀가 혼자 나오자 온갖 음흉하고 잔인한 생각들이
구로다의 머릿속에서 나왔다. 칼을 들고 여인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녀는 순간 구로다의 표정에서 섬뜩한 공포를 느꼈다.
마치 자신을 희롱하듯 구로다는 눈을 사시처럼 모으고
혓바닥을 내보이며 입맛을 다셨다.
차를 떨어트리고 도망을 치려했지만, 이미 구로다가 길목을 막고 있었다.
철저하게 계획 된 덫에 걸려버렸다.
구로다는 칼을 들고 사무라이 흉내를 내며 다가왔다.
“어이 온나(여자), 옷을 벗어라!”
여자는 겁에 질려 눈물을 흘리며 옷을 벗었다.
구로다는 여자를 겁탈 후 죽일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처음 저지르는 일이라서 그런지 설렘 속에 두려움도 있었다.
결국 구로다는 원하는 것을 얻은 후 단칼에 여자를 베었다.
붉은 피를 보자 구로다 속에 끓어오르는 잔인한 욕망이 봇물 터지듯 나왔다.
그것을 시작으로 구로다는 약한 여자들을 상대로 성폭행과 살인을 일삼았고
점차 힘이 없는 노인과 아이들에게도 칼을 휘둘렀다.
스스로가 사무라이라고 했지만 실상은 연쇄살인마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그의 행동도 길게 가지 못했다.
한 동내에서만 살인을 일삼다가
이상하게 생각한 피해자들의 가족에게 발각 된 것이다.
분노한 가족들은 또 살인을 하러 나온 구로다를 잡았다.
그의 입에서 모두 자신이 죽였다는 말 한마디에 찢어지는 가슴을 부여잡고 울었다.
많은 이들이 돌이며 몽둥이며 할 것 없이 구로다의 신체를 가격했다.
머리를 맞는 순간, 위험을 느낀 구로다는 도망가려 일어났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이미 그 찰나의 시간에 온 몸이 찢어지고 척추까지 부러졌기 때문이다.
원래 허약하던 구로다는 그렇게 제대로 움직여보지도 못하고 순식간에 죽어버렸다.
가족을 잃은 분노가 멈출 수 없었던 그들은 죽은 시체를 때려댔다.
구로다의 시신은 형체도 알아 볼 수 없을 만큼 싸늘한 주검이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구로다가 입고 나온 투구를 씌우고 갑옷을 입혀
검과 함께 그의 집 앞에 버렸다.
그것을 발견한 구로다의 아버지는 대성통곡을 하며 범인을 색출했지만
결코 알아낼 수 없었다.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가담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장례를 해주러 온 승려로부터 아들의 한을 풀어준다는 말에
구로다의 시신을 비롯한 유품까지 승려에게 주었다.
승려는 시신과 유품에 몇날며칠을 기도를 올린 뒤 투구와 갑옷 그리고 칼을
김주용에게 일본의 대장군이라며 속여 준 것이었다.
산호에게 구로다의 과거를 듣자 태규는 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한낱 일본에서 온 미치광이 때문에 부모님이 죽고 많은 사람이 죽었다니
화가 치밀어 왔다. 또한 앞으로도 더욱 많은 이들이 죽어갈 생각을 하니,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책임감이 들었다.
“산호야, 슬슬 이 비극을 마무리 하자구나...”
끝나지 않는 지배 10부에서 계속...
PS : 오랜만입니다. 많이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개인적으로 좋지 못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후 뭔가 해결했지만 슬럼프가 찾아와서 이제야 9부를 올리네요. 다시 한 번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