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적 2부 完

백도씨끓는물 작성일 18.06.06 13:2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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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살은 허보가 천적을 만났기 때문에 주인으로 살게 될 팔자가 사라졌다고 했다본래 사람을 부리는 팔자였으나지금은 기()도 제대로 못 펴는 팔자가 된 것이다집에 돈이 많아도 허보의 삶은 한계가 있다고 했다자신과 천적으로 불릴 수밖에 없는 자는 누구인가아무리 생각해도 단 한 사람 밖에 없었다.

태유새끼...’

 중학생 시절태유가 전학을 오기 전에는 동물의 왕이라 불리는 사자처럼 모든 녀석들 앞에 군림했다그러나 녀석을 만나고 나서 동네바보 형으로 인생이 180도 바뀌었다무엇보다 녀석에게 기(한번 못 펴고 살았다.또한 녀석과 내기를 하거나게임을 해도 매일 지는 것이 이상했다자신이 제일 잘하는 종목으로 내기를 걸어도 태유한테 번번이 지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성적도 그랬다아무리 좋고 비싼 학원을 다녀도 매일 수업시간에 조는 태유보다 성적이 좋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그러고 보면 놈은 공부 따위는 하지 않았다학원가는 것을 돈과 시간을 버리는 짓이라며 비아냥댔다늘 녀석에게 그런 것들이 쌓이다 보니언젠가 한번 태유를 이겨보는 것이 소원이었다단 한 번도 녀석을 이겨 본 적이 없다녀석과 18년을 친구로 지내면서 이상하게 주눅이 들고,아직도 눈치를 보면서 말을 하게 된다특히 정치 이야기 같은 걸 할 때이읍읍 대통령이나박읍읍 대통령을 옹호라도 하면섬뜩한 눈빛으로 돌변한다그럴 때마다 심장이 덜컥하는 것이중학생 때 맞았던 부위가 욱신거리는 것 같다녀석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정치색도 바꿔야만 했다.

 하긴 녀석이랑 떨어져 있으면 좀 인생이 순탄한 것 같다대장 기질을 발휘해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등학생 시절에도대학생 시절에도 자신이 주도해서 늘 이끌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이상하게 태유 녀석만 나타나면 놀림을 받고 우스꽝스러운 예전의 허대두로 돌아가는 것 같다녀석과 함께 있는 동안무려 18년을 머리만 큰 동네 바보 형으로 살았다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허보는 보살에게 이 모든 걸 털어놓았다옆에서 듣고 있던 허보의 엄마는 아들의 말에 내내 씩씩거렸다.

 이런 태유새끼감히 우리 아들에게 어떻게 대한거야그러니까 예전부터 태유랑 놀지 말라고 그랬잖아어휴 속상해우리 집안이 어떤 집안인데... 네가 평범한 회사에 다닐 놈도 아닌데 말이야.”

 허보의 엄마는 가세가 기운 것도 태유 때문이라고 했다보살에게 뭉칫돈을 건네어 주며제발 어떻게 해달라고 했다. 20년간 전국곳곳을 돌며 도를 닦은 보살치고는 돈 앞에 미소를 숨기지 못 했다보살은 충분히 태유가 허보의 천적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다만괜한 사람 잡을 수가 있으니허보에게 태유의 생년월일태어난 시를 물어보라고 했다허보는 보살의 말에 따라태유에게 문자를 보냈다.

 

 

태유야내 용한 점집에 왔다니 토종비결도 봐줄게.

생년월일이랑 몇 시에 태어났는지 가리켜도^^

 

1분도 안 돼서 태유에게 답장이 왔다.


 음력 198X, 02, XX / 오전 12시 42분에 태어남

 

 허보는 보살에게 핸드폰 화면을 보여줬다그것을 보자보살의 손이 빨라졌다혼자서 뭔가를 읊조리며 눈을 감고 손가락으로 뭔가를 세는 듯 했다그리고 눈을 떴을 때,

 “천적이 틀림없구먼?”

 보살은 치를 떨며 태유가 허보의 천적 중 천적이라 했다태유의 기운은 불()인데허보는 나무()라고 했다.태유가 허보의 모든 것을 태우며 기운이 강해지는 유형이라 했다허보는 승부사의 사주를 타고났지만태유만 만나면 백전백패라고 했다무엇보다 태유는 허보보다 사주가 좋지 않았다단지 천적이기 때문에 태유가 허보보다 강하다고 했다허보는 운명적으로 이길 수 없다는 사실에 짜증이 밀려왔다정말 보살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지금은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지만여지 것 태유의 눈치를 안 보고 살았던 적이 없었다자존심이 상하는 줄 알면서도 녀석과 노는 것이 워낙 재밌었기 때문에 관계를 끊을 수도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밥으로 살기 싫었다녀석이 그런 취급을 한 적은 없지만가끔 주위에 취업도 못하는 친구들이나상황이 어려운 친구들에게 조언이나 충고를 해주려고 하면 눈치를 주는 태유가 원망스러웠다또한 녀석에게 뭐든지 내기를 하면 패배했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위축되는 경향이 있었다더 이상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천적이랑 만나지 않으면 되나요?”

 보살은 혀를 차며 못마땅한 눈빛으로 허보를 바라봤다.

 이미 얽혀 있는 실은 풀기가 어려운 법이요어차피 세상에 만난 이상 누군가가 운명이 다 할 때까지 이런 관계로 살아야 합니다문제는 두 사람 모두 명줄이 기니당하는 건 당신뿐이지요쯧쯧쯧...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외다.”

 허보는 태유를 이기고 싶은 마음에 뭐든지 하겠다고 했다보살은 태유의 사진을 달라고 했다허보는 주머니 속에서 핸드폰을 재빠르게 꺼내어 태유의 얼굴을 사진첩에서 찾아서 보여줬다보살은 한참을 얼굴을 뚫어져라 본 뒤누군가가 들을까봐 주위를 두리번거렸다그리고 허보와 허보의 엄마를 가까이 모은 후속삭였다.

 그러니까태유라는 청년은 조상신에 의해서 살아가고 있군요특히 외가 쪽 조상들이 과할 절도로 지켜주고 있어요아마도 이 양반한테서 조상신들을 몰아내면 자연적으로 기운이 쇠퇴해서 허보씨가 기를 펴고 살 듯 싶군요하지만...”

 보살은 태유에게 조상신을 몰아내는 순간녀석의 모든 운이 끝날 수 있다고 했다한 사람의 인생을 파멸로 만드는 일이라며매우 위험하다고 했다운명을 바꾼 다는 것은 수많은 가능성에 손을 댄다는 것이다특히나 태유처럼 조상신 때문에 덕을 보는 녀석들은 그것 없으면 아무것도 없는 것과 같다고 했다어쩌면 잡귀나 불운으로부터 지켜주는 이가 없기 때문에 당장 죽어도 할 말이 없는 운명이 될 수도 있었다보살은 그렇게 되어도 좋으냐고 물었다.

 허보는 망설임 없이 그렇게 해달라고 했다. 18년간 죽마고우였지만그래도 녀석이 아니었다면 자신의 인생이 변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지배했기 때문이었다또한 녀석의 눈치를 본 지난날과 놀림감으로 살아 온 보상이 그 정도는 된다고 여겼다녀석 때문에 남은 인생도 그렇게 살 수 없었다이것도 어쩔 수 없는 녀석과 자신의 운명이라 생각했다.

 보살은 조상신을 떨어트리는 부적을 꺼냈다보통 조상 신()이 아닌고약한 조상 귀()가 후손들에게 붙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그들을 떨어트리게 하는 부적이었다태유에게 부적을 태운 재를 물에 타서 마시게 하면 조상신이 떨어져 나간다고 했다한번 떨어져 나간 조상신은 다시는 붙지 못한다고 한다허보와 허보의 엄마는 조심스레 부적을 받았다한 녀석의 인생을 이런 방법으로 떨어트릴 수 있다니 왠지 흥분이 되었다.

 허보는 태유에게 새해가 되었으니술을 사겠다며 연락을 했다미끼를 덥석 문 태유는 처음으로 약속 시간에 맞추어 나왔다허보는 보살이 시킨 대로 부적을 태운 재를 커피에 타서 보온병에 가져왔다그래서 태유를 술에 취하게 한 뒤커피를 마시게 할 샘이었다.

 술이 한잔두잔 들어갔다본래 말이 많은 녀석이더욱 말이 많아졌다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메이져리거 만큼 말이 많았다그러고 보니 태유 녀석도 충청남도 출신이지 않은가허보는 실컷 떠들게 나뒀다그렇게 떠들고,또 떠들다가 태유는 목이 말랐는지 물을 찾았다허보는 조심스레 가방에서 보온병을 꺼냈다.

 누가 비싼 커피를 주더만... 함 마셔볼래?”

 워낙 공짜를 좋아하는 태유가 마다 할 리가 없었다술도 취했겠다판단력이 흐려진 녀석이었다허보는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컵에 얼음을 담아 커피를 따라내기 시작했다그리고 태유에게 건네었다.

 함 마셔봐라.”

 태유가 컵을 받아 입에 댔다허보는 긴장이 되었다저것만 마시면 태유를 지켜주는 조상신이 떠나게 된다그리고 태유는 나락의 길로 걸을 것이다무엇보다 녀석의 기운이 약해지면 그날부터는 자신의 세상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심장이 두근거렸다앞으로 태유 녀석에게 당한 것을 어떻게 갚아 줄지행복한 고민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그런데 하필이면 태유에게 전화가 왔다.

 태유는 마시려던 컵을 내려놓고 한 동안 통화를 했다허보는 초조해졌다빨리 전화를 끊고 고것을 마셔야 하는데끊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설상가상으로 태유는 전화 속 누군가와 싸우기 시작했다언성을 높이면서 흥분했다그러면서 탁자 위에 놓아둔 컵을 쏟아버렸다태유는 짜증이 났는지욕을 하면서 나갔다.

 아이, 찌발...”

 조상신이 태유를 지켜주고 있다는 보살의 말이 틀림없었다허보는 엎지른 커피를 휴지로 닦아내고 다시 컵에 얼음을 넣고 남은 커피를 따랐다그리고 태유가 오기를 기다렸다하지만 녀석은 들어 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계속해서 누군가와 투덜투덜 전화만 해댔다허보는 혼자 있기 어색해서 홀로 술을 홀짝홀짝 마셔댔다이상하게 술이 달았다귀신 들린 듯 혼자서 한잔두잔 술을 비워냈다독한 양주에서 바나나향이 나는데멈출 수가 없었다.

 태유가 전화를 끊고 들어왔을 때허보는 만취상태가 되어 있었다.

 허보새끼야정신 좀 차려 봐봐... 새끼와이리 술을 많이 마셨노?”

 태유는 자신의 자리에 담긴 커피를 허보에게 먹였다시원하고 달달한 커피를 마시니 취기가 좀 가시는 것 같았다태유는 허보의 가방에서 커피를 꺼냈다컵에 얼음을 놓고 커피를 부었다그리고 다시 그것을 허보에게 마시게 했다.

 새끼잘 마시네정신 좀 차려 봐라.”

 허보는 자신이 가져온 커피를 마셔댔다그리고 정신이 조금씩 돌아오는데태유 뒤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비웃고 있음을 알아챘다웬 대머리 할아버지가 허보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깔깔’ 웃고 있었다아주 얄밉게 웃어대는데눈매가 태유와 닮은 것을 보니...

 푸훼훽...”

 허보는 놀란 나머지 먹고 있던 커피를 뱉고 말았다그리고 곧장 화장실로 달려가서 입 속 끝까지 손을 넣고 모든 것을 토해냈다속으로 온갖 욕이 나왔다.

 이런 찌발태유새끼...”

 허보는 부적을 태운 커피를 자신이 먹었다는 것을 알고어떻게든 속 안에 든 것을 모두 토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입에서 커피향이 나는 것 같았다지침과 혼란 속에서 허보는 그 자리에서 쓰러져 버렸다.

 이후 허보에게 안타까운 일들이 연이어 벌어졌다그날 술병이 난 허보는 집에 가다가 넘어지는 바람에 허리를 크게 다쳤다어쩔 수 없이 수술을 하게 되었고꽤 오랜 시간 입원해 있었다문제는 입원해 있는 동안에 다니던 회사가 도산했는데사장이 외국으로 도망가는 바람에 월급도퇴직금도 받지 못하게 되었다그야말로 되는 일이 없었다.

 문제는 문병을 오는 태유를 볼 때마다 경기(驚氣)를 일으키는데병이 더욱 악화 되었다허보의 엄마는 태유에게 말도 못하고 친구들 모두에게 병문안을 오지 말라고 했다그날 이후태유는 허보를 볼 수 없었다. 허보는 입원한 병원을 태유도 모르는 곳으로 옮겼고, 연락도 되지 않았다. 걱정이 되는 마음에 전화를 여러 번 걸었지만, 아무래도 전화번호를 바꾼 것 같았다.

천적 完

PS: 제가 적은 글을 다시 손 봤습니다. https://britg.kr/novel-group/novel-posts/?novel_post_id=46392 링크를 타고 오시면 모두 무료로 볼 수 있습니다. '끝나지 않는 지배'도 개정 중이니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다시 이야기를 쓰는데 큰 힘이 되어주신 여러분께 매우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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