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어머니는 몇 년 전부터 노인 간병 일을 하고 계신데,
얼마 전 치매 노인이 보는 환각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그 이야기에 따르면,
치매 걸린 사람들이 보는 환각은 그리 좋지 못한 것들이 많은 것 같다.
한 환자는 [저기 아이가 죽어있어.]라며,
아무것도 없는 바닥을 가리키기도 했단다.
또 다른 환자는 [옆 침대 위에 피투성이 사람이 산더미처럼 있어.]라며,
아무도 누워있지 않은 텅 빈 침대를 보며 두려워했다고 한다.
잘 알지도 못하는 입장이지만, 치매 노인들이 보는 환각은
젊은 시절 경험한 끔찍한 광경이 되살아나는 게 아닌가 싶다.
어떻게든 떠올리지 않으려 했던 것이,
뇌기능에 문제가 생기면서 환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몇 년 전, 97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우리 증조할머니도
돌아가시기 몇 년 전부터 치매를 앓으셨다.
증조할머니에게는 세 사람의 가족이 보였다고 한다.
증조할머니 말에 따르면,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다섯 살 정도 된 까까머리 남자아이라고 한다.
남자아이는 민요 중 "쿠로다부시(?田節)"를 좋아해,
증조할머니에게 자주 불러달라고 부탁한다.
반바지를 입고 있고, 이마를 다쳐 피가 나고 있다.
어머니는 잔소리가 심한데 비해,
아이에게는 그리 신경을 쓰지 않는다.
아버지는 키가 크고,
아이를 무척 소중히 대하고 있다.
..그렇다고 들었다.
그 가족은 낮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증조할머니가 잠들 무렵에나 찾아온다고 했다.
그래서 밤만 되면 증조할머니의 혼잣말이 들려와,
나는 은근히 기분이 나빴다.
증조할머니의 정신이 더 어두워져,
환각과 환청이 심해진 것은 내가 중학교 3학년일 때였다.
그날은 마침 여름방학이라,
나는 수험 공부를 위해 늦은 밤까지 깨어있었다.
라디오를 틀어두고,
학교에서 받아온 문제지에 매달렸다.
늦은 밤인데도, 가끔 창밖에서는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바깥에서 소리가 나지 않은지 꽤 지날 무렵.
[똑똑.]
갑자기 창문 높은 곳에 바깥에서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어, 누구지?
시계를 보니 새벽 한 시가 넘은 시간이다.
[똑똑.]
또 두드린다.
무서웠다.
누가 장난치는 것인지도 모르고, 강도일 수도 있다.
다른 방으로 도망치는 게 좋을까..?
하지만, 그 틈에 이 방에 침입한다면..?
[똑똑똑똑똑똑똑똑.. 똑똑똑똑똑.. 쾅쾅쾅쾅쾅쾅쾅쾅..]
손가락뼈로 두드리는 소리와, 손바닥을 펴서 두드리는 소리.
무서운 데다 기분 나빴다.
그 순간, 나는 문득 깨달았다.
창문 밖에는 연못이 있고, 창문과 연못 사이에는 좁은 통로가 있다.
그 주변에는 나무가 잔뜩 심어져있다.
만약 이 창문을 두드리려 여기까지 오려면,
사람이 나무 주변을 걷는 소리, 낙엽이 떨어진 땅을 밟는 소리가 날 터였다.
어둠 속에서, 연못과 창문 사이 좁은 길을 걷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다.
실수로 연못에 빠져 큰 소리를 내기 십상일 텐데..
결국 그 소리는 한 시간 넘게 이어지다가 겨우 그쳤다.
이튿날 아침, 증조할머니가 나를 찾아와서는 얼굴이 싯뻘개지도록 화를 내셨다.
딱히 야단맞을 짓은 한 기억이 없어 당황했지만..
[왜 열어주지 않은 거야! 비를 맞아서 감기 걸리잖아!]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걸까..
어제는 맑았는데..
[아이가 울었다! 왜 열어주지 않은 거야!]
아이..?
[내 방 창문이 열리질 않으니까 "저쪽 방 창문 가서 열어달라고 말하렴" 했다.
네 방에 가서 말을 했다는데 왜 열어주지 않은 거야!]
증조할머니 방에 가서, 창문 쪽을 보았다.
작은 손자국과 큰 손자국이 셀 수도 없이 남아있었다.
황급히 내 방에 돌아와,
커튼을 닫아둔 채 창문을 열었다.
역시 내 방 창문에도 크고 작은 손자국이 수도 없이 남아있었다.
비에 젖은 듯, 물방울이 창문에 붙어있다.
나는 증조할머니가 본 게, 치매에 의한 환각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아무래도 진짜로 봤던 것 같네..
만약 커튼을 열어뒀더라면,
나도 증조할머니가 봤던 세 사람의 가족을 볼 수 있었을까..?
출처: VK's Epita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