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일기

백도씨끓는물 작성일 19.06.07 05:4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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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일기

 

1

 

 

 그날따라 하교 길을 평소에 가는 곳으로 가지 않았다개구멍을 지나방앗간 담을 넘었다마을골목 안 후미진 곳에 당도했을 때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윤선아윤선아...”

 

 

 어릴 적 자신을 버린 엄마를 찾는다며집을 나간 형석이 오빠였다. 2년 만에 돌아온 그를 보니 반가웠다웃으며 오빠에게 손을 흔들었다그도 나에게 손을 흔들었지만왠지 기운이 빠져 있었다퀭한 눈에 피죽도 못 얻어먹은 것처럼 볼이 움푹 패여 있었다.

 

 

 오빠는 자신의 담장 앞에 서서 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예전처럼 놀아 줄 것 같아서 집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지만오빠가 거부했다.

 

 

 “윤선아들어오면 안 돼그런데 말이여오빠가 부탁이 하나 있어너네 아버지를 우리 집으로 좀 보내 줄래내가 왔다고 하면곧장 오실 거여.”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다오랜만에 본 동네 오빠가 마을로 왔다는 소식을 누구보다 빨리 전하고 싶었다서둘러 집에 도착해서 장작을 패고 있던 아버지에게 말했다소식을 듣자마자박스에서 라면 두 봉지를 챙겨 나갔다나도 아버지 뒤를 쫓아갔다좀 전까지 맑았던 날씨가 갑자기 흐려진 것이 기분이 이상했다꼭 무슨 일이 벌어질 것처럼 기분이 나빴다.

 

 

 아버지가 먼저 오빠네 집에 들어갔다연이어 내가 들어가려는 순간아버지가 퉁명하게 말했다.

 

 

 “윤선아들어오지 마러!”

 

 

 그 의미를 몰랐다그래서 다시 한 번발을 드리려고 했다.

 

 

 “내 말을 못 들었어들어오지 말라고!”

 

 

 아버지의 고함소리에 온 몸이 얼어붙었다아버지는 당장 가서 마을이장과 순경들을 불러서 형석이 오빠 집에 오라고 했다그리고 집에 가서 기다리라고 했다아버지가 원채 화를 내었기에시키는 대로 했다.

 

 

 이상하게 불안했다무슨 일이기에 그럴까한참을 생각하고 있는데마을이 시끄러워졌다온 동네 아저씨들이 소리를 지르고형석이네 오빠 집으로 달려갔다밖에서 큰일이 났다는 소리만 났다.

 

 

2

 

 

 아버지와 경찰들이 집으로 찾아왔다나를 불렀다꽤 심각한 분위기에 어깨가 위축되고땀이 났다.

 

 

 “윤선아거짓말 하면 큰일 난다... 너 말이여정말 형석이 본 거 맞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러나 어른들은 미칠 노릇이었나 보다한숨을 쉬고머리를 세게 긁었다그때까지만 해도 왜 그런지 몰랐다그리고 연이어 물었다.

 

 

 “그러니까 형석이가 지네 집에 들어오지 말라고 했다고?”

 

 

 짜증이 났다왜 계속 같은 걸 묻느냐며 따졌다하지만 아버지와 경찰들은 다시 한숨만 쉬었다차마 어린 나에게 말을 못 했다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으며아버지가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 윤선아... 듣고 놀라지 말어...? 형석이가... .. 죽었어...”

 

 

 처음에는 믿을 수 없다는 생각보다덤덤했다왜냐하면 죽음이란 것을 단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누구 집에 상이 났다고 하면나와 상관이 없는 하나의 행사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죽은 지 한 달이 넘은 놈이 너한테 말을 거냐윤선아어른들 놀리는 것 아녀형석이가 귀신도 아니고너한테...”

 아버지가 경찰의 입을 막았다내가 거짓말을 할 리가 없다고 했다아버지와 경찰들이 떠나고엄마에게 물었다형석이 오빠가 왜 죽었으며앞으로 볼 수 없는지도 말이다엄마도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알 수 없었다다만앞으로 볼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그제야 죽음이라는 것이 처음으로 두려워졌다.

 

 

 형석이 오빠는 참 좋은 사람이었다동네 꼬마들의 짓궂은 장난도 다 받아주고손재주가 좋아서 썰매며칼이며 뭐든지 만들어주는 사람이었다늘 가난이 탈이었는데그 나마 마을 사람들이 도와줘서 여든이 넘은 할머니를 모시고 살았다그러나 할머니가 사망한 이후그는 난데없이 자신을 버린 엄마를 찾겠다며 집을 비운 것이다.

 

 

 다음 날동네아이들과 개구리라도 구워 먹으려고 모였다범식이란 녀석이 나에게 물었다.

 

 

 “한윤선너 정말 형석이 형을 본 것이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자 순식간에 범식이의 동공이 커졌다아이들은 나를 안다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 그거... 형석이형 귀신이 아닐까우리 아버지가 그러는데 말이여형석이 형 죽은 지 한 달이 넘었데경찰이랑 보건소 의사선생이 와서 확인한 거 아니여무엇보다 유... 유서 적힌 날짜가 저번 달이라는 거여.”

 

 

 경자는 온 몸을 떨어댔다.

 

 

 “그런데 말이여... 너네 그거 알어사람이 죽으면 썩고 냄새가 나잖아근데 형석이오빠 시체는 하나도 안 썩었데... 울 할머니가 그러는데 말이여원한이 깊어서 그런 거래...”

 

 

3

 

 

 좁은 마을에 형석오빠가 적은 유서내용이 퍼졌다자신을 버린 엄마에 대한 원망이 가득했다오빠는 외갓집을 기웃거리다가 우연히 엄마의 소식을 듣게 되었단다궁금하기도 하고복잡한 심정에 서울까지 먼 길을 찾아갔다.

 

 

 엄마는 매우 잘 살고 있었다다른 남자와 결혼까지 해서 아이까지 낳았다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었다자신이 어린 시절에 받지 못했던 사랑을 다른 아들에게 쏟고 있었다몇날며칠을 지켜보며분했단다형석오빠는 아는 척 할 마음은 없었지만너무 분해서 벨을 눌렀다.

 

 

 처음에는 자신을 못 알아봤지만설명을 하니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단다자신의 생각과 달리엄마의 침착한 모습에 당황을 했다자리에 앉자마자엄마가 집을 나가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야기부터 어렵게 살아왔던 지난날들그리고 할머니의 죽음까지 말해버렸다하지만 엄마의 반응은 단지 쓴웃음을 지으며, ‘고생 많았구나’ 정도였다자신에 대한 미안함에 통곡이라도 할 줄 알았지만그렇지 않은 상황에 어떻게 대할 줄 몰랐다이에 엄마가 말했다.

 

 

 “그게 다니?”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아마도 형석이 오빠는 단지 미안하다라는 말을 듣고 싶었던 것 같다그러나 그것이 되지 않으니복잡한 심정이었을 테다당장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다시 엄마가 방에서 나왔다그녀가 오빠에게 봉투를 내밀었다.

 

 

 “이거 받아그리고 이제 찾아오지 마.”

 

 

 어른이 되었을 무렵그것이 얼마나 치욕적인 기분인지 뒤늦게 깨달았다형석오빠의 심정은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것이다그는 경황이 없어서 돈을 받고 내려왔단다그리고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은 채홀로 몇날며칠을 울었을 것이다.

 

 

 스스로가 비참했다고 했다그리고 스스로 목을 맨 것이다이후 오빠의 시신은 경자 말대로 썩지 않았다무더운 여름이었는데말이다진짜 한을 품으면 시체가 썩지 않는 것일까?

 

 

4

 

 

 아버지와 이장이 형석오빠의 외갓집을 찾았다오빠의 부고를 알렸다또한 오빠의 엄마에게도 알렸으면 한다며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그런데 그 말을 듣고 외할머니가 통곡을 쏟아냈단다.

 

 

 “어이구... 박복한 년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형석오빠 엄마의 또 다른 아들이 죽어버렸단다멀쩡하던 아이가 병원에서 손도 쓸 수 없게 갑자기 쓰러진 것이었다.

 

 

 가끔 아버지가 그날의 일을 말하곤 하는데그때마다 뒷담이 서늘해진다고 한다마치 형석오빠가 데려간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우연의 일치일까아니면 정말 형석오빠가 씨 다른 동생을 데려간 것일까?

 

 

 오빠의 외할머니가 딸에게 알렸는지알 수 없다다만내가 중학교에 다닐 무렵에 흉가가 되어버린 형석오빠 집에서 꽤 오랫동안 여자울음소리가 들렸다아니통곡을 하다가다시 웃다가... 때론 괴이한 소리를 냈다동네 어른들이 형석오빠의 엄마가 돌아온 것이라 했다.

 

 

 마을 사람들이 잠들 수 없을 정도로 요상한 소리가 들리자오빠의 집 대문을 열고 들어갔다하지만 누군가가 들어왔던 흔적 하나 없었다집 안을 보아도 아무것도 없었다고 했다한 동안 여자의 곡성이 계속해서 들렸지만어느 날부터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가끔 그날이 생각난다죽은 지 한참이 지난 오빠가 나를 불렀을 때를 말이다동네 사람들과 친구들은 그것이 귀신이라며 무섭지 않으냐며 소란스러웠지만전혀... 오십이 훨씬 넘은 지금아직도 그날이 공포로 느껴진 적이 없다단지 그립고보고 싶지만 돌아 갈 수 없음에 막막할 뿐이다.

 

비극일기 完

 

 

PS : 그 동안 써왔던 공포괴담집은 카카오페이지 연재로 닫게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한 동안 찾아 뵙지 못하게 되었지만, 

       8월부터는 저의 공모전 입선작 <위급한 조교일지>를 선보일까, 합니다.

       아무도 기대해주시지 않겠지만 ㅎㅎㅎ

       <위급한 조교일지>는 대학조교가 주인공으로 미스테리한 상황을 추리로 극복한다는

       내용입니다...

       덕분에 매일이 생일같은 삶을 삽니다! 

       서점에서도 <문화류씨공포괴담집> 많은 사랑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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