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미국에 거주 중인 교포입니다.
2007년쯤, 한국으로 치면 제가 고등학교 2학년일 무렵이었습니다.
저희 지역 한인계를 발칵 뒤집은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음주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로 한국 학생이 사망한 것입니다.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잘생기고 키가 커서 인기가 많았던 형이었습니다.
그 형을 A라고 하겠습니다.
제 나이 또래부터 형 또래까지, 당시 그 지역에 살던 한인들 사이에서는
A형의 이름과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했었죠.
더욱 충격적인 것은 그 A형이
제 친형과 가장 친했던 친구들 중 한 명이었다는 것입니다.
공교롭게도 사고가 나기 한 달 전쯤,
A형과 제 형은 말다툼 끝에 사이가 소원해졌고 서로 만나기를 꺼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언제나 밤늦도록 PC방, 술집, 노래방 등을 전전하며 놀고 다니던 A형이
사고가 일어나기 며칠 전부터 느닷없이 다른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느닷없이 가기 싫어하던 교회에도 열심히 나가기 시작하고,
[그동안 내가 너무 잘못 살아온 것 같다. 아버지도 안 계시고 집안에 남자라곤
나 혼자이니 꼭 성공하겠다.]라고 말하는 등 평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또 몇몇 친구들에게 [B(제 친형입니다.)와 어서 화해하고 싶다.
내가 너무 잘못한 것 같아 미안하다.]라는 말을 사고 나기 이틀 전에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A형에게 사고가 났던 날 새벽,
저희 아버지가 이상한 꿈을 꾸셨다고 합니다.
몇 년 전 돌아가신 할머니께서 아주 어두운 표정으로
아버지를 계속 바라만 보시는 꿈이었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할머니를 뵙고 너무나 반가웠지만,
그 표정이 마음에 걸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계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아버지의 머릿속에 형 얼굴이 떠오르더니,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무작정 엉엉 울며 할머니를 붙잡고,
[B는 안 됩니다, 어머니. B를 데려가지 마세요.]라고 비셨다고 합니다.
할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보시며 한참을 가만히 계시다
연기처럼 사라지셨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눈물에 베개가 흠뻑 젖은 채
소스라치며 잠에서 깨어나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잠에 들지 못하시고 뒤척이시던 도중
형이 집에 들어와 안방문을 열고 아버지께 다가왔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황급히 무슨 일이냐고 다그치셨습니다.
그러자 형은 [아버지.. A가 죽었대요..]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사고가 난 차에서 A형은 오른쪽 뒷좌석에 앉아 있었고,
차 안에는 모두 4명이 타고 있었습니다.
술을 마시고 운전을 하다 부주의로 인해 다른 차선의 차를 피하려다
커다란 나무를 정면으로 들이받은 사고였습니다.
차가 폐차 처리될 정도로 참혹한 사고였지만,
이상하게도 A형을 제외한 나머지 3명은 가볍게 찢어지거나 타박상 정도로 그쳐
1주 내지는 2주 정도 입원하는 수준에 그쳤다고 합니다.
하지만 자동차가 정면에서 나무를 들이받았는데도 불구하고
오른쪽 뒷좌석에 앉아 있던 A형만은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습니다.
돌아가신 분이 현몽하셔서 곧 일어날 일을 알려주었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어봤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일어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그때를 아는 것처럼
다르게 행동한다는 것 역시 되새겨주는 일이었습니다.
여담이지만 A형의 장례식은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생전에 찍은 사진으로 영정을 대신했는데,
장례식 분위기와는 달리 사진 속 A형은 너무나도 아름답고 환한 미소를 띠고 있었습니다.
이 사진이 장례식에 참여한 사람들을 더욱 슬프게 했었다고 합니다.
기묘하리만치 신기한 2가지 사건이 얽힌 저의 추억입니다.
출처: VK's Epita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