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동네에는 한 동굴이 있었다.
동굴이라고 해도 산속에 있는 게 아니었다.
마을 가운데 지나는 철도를 건너기 위해,
건널목이 아니라 그 아래를 굴로 만든 인공굴이었다.
어린 시절 누군가에게 듣기로는 일제강점기 시절,
경부선이 지나가면서 만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넓은 굴은 아니었기에 자동차는 들어갈 생각도 못 하고
자전거도 통행금지 안내판이 있을 정도다.
게다가 비가 오면 중간중간 비가 새서,
지나갈 때 옷이 젖지 않기 위해선 타이밍 맞춰 새는 곳을 지나가야 하기도 했다.
물론 지금은 공사를 해 자동차도 지나갈 정도로 확장되었지만,
이 이야기는 아직 그 동굴이 작았던 무렵 내가 학생일 때 이야기다.
어느 날, 친구와 그 동굴을 지나가려 하고 있던 터였다.
맞은편에서는 한 할머니가 우리 반대편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원래 통행량이 많지 않은 동굴이었기에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할머니가 친구와 나를 지나치고 3, 4 발자국을 더 갔을까..
갑자기 뒤에서 [어이, 학생.] 하고 할머니가 말을 걸어왔다.
동굴은 소리가 울리니 우리 뒤에 누가 들어왔다면
발자국 소리로 알 수 있었을 터였다.
당연히 할머니가 우릴 부른 것이라 생각해,
친구와 난 가던 길을 멈추고 그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할머니 또한 우리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혹시 우리가 흘린 물건이 있어 불러 세웠나 싶어 어두운 바닥을 내려봤다.
하지만 할머니는 우리를 향해 손짓하며 오라고 하고 있었다.
몇 걸음 되지 않았기에 내가 다가가려 하자,
친구가 팔로 내 팔꿈치를 쿡 찔렀다.
[야, 가자.]
그리고는 친구 혼자 다시 가던 길로 걸어갔다.
같이 걷던 친구와 거리가 멀어지자,
나는 조금 보폭을 빨리해 거리를 맞췄다.
[왜 그래?]
걸음은 유지한 채, 뒤를 보며 [저 할머니가..]까지 말하고 나는 입을 멈췄다.
거기에는 아무도 없었다.
친구를 따라잡고선 바로 다시 고개를 할머니 쪽으로 돌렸는데,
그 짧은 시간 사이 할머니가 사라진 것이다.
내가 잠시 상황을 이해 못하고 멍하니 있자,
친구는 다시 [가자.]라고 말했다.
친구가 뒤를 돌아본 건 아니었지만,
왠지 친구는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돌아올 대답이 무서워,
나는 아직까지도 진실을 묻지 못하고 있다.
출처: VK's Epita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