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바로 옆에는 미싱 공장이 하나 있었다.
공장 내부에는 요란 미싱 소리가 매일 같이 들렸고, 위생복 비슷하게 생긴 작업복을 입은 아주머니, 아가씨들이
매일 같이 공장 안에서 미싱을 돌렸다.
점심 시간엔 직원들이 공장 밖에 나와 빵과 우유를 먹으며 짧은 점심시간을 보냈고,
가끔 동네 사람들에게서 점심밥을 돈 주고 사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 옆 그 미싱 공장에서 검은 연기가 솟아올랐다.
불이 난 거였다.
타오르는 불길은 보이지 않았지만, 공장 안에서 자욱한 검은 연기가, 불길처럼 활활 타오르며 하늘로 뻗어가고 있었다.
공장 밖으로 직원들이 쏟아져 나왔다.
수건으로 입과 코를 막고 직원들은 공장 작은 문을 통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검은 연기 때문에 눈이 매워서 인지...
직원들은 공장과 동네를 구분한 철조망 울타리까지 와서 부딪힌 뒤에야 자신이 밖에 나왔다는 걸 깨달은 모양이었다.
119에서 출동해 불길을 제압했지만, 연기 때문에 탈출하지 못한 직원 몇몇이 공장 내부에서 질식사 했다고 했다.
검은 연기의 원인은 미싱 공장 내부 창고에서
출고를 앞둔 재고물품들 옆에서 누가 담배를 핀 뒤, 꽁초를 대충 버렸는지 물품 사이로 들어갔고,
거기서 불씨가 조금씩 살아나 불길이 일어나며 유독가스가 발생.
창고 안에 연기가 가득찬 상황에서, 그걸 모르던 직원들이 창고를 개방.
순식간에 연기가 미싱 공장 내부를 가득 채웠다는 거였다.
경찰은 담배꽁초를 버린 사람을 찾고자 했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동네에선 공장 작업 시간에 창고에서 담배를 피며 여유를 부릴 사람이 누가 있겠냐며
공장 사장 아들이 범인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공장 사장 아들이 아버지가 안 볼 때면, 창고에 가서 농땡이를 피운다는 걸
공장 직원들이 화재가 발생하기 이전부터 동네 사람들에게 점심을 얻어 먹으며 자주 얘기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소문은 소문일 뿐.
범인은 끝내 잡히지 않았고, 공장은 문을 닫아버렸다.
검개 연기에 그을린 자국이 밖에서 볼 때도 심해서 건물을 다 부수고 새로 지어야할 판이었다.
공장 사장이 몇 달 뒤에 거기다 큰 의류 창고 겸 매장을 만들어 아들에게 운영을 맡긴다는 얘기를 했기 때문에.
동네 사람들 사이에 떠돌던 흉흉한 소문(사장 아들 흉)도 사그러들었다.
(동네엔 큰 규모의 의류 매장이 없었기 때문에 아주머니들 기대가 매우 컸다.)
공장 건물은 그렇게 몇달 간 방치되게 되었는데,
그 사이, 그 건물은 동네 초등학생들의 대단한 관심을 끌게 되었다.
변변찮은 놀이시설이 없던 동네 초등학생들에게 있어서, 학교 운동장 다음으로 넓은 놀이터가 생긴 셈이었다.
대낮에 초등학교 3학년 짜리 애들이 축구공 하나만 덜렁 가지고 그 공장으로 들어갔다.
검게 그을린 미싱공장 건물 입구와 미싱 공장 철조망 울타리를 각각 골대 삼아 두 패로 나뉘어 축구를 시작했다.
벌떼 축구가 되어 우루루 몰려다니던 아이들.
마침내 철조망 쪽을 골대로 한 아이들의 패 중 하나가 슛을 했다.
골키퍼를 맡은 애가 있었지만, 일명 깍두기.
운동신경이 있을 리가 없다.
공은 결국 키퍼를 지나쳐, 골인.
미싱 공장 건물 내부로 들어가버렸다.
골키퍼를 향한 같은 편의 비난이 날아왔고, 공은 결국 골키퍼를 맡았던 아이가 가지고 나오게 되었다.
다른 아이들은 그 동안 공장 앞에 서서 누가 잘했다. 못했다.
이야기를 나누며 깍두기가 공을 가지고 나올 때를 기다렸다.
....
....
기다렸다.
...계속 기다렸다.
깍두기는 나오지 않았다.
처음엔 짜증을 내던 아이들도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건물 입구에 서서 내부를 향해 깍두기를 맡던 아이의 이름을 연신 불렀지만, 대답은 없었다.
이윽고, 아이 중 하나가 울먹이기 시작했고,
패거리 중 가장 덩치가 큰 아이가 선봉이 되어 다같이 안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공장 내부는 화재 때 발생한 검은 연기 때문에 전부 검게 칠해진 상태였다.
천장도, 바닥도, 기계들도 전부.
전기 공급도 중단되었으므로 암흑 천지.
천천히 손을 잡고 일렬로 들어가는 아이들.
줄 맨끝에 아이는 공장 입구에 서있기로 했다.
공장 안으로 제일 먼저 들어간 덩치큰 아이의 눈이 점점 어둠에 익숙해지며,
공장 한 복판, 미싱 기계들 사이에 홀로 쪼그려 앉아있는 깍두기를 발견했다.
땅에 떨어져있는 공을 집고는 가만히 쭈그려 앉아있는 깍두기.
"야, 너 거기서 뭐해?"
덩치가 큰 아이가 깍두기에 물었지만 대답은 없었다.
뒤에 있던 아이들이 깍두기의 기색이 심상치 않은 걸 감지했는지 동요하자, 선봉에 있던 덩치 큰 아이도 겁을 먹기 시작했다.
천장과 바닥은 구분되지도 않고, 가까운 물체도 검게 칠해져 분간할 수 없는 상황 속에 아이들의 불안함은 극도로 높아졌다.
"공 찾았으면 빨리 나와!"
덩치 큰 아이가 외쳤지만, 깍두기는 미동도 없었다.
이윽고 덩치 큰 아이와 손을 잡고 있던 아이가 손을 놓고 소리를 지른다.
그 뒤에 있던 아이도, 그 뒤에 있던 아이도 소리를 지르며 달아나버렸다.
딱히 뭔가를 본 건 아니었다.
그저 겁에 질렸을 뿐이었다.
"...!!"
덩치 큰 아이는 예상치 않게 혼자 남겨진 상황.
오금이 저려오는 상황에서 덩치 큰 아이는 순간적으로 깍두기에게 화가 났다.
저 녀석이 안 나오니까, 이렇게 된 거라 생각했다.
"야! 나오라고!"
덩치 큰 아이는 씩씩 거리며 불안한 호흡으로 뚜벅뚜벅 걸어가, 깍두기의 어께쪽 옷을 잡고 질질 끌듯이
걸으며 밖으로 나왔다.
공장 밖에 나와 환한 햇살을 맞게되자, 덩치 큰 아이는 안심이 되어 자신도 모르게 얼굴에 미소를 그리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아이들에게 [어떻게 날 버리고 너네끼리 가냐? 겁쟁이들?]이라며 놀릴 정도로 여유를 되찾았다.
그리고 자신이 끌고나온 깍두기의 모습을 보는데, 깍두기는 넋이 나간 얼굴로 계속 땅바닥만 보고 있었다.
"야, 너 축구공은?"
밖에서 기다리던 아이들 가운데 하나가 깍두기의 빈손을 보며 물었다.
덩치 큰 아이는 분명 깍두기가 공을 집고 있던 모습을 보았었다.
"너 아까 들고 있던 공은?"
"......."
"야, 공."
"......."
"공 어쨌냐고!"
"공 아니었어!"
깍두기는 발작을 하듯 말하며, 바지에 오줌을 지리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돌발행동에 아이들은 당황해 깍두기만 바라봤다.
깍두기는 이어서 넋이 나간 그 얼굴로 사색이 되어 초등학생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미친듯이 말하기 시작했다.
"공 찾으러 안에 들어갔는데, 너무 깜깜한 거야. 안에 책상이랑 기계 같은 거 때문에 찾기도 힘들고...
눈에 적응될 때까지 어둠 속에서 그냥 기다리고 있었는데...조금 시간 지나니까 안에 그림자 윤곽 같은게 보였어.
그래서 찾을 수 있겠다 싶어서 주변을 둘러보는데, 미싱 기계들 사이로 뭔가 통통 튀는 거야.
잘 보니까 동그란 게...축구공이다 싶어서 공을 딱 두 손으로 집었어."
아이들은 순간 이해했다.
[그때까지 축구공이 통통 튈 리가 없잖아.]
.
.
.
.
.
.
.
.
.
"머리."
깍두기가 검게 그을린 두 손에 긴 생머리카락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몇몇 아이들이 공장 밖으로 비명을 지르며 도망갔다.
덩치큰 아이가 고개를 돌려 공잡 입구를 바라보았다. 공장 입구에서 검은 연기가 스멀스멀 퍼져나오는 게 보였다.
아니었다.
검은 연기가 아니었다.
검게 그을린 사람의 머리가 밖을 쳐다보며 자신의 머리카락과 손을 하늘하늘 흔들며 밖으로 뻗고 있었다.
덩치 큰 아이마저 이윽고 깍두기를 버리고 집으로 도망갔다.
그리고는 부모님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부모님이 공장 앞에 간 다음, 바닥에 쓰러져있는 깍두기를 발견해.
그 아이 부모님의 집으로 데려갔다.
그 일 이후, 동네 초등학교에는 아이들이 공장에 가게 하지 말라는 가정통신문이 나왔고,
몇 달 뒤, 그 공장 건물을 허물고 지은 의류 매장에서, 사장 아들은 각혈을 토하며 쓰러져 죽었다.
사인은 폐암이었다.
이후 미싱공장 사장을 그 동네에서 본 사람은 없다.
동네 사람들은 그 아들이 창고에서 담배를 폈던 게 틀림없다고 확신했다.
그 날 아이가 만진 축구공은, 분명 질식해서 죽어가던 직원의 귀신이었을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