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집은 저와 동갑인 오래된 아파트고,
아파트 뒤엔 산이 있어서 복도 쪽 창문에서 산이 바로 보입니다.
이것 때문인지 창가 쪽에 자리한 제 방은
한여름이 아니면 서늘하고 낮에도 그늘진 감이 있지요.
이런 집의 구조 탓인지, 제가 유달리 기가 약한 탓인지,
집에서 일어난 심령현상은 거의 저 혼자 겪습니다.
자잘한 에피소드가 있지만 그중 가장 인상 깊고
아직까지 겪고 있는 일을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엄마랑 둘이 거실에서 티브이를 보다가
동생이 학원차에서 내릴 시간이 되어 엄마가 동생을 마중 나갔어요.
오후 7~8시쯤 되었던 것 같습니다.
겨울이라 이미 하늘은 어둑해졌고 저는 그냥 티브이를 보고 있었죠.
갑자기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베란다에 흰 천이 걸려있는 것 같은데,
이불 같다고 가서 확인 좀 해보라고 말입니다.
거실과 베란다가 미닫이문으로 연결된 구조라,
전화를 끊지 않고 베란다로 나가 둘러봤어요.
그런데 이불은커녕
빨래거리도 걸려있지 않았고 흰 천은 보이지도 않았어요.
창문을 열어 밑을 내려다보니 동생과 엄마가 보여서
전화에 대고 [아무것도 없는데?]라고 대답했죠.
그런데 엄마가 네 옆에 흰 천 같은 게
서 있는 것처럼 불쑥 걸려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가뜩이나 가위도 자주 눌리는 저는,
섬찟해져서 괜히 엄마에게 화를 냈어요.
장난치지 말라고, 그런 게 어디 있냐고..
화를 내곤 전화를 끊고 베란다 문을 걸쇠까지 잠궈버렸어요.
그런데 몇 분 지나지 않아
엄마와 동생이 뛰어오는 겁니다.
왜 그렇게 급하게 오냐고 물어보니,
제가 전화로 [그런 게 어딨어?]라고 말하는 순간,
그 흰 천 같은 게 저를 돌아보더라는 겁니다.
형태도 뚜렷하지 않았지만,
그것의 머리 부분이 저를 향해 돌아가는 게 보여
불안해서 뛰어 올라왔다고 하더라고요.
너무 소름이 끼치고 무서워서
한동안 베란다에 못 갔어요.
그걸로 끝이면 좋겠는데,
그때가 목요일이었거든요?
토요일에 온 가족이 늦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거실 쪽 전선 코드가 다 뽑혀져 있었어요.
애써 청소하다가 끌려 들어간 거라고
자기최면을 걸었지만 너무 신경 쓰이더라고요.
방 안에 있는 인형이 전부 뒤돌아있던 일도 있었습니다.
방문마다 십자가를 걸고 난 뒤엔 잠잠하지만,
제 방문 밖 책장 위의 작은 도자기 인형은 아직도 돌아가요.
매일 똑바로 앞을 보게 세워둬도
어느새인가 방 쪽으로 돌려져있죠.
아직까지 별일은 없지만,
자꾸 이 집에서 사는 게 불안해지네요.
출처: VK's Epita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