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1학년 때의 일입니다.
아직도 못 잊겠습니다.
음악실에서 있었던 일이었어요.
음악실은 반지하층 제일 끝 쪽에 있었습니다.
교실 창문은 운동장 쪽을 바라보고 있었고,
반대편 복도 옆으로 난 창 밖으로는
거의 다 시든 나무들과 시멘트 벽이 보였습니다.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은 없었죠.
그 벽 너머는 바로 골목길이었고요.
교실은 밝은 날에도 어두워서 꼭 불을 켰어야 했고,
운동장 가까운 쪽도 반지하라 기본적으로 어둡기는 매한가지였습니다.
빛이 교실 안까지 오진 않아 대부분 커튼을 닫고 있었거든요.
그날도 커튼은 닫혀있었습니다.
복도쪽은 닫혀있었고, 운동장 쪽 창문은 열려있었어요.
책상은 2-3-2 배열이었고,
저는 책상 3개가 붙어있는 열에 앉아 있었습니다.
수업이 시작하기 전,
앞자리에 앉은 친구와 잡담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우리 사이로
시원하고 부드러운 바람이 불었습니다.
바람이 휙하고 우리를 넘어가는 바람에
친구와 저는 낙서를 하다가 서로를 마주 보게 됐죠.
바람이 지나간 건 정말 찰나였는데,
그 사이에 저는 어떤 형상을 보았습니다.
여학생이었습니다.
어둡고 불투명해서 형체 너머로 바로 친구가 보였지만 확실했습니다.
우리 학교 교복인 듯한 체크 교복치마를 입고,
반스타킹을 신은 여학생이 우리 사이를 점프해갔습니다.
책상 3개 분단이라 폭이 넓어서인지,
다리를 쫘악 찢으며 뛰어 넘더라고요.
진짜 바로 눈 앞에 있었습니다.
무의식적으로 여학생이 뛴 쪽으로 같이 고개를 돌렸는데,
음악실 커튼 끝자락이 여운을 남기며 팔랑거렸습니다.
진짜로 바람이 불었던 거죠.
커튼이 두터운 그 반지하에서..
[야, 봤어?]
그 표정이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넋 잃고 동그랗게 뜬 눈의 친구..
[어..]
둘이 본 건 똑같았습니다.
제가 친구에 비해 구체적으로 본 것 같지만,
여자애가 우리 사이를 뛰어넘어간 건 확실했습니다.
주변 친구들은 아무도 믿지 않았지만,
마주보고 잡담하던 우리 둘은 분명 보았습니다.
그것을 증명하듯
하얀 커튼 끝자락이 흔들리던 모습이 눈에 선하네요.
출처: VK's Epita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