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 중대에서 A일병이 휴가가 끝났음에도 복귀하지 않아서 부대가 뒤집어졌다.
평소 고문관이라고 불리며 부대 적응을 힘들어했는데
군생활을 잘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 이른바 ‘빠진 놈'이라는 소문이 들렸다.
A일병은 2주 만에 헌병에게 잡혀서 자대로 끌려온 뒤 영창에 가게 되었다.
공교롭게 나도 사고를 쳐서 영창에 가는 시기가 겹쳐서 함께 6박7일 영창을 가게 되었다.
A일병은 나보다 3개월 후임이었는데 내가 옆 중대 아저씨인 관계라서 편했는지
영창에 가는동안 나에게 껄렁껄렁한 말투로 수다스럽게 떠들어댔다.
한 겨울의 영창에서 생활은 춥고 배고프고 심심하다.
난방이 될리가 없는 방에 침낭은 없이 모포만 주고
화장실은 영창 방 한 구석에 변기만 덩그러니 있고
철창 밑으로 넣어주는 밥은 부족하고
차가운 물로 설거지를 해야 하고
그 중에서도 가장 힘든 것은
일과 시간에는 바른 자세로 앉아만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함께 방을 쓰는 A일병은
춥다면서 자는데 모포를 자꾸 가져가고
똥싸는데 냄새와 소음은 크며
식탐은 강하고
설거지는 어떻게든 안하려고 핑계를 대고
일과 시간에는 꾸벅꾸벅 졸아서 헌병이 내가 있는 방에 얼차려를 부여하게 했다.
7일간 영창에서 함께 지내는 동안 왜 A일병을 고문관으로 부르는지 너무나 잘 알게 되었다.
흔히 군대를 정신과 시간의 방이라고 하는데
그 안에서도 더 정신과 시간의 방 같은 영창에서의 7일을 보내고
자대로 복귀한 뒤
두 달여가 지났을까
A일병은 선임들의 괴롭힘을 이유로
(아마 선임들은 A일병의 나태한 군생활에 더 괴로웠을 것이다.)
우리 중대로 오게 되었다.
영창 동기였던 옆 중대 아저씨가 내 후임이 된 셈인데
영창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해보면 나는 영 마음이 불안했다.
아니나 다를까
A일병은 우리 중대에서도 금방 고문관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중대장님과 우리 중대원들은 A일병을 다독이면서 무사히 군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게 도왔다.
시간이 흘러
A일병이 상병이 되었고
군생활에 적응해나가고 있다고 판단한 중대장님은 대대장님을 설득하여
상병 정기휴가를 보내기로 하였다.
중대원들은 A상병이 사고를 칠 것 같다며 중대장님을 말렸지만
중대장님은 A상병을 믿는다며
몇 번의 면담 후
A상병을 휴가 보냈다.
그리고 A상병은 상병 정기 휴가에서 미복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