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써본 그남자 그여자-이소라의 음악도시

pakruc 작성일 07.10.31 01:4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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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남자

처음 만난건 학원이었죠. 비좁은 노량진의 M학원책상. 옆자리에서 조용히 강의전 스타리그나 보고있었는데, 대뜸 자리있냐고 물어보더군요.

예쁘지도않았고, 스타일이 좋지도 않았죠. 그냥 어디나 있을법한 츄리닝차림의 재수생여자. 그런 그녀는 매번 제 옆자리에 와서 물어보더라구요,

'자리있어요?'

하루는 8월한달내 자리있냐고 물어보는게 귀찮아서. '이제 제 옆자리가 매일 비어있는거 아시죠? 그냥 앉으세요'했더니, 뭐가 그리 불만인지 가방을 놓고는 쏜살같이 사라지더군요. 그 뒷모습이 그렇게 밟힐줄이야.


그렇게 나는 평범한 그녀에게 끌렸고, 9월에는 그녀와 수업전에 스타리그를 보고, 10월에는 함께 스타리그를 보러가고, 같이 수능을망치고는, 서로를 토닥여주었죠. 그녀의 모든것이 이제 사랑스러웠고, 바보같은 친구들이 그녀의 매력을 몰라도 상관없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사랑이었죠. 그녀땜에 스타하면서 담배를 못피게되었고, 그녀떔에 혼자 프로게이머랑 사이나빠지고, 그녀땜에 이젠 질려버린 스타크래프트를 계속해야했죠. 그래도, 그녀와 함께할 핑계가되는 스타크래프트가 고마웠어요.

그런데요,  어느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습니다. 평소라면 무시할텐데 유난히 그날따라 벨소리가 시끄럽더라구요. '여보세요'라며 퉁명스럽게 받으니까- 전화기 너머서 그녀의 절친한 오빠라고 소갤합니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헤어지라고합니다. 당신이 그녀의 꿈을 짓밟았다고. 당신땜에 애 인생이 휘둘린다고. 진짜 사랑한다면, 그러면 안되는거라고.

나는 무슨소린지 몰랐죠. 그런데 그 사람- 자기 맘대로 지껄이더군요. 그애 집안이야기. 그애가 가야할 길. 그애가 살아야 하는 메뉴얼같은 삶.


..몰랐습니다. 나는 반 장난으로 재수를 시작했고, 그냥 즐거운 사람이 생겨서, 사랑했을뿐인데.

나는 어느새 그녀의 삶을 방해하는 악동이 되어버렸습니다.


ㅡ그날저녁 그녀를 다짜고짜 불러냈어요. 술마시자고. 흔쾌히 나온 그녀는 언제나처럼 즐겁게 수다를시작했고, 난 억지로 웃어주었죠. 뭘 듣는지도 몰랐는데.

그래도 좋았어요. 그녀가 계속 수다를 떨어주면, 그렇게 계속 수다만 떨어서, 내가 술취해 쓰러지면, 적어도 우린 오늘헤어지지는 않을거에요. 그런데- 그녀의 수다가 멈춰버리네요. 나는 소주를 한잔 더 들이키곤 술에 취한척 말을꺼냈어요. '왜 오늘은 이렇게 안취할까'라고생각하면서요.

'있잖아. 니가 나보다 이제 더 스타를 잘하는것도 싫고, 나보다 덜먹는것도 싫고, 머리감고나오는것도 싫고, 나랑 좋아하는게 똑같은것도 싫다. 그러니까.. 그만해'


그리고는 쏜살같이 돌아왔습니다. 아, 조금 느리게 돌아올걸, 어쩌면 그녀가 내가 취하지 않은걸 알아챘을수도 있겠네요.

택시를 타고 몇번을 돌았죠. 술집으로 돌아가다가, 다시 우리집으로 오다가. 나중에는 택시기사분이 화를내시길래, 그냥 모르는 거리에 내려달라고했어요. 그리고는 생각났죠. 아 걔 분명 술값도 없을텐데.

근데 찾아갈수가 없어요. 나도 그앨 사랑하니까, 그애도 날 사랑할테니까.

나한테 그렇게 느리게 다가온것처럼

그애는 느리게 날 잊을테니까.

멍청하게- 전화도 안하고 거기서 혼자 컵이나 만지작거릴테니까.

그래도 어쩔수 없어요. 나는 근처 피시방에 들어가- 재떨이를들고. 스타크래프트를 켰어요.

근데 마우스를 못움직이겠더라구요. 담배도 못물겠더라구요.

어떡하죠. 나는 스타크래프트를 무지좋아했는데

이제는 그녀와 함께한 시간들이 무서워서, 스타크래프트도 못할 것 같습니다.


즐겁기만을 바란 내사랑땜에, 나는 그녀를 모질게 밀어내야 했습니다.

 

 

그여자

3월부터 노량진 학원에 다녔어요. 학교는 맘에들었는데, 부모님 맘에는 안들었나봐요. 나도 꼭 서울대를 가야한대요. 정말 짜증이났죠.

그런데 4월부터인가, 다들 열심히 공부하는 학원 가운데에서, 혼자 여유롭게 뭔갈 보는 사람이 있었어요. 나는 슬그머니 그 뒷자리에 앉아서 뭘보나 했죠.

귿쎄, 게임을보고있더라고요. 진짜 한심해보이는거 있죠. 그런데, 이상하게 자꾸 그 남자에 대해 호기심이 가더라구요. 왜 있잖아요. 싫고 신경쓰여서 참견하지 않으면 안될것같은.

그래서 매일 그사람뒤에 앉았어요. 그리고는 작은 키 너머를 목을 쭉 빼고 그 게임티비를 봤어요. 어쩜 질리지도 않는지.

결국 4개월내내 그 남자뒤에 앉아있던 저는, 그의 옷매무새도, 머리를 감고왔는지 안감고왔는지, 귀 아래 점이있는지 없는지, 손톱은 깍았는지 까지 알게되었죠. 어느새 저는 그 남자를 보는게 일상이되어버렸고, 알아차렸을때는, 마음속 한가운데 그가 있었어요.


어떡하나요, 못난 그사람이 좋아졋는데. 내가 잘난것도 아니지만, 나는 정말 멋진남자 만날거라 생각했는데, 하필 이런사람에게, 아닐거라 생각도하고 고민도많이했죠. 아직도 게임이나 보는 그런사람이 뭐가 좋을까. 그런데, 모두 빠르게 달려나가려고하고, 모두 나한테 잘하라고만 하는곳에서, 그는 마치 오아시스 같았어요. 다른사람이 단어장을 볼때, 게임을보며 웃는 그. 나는 나와 다른 그에게 빠져들 수 밖에없었나봐요.


그의 옆자리까지 가는데는 한달이란 시간이 필요했어요. 그가 내게 처음 자리없어요 라는 말 말고 다른말을 한 날, 나는 혼자 학원 화장실에서 소리는 못내고 혼자 신나했죠. 그 자리에 더 있었다간, 정말 얼굴이 폭팔할것같았거든요. 그렇게 그와 함께 스타크래프트를 알아가는데는 한달이 더걸렸구요. 내가 그보다 더 스타크래프트에대해 잘 알게되는건 한달이 더걸렸어요. 이젠 그가 없이도 스타크래프트 대회일정과 선수들을 꼼꼼히 체크할 수 있을만큼요.


그런데요, 사실 난 스타크래프트가 싫었어요. 뭐가 좋다고 괴물들이 기어다니고, 꽥꽥거리는걸 좋아할까요, 그나마 잘생긴 게이머들 보며 좀 위안을 삼기도했죠. 그래도 싫은건 싫은거에요. 그런데요. 그가 너무 좋아해요. 그와 게임을하고, 그와 게임을보고, 그와 함께 있을 핑계가 되주는 스타크래프트때문에, 나는 싫어하는 게임을 무던히도 열심히했죠.

그렇게 사랑했어요. 내가 살아온 모범생삶따윈 아무렇지도 않을만큼, 주위사람들이 내게 아무리 뭐라고하든, 난 드디어 내가 살아있는것 같았어요. 무뚝뚝하면서도 남몰래 배려하고, 남몰래 속삭여주고, 같이 게임할때면 그 좋아하던 담배대신 사탕을 입에무는 그런사람이니까요. 그렇게 사랑했어요.

그런데 말에요. 그사람이 갑자기 날 불러내네요. 평소에는 소주에 약해서 맥주만마시던사람이었는데, 날 불러내선 소주를 기울이더군요, 그리고는 취해서, 내가 자기보다 덜먹고, 스타크래프트도 잘해서 싫대요. 심지어 머리감는것까지 싫대요. 그러니까 그만헤어지자고하곤 먼저 뛰어나가는거 있죠? 앉아서 말없이 술만마시면서 내 이야기듣고는 웃다가. 갑자기- 할말 다하고- 달려나가버리는거 있죠? 아니 무슨 취한사람이 그렇게 빨라요? 나는 말한마디도 못하게 하고 뛰쳐나가네요.


자기가 불러놓고, 술값은 어떡하라고.

그리고 날 이렇게 바꿔논건 어떻게 책임질거냐고.
나는 스타크래프트 좋아하지도 않는데, 나는 너와 함께 있어주는 스타크래프트가 좋은데. 나는 자기가 더 먹었음 좋겠어서 안먹은건데.  맨날 키작은 자기랑 서면 내 머리랑 코랑 닿아서, 어쩔수 없이 감은건데. 다 나는 너만 좋아하느라 그런건데.


알아요. 저사람 저렇게 나갈사람아니에요. 내가 바본가요, 첫 만남처럼, 그가 날 사랑하지 않는다면- 천천히 그리고 차갑게 말해줬겠죠. 헤어지자고. 저런식은 아닐테니까요. 나 술값도 없으니까. 한 20분쯤있다가, 택시 잡기전에, 전화해서. 나 술갚없다고, 돌아오라고 하면 돌아올거에요. 아니요. 내가 전화도 하기전에, 다시 뛰쳐들어올거에요. 그럴거에요. 그렇게, 난 여기서 그가 돌아오는걸 기다릴거에요. 벌써 20분이 지났지만, 지금쯤 택시를 돌려서 오고있을거에요. 한 2분만 있으면, 헐레벌떡 들어와서는, 모른체하곤 다시 무뚝뚝하게 '스타나 하러가자'라고 해줄거에요.  벌써 2분이 지났네요. 차가 조금 막히나봐요. 나 핸드폰 배터리도 없는데........그래도. 돌아와줄거에요. 워낙 느린사람이라, 제가 좀 성급한것 뿐이에요. 아마 다음번에 문을여는사람이 그일거에요.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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