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장관리의 추억 (1)

더러운날개 작성일 22.10.12 09:21:00 수정일 22.10.12 22:2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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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남에게 말 하고싶은 아름다운 기억은 아니지만

지금보다 나이가 10년 더 먹은 후에 쓰면 왠지 청승맞을 것 같고, 

만일 썰을 푼다면, 그 때 시점기준 십수년이 지난 지금쯤 소위 썰을 푸는게, 너무 오래되지도 않고 너무 가깝지도 않은,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주제라 생각이 들어 글을 써봅니다.

 

그녀와 저는 입사동기였습니다.

같은 날 같은 부서에 첫 출근을 하게되죠.  

새로운 업무를 익히고 새로운 업무환경에 적응하느라 처음엔 입사동기라는 공통분모외에는 이렇다할 공통점이 없었지만,

서로 각자의 업무에 적응하고 같은 사무실에서 마주치다보면 친근감있게 인사하고 말도 주고받는, 기본적인 화기애애함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요.  지극히 제 주관적인 느낌에 그녀가 저에게 입사동기로서보다 좀 더 친근감 있게 대한다는 생각을 하게됐습니다.  물론 저도 많이 생각해봤습니다.  남자들은 여자의 사소한 친절을 자신에 대한 호감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아닐거야. 아닐거야.  그녀는 누구에게나 친절하니까.  나였어도 그렇게 행동하고 말 했을거야’ 라고 스스로 되뇌이고는 했습니다.

 

여기서 아마도 그녀의 누구에게나 베푸는 친절을 저만의 착각이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겠지만,

지금 돌이켜봐도 그녀가 저에게 했던 행동들은, 저에대한 호감은 아니라고 할지언정 최소 어장에 뿌리는 밑밥정도는 됐으리라 생각합니다.

 처음엔 망부석같은 제 마음도 얼굴 반반한 젊은 아가씨가 친근감있게 대해주고, 매일을 마주치고, 같이 식사하고 퇴근하고 심지어 시간이 대충맞다싶으면 버스정류장에서 서로 기다렸다가 같이 출근하다보니 조금씩 그녀에게 없던 마음이 생기더군요.  결국 그녀를 좋아하게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어떤 때는 필요이상의 친절을 베풀지만, 어느 선 이상은 결코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6개월정도 그런 상황이 지속되니 저도 대충 감은 잡았죠.  이게바로 그 어장이란 거구나. 

대충 눈치를 챈 저도 어떤 선 이상으로 친하게 들려 노력하지않고 겉으로는 쿨한 척했지만, 젊고 얼굴예쁜여자에게 남자는 참으로 무력했습니다.  

그녀에게 냉담해지면 냉담해 질수록 그녀는 적절한 주기로 은근한 스킵쉽이나 쌩뚱맞은 문자로 저의 맘을 다시 녹여내리곤 했죠ㅋㅋ

그렇게 자꾸 휴일에 그녀를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진다 싶을 때쯤.

 

같은 회사 다른부서에 다른 입사동기가 있었습니다.

입사동기이다보니 다같이 모여 식사도하고 같이 놀러도가고, 놀러가서 하루씩 자고오면 밤에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도하면서 느낀 그 친구는, 성격에 맞고 틀리다는 없겠지만, 저랑은 성향이 썩 달랐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어차피 저랑은 일로 엮일 일은 없는 다른 부서 입사동기였을 뿐이었으니, 크게 신경쓰지않고 지냈는데

언제부터인가 그녀와 그 사이에서 약간의 기류가 감지됩니다. (이하 남1 이라 칭함)

 

예를들면

저랑 출근하는 횟수가 줄어들면서, 그와 출근하는 횟수가 늘어나고.

그녀와 밥을 먹는 횟수가 줄어들면서, 그녀와 남1이 점심을 먹으러가는 횟수가 늘어나느 것들이죠

그 때 저는 무슨 생각을 했냐면 

오 '웰컴 투 어장' 동지가 하나 늘었구나ㅋ

 

저는 이 기회를 어장에서 탈출할 기회로 여기고, 그녀에게 더욱 쿨하게 대했습니다.

'그래 차라리 걔랑 잘되라.  나도 맘 정리하고 다른 여자만나게.  나도 니 반반한 얼굴때문에 끌렸던 것은 사실이지만

너처럼 남자들 간보면서 사람마음가지고 장난치는 여자 싫어'

 

제가 쿨하게 행동하는 그와중에도 그녀는 이따금씩 저에게 먹이주는 일을 잊지않았지만,

여러가지 정황 상, 언제부터인가 남1은 어장의 물고기에서 조금 승격된 것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여기에서 저는 한가지 확증이 필요했습니다.

바로 그 둘이 지금 사귀고 있다는 확증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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