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어의 꿈

더러운날개 작성일 23.11.07 08:40:28 수정일 23.11.07 20:3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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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07

광어.

10년도 더된 예전에. 당시 내가 한 중소기업에 다니고 있을 때. 길을 가던 중 문득 수조에 갇혀있는 광어를 보며 내 처지와 같다고 생각했었다.

 죽을 운명. 아무리 발버둥 쳐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정해져있는 운명.

월급 230만원 중 70만원을 부모님께 드리고 있는 지금 내 상황.

아들로서 부모님을 봉양해야 할 도리는 차치하더라도, 누가 나랑 만나줄 것인가 라는 스스로의 자조.

물론 노력을 안해봤던 것은 아니다.

대기업에 입사원서도 내보고, 동시에 개인사업도 열심히 확장해보려 했다.

그러나 노력을 하면 할수록 더 큰 절망이 있을 뿐이였다. 물론 개인사업은 수익과는 무관하게 보람은 있었지만.

SNS에서 들려오는 친구들이나 선후배들의 소식은, 나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나를 빼고 모두가 즐거운 삶을 누리고 있는 것 같아보였고

그렇게 나는 수조에 갇힌 광어를 보며 나를 떠올렸다.

너도 아무리 발버둥 쳐도 빠져나올 수 없는 슬픈 내 운명과 같구나. 라고.

나의 노력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작 나를 그 수조에서 건져올려준 것은 살아보려는 내 의지가 아닌 어떤 건실한 기업이었다. 

젊고 똑똑하고 트렌디한 소위 잘 나가는 기업.

내 월급은 단숨에 100만원 이상이 올랐고, 야근수당까지 합하면 더 받을 수 있었다.  소위 돈 쓸 시간이 없어서 돈이 모이던 시기였다.

 죽을운명만 기다리던 광어가 기적적으로 수조를 빠져나온 것이다.

열심히 퍼덕였다.  바다로 돌아가기 위해.  새로운 직장과 개인사업 모두 열심히 일했고, 그리고 두군데의 일이 모두가 날로 번창해 나가는 모습을보며 내가 살아있음을 느꼈다.

그래. 아마도 내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일했고 젊고 돈도 곧잘 벌었던 때였다.  고단했지만 즐거웠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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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일을 마치고 자취방으로 돌아가던 어느 날.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고백했던 그 사람에게 동의를 얻지 못했던 날. 나는 큰 외로움을 느꼈다.

'만일 돈이 있어도 같이 즐길 사람이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 날 자취방으로 돌아가던 길은 유독 어둡고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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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조를 빠져나오긴 했지만 왠지 사회 통념상 결혼을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자꾸 들었다.

그 때 나의 나이는 어느덧 35살이었고 돈도 어느정도 있었다. 그리고 누구에게 거들먹거리며 자랑할 정도의 월급은 아니지만 적어도 아내 한 사람정도 먹여살릴 정도의 월급은 되는 것 같았다.

시간이 더 흐르기전에 결혼을 하고싶었다.  아니. 해야할 것 같았다.

나는 그렇게 이듬해에 결혼을 하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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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했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결혼생활은 생각보다 순탄치 못했다.

여기저기에서 분열의 조짐이 보였지만,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아직은 행복한 때가 더 많았으니까.

 좋았던 기억이 많이 떠오른다.  그러나 못지않게 공허했던 기억도 난다.  나의 결혼생활은 처음부터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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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이가 태어나자 나는 단숨에 이 세상의 모든 축복을 받은 사람이 되었다.

경제적으로 힘들어도, 육체적으로 힘들어도, 그 모든 것을 덮을만큼 큰 행복이 나를 휘감았고, 

그제서야 ‘나의 아이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있다’ 던 친구의 말이 실감이 났다.

나도 그랬다.  나도 정말 그랬다.  이 아이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퇴근길에 아이의 사진을 보며 미소를 짓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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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니 꿈 같다.

아이가 나에게 줬던 큰 행복을 다시 반납하는 느낌이다.

그리고 그 행복을 떼어내는 과정에서 나의 몸 역시 함께 뜯겨져 나간다.

자그마치 8년의 긴 꿈이었다.

긴 꿈에서 깨어보니 나의 몸은 더이상 젊은시절의 몸이 아닌, 8년의 세월이 지난 몸이 되어있었고

내 곁에는 8년 전과 같이 여전히 아무도 없으며

내 재산은 양육비와 재산분할, 그리고 아내의 낭비로 인해, 결과적으로 8년 전. 아니 그 이상으로 줄어들어 있었다.

못난 광어가 그만 수조에서 꿈을 꾼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이 집에 혼자 남게되었다.

지난 8년은 그저 덧없는, 한 광어의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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