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 당시의 1연대가 주축이 되어 1사단이 되고 , 전쟁전에 2연대가 주축이 되어 후에 2사단이 됩니다. 3사단의 경우나 5사단,8사단은 비슷한 사례를 거쳐 연대가 없어지고 사단이 되거나 연대는 그대로 남되 연대병력을 주축으로 사단으로 확장된걸로 압니다. 개전당시 존재했던 사단들은 1,2,3,5,6,7,8,수도 사단였죠. 1사단은 백천-개성-고랑포를 연하는 선에 , 7사단은 감악산-만세교-적목리를 연하는선에, 6사단은 적목리-춘천북방-진흑동에, ,8사단은 진흑동-양양남쪽 해안선을 밭고있었습니다. 수도사단은 서울과 수도권에, 2사단은 대전에, 3사단은 대구에, 5사단은 광주에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야후에서 찾아서 추린 자료-
육본은 ‘작전명령 38호’에서 ‘동두천과 포천에서 적을 막다 여의치 않으면 동두천과 포천 축선이 합쳐지는 의정부에서 최후 결전을 벌인다’는 결정을 내려 놓았다. 이곳 방어는 전방 사단장 중 유일한 장성인 유재흥(劉載興·당시 29세) 준장이 이끄는 7사단이 맡았는데, 7사단 예하에는 한국군 최선봉이자 최정예인 1연대(동두천)를 필두로 3연대(예비)와 9연대(포천)가 배속돼 있었다. 그만큼 7사단이 육군 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았다.
그런데 전쟁은, 육본의 부대 이동 명령에 따라 7사단이 3연대를 수도경비사령부(사령관 李鍾贊 대령) 예하로 보내놓고, 온양에 있는 2사단 25연대가 배속돼 오기를 기다리는 사이에 터졌다. 당시 7사단도 비상경계령 해제에 따라 상당수의 장병을 외출·외박 보낸 상태였다. 7사단 사(師團史)에서 가장 치욕적인 일로 기록될 ‘서울 함락 사건’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6월25일 새벽 4시 국군 7사단 1연대 지역에 인민군이 쏜 포탄이 작렬하기 시작했다. 5시30분이 되자 인민군 105전차여단 예하 107연대 소속 전차 40대가 동두천 축선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그 뒤로는 이권무(李權武) 소장이 이끄는 인민군 4사단이 따라 들어왔다. 비슷한 시각 국군 9연대가 포진한 포천 축선으로는 105전차여단 예하 107연대가 진격해오고, 그 뒤로 이영호(李英鎬) 소장이 이끄는 인민군 3사단이 진격해왔다.
인민군 6·1사단이 국군 1사단을, 인민군 3·4사단이 국군 7사단을 포위해 각각 섬멸한 후 서울을 점령하고, 인민군 2·12사단이 국군 6사단을 공격해 춘천과 홍천을 점령한 것이 양익포위 전술이다. 이러한 포위전술 덕분에 개전 첫날 인민군은 동두천과 포천을 각각 장악할 수 있었다.
(6월26일) 7사단은 동두천으로 진격하고, 2사단은 포천 쪽으로 진격하게 되었다. 7사단은 순조로이 동두천을 탈환했다. 단지 몇 시간 만에 승리를 얻었는데, 이것이 언론에 ‘마치 국군이 북진에 성공한 것’으로 과장 보도되었다. 이날 방송은 “국군의 총반격으로 인민군은 퇴각하고 있다. 우리 국군은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을 것이다”라고 떠들었다. 하지만 포천으로 진격한 2사단은 중과부적으로 인민군 3사단에 밀려, 의정부 방향으로 철수하고 말았다.
2사단이 대오도 없이 흩어져 의정부로 도주해오자 인민군 3사단의 선두가 2사단 꼬리를 물고 6월26일 저녁 의정부로 진입하고 말았다. 이렇게 되자 동두천까지 진격한 국군 7사단은 퇴로가 차단됐다고 판단하고 일부는 의정부를 뚫고 창동으로 철수하고, 나머지는 삼송리 쪽으로 후퇴해버렸다. 도미노처럼 2사단의 붕괴가 7사단 붕괴로 이어진 것이다.
6월28일 새벽 수원으로 쫓겨온 육본은 시흥보병학교에 시흥지구전투사령부를 만들어 중국 국부군에서 중장(2성 장군)을 지낸 김홍일(金弘壹·당시 51세) 소장을 사령관에 임명해 패잔병 수습에 나섰다. 먼저 영등포 일대에 패전한 수도경비사 병력이 몰려오자 타 부대 패잔병을 모아 ‘혼성 수도사단’을, 노량진 쪽에 7사단 패잔병이 도착하자 같은 방법으로 ‘혼성 7사단’을 편성했다.
기념물: 화천댐 및 화천지역 사수 기념
남,북한 양측이 화천발전소를 차지하고자 격전을 벌였는데 육군 제7사단에서 화천댐 및 화천지역 사수는 물론 38선 이북 35 전방까지 확보하므로써 유리한 지형에서 휴전을 맞이하였으며 특히 이 작전수행 후 익년 화천으로 부대가 이동하였기에 한국전쟁 마지막 전투를 기념하여 이비를 건 ------------------------------------------------------------------------ 인터넷으론 한계가 있네요 ^^ 몇 안되는 메이커 사단인데 자부심을 가지고 군 복무 하시길! 7사단이 맡았던 지역이 우리 사단이 지금 있는 자리네 ^^~ 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