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하게 보이는 파란 눈의 미군 병사들은 낯선 방문에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자신들의 이야기가 인터넷에서 화제가 됐다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모양이다. 넉 달 전 일을 꺼내자 그제서야 “누구나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 했다. “군인으로서 부상한 민간인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있나요. 인터넷에 소개될 정도로 우리가 대단한 일을 한 건 아녜요.”
지난 1월19일 경부고속도로 교통사고 현장에서 헌신적으로 부상자를 응급처치한 주한미군 3명이 23일 확인됐다. 취재팀은 지난 3월 초 국내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올려진 7장의 사진 속 인물들을 수소문한 끝에 벽안(碧眼)의 주인공들을 찾아냈다.
인터넷에 올려진 사진에는 “뒤집힌 차량 밑으로 기어다니며 투철한 봉사정신을 발휘하는 미군들 모습에 감명받았다” 는 짤막한 설명만이 있었을 뿐이다. 네티즌들은 “생명을 구해준 병사들에게 감사한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하지만 최근 우리 사회의 반미 정서 탓인지 “미군이 그런 일을 했다니 믿기지 않는다” 면서 진위 논란을 제기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취재팀이 찾아낸 주인공은 주한미군 폭발물처리반의 로버트 웰스(31) 중사, 애덤 고메스(20) 일병이었다. 아쉽게 또 다른 의인 제세 노먼(22) 상병은 지난 3월 미국으로 돌아간 터였다.
선임자인 웰스 중사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떠올렸다. 1월19일 오후 4시쯤 일행은 경기 성남에서 훈련을 마치고 양재IC 상행선 부근을 지나던 중 도로변에 전복된 봉고차 한 대를 발견했다.
“부상자가 다리를 절며 차 밖에 서 있었는데 많이 놀라 불안정해 보였어요. 지나던 다른 차량 운전자들은 119에 구조전화만 할 뿐 어떤 응급조치도 하지 않아 몹시 걱정됐어요.” 구급자격증까지 갖고 있는 웰스 중사는 부상자가 ‘쇼크 상태’임을 직감했다.
“괜찮아, 누워 누워.”
서둘러 차에서 내린 그는 서툰 한국말로 소리치며 부상자를 땅에 눕혔다. 우려했던 목 부상은 없었다.
하지만 한 쪽 다리가 심하게 부러진 데다 내상도 심해 보였다. 다리를 고정하려고 부목을 찾았으나 마땅한 게 없었다. 순간적으로 사고 차량에서 와이퍼를 뜯어 부목으로 썼다. 차에서 가방을 꺼내 부상자 다리 밑을 받쳐 상태가 악화하는 것을 막았다.
이들의 기지로 응급조치는 5분도 안 돼 끝났으나 20여분 뒤 부상자를 태운 119 구급차가 사라지고 나서야 자리를 떴다. 이들은 빡빡한 훈련 스케줄에 이 사고 자체를 잊고 있었다. 이들의 선행이 알려지지 않은 건 당연했다.
1992년부터 2년간 동두천에서 근무한 웰스 중사는 2004년 7월 다시 한국근무를 자원했다. 태평소와 징 등 우리 전통악기에도 관심이 많다.
그는 “7월이면 미국으로 복귀하지만 다시 한국근무를 자원할 것” 이라고 했다. 평택 미군기지 이전 반대시위에 대해 이들은 어떤 생각일까.
인터뷰가 끝날 무렵 슬쩍 물어봤다. 웰스 중사는 “한국 친구들 속에서 한국 문화를 배웠고 젊은 시절 반을 한국에서 보내 누구보다 생각이 남다르다. 미국으로 되돌아가더라도 한국을 잊지 못하고 사랑할 것”이라고 말했다. 동문서답이었지만 환한 미소가 보기 좋았다.
사진출처: 네이버 블로거 킹콩부활님의 블로그 첫번째 사진: 한국인 부상자를 응급처치한 로버트 웰스(오른쪽)중사와 애덤 고메스 일병.
두번째 사진: 지난 1월19일 경부고속도로 교통사고 현장에서 주한미군 로버트 웰스 중사 일행 중 한 명이 부목으로 쓰기 위해 뒤집힌 차량에서 와이퍼를 뜯어내고 있다(사진 1). 이어 일행이 차량을 뒤진 끝에(사진 2) 가방을 찾아내 부상자 다리를 받친 뒤 오른팔 출혈을 막고 기도를 확보하는 등 응급처치를 하고 있다(사진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