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rksdale AFB air show 2006의 구형 폭격기

슈퍼스탈리온 작성일 06.10.14 14: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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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미 육군 항공대의 요청에 의하여 보잉(The Boeing Company)이 육군의 차기 주력 폭격기로 완성시킨 대형 4발기 모델 299이 B-17 폭격기의 원형이다. 이 모델은 시험비행에서 좋은 성능을 보였으나 값이 지나치게 비쌌고, 당시로서는 크기가 너무 크다는 이유 등으로 육군 항공대는 이것을 그대로 채용하지 않았다.

보잉은 다시 실용 시험기 Y1B-17 13기를 제작하여 시험비행을 계속하였다. 1938년 4월 29일 실시한 시험비행에서 Y1B-17A는 시속 500km의 고속을 내고 고도 9,140m의 상공까지 올라가는 좋은 성능을 보였다. 미 육군은 당시의 악화되어 가는 세계정세 등도 감안하여 이 기종을 주력 폭격기로 채택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하여 1939년 양산형(量産型) B-17B 39기가 발주되었다.

이어서 1941년에는 엔진과 무장을 강화한 B-17C 38기, 방탄성을 강화한 B-17D 42기가 개발되어 육군에 인도되었다. B-17C는 영국에 20기가 제공되어 유럽에서 독일 공습에 참가하였다. 그 실전 경험을 토대로 다시 B-17E 512기가 발주되었다.

1941년 9월 5일 완성기의 첫 비행이 실시되었다. E형은 대형의 수직 꼬리날개, 동체 꼬리 부분의 총좌(銃座) 등을 채용하는 등 형태를 크게 바꾼 것이었다. 태평양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D형과 E형이 하와이, 필리핀 등지에 배치되어 있었다. 그러나 전투에 참가하기도 전에 대부분이 일본 공군의 기습폭격으로 지상에서 파괴되었다. 유럽 전선에는 1942년부터 E형이 파견되어 8월 17일부터 첫 출격을 시작하였다.

또한 1943년 1월부터는 3,405기의 B-17F가 실전에 투입되었고, 같은 해 12월에는 8,680기의 B-17G가 유럽 전선으로 보내졌다. 처음 설계도를 7번째로 변형시킨 B-17G는 최고 시속 462km로 1만 675m의 고도를 비행할 수 있는 과급기를 장착하고 있었다. 모두 13대의 11mm 기관총이 곳곳에 장착되어 있었는데, 이 때문에 '나는 요새'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 비행기는 폭탄창에 2,724kg의 폭탄을 실을 수 있고, 날개 밑에 달린 폭탄걸이에는 더 많은 폭탄을 장착할 수 있었다. 보잉 외에 맥도넬더글러스(Mcdonnell Douglas Corporation)와 록히드(Lockheed Corporation)의 공장에서도 B-17이 생산되었는데, 총생산 대수는 1만 2731대였다.

그 대부분이 미국 공군에 납품되어 B-24와 더불어 유럽 상공에서 폭탄을 투하하는 주력 전략폭격기가 되었다. B-17은 많은 무기를 실을 수 있었기 때문에 매우 효과적인 방어 전술이 개발되었다. 폭격을 진행하는 동안 B-17기들은 커다란 4각 편대를 이루어 공격해 온 적의 전투기에 괴멸적인 교차사격을 퍼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 출격시마다 B-17 편대는 그 10분의 1를 격추당하였다. 총 생산된 1만 2,731기 가운데 3분의 1이 제2차 세계대전 중에 격추되었다.

전폭 31.6m, 길이 22.6m, 높이 5.8m, 최대속도 시속 426km, 순항속도 시속 293km, 항속거리 3,220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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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4발 프로펠러 중(重)폭격기로써 리버레이터(Liberator)라고도 한다. B-17의 후계기로 컨솔러데이티드사(社)가 개발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이 사용한 폭격기 가운데 가장 많은 1만 8000대 이상 생산되었다. 유럽·아시아·아프리카 등의 여러 나라에 수출되었다.

B-24 개발은 1938년 미 육군 항공대가 B-17 생산을 위한 통합 항공기를 요구하면서 시작되었다. 1939년 12월 28일 시제기 XB-24가 첫 비행에 성공하고 1941년 6월 첫 번째 양산형 B-24A가 미 육군 항공대에 인도된다. 1930년대 중반 발주한 B-24A 120대 가운데 일부는 영국 공군에 제공되어 대잠수함 작전에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B-24A 이후 B·C·D·E·G·H·J·L·M·N 등 여러 종류의 개량형이 등장하였다.

B-24는 속력, 항속거리, 폭탄탑재량 등이 B-17보다 우수하여 실전 배치 후 유럽과 북아프리카, 태평양 등 모든 전선에 투입되었다. 그러나 미 육군 항공대는 B-17보다 비행고도가 낮다는 단점을 극복하고 빠른 속도와 긴 항속거리라는 장점을 활용하기 위해 주로 태평양 전선에서 운용하였다. 비행고도가 낮은 폭격기가 강력한 대공포화와 요격전투기를 보유한 독일을 폭격하려면 많은 손해가 뒤따랐기 때문이다.

엔진과 무장은 모델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엔진은 주로 프랫 앤드 휘트니사(社)가 개발한 1,200마력의 R-1830 4개를 장비하였고, 최대속도는 시속 475㎞였다. 기본무장은 자위용으로 동체의 주요 부분에 장착한 12.7㎜ 기관총 10정이다. 폭탄탑재량은 최대 5,800㎏, 승무원은 10명이다.

길이 20.50m, 너비 33.50m, 높이 5.50m 전비중량 2만 9,500kg, 최대속도 시속 475km, 항속거리 5,960km, 승무원 1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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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에서 맹활약한 미국의 쌍발 폭격기로써 미첼(Mitchell)이라고도 하며 천체(Heavenly Body)와 빌의 폭격기(Billy's Bomber)라는 별명이 붙었다. 노스아메리칸사(社)가 개발하였으며 유럽과 태평양전선에서 모두 사용되었다. 특히 일본의 진주만공습에 대한 보복으로 1942년 4월 18일 항공모함 호네트호(號)에서 이륙하여 도쿄를 폭격한 기종으로 유명하다.

노스아메리칸사는 1937년 미 육군항공대의 중폭격기 개발 요구안에 맞추어 시제기 NA-40을 제작하였다. NA-40은 1939년 첫 비행에 성공하였지만 시험비행 도중 추락하여 개발 계획이 중지되었고 비행성능을 개량한 NA-62로 대체되었다. NA-62는 1939년 3월 11일 B-25로 미 육군항공대에 제식 채용되고 1939년 9월 158대가 발주되며 양산을 시작하였다.

1940년 8월 9일 B-25 양산1호기가 첫 비행한 뒤 1941년 2월부터 폭격비행대에 배치되었고 도중에 생산계획이 변경되면서 158대 가운데 120대는 무장을 강화한 B-25B로 바뀌어 1941년 8월부터 인도되었다. 1942년 12월에는 방어력을 강화한 B-25C와 B-25D가 생산되었다. 또 일본 함정을 공격하기 위해 75㎜포 1문과 12.7㎜ 기관총 2정을 탑재한 B-25G도 405대 생산되었다.

B-25 시리즈는 가장 많이 생산된 B-25J 4318대를 포함하여 모두 9,889대가 생산되어 오스트레일리아 영국 중국 네덜란드 러시아 등의 연합국에 공여되었다.

너비 20.6m, 길이 16.1m, 높이 5.0m, 전비중량 1만 5880㎏, 최대속도 시속 438㎞, 실용상승한도 7,380m, 항속거리 2170㎞, 승무원 5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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