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퍼블릭사의 F-105 Thunderchief

슈퍼스탈리온 작성일 06.10.20 15: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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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ublic F-105 Thunderchief


개관
F-105 선더치프는 센추리시리즈 중에서 가장 많고 화려한 실전기록을 가지고 있는 기체이다. 그야말로 실전부분에서는 치프(Chief : 우두머리, 장)인 것이다. 대표적으로 베트남전에서의 북폭을 주도해 나간것이 있는데 이는 원래 설계당시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또한 선더치프는 양산대수 중 거의 절반가까이를, 그것도 베트남 한군데에서 손실했다는 미 공군의 제트전투기 사상 유례없는 기록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개발
선더치프를 개발한 리퍼블릭사는 2차대전부터 P-47 선더볼트로 유명해진 전투기 제작사이다. 2차대전 종전후 F-84 선더제트를 개발하였고 이는 한국전쟁에서 대지상공격기로 맹활약하였다. 그 이후에 F-84의 주날개를 당시에 유행(?)하던 후퇴익으로 교체한 F-84F를 NATO의 주력 전투기로 공급하기도 하였다. 초기의 클래식제트기의 시대가 끝나고 센추리시리즈의 시대가 도래하자 리퍼블릭사는 앞서 개발해왔던 선더 시리즈의 최종적인 기체라 할 수 있는 선더치프의 개발에 착수하게 된다.

F-105의 운용개념은 핵폭탄을 장착하고 마하2의 속도로 적진(소련)으로 날아가 핵폭탄을 떨구는 전형적인 침공전투기였다.
1952년 4월 공군은 리퍼블릭사에 최대속도가 음속의 1.5배정도, 기본적인 핵무장 능력을 갖춘 전투기를 개발할것을 지시하게 된다. 이에 리퍼블릭사는 1955년 1월 22일에 추력이 16,000lb인 J57-P-25엔진을 장착한 YF-105A 1호기가 첫비행에 성공하게 된다. 당시 YF-105A는 초음속 돌파 실험에 간단하게 성공하여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이윽고 1956년 1월 28일에는 2호기가 첫비행에 성공하여서 F-105의 양산이 가시화 되었다.

YF-105A의 총 제작대수는 2대로 기체의 특징을 살펴보면 수직미익이 작고, 동체가 짧으며 면적법칙이 적용되어 있었다. 이기체는 주로 초음속에서의 비행성능, 기동성, 조종성 평가용으로 쓰였다. 한편 1956년 5월 26일에는 추력이 16,400 lb인 YJ75-P-3을 장착한 YF-105B (시제3호기)가 첫비행에 시도하였으나 이륙 1시간만에 착륙에 실패하여 기체가 대파되기도 하였다.

미 공군은 YF-105B의 시험비행을 계속 진행하여 시험평가를 실시한후에 본격적으로 양산을 결정하고 1956년 3월에 57회계연도분으로 F-105B 65 대와 정찰형인 RF-105B 17대의 양산을 결정하게되고, 3개월후에 복좌훈련형인 F-105C 6대의 추가양산을 결정하게 된다. 1957년에는 APN-105 전천후 항법장치의 장착, 계기판의 위치변경, Mk.43핵폭탄 운영능력획득 등 의 개량이 가해졌다.

각 형식
[F-105B]
선더치프 최초의 양산형이다. 처음에는 추력 17,000 파운드의 J75-P-5엔진을 장착하고 있었으나 블록 10형과 15형에서는 추력 24,000 파운드의 J75-P-19로 교체되었다. 57회계연도 예산으로 65대가 발주되었고, 그 이후에는 F-105D의 양산이 실시되었다.
F-105의 블록은 20형까지 존재하고 이 블록20은 블록15에 비해 엔진과 전자장비의 개선이 이루어진 형식이다. 고정무장은 M-61A1 20mm 발칸포를 기수 좌측에 장비하였다. 모든 기체가 제 4 전술전투비행단에 배치되었던 F-105B는 1964년 F-105D의 배치로 인해 모두 뉴멕시코주 주방위군에 인도되었다. 그와 동시에 곡예비행팀인 선더버드에 F-100C의 후계기로 9대가 제공되었다

[R/JF-105B]
원래 RF-84의 후계기 성격으로 미공군에서 3대를 발주하기로 하였으나 RF-101C가 비용대 효과면에서 더 우수한것으로 판명되어 채택되지 않았다. 하지만 완전히 사장되지는 않았고 JF-105B라는 특수실험용 기체로 만들어졌다.

[F-105C]
1956년 6월에 시험평가용으로 5대가 발주된 기체이다. 복좌형 기체로 동체가 연장되어있으며 캐노피도 원피스형으로 시험평가후에 이 기체를 훈련용으로 전용하여 사용하려 했으나 너무 비싸서 양산이 취소되었다.

[F-105D]
베트남전에 대량으로 투입되었고, 선더치프 중에서 가장 많은 양산대수를 자랑하는 표준형으로 그 만큼 완성도도 높은편이다. 전체적으로 전천후 성능이 향상되었고, J75-P-19W를 탑재하였으며 F-105B 후기형과 비행성능면에서 큰 차이를 보여주기도 하였다. 기수에 AGS-19 선더스틱 화력제어시스템을 장착하기 위해 기수부가 15인치 연장되었고, R-14A 모노펄스 X밴드 수색/거리측정 시스템과 ARN-131 도플러 항법장치를 도입하였다. 이 장비들은 토스보밍 컴퓨터와 연결되어 있어서 정확한 목표유도와 공격이 가능해졌다.
미 공군은 1957년도 예산으로 F-105D와 복좌형인 F-105E (훈련/공격겸용)를 발주하여 58년 5월 부터 4년간 472대를 양산하게 된다. D형 1호기의 첫 비행은 1959년 6월에 실시되었다. 초기 양산형 25대는 본토에 주둔하게 되었고 블록10형부터 해외기지에 파견되어져서 1962년 10월에 일본 가데나 기지에 파견되어 작전태세를 갖추게 된다.
블록25형은 MER이 도입되어 한번에 여러발의 재래식폭탄을 장비할 수 있게 되었고, 동체 내의 연료탱크가 폭탄창에도 연료탱크의 부착이 가능해졌다. D형의 최종양산형인 블록31은 공중급유장비가 추가되었는데 특이한것은 공군과 해군에게서 모두 급유가 가능하도록 붐방식의 리셉터클과 프로그 앤 드로그식의 급유장치도 설치된다.
F-105D 블록31형의 마지막 생산기체는 64년 2월에 인도되었다. 미 공군의 당초 1,400대의 D형을 도입하려 했지만 마침 등장한 맥나라마 장관의 3군 통합방어 계획에 따라 해군의 F-4팬텀을 공군형으로 개조하여 양산하기로 함으로서 중단된다. F-105D형은 블록1형에서 블록31형까지 총 610대가 생산되었다.

[RF-105D]
RF-101C의 후계기로 개발이 예정되었으나 RF-4C의 등장으로 무산되고만 기체, 동체이 폭탄창을 개조하여 카메라와 센서용베이를 추가하였고, 주날개에 측방감시 레이더포드를 장비할 수 있었다.

[F-105E]
F-105D의 복좌훈련 및 공격이 모두 가능한 양용기체였으나 너무 높은 기체가격으로 인해 59년 3월에 발주계획이 취소되었다.

[F-105F]
F-105E의 취소뒤에 다시 계획된 훈련형기체이다. 후방석의 추가를 위해 동체를 31인치 연장하였고, 전자장비를 추가하여 D형보다 더 높은 공격력을 가지게 되었다. 동체의 연장으로 인해 수직미익의 면적이 증가하였으며 중량은 2천파운드가 늘었다. 62년 5월에 143대가 발주되었고, 63년 6월 첫 비행에 성공하여 제4전술전투비행단에 배치되었다.

[F-105F Wild Weasle ll]
북베트남군의 지대공미사일 사이트를 저고도에서 고속성능을 이용하여 제압하는 임무 (SEAD)를 수행하기 위해 기존 F-105F를 개조하여 만들어진 형식이다. 총 87대의 F-105F가 개조되었고 이 중에서 30대에는 AGM-78 스탠더드 대 레이더미사일을 장착할 수 있으나 나머지 기체에는 AGM-45슈라이크 무동력 대레이더 미사일을 장착하고 북베트남군의 방공망 사냥에 나섰다. 전자장비는 적 레이더기체 추적시스템과 경보시스템을 추가한것이 전부이다. 이들 기체는 나중에 거의 모두가 G형으로 개조된다.

[F-105F Combat Martin]
1967년 F형 6대를 전자전기로 개조한 기체를 일컫는 형식이다. 외형상의 차이점은 없으며 후방석의 사출좌석이 제거되었고, 동체하부에 브레드 안테나가 추가된것이 특징이다. 6대중 4대는 71년에 G형으로 개조되었다.

[F-105F Command Nail]
1967년 F형 6대를 저고도 레이더폭격형으로 개조한 기체로, 주로 야간/전천후 폭격임무를 수행하였다.

[F-105G Wild Weasle lll]
기존에 사용하던 F-105F Wild Weasle을 개조한것으로 ALG-105 다중모드재머를 추가한 본격적인 SEAD 미션 기체이다. 1973년까지 총 65대가 개조되었다. F-105G형은 베트남전이 끝난후 1980년대 초반까지 주방위군 공군에 배치되어 있었다.

[F-105H]
1962년 리퍼블릭사가 제안한 F-105F의 발전형으로 주익과 수평미익의 면적이 증가되었고 30,000 파운드의 추력을 가진 JT4B-24로 교체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미 공군에서는 별 흥미를 보이지 않아 취소되고 만다.

[AP63-19]
리퍼블릭사가 나토 공통의 전투폭격기로 제안한 모델로 영국,프랑스, 캐나다 공군에 제안된 모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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