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마르크의 최후-1

5man 작성일 07.01.20 12:0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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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위로부터]
. 전방에서 바라본 비스마르크
. 비스마르크의 주포
. 신조전함 프린스 오브 웨일즈
. 프린스 오브 웨일즈에서 촬영한 전함 후드 (격침 전 마지막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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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인치 함포를 장비한 순양함 노폭 (Norfolk) 과 서폭 (Suffolk) 이 아이슬란드 북쪽과 북극의 빙해 사이의 해협의 패트롤을 위해서 보내졌다. 그곳은 살벌하고 금지된 지역으로 북쪽으로는 빙해의 끝으로 수평선에는 항상 빙원의 반영이 보였고, 남쪽으로는 간간히 움직이는 안개의 덩어리와 아이슬란드의 지뢰밭과 울퉁불퉁한 바위덩어리들이 보이곤 했다. 얼음과 안개 사이로 안전한 통항로는 겨우 3마일의 폭이 있을 뿐이었다.

이들 두 척의 순양함은 모두 레이다를 장비하고 있었지만, 아직 개발 초기단계의 것이었다. 서폭의 레이다는 회전식으로, 함미쪽의 좁은 각을 제외하고는 전방위를 감시할 수 있었다. 노폭의 레이다는 고정식으로, 단지 전방의 좁은 각 만을 감시할 수 있었다. 두 개의 레이다 모두 13마일 가량의 범위를 넘지 못했고, 이 거리는 청명한 날씨에서는 망원경의 가시거리보다 짧았으며, 마찬가지로 비스마르크의 함포 사거리보다도 짧은 거리였다.

비스마르크와 호위순양함을 처음으로 발견한 것은 사람의 눈으로, 서폭의 견시 (해군함정에서 원거리를 감시하는 임무 : 역자 주) 였으며, 1941년 5월 23일의 이른 아침이었다. 서폭은 안개 속으로 날쌔게 숨어들었고, 비스마르크는 아마도 이쪽을 발견 못한 듯 했다. 비스마르크와의 전투는 서폭의 몫이 아니었고, 사실 가능한 일도 아니었으며, 단지 발견을 보고하고 미행하는 것이 이들의 임무였다. 서폭은 무선으로 발견을 보고하고, 레이다 상의 두 점을 계속 주시했다. 그들이 서폭을 지나 서쪽으로 향하자, 서폭은 다시 안개 속에서 나와 레이다의 한계거리에서 눈으로 두 전함을 쫓으며 따라갔다. 그들의 순항속도는 28에서 30노트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서폭이 비스마르크를 발견한 후 한 시간 가량이 지나, 노폭이 갑자기 안개를 뚫고 비스마르크와 겨우 6마일 거리에서 튀어나왔다. 이번에는 비스마르크의 함포가 응사했다. 이 포 사격으로, 비스마르크가 함포의 레이다 통제시스템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아직 영국군은 장비하지 못한 기술이었다. 노폭은 몇 분간의 아슬아슬한 순간을 지나 다시 안개 속으로 숨어들었고, 비스마르크는 더 이상 포격하지 않았다.

온 밤을 세우며, 이 네 척의 전함들은 눈보라와 폭풍우를 뚫고, 해도에도 나와있지 않은 얼음덩어리들을 아슬아슬하게 우현 쪽으로 비켜가며 북극해를 질주해 나왔다. 두 척의 순양함들은 비스마르크의 위치와 침로, 속도를 계속 보고해나갔다. 이 보고는 해군본부와 최고사령관, 그리고 전함 후드와 프린스 오브 웨일즈를 지휘하는 홀란드 (Holland) 제독에게 수신되었다. 홀란드 제독은 가장 근접해 있었으며, 밤 동안 덴마크 해협의 남쪽으로 비스마르크를 차단하기 위해서 달려갔다. 5월 24일 새벽 5시 35분, 그는 적을 발견하였고, 함수를 적을 향해 돌렸다. 5시 49분, 전투가 개시되었다.

이론 적으로는, 영국군이 함포의 세력에 있어서 우세했다. 하지만, 후드에 탑승하고 있었던 홀란드 제독은 전방을 바라보며 공격하기로 했으며, 프린스 오브 웨일즈에게도 같은 공격방법을 지시했다. 이 진형은 전방 함포만 사용이 가능했기에, 보유한 함포세력의 겨우 반만을 사용할 수 있을 뿐이었다. 25,000 야드 (약 2,300 미터) 에서 후드가 먼저 사격을 개시했고, 몇 초 안으로 네 척의 전투함 모두 함포문을 열었다. 양쪽 모두 함포사격은 정확했다. 후드의 첫 사격은 비스마르크가 아닌 순양함을 겨냥했었는데, 이 전함은 이제 8인치 함포를 장비한 프린쯔 오이겐 (Prinz Eugen) 으로 식별되고 있었고, 후드에 첫 유효사를 낸 것도 프린쯔 오이겐 이었다. 이 피격으로 인해 후드에는 큰 화재가 일어났다.

6분 가량이 지나, 홀란드 제독은 전 함포를 사용하기 위해 좌현으로 변침을 명했다. 하지만 이 변침이 완료되기 전에, 거대한 화염이 후드의 마스트 사이로 일어났고, 이 불꽃은 몇 백피트, 어떤 목격자는 천피트가 넘었다고 하였으며, 중앙에는 밝은 백열광을 나타내고 있었다. 이 불꽃은 겨우 1초에서 2초가량 지속되었고, 남겨진 짙은 연기기둥 속으로 함수와 함미가 위쪽으로 치솟는게 어렴풋이 보였다. 후드는 두 동강이 났으며, 겨우 2분이 지나자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기록에는 비스마르크의 다섯 번째의 살보 Salvo - 일제사격 - 이 후드에 명중하여 빈약한 갑판의 장갑을 뚫고 탄약고의 유폭을 불러 일으켰다고 합니다. 1,419 명의 승무원 중에 살아남은 자는 수습사관 한 명과 수병 두 명뿐이라고 합니다. - 역자 주)

이제 독일 전함들은 사격을 프린스 오브 웨일즈에 집중하고 있었으며, 이 전함은 아직 함포탑의 심각한 문제점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던 상태였다. 기계적인 결함이 계속 남아있는채로, 아직 포탑안에는 조선소의 수리인원이 탑승하여 정상운용을 위해 분투하고 있었으나, 매 일제사격마다 겨우 반 정도의 함포만이 응사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비스마르크의 부포의 사격을 포함한 15인치 (381미리), 8인치 (203미리), 6인치 (152미리)의 포탄의 소나기가 프린스 오브 웨일즈 주위로 쏟아져 내렸고, 7번의 명중탄이 나왔다. 15인치 탄 하나가, 브리지를 뚫고 지나가 반대편에서 폭발했다. 이 폭발로 함장과 신호계의 선임하사를 제외한 브리지의 모든 인원이 죽거나 부상당했다. 브리지 아래에 있는 항해실에서는 전송관을 통해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이제 거리를 벗어나 전투에서 이탈하는 방법 말고는 어쩔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겨우 8분간의 전투였다. 노폭과 서폭은 여전히 원거리에서 자신들의 임무를 다한 만족감을 가지고 전투를 지켜보고 있었다. 후드의 재앙으로, 노폭과 서폭 순양함들을 지휘하고 있었던 제독(소장)은 갑자기 자기가 프린스 오브 웨일즈를 포함한 최고 선임지휘관이 되어버린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간결한 메시지를 전송시켰다. “후드 날아가 버림”

바다에 떠있는 영국함대의 어느 누구도 이른 새벽의 이 충격스러운 메시지를 잊지 못할 것이었다. 후드는 유틀란트 해전 바로 이후에 진수된 구형 전함으로, 오랜 기간 동안 세계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전함으로 알려져 있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경외하던 배였다. 영국해군에서 후드 승무원 중에 친구를 두고 있지 않은 사람들은 몇 되지 않았다. 그 순간부터, 비스마르크를 격침시키는 것은 전략적인 목적 이상이 되어버렸다. 순수한 복수 그 자체가 되어 버린 것이다. 해전에서의 묘한 비인격화가 잘 나타나는 사건 이었다. 이건 배를 향한 복수로서, 그 배의 지휘관이나 승무원들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이제 사냥은 커지고 커져서, 대서양에 떠있는 모든 함정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그리고, 비인격화가 됨으로서, 모두들에게 아주 흥미진진한 일이 되어버렸다. 처음으로, 수 천마일 밖에서 전술신호가 날아왔다. 모든 함정에서, 암호통신수 들은 밤낮으로 바빠졌고, 항해사들은 대서양 해도에서 위치를 기입하고, 제독들과 함장들은 입수되는 정보를 가지고 차단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작은 예로, 구형 순양함인 아레투사 (Arethusa )는 레이캬비크 (Reykjavik - 아이슬란드의 수도)에 있었는데, 비스마르크가 되돌아 올 경우를 대비해서 아이슬란드를 반 시계방향으로 순찰하도록 지시 받았다. 탑승한 현역장교들은 비스마르크가 돌아오기를 바랬고, 소집되어 탑승한 예비역 장교들은 좀더 현실적인 이유에서 개인적으로는 그렇지 않기를 바랬다 : 겨우 6인치 함포를 장비하고, 장갑도 없고 레이다도 없는 구형함정으로서, 아레투사가 적을 눈으로 보기도 전에 격침되어 버릴 것이라는 사실에는 틀림이 없었고, 아마도 운이 좋다면, 침몰 전에 적접보고정도는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이 배도, 홀로 빙해를 바라보며 외롭게 떠있었지만 무선을 통해 이 극적인 드라마의 전개에 참여할 수 있었다.

노폭과 서폭, 그리고 이제 프린스 오브 웨일즈 까지 가담하여 미행임무가 다시 시작됐다. 존 토비 경은, 300마일 밖에서 비스마르크가 어디로 향하는지에 대한 문제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젠 적이 피해를 입었는지, 그렇다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의문까지 더해졌다. 서폭과 아이슬란드에서 보내진 수상기 둘 다 해면상에서 기름유출흔적을 발견했다고 보고해왔다. 비스마르크는 분명히 타격받았다. 하지만 경미한 유출로, 심각한 손상은 아니었다. 적함의 공격력은 손상이 없었고, 겨우 속력이 아주 약간 느려졌을 것이었다. 만약 수리가 필요하다면, 독일로 돌아 갈 것인가? 그렇다면 어떤 항로를 택할 것인가? 아니면 독일 점령하의 프랑스로 갈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스페인? 그것도 아니면 적도 어디 아래부근에서나 아니면 그린란드의 서쪽 데이비스 해협 (Davis Strait) 부근에서 유조선을 만나 연료를 보급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가능성은 무궁무진했다.

이제 사냥은 토비 경의 지휘범위를 넘어서고 있었다. 지브롤터에서는 전투순양함 리노운 (Renown) 과 항공모함 아크로얄 (Ark Royal) 이 순양함 셔필드 (Sheffield) 와 6척의 구축함의 호위를 받으며 순항에 나섰다. 수 천마일 밖에서는 전함 리벤지 (Revenge) 가 노바 스코티아 (Nova Scotia) 할리팍스 (Halifax) 로부터 출항했다. 대서양에서는, 전함 로드니 (Rodney) 가 개장을 위해 보스턴 (Boston) 으로 향하고 있었고, 전함 라밀레스 (Ramillies) 와 순양함 런던 (London), 에든버러 가 호송선단을 호위하고 있었다. 이 모든 함정들이 원래의 임무를 버려두고, 해군본부의 명령으로, 또는 자체판단으로 비스마르크를 차단하기 위해서 질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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