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저희 동네에서 퇴근을 하고 찾아온 동기녀석과 오랜만에 보쌈에 소주 한잔하며 회포를 풀었습니다.
술자리에서 군대얘기를 하던 중 너무나도 웃겼던 에피소드가 생각나 문득 이곳에 써봅니다.
(일인칭 시점에서 쓰는 글이라 경어체를 쓰지 않은 점,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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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병 7호봉을 갓 단 날이었다.
며칠 후면 짬밥신고날이다. 무척 설레였다. 한달 늦긴 했지만 그래도 그게 어디인가.
곧 있으면 그토록 듣고싶었던 락, 메틀음악을 들을 수 있고, 부드러운 마플러스로 샤워도 할 수 있다...
다림장에 가도 이제는 빡세게 다릴 옷도 없다.
그날도 늘상 하던대로 다림장 막내들에게 옷 줄잡는 법을 가르쳐주고,
순검청소를 엄중히 지휘한 후 토요명화 "터미네이터 2" 를 즐기고 있었다.
그날은 토요일이라 TV 시청은 "애국가 울릴때까지" 였다.
아놀드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제철소 용광로에 빠져들어가는 순간이었다.
"OOO해병님. 근무나가실 시간입니다."
15기수 아래인 후임해병이 내게 다가와서 말을 건넸다.
내가 있던 화기중대는 내 근기수들이 매우 많은 "항아리형" 기수체계였기 때문에 따지고 보면 얼마 차이나지 않는
15기수 아래의 후임이 내 초병이 되는 그러한 사태가 곧잘 벌어지곤 했었다.
"응, 그래. 다행이다. 영화 다보고 근무진입해서......"
앞 근무 초장해병이 나보다 바로 한기수 낮은 맞후임이긴 했지만 그래도 근무시간은 제대로 지켜주고 싶었다.
중대장에게 근무진입 신고를 하러 중대장실로 들어갔다.
"필승~ 상병 OOO외 1명은~"
"알았어~알았어... 얼른 진입하고~뻘짓하지 말고... 난 배고파 죽겠다~" (중대장)
'배고프면 날짜지난 우유나 실컷 쳐먹어...' (나) (물론 속으로...)
그때 나간 근무지는 다름아닌 검문소였다.
김포지역 특성상 민간인 출입통제구역이 있기 때문에 검문소가 많기 마련이었다. 그중 하나의 검문소 근무였다.
맞후임과 근무교대를 한 후 늘 그랬듯이 자주 근무를 함께 섰던 초병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문득 초병후임이 내게 말했다.
"아까 중대장이 배고프다고 그랬는데, 해병님은 배 안고프십니까?"
"그래...지금 한참 고플때지...너도 많이 고프겠다. 오늘 근무 끝나고 야식도 없던 것 같던데..."
"맞습니다...후...진짜 배고픕니다 저도..."
순간!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영상이 있었다.
[청각루 24시간 배달대기. 논밭속까지 배달가능]
그건 며칠 전 도로를 굴러다니던 중국집 나무젓가락 포장지의 문구였다.
초병 후임에게 난 말했다.
"야. 씨발. 배고프면 어떻게 해야돼?"
"?????"
"배고프면 씨발 먹어야돼. 안그래?"
"......????"
"기다려봐."
난 바로 상황실로 뛰어들어가 중대 상황실로 전화를 넣었다. 마침 중대 상황병도 후임해병이었다.
"야. 청각루 번호 있지?"
"예...있긴 있는데 왜그러십니까? 설마..."
"설마는 니미~빨리 불러. 난 지금 꼭 짜장과 소주를 빨아야겠다."
몇분 전 본 아놀드의 깡다구가 생각났던 것일까. 난 왠지 모르게 미쳐가고 있었다.
"안됩니다! 그러다 좆됩니다 해병님!"
"좆이 되건 보X가 되건 빨리 불러. 소주 한병 갖고 올라갈께. 그리고 쫄병하나 시켜서 내 지갑에서 3만원만 빼오라고 그래."
십분 후, 중대 막내는 3만원을 들고 검문소로 뛰어오고 있었고,
난 이미 청각루에 주문을 끝마친 상태였다. [탕수육 중, 짜장 둘, 소주 세병]
[탕수육 중, 자장 둘, 소주 세병] 이었다.
만약 근무지에서 이런 짓을 하다가 걸리면 그건 에누리 없는 영창감이었다......틀림없는.
초병 후임은 겁에 질려있었지만 입가에 고인 침은 이미 전투복 상의를 적시고 있었다.
우리의 근무 시간은 2시간 30분이었다. 정확히 근무진입 1시간 15분 후, 저 멀리서 스쿠터 소리가 들려왔다.
"탈탈탈탈탈탈~"
그렇다. 청각루의 번개형님이 X빠지게 엑셀을 당기며 우리에게 날아오고 계셨다.
"배달이요!"
"예~!!!!" (둘이 함께)
철가방은 힘차게 열렸고, 그 사이 보이는 푸른 병은 우리를 미치게 만들었다.
참고로 우리 둘 다 휴가나간지 육개월이 넘은 상태였다......
계산을 하고, 정확히 10분만에 우리 둘은 그 모든 것을 남김없이 쳐 먹었다. 흔적도 없이.
후임은 손이 데는지 어쩐지도 모르게 탕수육을 손으로 집어 입으로 쳐넣었고,
나 역시 자장을 거의 원샷하다시피 하며 다른 손에는 소주를 들고 매우 재빨리 마셔댔다.
천국에 간 기분이었다. 우리 둘 다......
그릇은 미리 얘기해 두었던 100미터 전방 전봇대 밑에 놓아 두었고, 입냄새는 근무지 옆에 졸졸 흐르는
시냇물에 입을 행구었다. 우리는 근무지 모래둔덕에 털썩 앉아 미리 준비해 두었던 담배를 한모금 빨며
그 천국을 즐겼다......
어느덧 근무철수 할 시간이 되었다. 이제 우리 둘은 여한이 없었기에 들어가서 자기만 하면 되었다......
다음 근무자와 근무교대를 한 후 중대장에게 근무철수 신고를 하러 가고 있는 중이었다.
웬일인지 중대장이 자고 있지 않고 중대 입구 벤치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새끼. 배고파서 잠이 안오는구만. 날짜 지난 우유라도 처먹으라니깐......'
중대장 앞으로 근무 철수 신고를 하러 다가간 순간이었다.
"필승~상병 OOO외 1명은~"
중대장이 갑자기 말했다.
"담배는 피웠냐?"
"???"
"탕수육에 소주를 처먹었으면 담배도 한대 빨아줘야지~?"
"??????????????????????????????????????????????????"
중대장은 계속 말했다.
"야이 재수도 좆도 없는 새끼들아. 아까 중국집에 전화해서 짱개하고 소주 좀 시켰더니,
아까 시킬때 같이 시키지 그랬냐고 지랄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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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 발.
씨. 바..ㄹ
씨..
아.......
개새끼. 배고프다더니...잠이나 처잘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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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행이 영창은 모면할 수 있었다.
그 대신 한달 내내 밤에 두시간씩 중대 뒷산에 올라가 더덕과 미나리를 한봉지 캐와야 했다.
그것도 빤스바람으로 말이다.
그당시 육개월동안 나가지 못한 휴가는 그 후 육개월을 더 나가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덕에 우리 중대원들은 평소 먹어보지 못했던 더덕과 미나리를 한달동안 원없이 먹을 수 있었다.
그때 최고 선임이 내게 했던 말이 생각난다.
"야이 개새끼야. 우리집에 맨날 반찬에 미나리 있었거든? 군대 와서 그거 안먹는다 했더니 니 덕에 또 처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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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그 당시에는 탕수육과 자장, 소주 몇 병때문에 그렇게 큰 대가를 치루면서 힘들었지만,
지금은 평생 잊지 못할 소중한 추억입니다......
방금 만난 동기녀석이 문득 이 얘기를 꺼내면서 한참 웃었더랍니다......
여러분 모두 중국음식 맛있게 드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