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 현역 시절 중 에피소드 2......

유로니모스 작성일 07.03.13 01:3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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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세요? 전 해병 병 801기로 전역한 김포해병입니다.

 

며칠 전 이 게시판에 제 군생활 중 있었던 에피소드를 하나 적어 올렸는데요, 많은 분들이 재미있어 하시는 것 같아

 

또 하나의 에피소드를 올려봅니다. 재미도 있었지만 나름대로 슬펐던 기억입니다......

 

(일인칭 시점에서 글을 전개하느라 경어체를 쓰지 못한 점, 양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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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병 5호봉을 단 지 일주일이 지났다.

 

이제는 나 혼자서 담배를 피워도 되고, 후임들에게도 경례를 받을 수 있다......

 

이제 상병 계급장 달 날을 기다리며 인고의 나날, 다시 시작이다......

 

오전과업으로 총검술을 끝마치고 그날이 우리소대 츄라이 담당날인지라 츄라이작업을 하러 주계로 올라가는 중이었다.

 

"야~ 000 (바로 나)~ 너 주계 가지 말고 일루와봐~"

 

중대 상황실 창문을 열어제치고 중대 인사병 선임이 내게 소리쳤다.

 

'음? 날 왜부르지? 나 잘못한거 없는데...' 후다닥~

 

상황실로 들어가자 인사병 선임은 A급 전투복 상의를 갈아입은 채 팔각모를 고쳐쓰고 있었다.

 

"야~ 나 갑자기 며칠동안 연대로 인사병 교육받으러 가게 됐다. 3,4일 걸릴 거 같은데 니가 대신 좀 봐줘야겄어~"

 

'인사병??? 이것저것 핑계대고 오전과업 열외, 오후과업 열외! 체육활동 당연히 참가! 그 꿀빠는 인사병을??'

 

"옛! 알겠습니다!"

 

"너 나하고 같이 유일하게 중대에서 4년제 대학생 아니냐...별로 어렵지 않을거야. 일루와. 해야될거 가르쳐줄께."

 

인사병 선임은 며칠동안 내가 해야 할 일을 이것저것 급하게 인계해 주고 교육을 떠났다.

 

그날 저녁, 다음주 휴가자 명단을 작성하고 있었다. 문득 상황실로 다림장 오장 선임이 들어왔다. (상병 7호봉)

 

"야, 너 씨벌 후달린게 인사병 잠깐 됐다고 사이드 까면 진짜, 정말, 리얼리, 알지?"

 

"진짜, 정말 , 리얼리 알고 있습니다!" (복명복창의 훌륭한 예)

 

"하여튼 뒈진다. 잘 해라."

 

"옛! 알겠습니다! 필~~승!"

 

역시 이래서 짬밥이 인사병을 하는가 보다.

 

다음날 오전과업 후 행정관이 나를 불렀다. 이런, 나보고 우체국엘 갔다 오란다!

 

종종 인사병은 가방을 메고 부대 밖으로 외출을 나가곤 했다. 이것 저것 행정적인 일처리를 위해서였다.

 

꿈같은 일이다. 단 몇시간이지만 밖에 나갔다 올 수 있다는 게......

 

난 총알같이 버스를 타고 우체국이 있는 시내로 나갔다. 그 곳의 이름은 마송이었다.

 

꼼꼼하지만 빠르게, 우체국에서의 볼일을 20분만에 해치우고, 선임들의 심부름을 한 후,

 

나는 중국집에 들어갔다.

 

켜~ 그토록 먹고 싶었던 이 간, 간짜장! 술도 한잔하고 싶었지만 낮이고 이사람 저사람에게 걸릴 확률이 많기에 먹지 않았다.

 

게눈 감추듯 간짜장을 해치우고 밖에 나섰는데 그래도 시간이 두시간 정도 남았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내 발이 자석에 이끌리듯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마치 무엇에 홀린 것마냥......

 

발걸음이 멈춘 곳은 그 당시 마송 일대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수준높고, 가장 인기있는......

 

대지다방 이었다.

 

'안돼. 미쳤어? 난 아직 일병이라구...이건 정말 기합빠진 짓이야. 안돼. 그냥 일찍 들어가자."

 

"어서오세요 오빠~~~~"

 

들어갔다. 대지다방에.

 

순식간에 서너명이 들러붙었다. 아가씨들이 대뜸 하는말은

 

"어? 작대기 두개네? 와~ 작대기 두개가 혼자 들어온건 처음이야 오빠~ 멋있따~~" 였다...

 

한잔에 1500원 하는 커피를 좍 돌리고, 담배를 피우며 이런저런 이빨을 깠다.

 

그 중 "영이" 라는 예쁘진 않지만 귀엽고 간드러지는 아가씨가 있었는데, 유난히 내게 들러붙었다.

 

"오빠~키 크다~ 잘 생겼다~ 매너 좋다~ 일병이 혼자 오고 깡다구 좋다~ 꺄르륵"

 

지금 생각해 보면 알에서 갓 태어난 한마리의 져글링을 보는 듯...

 

그러나 난 싫지 않았다. 나이도 비슷했고 귀엽고 사근사근한 그녀가 괜찮았다.

 

훌쩍 두시간이 지났고, 나는 급하게 다방을 나섰다. 이제는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계산을 하고 나가는 내 뒷전에 대고 영이가 소리쳤다.

 

"오빠~ 이 근처 0000부대랬지~ 오빠 이름도 여기 적어놨다~ 꺄르륵~ 휴가 나갈때 꼭 술사준댔다~~꼭 지켜~"

 

"어, 그래......안녕~" '야. 그런 말 다 믿냐? 하긴 너도 영업성 멘트겠지...짧지만 재밌었다' (속으로)

 

무사히 중국집과 다방을 간 사실은 밝혀지지 않았고, 며칠 후 인사병 선임이 돌아오고 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다음달, 그러니까 일병 말호봉의 어느날이었다. 다음주면 14박 15일의 일병휴가다~!!

 

순검이 끝나고 취침시간이 되기 몇분 전이었다. 상황실에서 호출이 날라왔다. 상황실로 뛰어갔다.

 

"야. 이 씨발놈이 미쳐가지고, 와~ 진짜......어이없네."

 

상황병 병장선임은 욕설을 퍼부으며 한대 칠 기세로 내게 말했다.

 

"?????????????????"

 

"전화받아라. 씹새야. 전화끊고 보자."

 

"????????????????? 전화? 부모님밖에 아직 이 번호 모르시는데? 도대체 누구지?"

 

상황실에 있던 일반전화는 극소수의 짬밥 선임들만이 이용하는 번호였다.

 

내 차례가 되려면 아직 1년 정도가 더 남아있었다. 도대체 누가......

 

"오빠~ 꺄르륵!"

 

!!

 

이런 빌어먹을. 니가 날 죽이려고 작정을 했구나. 후......

 

몇시간 전부터 김포 해병대 일반전화로 여기저기 전화해서 알아냈단다. 내 이름과 부대, 계급까지 모조리 알고있으니

 

이렇게 찾은것도 우연은 아니었다. 미치겠다. 그때 설마 진심이었단 말인가.

 

"오빠~휴가날 다방으로 전화한댔잖아~휴가 금방 나온다며? 아직도 안나와? 얼른 나와~~ 나 술사줘~~"

 

"어...음....아....그러니까...."

 

문에 기대고 선 상황병 선임이 엄지손가락으로 목을 긋고 있었다.

 

"어...내가 나중에 전화할께...끊어" 전화기를 바로 끊고 후덜거리는 다리를 이끌며 걸음을 옮겼다.

 

"니가 전화번호 가르쳐준거 아니지? 아까 대충 얘기 들어보니 여기저기 찾다가 찾은거 같은데,

 

후. 씨발 그럴수도 있으니까 한번만 봐준다. 똑바로 해라 앞으로."

 

'살았다' "옛! 알겠습니다! 똑바로~ 하겠습니다!"

 

"따르르르르르르르ㅡ릉" '제발'

 

전화를 받은 상황병 선임이 나를 다시 쳐다본다. 흡사 악마, 오멘의 눈빛이다.

 

"00이 휴가요? 다음주 수요일이요. 그것때문에 전화했어요? 00이 바쁘니까 이제 전화하지 마요." 딸각.

 

'아이 씹...휴가 날짜 가르쳐 주면 어떡해!!!!!!!!!!'

 

상황병 선임은 한번 더 참아줬다. "아이 씹새. 너 좆나게 좋아하나보다. 친구냐?"

 

"아...아는 동생입니다! 제가 연락을 끊어서 이렇게 된 거 같습니다. 똑바로 하겠습니다!"

 

"씨발새끼. 좆나 인기 많은 척 하네. 얼렁 들어가 쳐자!"

 

잠자리에서 곰곰히 생각해봤지만, 휴가날짜를 알아도 어쩔것인가. 휴가나가는 날 부대 정문으로 오지 않는 이상...걱정말자.

 

"오빠~~~꺄르륵~~~~~~~~"

 

아뿔싸. 부대 근처 다방에 있는 아가씨다. 부대 돌아가는 이치를 왜 모르겠는가.

 

대충 몇시에 휴가자 출발하고 절차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왜 모르겠는가......

 

아무리 그렇다 치더라도 이 아침에 여길 나와서 기다리고 있어?

 

결국 휴가 출발하는 날, 위병소를 나서자마자 나는 영이에게 붙잡혔다.

 

같이 휴가나가는 선임, 후임들과 함께 김포공항 근처인 송정에서 한잔 하기로 했는데 어쩌지.

 

"영이야. 근데 내가 같이 나온 휴가자들하고 송정가서 마시기로 했는데 어쩌지? 미안해..."

 

"송정~~? 괜찮아~갈 수 있어~ 나도 삼일 휴가야~~꺄르륵~"

 

아 씨발 진짜 꺄르륵이다 나도...

 

나를 뺀 나머지 휴가자들은 이게 왠 아가씨떡이냐 하며 싱글벙글이다.

 

결국 나는 영이를 데리고 송정까지 가서 술잔을 제꼈다.

 

그런데 가만보니 영이가 영~센스가 없는 아가씨가 아니었다.

 

사람 기분도 잘 맞춰주고 이것저것 상식도 꽤 있고 좀 배운 사람 같았다.

 

송정에서 몇시간을 보내고 휴가자는 이내 흩어졌다. 이제 나도 집에 가야 할 시간이었다.

 

시간이 꽤 지나서 저녁때가 가까워졌다. 이제 영이를 보내야겠다.

 

"오빠 집 신촌이야? 와~ 나도 신촌갈래 갈래!"

 

어휴. 넌 뭐냐. 도대체.

 

하지만 휴가 첫날에 딱히 정한 약속도 없었다. 집에 들어가서 하루 푹 쉴 생각이었다.

 

결국 난 영이를 신촌까지 데리고 오고야 말았다.

 

"오빠~~내가 이번엔 한잔 살께~한잔 마시자~~"

 

영이는 신촌에 도착하자 놀이공원에 온 아이마냥 신나했다. 피식 웃음이 계속 나왔다.

 

예전부터 가던 단골술집을 찾아갔다. 영이와 단 둘이 술을 마셨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난 어쩔 수 없는 군인이었다. 그때는. 군인은 무엇이 제일 고픈가.

 

맛있는 음식? 술? 그것 다 좋지만, 무엇보다 여자 아니겠는가. 그때 난 영이를 어떻게 해버려야겠다는 생각을 시작했다.

 

술집을 나설 때, 나는 비틀거리는 영이를 부축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발걸음은 여관으로 가고 있지 않았다. 아직 10시다. 김포로 가는 버스정류장으로 가고있었다.

 

술집에서 나는 영이의 눈물을 보았다.

 

영이는 충청도 사람이었다. 나이는 스물둘. 어릴때 무척 총명했고 공부도 무지 잘했단다.

 

하지만 아버지는 알콜중독자였다. 허구한 날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를 때렸고, 견디다 못한 그녀들은

 

영이가 고3때 함께 도망을 쳤다. 하지만 서울역 근처에서 영이가 벤치에 앉아 깜빡 졸은 사이에

 

어머니와 생이별을 했단다. 영이의 어머니가 일부러 그녀를 떠나갔는지, 아니면 정말 잃어버린 것인지 난 알길이 없으나

 

굳이 그 얘기를 꺼내지는 않았다. 그 후부터 영이는 이리저리 전전긍긍하며 끼니를 때우고 길거리에서 잠을 잤단다.

 

스무살도 안된 처녀가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서울역 근처 다방 업주 밑에 있다가, 또 도망쳤다가,

 

이리저리 풍파를 겪고 결국은 김포까지 흘러들어간 것이었다.

 

"오빠. 나도 대학생 되고 싶었어...정말이야..." 영이는 술자리에서 그 말을 되풀이하며 내내 눈물을 삼켰다.

 

나는 영이가 너무 측은히 여겨지고, 이상한 생각을 잠깐 한 것에 대해 너무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오빠는...매너도 좋아보이고...안그렇게 보였어...이런 여자 함부로 안 대하는 사람처럼 보였어....그래서..."

 

나도 눈물을 흘릴 뻔 했다. 미안하다 영이야.

 

술에 취한 영이와 함께 난 다시 김포로 가는 버스를 탔다.

 

휴가 첫날밤에 다시 부대쪽으로 갔던 것이다...누가 보면 똘아이라고 했을게다.

 

나는 영이의 숙소를 찾아 그녀를 방에 드러눕혔다. 그곳에는 같이 일하는 아가씨들이 화장을 지우고 있었다.

 

"어머~~뭐야~~~영이 너왜이래! 이사람은 누구고~~"

 

"영이랑 친한 오빱니다. 이유는 묻지 마시고 술좀 마셨으니 그냥 재우세요..."

 

영이는 곤히 잠든 것 같았고 난 그녀를 몇 초 바라보다가 이내 발걸음을 나섰다.

 

담배를 피우며 버스정류장으로 다시 걸어가면서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팔자 참 알 수 없는 것이라고. 누구든 저렇게 가슴아픈 사연이 있기 마련이라고...

 

도착한 시외버스터미널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그렇다. X 됐다.

 

시간은 12시가 다 되었고, 돈은 이것저것 쓰느라 만 몇천원 남아있었다. 씨 발... 여관비도 없다......

 

"여기가 무슨 여관인줄 아세요!! 여기 간판에 노래방이라고 써있는거 안보여!"

 

제길. 그러지 말고 사정좀 봐달라고. 착해보이는 노래방 주인 아저씨에게 나는 계속 사정했다.

 

결국 난 노래방 소파에서 웅크리며 하룻밤을 보냈고, 내 일병휴가는 13박 14일이 되어 버렸다......

 

휴가는 정신없이 흘러갔고 휴가 복귀 전날 어머님이 내게 물으셨다.

 

"야 내가 듣기로 일병휴가 15일인데 너 하루 일찍 가는거 아니니?"

 

어머님. 묻지 말아 주십시오......

 

복귀하기 전 나는 다방에 다시 들렀다. 영이는 무척이나 미안해했고 나는 말없이 웃어주었다.

 

"영이야. 다음 상병휴가 때 보자. 또 신촌가자. 그때 내가 맛있는거 사줄께."

 

"정말? 그래! 꼭 다시 한잔 마시자~ 꺄르륵~~~"

 

....................

 

시간이 흘러 상병휴가를 떠날 때 마송에서 점심때까지 기다린 후 대지다방을 찾아갔을 때 영이는 없었다.

 

"영이요? 에휴. 영이 한달 전쯤에 다른데로 갔어요...마담 언니가 보내서......어쩌나......

 

그때 그 오빠구나~ 영이가 가기 전에 그랬어요. 혹시 그 오빠 찾아오면 너무 고마웠다고 전해달라고..."

 

갑자기 울컥 눈물이 솟아오른 걸 왜일까. 정말 그랬다. 나도 모르게 울컥이었다......

 

혹시 몰라 전역을 한 후 한달 정도 후에 다시 대지다방을 찾아갔으나 역시 영이는 없었고

 

그 당시 같이 일하던 다른 아가씨들도 모두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몇 년 후에 생긴 싸이월드로 그녀를 찾아보았으나 역시 이름은 가명이었는지 찾을 수 없었다.

 

이제 기억나는 것은 그녀의 눈물과 웃음소리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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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문의 글 끝까지 읽어봐주신 것에 대해 깊은 감사 말씀 드립니다.

 

우연히 인사병 업무를 맡아 어쩌다 다방에 들어가서 어쩌다 만난 그녀가 필시 인연이 있어서 였을거라고 생각됩니다.

 

비록 남들에게 천대받는 직종의 아가씨였지만 그 누가 그녀에게 돌을 던질 수 있겠습니까......

 

이제는 서른을 넘긴 여성이 되어 있을 영이가 문득 그리워집니다.

 

휴가 첫날 다시 부대 지역으로 나를 가게 만들었던 영이,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니?.....정말 보고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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