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활 Step - 1

다크킬러14 작성일 08.09.11 19:3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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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다음 THIS IS TOTAL WAR 카페의 초절정 꽃미남 다크킬러입니다^^ 우헤헤헤헤헤 정말 정말 오랜만에 타이핑질을 해보네요!^^. 근 반년만 ;; 흠. 시간은 많았지만 그놈의 귀차니즘이.ㅋㅋㅋㅋ 어찌되었던 이제 개인적인, 공적인 용무가 대충 끝났으니 또 한 번 작업에 착수해 보고 싶어 이렇게 글을 씁니다.

자~ 그럼! 오랜만에 한번 달려봅시다^^

 

 

조선의 활

 

  그렇다. 오늘 다룰 주제는 바로 조선의 활이다. 필자가 그전 작품과 그 전전 시리즈에서도 그렇게나 강조해댔던 바로 그 조선의 활을 다룰 차례다. 조선의 활.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전세계 킹왕짱!!, 500m헤드샷!!, 분당 200발!!, 뭐 이런식의 개과장은 좀 그렇지만 딱히 루머만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민족은 예로부터 허구한 날 외세(外勢)의 침략에 몸살을 알아왔다. 막말로 심심하면 한 번씩 툭툭 건들던 애새끼들에게 둘러싸여있었다. 위에서 치고, 밑에서 치고 한마디로 정신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수많은 외침 속에서도 언제나 우리는 굳건히 이 땅을 지켜왔다. 그 이유에는 수만 가지가 있겠으나 무기의 우수성도 단단히 한몫을 차지한다. 그중에서도 활의 발달은 가히 동북아 국가 중에서 최고라 자부할 수 있다.

 

  활은 기원전 5천년경 처음으로 한반도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활은 대게 인류사에서 중석기시대로 분류하는 시기에 나타난 것으로 보이는데 이 중석기란 개념은 일부대륙에만 국한된 것으로 한반도 역사에 공식적으로 사용되지는 않으나 일반적으로 구석기의 끝 무렵을 말한다. 구석기에서 신석기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시기를 유럽에서는 중석기시대로 분류하는 것이다.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활 유물은 평양에서 출토된 뼈로 만든 활채로써 고구려시대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민족의 활사랑은 이미 주몽옵하야를 통해서도 입증되고 고구려 때, 즉 삼국시대로 내려와서도 유지된다. 고구려는 이중만곡궁을 사용했으며 오(吳)나라의 손권(孫權)옵하에게 각궁(角弓)을 바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때 이미 짐승 뼈를 사용한 합성궁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송(宋)나라 서긍(徐兢)이 송도에서 보고 들은 것을 그림을 곁들여서 기록한 고려도경(高麗圖經)에서는 고려의 활이 탄궁(彈弓)과 모양이 비슷하고, 활채의 길이가 5척이라고 하였으며 화살이 졸라게 멀리 날아간다고 하였다

.

  그리고 문제의 조선에서도 각궁이 주력무기로 자리 잡았는데 요놈의 양반아자씨들도 활은 즐겨쐈다. 무(武)를 천시하는 조선사회였으나 이놈의 궁시(弓矢)만큼은 중요시했다. 다 알다시피 공자옵하가 좀 씨부려놨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전(doble 前) 시리즈에서도 강조했던 그놈의 ‘양반도 활을 쐈다. 할아버지도 쐈다. 아줌마도 쐈다. 애기도 쐈다. 길 가던 양아치도 쐈다.’ 란 말이 실감나는 부분이다. 이와 관련된 일화는 마지막에 소개하겠다.

 

● 활

  활은 일반적으로 단순궁(單純弓), 복합궁(複合弓), 합성궁(合成弓), 으로 나뉘는데 복합궁은 강화궁(强化弓)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예전에 복합궁과 합성궁에 관해 분류상의 오류들이 넘쳐났는데 본문에서는 오해를 줄이기 위해 개념을 명확히 하고 넘어가겠다.

 

  단일 재료로 구성된 활 즉, 하나의 나무로 만들어진 활을 단순궁이라 하며, 그 하나의 나무로 만들어진 활채에 나무껍질이나 힘줄 등으로 감아 보강한 활을 복합궁 -이하 강화궁- , 여러 가지 재료, 예를 들면 동물의 뼈 등을 사용하여 활채의 탄력을 극대화 시킨 활을 합성궁이라 한다. 아직도 뭐가뭔지 감이 안잡히는 초짜 독자들을 위해 필자가 아주 간략히 요약해 주겠다.

 

● 단순궁 - 어디 뉴기니 등의 개나소나 들고다니는 걍 활.

 

● 복합궁 - 니뽄애들이 쓰는 류의 활.

 

● 합성궁 - 각궁 및 기타 좀 있어 보이는 활.

 

  이렇게 단순무식하게 설명했는데도 못 알아먹는 독자들은 조용히 뒤로 가기 버튼 누르거나 우측 상단의 ‘x'표를 지그시 눌러주기 바란다. 아니면 ’쉬바 니잘랏다‘ 하며 앉은 채로 모니터에 침 뱉으신 후에 본체 뜯어서 베란다 밖으로 던지시던지...

  뭐 어찌되어던 우리가 오늘 알아볼 조선의 활은 기본적으로 합성궁이다. 특히나 활채가 활시위를 묶는 고자 부분에서 한 번 더 휘는 이중 만곡궁의 일종이다. 그러니까 한번휜게 아니라 두 번 휘었다는 것이다. 이쯤에서 이해를 돕기 위해 이미지자료 하나 들어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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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기 도고자라고 보기 좋게 쓰여있는 부분이 고자이다. 도고자란 고자의 스트레스를 줄여주기 위한 가죽이다. 위의 이미지를 유심히 보기 바란다. 이제 앞으로 주구장창 저 이미지를 사용하여 설명할 것이다.

 

  이런 조선 각궁의 재료는 물소뿔과 산뽕나무, 대나무, 소 힘줄, 벚나무 껍질 등이며, 이들 재료를 민어 부레풀을 이용하여 접합해서 활을 재조한다. 이렇게 만든 활은 궁력이 강할 뿐만 아니라 길이가 매우 짧아서 기사(騎射)에 아주 용이했다. 세조 4년의 기록을 보자.

 

『병조에서 아뢰기를, “군사(軍士)로서 활 1백 20근(斤)을 당기는 자를 가려서 만강대(彎强隊)2653) 라 일컫고 행행(行幸)할 때에 시위(侍衛)하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라는 기록이 있다.

 

  현재 양궁에서 사용되는 활의 경우 약 11.3~20.4kg의 힘이 필요하다. 양궁 활의 도르레를 감안하더라도 조선 활의 궁력과 3~4배의 차이가 발생한다. 이걸 당기는 새끼들도 새끼들이지만 만든 새끼도 그렇고 그 힘을 견디는 활이란 애새끼도 죄다 핵(hack)들이다;;

 

  조선은 본 필자의 모든 시리즈에서 그토록 강조했듯이 엘프지향 국가이다. 그만큼 활의 종류도 다양했다.

 

○ 재질에 따른 분류.

 

명 칭

내 용

비 고

흑각궁(黑角弓)

물소뿔을 이용하여 만든 활.

물소뿔은 전량 수입.

후궁(帿弓)

짧은 물소뿔을 조각하여 만든 활.

녹각궁(鹿角弓)

사슴뿔로 만든 활.

향각궁(鄕角弓)

황소뿔로 만든 활.

교자궁(交子弓)

여러종류의 나무를 복합하여 만든 활.

복합궁

목궁(木弓)

단순 나무로만 만든 활.

죽궁(竹弓)

대나무를 이용하여 만든 활.

철궁(鐵弓)

철태궁(鐵胎弓)

철, 놋쇠로 만든 활.

 

 

 워매~~표만들기도 일이었다는 사실을 급하게 깨달아 버렸다.;; 중학생 시절 컴퓨터 학원 안가겠다고 뻐팅기던 필자를 수차례 죽빵을 날리시며 지도해주시어 워드 1,2급 자격증을 따게 해주신 부모님께 거듭 감사드린다. 안 그랬으면 지금 마우스가지고 질알하고 있었을거다.(물론 교양있으신 우리 부모님께서 실제로 죽빵을 날리시거나 하진 않으셨다.;오해말길 바란다.)

 

  어쨌든 위의 재료에 따른 분류와 상관없이 활채의 색깔에 따라서도 분류를 하였는데, 검은 옻을 칠한 것을 노궁(盧弓), 주사를 이용, 불게 칠한 것을 동궁(彤弓)이라고 하였다. 이것들은 궁중에서 사냥과 의례 시에만 사용되었다.

 

○ 용도에 따른 분류.

 

용 도

내 용

비 고

군 궁(軍弓)

각궁이라고도 함. 또, 동개에 넣어서 휴대한다 하여 동개활이라 부름. 전시(戰時) 제식(制式)활이기 때문에 궁력을 높이기 위해 산뽕나무로 활채를 만들고, 활채의 두께도 두터웠다. 군궁에 제작에는 뽕, 뿔, 심, 부레풀, 실, 칠 등 여섯가지 재료가 들어감.

전 투 용

평 궁(平弓)

연습용 활. 현재의 국궁에 해당. 촬채는 대나무, 산뽕나무는 활시위를 거는 고자 부분에만 사용. 평궁의 재료는 뽕, 뿔, 심, 부레풀, 참나무, 대나무, 벚나무껍질 등 일곱가지.

연 습 용

예 궁(禮弓)

군궁과 동일한 재료. 활의 길이는 6척. 궁중의 대사례나 지방이 향사례에 사용.

의 례 용

육량궁(六兩弓)

정량궁(正兩弓)

무거운 화살인 육량시(六兩矢)를 쏘는 활. 무과시험에 주로 이용. 재료는 군궁과 동일하나 길이가 5척 5촌(170.5cm)로 매우 긴 편.

시 험 용

 

다시한번 부모님께 감사드린다.;;;;

 

○ 제조원에 따른 분류.

 

  당시 활은 대부분 월과군기(月課軍器)라 하여, 각 지방이나 관청에서 매월 의무적으로 납부하는 활에 의하여 충당되었다. 또한 국광의 축일에 각 관청이 특별히 제작하여 바치는 고급 활은 방물궁(方物弓)이라 했고, 궁중의 상의원(尙衣院)에서 제작되는 고급 활은 상방궁(尙房弓)이라 했다. 이외에 국왕이 친히 사용하거나 혹은 신하들에게 하사할 목적으로 주문제작하는 활을 별조궁(別造弓)이라 했다.

 

● 활의 종류

 

흑 각 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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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활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자라면 한번쯤은 들어봤을 흑각궁이다. 흑각궁의 핵심재료는 흑각(黑角), 당각(唐角), 수우각(水牛角), 이라고도 부르며, 중국 남부지방과 인도차이나 반도 등지에서 수입되었다. 물소도 물소나름이나 꺼먼놈, 허연놈, 노란놈, 파랑놈...은 잘모르겠고 하여튼 꺼먼놈거는 당연히 흑각(黑角)을 가지고 있었고 허연놈은 당연히 백각(白角)을 가지고 있었다. 그 허연 물소 뿔로 만든 각궁을 백각궁(白角弓)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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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사진은 백각궁을 접어논 상태이다. 각궁 중에서도 물소뿔을 사용한 각궁들은 활시위를 장시간 걸어놓으면 활이 상했다. 그만큼 고탄력의 장력을 보유한 것이다.

 

  또 황각궁(黃角弓)이라 하여 노런 물소로 만든 활이 있었다. 각궁을 만들때는 물소뿔의 바깥쪽 한 면만을 쓸 수 있었고, 뿔 2개로 활 한자루를 만들기 때문에 흑각궁좀 만들라치면 동남아 물소들을 개쓸어버려야할 상황이었다. 물소에서 뿔만 뽑아다가 각궁을 만들면 내년에 다시 물소뿔이 쏘~옥 하고 나오는 것이 아닌지라 제조비용이 장난이 아니었다.

 

  중국, 일본을 통해 물소뿔을 수입했지만 항상 수요에 비해 공급이 모자랐고, 조선 후기에는 청나라 새끼들이 의도적으로 물소뿔의 교역을 제한했기에 주로 일본을 통해서 수입했다. 조선도 나름 생각이 있는지라 몇차례 물소들을 수입해서 남쪽 지방 따뜻한데서 키워보려 했지만 물소들은

 

  ‘아나 시바 이딴데서 못 살것소~’ 하며 다 디져버렸다.

 

  이렇게 조달자체가 어려운 물소뿔이었지만 그만큼 아니 가격이상의 성능을 보여주었다. 당시 얻을 수 있는 재료중 최고의 탄력을 자랑했던 것이다. 게다가 가공도 쉬웠고, 활채 한마디를 이음매 없이 댈 수 있을 정도로 길이가 길었다.

 

  물론 합성궁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단지 물소뿔 요거 하나만 믿고 그 성능이 나오는게 아니었다. 활채의 바깥쪽에 소의 힘줄을 곱게 빗어서 붙이는데, 이 힘줄은 활을 당겼을 때 강한 인장력으로 활채를 당겨서 활이 부러지는 것을 막고 활이 복원력을 극대화시켜준다. 그리고 활의 접착제도 중요하다.

 

  접착제로는 본래 소의 부산물에서 얻어지는 아교가 사용되었으나, 세종을 전후하여 민어의 부레로 만든 어교(魚膠)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어교는 접착력이 우수할 뿐만 아니라, 다 마른 후에도 실리콘처럼 상당한 유연성을 유지하기 때문에, 당시 여성들의 확대수술에도 쓰이곤 했다. 어쨌든 그래서 정신차려라 본 필자가 가끔 정신을 논다고 같이 놓으면 안된다. 그래서 자~~ 그래서 상당한 유연성을 유지하기에 각기 다른 연신율(延伸率)을 가진 여러 종류의 재료를 접합시켰을 때에도 재료간의 연신율 차이로 인한 힘의 손실이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허나, 너무 좋아버리면 상대방에서 핵(hack)이네 렉이나 말들이 많아진다. 양심상 밸런스는 맞춰줘야 욕을 덜먹는다. 그래서인지 흑각궁은 비가오거나 날씨가 습해지면 뉘미 탄력이 심하게 떨어져 버리는 단점이 있었다.

 

  접착제로 쓰이는 어교가 물을 먹고 녹아 풀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습도가 높은 여름철에는 온돌방에 넣어서 보관하는 점화(點化)를 해야만 활의 탄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같은 이치로 조선 수군(水軍)들은 판옥선을 예로들었을시에 갑판아래 따로 화약을 이용하여 불을지피고 활을 보관하였다.

 

  다음은 조선실록의 기록이다. 조정에서 을매나 흑각궁이를 입허 했는지 잘 보여준다.

 

『의정부(議政府)에 전지(傳旨)하기를,

“나라의 보배에 세 가지가 있으니, 말[馬]이고 소[牛]이고 흑각(黑角)4291) 이다. 말은 여럿을 태울 수 없고, 소는 도둑에게 줄 수 없고, 흑각(黑角)은 연습으로 쓸수가 없다. 지금부터 이후로는 비록 내가 흑각궁(黑角弓)을 사용하여 다시는 사후(射侯)하지 않겠으니, 그것을 병조(兵曹)로 하여금 중외(中外)의 장사(將士)에게 효유(曉諭)하여 이 규칙을 본받게 하라. 취재(取才)인 경우에는 이러한 범위에 들지 않는다. 또 헌부(憲府)로 하여금 흑각대 등 일체 활 이외의 물건들을 금하게 하고, 또 병조(兵曹)로 하여금 여럿을 태우는 수레[車子]를 힘써 사용하게 하라. 또 형조(刑曹)로 하여금 우마(牛馬)를 도둑질한 자는 초범(初犯)이라도 교형(絞刑)에 처하도록 하라.”

[세조 20권, 6년(1460 경진 / 명 천순(天順) 4년) 5월 13일(무자)]』

 

『병기 별조 도감(兵器別造都監)이 아뢰기를,

“ 서쪽 변방에 들여보낼 군수 물자를 보건대 전후 운반해 보낸 것 이외에 또 조총(鳥銃) 1백 자루, 유총(鍮銃) 50자루, 흑각궁(黑角弓) 1백 장(張)을 수송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듣건대 도원수가 화약(火藥)이 부족한 것을 염려하고 있다 하니, 마치 도감에 비축된 염초(焰硝) 2백 근을 체부(體府)에 이문(移文)하여 도원수에게 운송하도록 하소서.”

하니, 상이 따랐다.

[인조 7권, 2년(1624 갑자 / 명 천계(天啓) 4년) 11월 30일(경진)]』

 

 

흑 각 후 궁(黑角帿弓)

 

  뭐든지 상품을 팔때는 여러 가지 버전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부유층을 겨냥한 고가품이 있으면 중산층을 겨냥한 보급형 모델이나 다운그레이 버전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물론 흑각궁이 고급품, 흑각후궁이 다운그레이 버전! 이렇게 딱 이분법으로 나누기는 그렇지만 흑각후궁은 활의 안쪽에 조각난 물소뿔을 여러 개 대거나, 일부에만 뼈를 붙여 만든 활이다.

  후궁은 활채 중앙의 줌통에서 활채가 반대편으로 휘는 지점인 삼삼이까지만 물소뿔을 대고, 나머지는 뽕나무를 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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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런 개념이다. 재조단가가 졸라게 비싸고 물소뿔을 전량 수입에만 의존했기에 항상 흑각이 부족했고, 따라서 각궁을 만들고 남은 물소뿔이나, 원래부터 작은 조각으로 수입된 물소뿔을 이용해 후궁을 만들었다.

 

  중종 12년에 평안도 사는 전 내금위 옵하 맹형손씨가 처음으로 제작했는데 활의 안쪽에 잔각(殘角)을 붙이고 나머지 부분에는 나무를 붙여서 활을 만들었다. 이 활은 비가 와도 파손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는 어교(魚膠)가 아닌 아교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흑각후궁의 길이가 짧아서 연신력 차이가 크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보인다.

 

  정조 6년의 기록을 보면 청나라가 조각난 흑각은 교역을 허용하여 조선 후기에는 흑각후궁을 보다 널리 제작하여 사용하게 되었다. <민기요람>에 따르면 훈련도감의 기병들은 합성궁인 교자궁과 후궁 한 자루를 반드시 휴대했다.

 

 『군기(軍器)를 강화부(江華府)의 별고(別庫)에 저장하고 나서 유수(留守)에게 하유하기를,

“내고(內庫)에 저장했던 군물(軍物)과 기용(器用)을 특별히 본부(本府)에 비치하게 한 것은 이를 설시(設施)토록 한 법의(法意)를 우러러 알 수 있다.

… 중 략 …

 

그리하여 내고(內庫)에 있던 흑각 장궁(黑角長弓) 4백 50장(張), 흑각 후궁(黑角帿弓) 50장, 흑각 상방궁(黑角尙方弓) 3백 50장, 특별히 제조한 흑각궁(黑角弓) 5백 장, 방물 각궁(方物角弓) 1백 장, 죽궁(竹弓) 50장, 회목궁(檜木弓) 50장, 교자궁(交子弓) 4백 50장, 육량 강궁(六兩强弓) 1장, 합하여 궁자(弓子) 2천 1장,

 

… 하 략 …

 

[정조 12권, 5년(1781 신축 / 청 건륭(乾隆) 46년) 12월 19일(정해)]』

 

 

향 각 궁

 

  향각궁(鄕角弓)은 물소불 대신 황소뿔을 써서 만든 활로써 말그대로 재료가 국산품이다. 상각궁(常角弓), 상용궁(常用弓), 우각궁(牛角弓)이라고도 한다. 황해도산 황소의뿔은 길이가 20~40cm에 달했는데, 이 뿔 3개를 민더 부레풀로 이어서 활을 만들기 때문에 삼각궁(三角弓)이라 하기도 했다. 뭔 제길 이름이 졸라 많다. 세조같은 경우는 자신이 사용하는 향각궁이 킹왕짱이니 이걸 모방하여 활을 만들라 하였으나 궁중에서 니나노~하며 쓰던 때하고 실제 전장상황하고는 달랐다.

 

  막말로 어르신들 유흥거리로는 좋았으나 전장에서는 이빨이 안 박힌다는 것이었다. 흑각궁보다 위력이 부족했고, 3개의 뿔을 부레풀로 연결하여 만들기 때문에 습도가 높은 여름철이면 활이 자주 풀려버렸다. 여름에는 전쟁하지 말자는 것도 아니고 ‘잠깐 시바 활 풀렸다. 좀 다하자. 여름러쉬 없어. 시바 장난해? 치사한 새꺄?, 현피뜰래?’ 이럴수도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우리나라에서 소는 단지 먹는 식품이 아니었다. 농경국가인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소는 없어서는 안되는 중요한 자원이었다. 이 소새끼가 논, 밭을 갈아줘야 활이고 나발이고를 만들 돈이 들어온다는 것이다. 허나, 요놈들을 활을 만든답시고 다 도살해버리니 농사를 폐한다는 소리까지 나온다. 수입산이나 국산이나 뿔만 뽕~ 뽑아서 쓸 수는 없었다. 어쨌든 향각궁은 흑각궁에 비해 30%정도 저렴했다.

 

다음은 세조옵하의 향각궁 사랑 멘트다.

 

『제도 절제사에게 유시하기를,

“…1. 기계를 정돈한다는 것은, 궁전•갑주는 병기의 으뜸인데, 그 제조가 견실하지 않아서, 한갓 물자만 허비하고, 비록 훌륭한 재능이 있어도 도리어 노열한 솜씨가 되니, 경의 적개심을 장차 어찌 베풀겠는가? 이제부터는 빨리 궁전을 만드는데 유의하라. 내가 항상 쓰는 향각궁은 매우 좋아서, 당각궁이 필요 없다. 이제 궁전과 갑주를 보내니, 이를 모방하라. 내가 장차 사람을 보내어 제읍의 병기를 점고하겠다.…” 하였다.

 

[세조실록 권제9, 28장 뒤쪽, 세조 3년 10월 24일(갑인)]』

 

 

 

 녹 각 궁

 

  녹각궁은 당연히 물소뿔대신에 사슴뿔을 활의 안쪽에 대서 만든 활이다. 여름철 흑각궁의 기능저하를 대비하기 위하여 예종 1년에 양성지가

 

‘여름에만 일시정지 했다가 상대가 F10 + R 리쥼 게임 해블믄 좆대블 수도 있지 않것습니까? 근다고 소를 다 족쳐블수도 없는 것이고 따라서~~ 본인은 사슴뿔을 써보자고 주장하는 바입니다.’

 

  라고 상소를 올렸다가 말투가 왜 이따구냐며 예종이 책상을 뒤엎고 뛰쳐나가 신하들이 막 말리고 계속 ㅅㅂㅅㅂ 거리긴 했으나, 평소 흑각궁을 패용하는 병사들도 여름에는 온돌방에 흑각궁을 킵해두고 녹각궁을 사용했다. 세컨더리 웨펀되겠다.

 

  우천시에도 녹각궁을 사용할 수 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봐서 사슴뿔 긴 것 하나를 이음매 없이 사용했고, 활시위를 풀었을 때 활채가 완전히 만곡되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즉, 일반적인 이중만곡궁의 자태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교 자 궁

 

  교자궁은 복합궁으로써 각궁이 부족하거나 날씨가 습하여 -하여튼 간에 이놈의 날씨 ㅅㅂ- 각궁을 쓰기 어려운 경우에 대용으로 사용됬다.

 

『병조(兵曹)에서 아뢰기를,

“여름철 각궁(角弓)2528) 을 점화(點火)할 때, 시위(侍衛)하거나 입직(入直)하는 군사는 모두 녹각궁(鹿角弓)을 차게 하는데, 만약 이 활을 갖추지 못하면, 마디가 길고 두터운 편죽(片竹)이나 또는 저리갈나무[沮里加乙木]로 각궁과 똑 같은 체제로 만들어서 줄을 매어서 차고 목궁(木弓)은 사용하지 말라고 이미 벌써 법(法)을 세웠는데, 이제 각도(各道)에서 번상(番上)하는 시위패(侍衛牌)들이 소지한 교자궁(絞子弓)2529) 을 보니, 모두 연약하여 쓸모가 없는 것들입니다. 이제부터 편죽(片竹)과 저리갈나무[沮里加乙木]를 제외하고, 여름철에는 모두 녹각궁과 오늬[槊]가 투텁고 두 끝이 견실한 각궁에 줄을 매고 칠(漆)을 바르게 하되, 그 중에서 내금위(內禁衛)는 그 가세가 본래 충실하니, 어느 누가 녹각궁이 없겠습니까마는, 삼군 갑사(三軍甲士)·별시위(別侍衛)·충순위(忠順衛)·충의위(忠義衛) 등은 녹각궁을 3년까지 기한하여 자비(自備)토록 할 것이요, 각도의 시위패와 영진속(營鎭屬)2530) · 익속(翼屬)2531) 정군(正軍)은 6년까지 기한하고 자비토록 할 것이며, 그 자비가 불가능한 자는 위의 항목의 오늬[槊]가 두텁고 견실한 각궁을 차도록 허용하고, 선군(船軍) 안에 사관(射官)도 또한 정군의 예에 의하여 자비토록 하고, 그 자비가 불가능한 자는 우선 견고하고 질긴 목궁(木弓)을 사용하게 하되, 근(筋)을 베[布]로 싸고 칠(漆)을 바르며 현(絃)은 가죽을 쓰도록 하소서.”

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문종 9권, 1년(1451 신미 / 명 경태(景泰) 2년) 8월 5일(경오)]

 

  위의 기록에서 나오는 것과 같이 딱히 교자궁의 성능이 뛰어나거나 하지는 않았다. 아쉬운대로 일단 보급은 했으나 뭐 이건...ㅡ.ㅡ; 어찌되었던 기록상에서 알 수 있듯이 교자궁은 저리갈나무를 사용하여 만들며 저리갈나무 -이리갈나무는 없냐?- 와 대나무를 접착시키고 쇠심줄 등으로 묶어서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교자궁이라는 이름은 끈으 묶는다는 데서 유래한 것이며, 교자상(交子床)과 마찬가지로 여러 종류의 나무를 겹쳐서 만든다는 의미에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문헌 기록상의 교자궁의 종류는 교자장궁(交子長弓), 죽교자장궁(竹交子長弓), 칠교자궁(漆交子弓), 피교자궁(皮交子弓) 등이 있는데 각각 길이와 옻칠 여부 가죽의 사용 여부로 나뉘어 진다.

 

  특히 제주도 교자궁이 유명했는데 그이유는 제주도에서 우수한 품질의 저리갈나무가 자라고 있을 것이라고 민승기씨는 생각했단다;; 지금 참고하는 책이 그 유명한 ‘조선의 무기와 갑옷’ 이다.

 

죽 궁

 

  대나무로 만든 죽궁(竹弓)은 왜인새끼들이 자주 사용했단다. 알다시피 섬나라의 기후로 합성궁은 무리되겠으므니다. 따라서 복합궁이 발전하게 되는데 뭐 단순 죽궁이걸 복합궁이니 뭐니 하면 기도 안차겠지만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된 것은 사실이다.

 

  중종 11년 벙조판서 고형산씨가 죽궁을 만들어 바치면서 죽궁이 목궁보다 장력이 강하고 80보(약 100m)를 나가며 우천시에도 사용가능하다니 널리 쓰자고 건의했다. 물론.... 씹혔다. 널리쓸만한 그런 물건은 ㅡ.ㅡ 아니었다. 급할 때 잠깐. 막말로 필자가 양념좀 뿌려서 설명하자면... 부탄 죽궁 제와하고 전부 닥치고 있어라다.

 

  인터넷에 죽궁 이미지 검색해봐라. 가관이다. 막말로 개나 소나 다 만들고 노는 게 죽궁이다. 물론 맞으면 죽는다. 이게 중요하다. 실록에도 일반 백성들의 죽궁 휴대 기록이 있다. 당시에도 죽궁은 개나 소나......아니 솔직히 죽궁 이렇게 불러주니까 좀 있어 보이는 거지 이거 어디 에티오피아 원주민들이 들고다니는 그거다; 도전지구탐험대에서 많이 봤을 것이다. 군용이나 일부 공들여 만든 죽궁은 원주민틱 보다는 매우 고급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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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뉘집인지 장롱이 더 비싸보인다.

 

 

 

 

 목 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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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목궁, 만기요람에 기록된 회목궁 혹은 회목궁의 일종이다. 육군박물관 소장>

 

  재물보(才物譜)에 목궁은 호(弧)라고도 했는데, 이 호는 원래 모든 활이 통칭하는 말이었다. 위의 죽궁과 마찬가지로 가장 기초적인 활이었으며 개나소나 다 쓰던 활이었다. 조선 초기에는 목궁의 위력이 딸려 이를 사용하지 말자는 전교가 여러 차례 있었으나, 각궁을 준비하기 어려운 병사의 경우에는 임시 방편으로 목궁을 휴대하도록 허락하기도 했다. 허나,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일 뿐 당시 갑주로 무장한 병력에게 목궁으로 치명적인 타격을 주기는 불가능했다.

 

  성종 9년의 기록에도 목궁을 철전을 쏘면 약 50m정도 박에 나가지 않아 이를 전장에서 사용하기는 불가능하다고 했으며, 문종 1년의 기록에는 군용으로 제작하는 목궁은 특별히 탄성이 높은 나무로 만들고 그 바깥쪽에는 말 힘줄 등을 아교로 붙여 탄력을 높였다. 엄밀히 말하면 순수한 의미의 목궁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조선의 궁술>에는 목궁을 싼뽕나무와 앳기찌로 만든다고 햇으며, 앳기찌는 탄력이 좋아서 좋은 목궁은 전체를 앳기찌로 만들며, 그보다 못한 목궁은 활의 안쪽에만 앳기찌를 댄다고 했다. 앳기찌.. 토탈워 카페의 모 회원을 떠올리게 만드는 용어가 아닐 수 없다 ㅡ.ㅡ;

 

  여기서 잠깐 앳기찌라고 대충 써놓고 넘어가 버리면 또 대다수의 독자들은 ‘이새끼가 지금 장난질을 하나. 지도 모르니꺄 대충 때울라고?‘ 이렇게 오해할 수 있다만... 필자는 안다!!! 앳기찌가 뭔지 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내가 생각해도 난 잘났어.

  앳기찌 혹은 애끼찌, 잇기찌란......

 

 

 

 

 

 

 

 

 

 

 

 

 

 

 

 

궁간목(弓幹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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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히히히 멀더 어떻게 설명해달라고 제기랄 막뒤져봐도 이렇게 박에 안나와 있어! 우헤헤헿헤 대한민국 IT강국맞냐? 앙앙? 네이버, 엠파스, 야후, 구글 니덜은 이제 신뢰를 잃었어 우헤헤헤헤 세상이 미쳐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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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흠흠........ 필자가 잠시 흥분했다. 졸라게 찾아봐도 안나오길래 잠시 절망했더랬다;; 흠흠.궁간목이란, 활을 만드는데 쓰는 특수한 나무다. 산뽕나무와 산비자나무를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단다. 췟;;

  자 어쨌든 목궁은 이만하자; 귀찮아서가 아니라 더 쓸래야 쓸 것도 없다.

 

 

철 궁

 

  철궁은 말그대로 철궁이다. 뭔 설명이 더 필요하겠는가? 철로 만든 활이다. 각종 판타지에서 엘프님하들이 들고 댕기시는 활들이 대부분 아이언으로 쳐 만드신 철궁이다. - 아님 말고 - 적벽대전에서 자룡이 형이 오나라 서성이 탄 배를 한구탱이 봐블 때 사용한 활이 철궁이다. 프랑스 같은 경우도 석궁의 활채를 쇠로 만들어 관통력을 높였다는 기록이 있지만, 진짜 엘프무기였는지 인류사에서 철궁은 그다지 활용도가 낮았다.

 

  제조비용, 무게, 장력의 한계 등 제식무기로 양산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조선의 경우도 몇몇 지방 군영에 한두 자루가 말그대로 교보재용으로 소장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질적으로는 군용이라기 보다 민간에서 궁력을 시험하거나 과시를 위한 목적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반면, 철태궁은 부러지기 쉬운 활채의 중간 부분만을 금속으로 제조한 것으로써 이것도 거의 사용이 안되었다.

 

 

 

육 량 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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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량궁은 정량궁 혹은 대궁 즉, 큰활이라고 부른다. 전체 길이는 5자 5치(약 166cm)이며, 산뽕나무로 만든 활채는 두께가 매우 두껍다. 활을 만드는 재료는 기본적으로 각궁과 같다. 육량궁은 육량전이라는 졸라게 무거운 화살을 사용하기 때문에 육량궁이라고 하며, 육량이 곧 바른 중량이라고 하여 정량궁이라고도 한다. 이 활은 무과 초시와 복시에 사용했는데, 이 시험은 과녁을 맞히는 것이 아니라, 무거운 육량전을 50보(65m)이상 멀리 날려보내는 궁력 시험이었다. 현재 고려대학교에서 보관중인 육량궁은 전체 길이가 168cm이고, 화피(樺皮) - 벚나무 껍질 - 로 잘 단장되어 있다.

 

 

 

예 궁

 

  필자가 전 시리즈 등에서 강조했듯이 조선은 무(武)를 천시했으나, 궁시(弓矢)에 만큼은 예외였다. 공자옵하가 뭐 한마디 씨부려논거 때문이기는 하지만 양반의 도리 중에 하나가 궁시였다고 한다. 그래서 활은 왕이건 대소신료건 기타 일반계층이건 다 즐겨쐇다.

 

  <경국대전>에는 궁중에서 국왕과 신하들이 모여 활쏘기를 하는 대사례(大射禮)와, 지방서 관원과 덕행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활을 쏘는 향사례(鄕射禮)에 관한 규정이 있다. 성종 8년에 열린 대사례의 기록을 보면, 국왕과 신하가 성균관에 나가서 석전제를 올린 후, 활터에 가서 술을 마시고 두 명씩 짝을 지어 가각 네발의 화살을 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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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방서는 매년 3월 3일과 9월 9일에 향사례를 열었다. 향사례는 효자와 충신, 예를 아는 사람들을 권면하는 활쏘기 자리였다. 따라서 활쏘기를 권하고 사양하기를 반복하면서 - 어짜피 쏠거면서 왜 빼는지는...하여튼 이놈의 의식 - 진행되고 과녁을 맞히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고 하여 과녁에서 멀찌감치 화살을 날려버리곤 했단다. 물론 그당시 풍습이니 존중해줘야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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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의 속마음을 감추기는 어렵다. ㅠ.ㅠ

  대사례와 향사례에 사용되는 활의 종류는 <조선의 궁술>에 따르면 이름은 예궁(禮弓) 혹은 대궁(大弓)이라고 하고, 활의 길이가 6척(약 180cm)라고 했다. 허나 향사례에서 180cm나 되는 긴 활이 사용되었을 리는 없다. 그 당시 평균 신장을 높게 잡아 162cm라고 한다면 ㅡ.ㅡ; 지금으로 치면 190cm의 활을 위의 저질알을 할라고 쏘는 격이 된다. 또한 주례라는 규정이 있어서 가장 길어봤자 132cm이다. 아마 주척의로 기록된 과거의 기록을 옮기는 과정에서 오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육군박물관에는 길이가 247cm에 달하는 거대한 활이 예궁이라는 이름으로 소장되어 있기는 하다.

 

 

 

탄 궁

 

  재물보에는 탄궁(彈弓)은 곧 탄자(彈子)활이라고 했다. 서양의 Pellet bow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화살 대신 작은 돌이나 흙덩이, 납탄을 발사한다. 맞으면 조낸 아픈 거다. 작은 새나 동물을 사냥하기 위한 요즘개념으로 공기총이다. 공기총을 대형동물이나 전장에서 사용할 수는 없는 것이다. 탄궁도 마찬가지였다.

 

  양녕대군도 탄궁매니아여서 하란 공부는 안하고 이인간이 조낸 이거만 가지고 놀았더랬다. 방원이형이 화날 만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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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귓방망이 한 대 맞으시고 궁에서 쫓겨나셨다. 방원이형 성깔이 여기서도 나오는데 그 와중에도 탄궁만큼은 가지고 나가지 못하게 했다.

 

 

 

 

다음편에 계속......(보너스 에필로그)

 

  이번편에서는 조선의 활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다음 편에서 부터는 제조방식과 화살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이거 매번할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흠.;;;; 참 생각보다 손이 많이간다.;;

 

  그럼 이번편을 마치면서 조선시대의 궁술과 관련된 재밌는 일화를 하나 들려주겠다. 뭐 다들 짐작했겠지만, 임진왜란당시 조선 엘프들의 에피소드이다;;

 

  남원성 전투로 짐작되는 싸움에서 이 사건은 시작된다. 조선인들에겐 그려러니 하는 사건이었지만 일본애새끼들에겐

  ‘워~매 시바 적당히 해야지 시바 다 핵을 쓰냐? 개새들이 넘하네~~’

  라는 말이 절로 나올 만한 사건이었다.

 

  15세기 조선, 당시 사회에서 가장 꼴통부류를 꼽자면 드라마나 영화에서 기생오라비 같은 복장을 하고 삐쩍 꼴아서는 좆도아닌 똥폼을 잡으며 여주인공과 남주인공 사이를 갈라놓는 그 꼴배기시른 대가리에 든 건 뭣도 없고 철이라곤 지 피속의 Fe가 전부인 부잣집 애새끼들이라 할 수 있었다.

 

  즉, 한량(閑良)이란 계층을 말하는 것이다. 고려 말기와 조선 초기에 걸쳐서 한량이라고 부르던 사회계층은 직첩(職牒) ·직함(職銜)은 있으나 직사(職事)가 없는 무직사관(無職事官)과 직(職) ·역(役)이 없는 사족(士族)의 자제 등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한마디로 좆만한 병신새끼들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전부가 다 그렇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저 시바새기 한량아냐?’ 라고 할 때의 그 ‘한량’은 대부분 일반적인 의미의 한량은 아니었다. 참고로 필자는 성급한 일반화 매우 좋아한다.

 

  자 사족이 길었는데 바로 그 한량 -이라 쓰고 동네 양아치라고 읽는- 들이 국란에 빠진 조국을 위해 약간은 치기어린 의기를 불태우며 의병으로써 활약을 하셨드랬다. 그리고 그중 일부인 -진짜 따~~~~악 일부인 3명- 이 남원에 ‘짠’ 하고 서있었다.

  ㅡ.ㅡ 일본군 앞. 성문에.

 

  원래 이런 새끼들이 무서운 게 뭐냐면 진짜 지가 쌘 줄 안다는 거다. 이게 대부분은 좆같은 상황으로 이어지지만 어쨌든 지금은 지켜보도록 하자.

 

  남원성으로 진격하던 일본군 선봉장에게 첨병으로 나가있던 병사가 돌아와서 보고를 한다.

 

  ‘남원성 동문 앞에 왠 병신 3마리가 나와 있습니다.’

 

  선봉장은 잠시 고민했다. -뭐하는 개새끼들이지? 항복인가?- (근데 웃긴게 그 수많은 패전 중에서도 스스로 찾아가서 일본군에게 항복한 조선군은 또 딱히 없다;;; 참.. 졸라게 유별난 민족이다. 한민족은;;)

 

  고민은 길게 하고 말 것도 없었다. 육지에 무슨 순신이형이 계신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그옵하는 앨리(ally) 풀려서 졸라 털리지 않았는가?

 

  '아 뭐 귀찮네 그냥 씹고 성 공격해. 뭐 있겄어?‘

 

  그렇다. 이게 올바른 판단이다. 강화슈트나 입은 병력도 아닌 말 그대로 그냥 동네 양아치 3마리가 나와 계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잠~~시 짚고 넘어가야할 부분은 그 동네 양아치들은 항상 필수 아이템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바로 꽃난방 및 루이비통, 베르사체, 피에르 까르뎅, 샤넬을 비롯한 시바 과시용 고가품이라는 것!

 

  그리고 조선시대의 그런 과시용품중 하나는 바로 활!! 그냥 활도 아닌 조낸 비싼 활!! (내가 그때 그 자리에 없어서 그게 흑각궁인지 향강국인지 뭔지 몰라서 ㅡ.ㅡ 장담은 못하고 그냥 조낸 비싼 활이라 적는다.)

 

  어쨌든 그래서 그 딸랑 활 하나로 무장한 조선시대 남원바닥서 한가락 하시는 일진옵하 3명과 일본 정규군 조총부대 300명의 교전(?)이 시작된다. 교전이라 부르기에도 뭐하다. 그이유는 뒤에 나오니까 잘봐라.

 

  최초 교전거리는 300m였다. 우리 3명의 양아치 옵하야들이 평소 동네 기방과 길거리 헌팅용으로 사용하던 활질 실력으로 졸라게 갈겨댔다. 물론 일본군도 콧방귀를 끼며 응사!!

 

 

 

 

 

 

 

  150명이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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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뭔 개소리야!!! 하실 독자가 계시겠지만 그랬다는디 어찌 거시요!!? ;; 한나절이 끝나기도 전에 일본군은 150구의 전사자 시체를 수습해야만 했다.; 이래서 임진왜란 기간 내내 치트키 얘기가 나오고, 막 젠장 핵을 썻네, 뭐라네 등등 말들이 많은 것이다;;

  자 모두 왼쪽가슴에 오른손을 얹고 따라 읽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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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린 엘프다.’

 

 

 

  이젠 정말 농담 말이 아니게됬다. ㅠ.ㅠ 우린 정말 엘프의 후손이 아닌가 심하게 고민해봐야 된다. 물론 독자들이 알아두어야 할 것이 위의 일화는 야사(野史)의 내용으로써 그 진위여부가 실증적으로 밝혀진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또한, 필자가 재미를 위해 3명의 위인을 양아치네 뭐내 라고 폄하하였지만...풍전등화와 같은 조국의 운명 앞에 단지 활 한 자루를 들어 적의 대군을 막아 섰다는 것은 그들의 과거가 어떠하든 간에 진정한 남아(男兒)라 할 수 있다.

 

  그들이 평소 기방에서 기생을 옆에 끼고 그렇게나 으스대던 바로 그 남아(男兒)의 기개(氣槪)가 그것이다. 더욱이 그들이 진정한 한량이었을 수도 있다. 말만 앞선 떠중이들은 절대로 아니었을 테니 말이다. 남원성 전투의 결과를 보았을 때 그들의 생존여부는 매우 부정적이다. 쓰러져가는 조국의 운명에도 불구하고 초개와 같이 목숨을 바쳐 조국을 지키려했던 그들의 의기에 진심으로 존경의 뜻을 표하는 바이다.

 

사진 및 자료인용 출처 : 조선의 무기와 갑옷. 가람기획. 민승기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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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왕조실록

                                   http://blog.naver.com/hind1204?Redirect=Log&logNo=14479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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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 ㅡㅡ짱공유 편집기능 개판이네요. 복사해오는데만 30분걸렸습니다. 아......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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