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마르크는 그당시 최강에 전함이었다.

마음속너 작성일 08.09.17 14:5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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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마르크의 전력과 특징에 대해 말해보면

 

설계는 1934년에 시작했으며, 배수량은 영국과 합의된 35,000톤을 넘어 42,600톤까지 증가시켰다. 1936년 7월 1일에 독일 함부르크의 블롬 + 포스 회사에서 설계와 건조를 시작해 1939년 2월 14일에 진수, 1940년 8월에 취역했다.

배수량만을 보고 따진다면 당시 세계 최대의 전함이었다. (야마토와 아이오와등이랑 비교는 시대가 틀린 전함이기에 비교

하는 것은 참 어리석은 짓이다. 참고로 비스마르크 취역당시 일본이나 미국이 보유한 전함으로 비교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단 비스마르크는 대공 사격 관제나 장갑판의 배치가 문제 였다. 하지만 비스마르크가 전쟁을 한 활동구역은 발트해이다.

발트해는 잦은 안개와 구름이 항상 많이 끼는 자연적인 상황때문에 근접전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기에 비스마르크는

당연히 설계단계에서 원거리 포격전보다는 근접전에 신경을 쓰고 만들었던 전함이다. 그결과 원거리 보다는 근거리 전으로 만든 전함이다.

 

전투와 격전, 그리고 침몰

라인 연습 작전

이 부분의 본문은 라인 연습 작전입니다.

영국의 보급선을 끊기 위한 연습 작전(Unternehmen Rheinbung)은 처음에는 전함 비스마르크 호, 중순양함 프린츠 오이겐, 순양 전함 사른호르스트(Scharnhorst)와 그나이제나우(Gneisenau)와 함께 참가할 예정이었다. 즉, 전함 1척, 중순양함 1척, 순양전함 2척으로 구성된 강력한 함대였던 것이다.

그러나, 작전 참가 전에 샤른호르스트는 기관 고장으로 인해 항구에 머무를수 밖에 없었으며 그나이제나우 호는 영국 해군 뇌격기의 공격으로 추진축이 손상되어 수리를 위해 항구에 머무를수 밖에 없었다(이 수리에는 6개월을 필요로 했다.). 그 때문에, 당초 전함 1척와 중순양함 1척, 순양전함 2척으로 구성되었던 함대는 전함 1척과 중순양함 1척으로 줄어들수 밖에 없었다.

비스마르크 전대는 1941년 5월 18일에 출항했다. 그러나 이 전대의 출항은 영국 해군이 탐지하고 있었다. 스카케라크 해협에서 포착되었고, 또한 스웨덴 해군 항공 순양함 고트란트가 발견한다. 고트란트는 수시간동안 비스마르크를 추적했지만, 스카케라크 해협 통과후 잃어버렸고 이를 영국군에게 통보했다.

비스마르크 전대는 결국, 영국 공군의 정찰기에게 발각되어 버린다. 21일에는 영국 해군 순양함 HMS 노포크(Norfolk)와 HMS 서포크(Suffolk)가 발견한다. 영국 함대는 순양전함 HMS 후드(Hood), 전함 HMS 프란스 오브 웨일스(Prince of Wales), 항공 모함 HMS 빅토리어스를 주력으로 하고 있었다.

후드 격침

영국 순양전함 HMS 후드 (1930년대초) 영국 순양전함 HMS 후드 (1930년대초)

1941년 5월 24일 이른 아침에 프린츠 오이겐과 함께 덴마크 해협을 항해하고 있던 비스마르크에 전함 후드와 프린스 오브 웨일스로 이루어진 영국 해군이 남쪽에서 접근했다.

  • 05:52, 후드가 거리 약 23,000m의 위치에서 프린츠 오이겐을 파악해 사격을 개시한다.
  • 05:55, 군함끼리의 전투에 내켜하지 않는 함대 사령관 군터 루첸스 중장이 반격 명령을 내리지 않자, 인내심의 한계를 느낀 비스마르크 함장 에른스트 린데만 대령은 포격 명령을 내린다. 거리 약 20,300m에서 사격을 개시 했다.
  • 06:01, 비스마르크가 거리 약 17,000m에서 쏜 제5번째 사격이 후드에 명중했다. 명중한 사격은 후드의 탄약고를 정통으로 맞추어 후드를 두동강 내 버렸다. 승무원 1415명중, 생존자는 3명이었다.

그 후, 프린스 오브 웨일스는 사령탑이 파괴되어 함장 외 1명을 제외한 사령탑 장교와 부사관 전원이 사상했으며, 홀수선 아래에 비스마르크의 주포 세발이 명중되어서 침수되었다. 프린스 오브 웨일스는 전투 해역을 벗어났다. 비스마르크도 프린스 오브 웨일스의 주포 세발을 명중당해 2,000톤의 해수가 유입되고 있었다.

비스마르크 추격전

HMS 후드 침몰의 소식에 영국 해군은 거의 모든 함대를 비스마르크 침몰에 집중하기로 한다. 본국 방어 함대는 물론, 지중해 함대 소속인 순양 전함 HMS 리나운과 항공모함 HMS 아크 로열(Ark Royal)까지 불러 온다. 한편 비스마르크는 프린츠 오이겐과 헤어져 다른 루트로 프랑스로 향하게 된다.

  • 5월 24일 22:00, 영국 해군 항공 모함 HMS 빅토리어스로부터 공격기 소드 피쉬 뇌격기 9기가 발진한다. 계속적으로 비스마르크를 탐지하고 있던 순양함 HMS 노포크가 위치를 통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2시간 후에 소드 피쉬 뇌격기 9기는 비스마르크를 탐지해 공격을 개시한다. 그러나 이 공격으로 어뢰 1기를 명중시키는 것에 그쳤다.
  • 5월 25일 03:00, 비스마르크가 영국 해군 중순양함 HMS 서포크의 수색 레이더에서 이탈해 영국 해군의 시야에서 벗어나게 된다. 하지만, 루첸스 제독이 전투 상세보고를 위해 독일 해군 본부에 수신했기 때문에, 다시 위치가 포착되었다.
  • 5월 26일 10:30, 비스마르크를 수색중이던 영국 해군 비행정이 프랑스 서쪽 해상에서 비스마르크를 발견했다. 이 때 영국 함대 주력부대는 비스마르크에 북방 240km지점에 있었기 때문에 따라잡는것을 불가능한 것이라고 여겨졌다. 결국, 영국 해군은 항공 모함에 의한 격침을 생각하게 된다.
    • 비어 중위(기체 번호:2P)가 발사한 어뢰가 비스마르크 좌현 중앙부에 명중한다. 소량의 침수가 발생한다.
    • 포셋 대위(기체 번호:2B)와 파티슨 중위(기체 번호:2A) 중 하나가 발사 했다고 생각하는 어뢰가 비스마르크 우현 후부에 명중한다. 조타 장치가 손상되어 키가 12번으로 고정되어 버렸다. 함저에 생긴 파손부위로 부터 대량의 침수가 시작되었으며 추진기에 의한 조타를 실시하는 관계로 속도를 7노트 이상 낼수 없게 되었다. 결국 항해에 치명적인 지장을 일으켰다.
    • 덧붙여서 비스마르크의 대공포화에 의해서 3기가 공격을 단념했다.
  • 21:30, 바람과 풍향, 파도로 인해 흘러간 비스마르크는 경순양함 HMS 세필드로 부터 14,000m에 위치 했기 때문에 포격을 개시한다. 손상을 받은 경순양함 세필드는 추적 불능상태에 빠진다.

구축함에 의한 추적

  • 22:00, 영국 해군의 지시에 따라 바이안 대령이 인솔하는 제4구축 함대(구축함 코사크, 마오리, 시크, 즈루, 비오룬)가 경순양함 세필드 좌현에 나타난다.
  • 22:38, 구축함 비오룬이 비스마르크를 발견하여 제4구축 함대가 추적을 시작한다.
  • 22:42, 비스마르크가 약 13,000m의 위치인 구축함 비오룬에 대해 포격을 개시한다.
  • 23:10경, 비스마르크의 포탄이 구축함 비오룬에 명중되어서, 비오룬은 연막을 쳐서 대피한다. 그 후 제4구축 함대의 다른 3개 함도 비스마르크로부터 포격을 받아서 대피하게 된다.
  • 5월 27일 00:30경, 조직적인 공격이 무리라고 판단된 바이안 대령은 제4구축 함대에 각함 단위로 비스마르크에게 어뢰 공격을 명령한다.
  • 01:21, 구축함 즈루가 약 4,500m의 거리에서 비스마르크에게 어뢰 공격 시도를 했으나 빗나간다.
  • 01:37, 구축함 마오리가 조명탄을 발사한 후 비스마르크에게 어뢰 공격을 시도하지만 빗나간다. 그러나 비스마르크는 배를 멈춘다.
  • 02:30, 비스마르크가 5노트 정도의 속도로 이동을 재개한다. 제4구축 함대는 영국 해군의 지시에 따라 조명탄에 의한 추격을 개시한다. 그러나 비스마르크의 정확한 사격에 의해 03:00경에 조명탄 발사를 중지한다.
  • 03:35, 구축함 코사크가 비스마르크에게 약 4,000m 거리에서 어뢰를 발사했으나 빗나간다.
  • 04:00경, 제4구축 함대는 비스마르크를 놓쳐 버린다.
  • 05:50, 구축함 마오리가 다시 비스마르크를 발견하게 된다. 또한, 시크도 비스마르크를 발견한다.
  • 06:00, 구축함 비오룬이 연료가 부족하게 되어 추적을 이탈한다.
  • 06:40, 구축함 마오리가 비스마르크에게 약 4,200m 거리에서 어뢰 공격을 실시하나 빗나간다.

침몰

독일 연방군 박물관의 모형 독일 연방군 박물관의 모형

5월 27일, 영국 해군 전함 HMS 킹 조지 V세와 HMS 로드니(rodney), 중순양함 HMS 노포크(norfolk) 및 HMS 덜시치어(dorsetshire)와의 88분간의 격전으로 인해 비스마르크는 약 400발의 포탄과 3발의 어뢰 공격을 받았다. 잔여 연료도 공격을 회피할 만큼은 없었기 때문에 비스마르크는 자침을 선택한다. 비스마르크는 오전 10시 40분에 침몰한다. 드셋트샤는 승무원 구조에 임했지만, U-보트가 접근하자 구조를 단념했다. 결국 승무원 2,206명중 구조된 승무원은 115명이었다.

다행히, 비스마르크에 있어서 다행은 영국 함대가 근거리 포격전으로 시종 일관 했기 때문에 원거리 포격전은 발생하지 않았다. 또한, 기대 이상으로 장갑이 성능을 발휘를 해 결국 '자침'을 선택했다.

발견

비스마르크의 선체는 1989년 6월 8일에 발견되었다. 발견자는 타이타닉 호의 탐사를 수행한 고고학자 로버트 발라드이다. 비스마르크는 프랑스 해안 서쪽 650킬로미터와 4,700미터의 해저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함체 분석 결과 포격과 수뢰의 타격에 의한 광범위한 파괴와 자침을 위해 열린 구멍도 확인되었다. 발라드는 타이타닉의 경우에 발표 후 발생된 유품 등의 도난을 우려해 정확한 장소는 발표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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