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제대특명이 나는 날이다.
내가 다음에 달 만기제대를 하느냐 못하느냐를 알 수 있는 날 !
즉, 한 달 먼저냐 ?(35개월)
아니면 보름달처럼 꽉 찬 3년이냐 ?
직업군인이 아닌, 병역의무를 완수하기 위해 입대한 병사들은 제대 날자를 눈 빠지게 기다린다.
자원입대든, 징병이든 전역을 앞둔 고참들은
하루하루를 한 달, 아니 일 년만큼 지루하고도 초조하게 보낸다.
굴러가는 가랑잎도 주의하면서 무사제대만을 구세주 맞이하듯 손꼽아 기다린다.
***
부산에서 모인 우리 입대지원자들 60여명은 진해행 기차를 탓다.
흥분과 초조 속에 일행들은 기차간에서 서로 인사를 나누거나
말없이 창 밖을 응시하며 흔들리는 기차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우연히 옆에 있는 청년과 안면을 터게 됐다.
모습이 깔끔하고 언행이 남달라 보였다.
알고 보니 서로가 비슷한 처지였다.
부산 출신이고 재학중 입대였다.
어느 듯 진해에 도착하여 부대 안으로 들어서면서 모두가 바짝 긴장했다.
그 때는 부모, 친지들과 작별인사를 나누는 낭만적인 시간을 갖지 않았다.
일단 기지 정문을 통과하면서 세상은 다르게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우리 일행은 키 큰 순으로 4열 종대로 정열했고,
나와, 또 기차간에서 인사를 나눈, 그는 둘 다 줄의 맨 앞에 섰다.
조교는 맨 앞의 4명을 앞으로 불러내, 가위.바위.보를 시켰다.
내 친구는 일등, 1중대, 난 3등을 했고 3중대로 배치되었다.
이어서 군번을 받았다..... 9343721...
일생을 두고 잊지 않는 숫자 !
아니 잊을 수 없는 숫자 !
얼마나 많은 사연들이 이 숫자 속에 가득 차있는가 ?
입대후 며칠이 지나자 우리들은 굶주린 짐승이었다.
옆 전우의 밥그릇을 쳐다보며 내 밥보다 많지는 않은지 살폈고,
남이 보지 않는다면 식사 후 쓰레기통 속의 밥알 한 톨도 건져먹을 기세였다.
조교들의 언행은 세상 태어나서 처음으로 접하는 기상천외 !
-가족, 친구, 애인(난 애인이 없었지만...ㅋ) ...
-그리고 예의, 존경, 배려...
이런 단어들은 쓰잘데기 없는, 그래서 홀랑 묶어서 쓰레기통에 던져 버려야하는 것들 !
부모님의 걱정과 눈물, 나의 땀과 피 ...
***
제대자 명단을 받아보는 순간 나는 무릎의 힘이 땅으로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훈련소에 입소하면서 가위.바위.보에서 1등을 한 내 친구는 군번이 빨라서
나보다 한 달 먼저 군을 벗어날 수 있었고,
3등을 한 나는 36개월을 하루도 빠짐없이 채워야 했다.
(이 친구는 제대 후에 캠프스에서 가끔 만났고 그 뒤 직장도 가까워서 자주 식사도 함께하곤 했다. 그런데 20여년 전 카나다로 이민을 떠나서 지금은 볼 수 없는 전우가 되었다.)
***
신이 인간 일생의 시나리오를 빈틈없이 짠다해도 우리의 여정에는 “우연”이 섞여있다고 난 믿는다.
신에 대한 반역이래도 좋다.
우리는 우연이란 길을 걸을 때가 있다.
그 길이 “필연”이 아니드라도 성실히 걸어가야겠지만.
작성자 : 레오나르도 다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