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이지 않는 F22 와 UAV의 공방....

굴러가는돌 작성일 09.10.07 23:3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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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전에서 무인항공기의 위력 입증…미 공군의 주력 F22 스텔스機 퇴장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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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F22  / 우: 미국 네바다주 기지에서무인항공기(UAV)를 원격 조종하는 모습

 

육군이나 해군, 해병대는 저리 가라. 미 공군은 자신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군이라고 60년 이상 뻐겨왔다. 공군기 조종사들은 하늘을 지배했다. 한껏 높이 솟구쳤다가 급강하하고, 고공 폭격과 기총 소사로 지상의 전쟁 판도를 바꿔놓았다.

영화에선 하얀 스카프를 휘날리며 뭇 여성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그러나 밖으론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 공군은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현재 미 공군은 임무와 문화, 정체성이라는 문제를 끌어안고 치열한 전투를 벌인다.

그 싸움에서 패색이 짙어가는 쪽은 전투기 조종사들이다. 다음은 지난 여름 벌어졌던 정치 투쟁의 뒷이야기다. 미 공군의 최첨단 무기 시스템이자 세계에서 가장 정교한 스텔스 전투기 F22 랩터 때문에 벌어진 싸움이었다.

F22 문제는 겉보기엔 단순한 예산 싸움이었다. 당시 미 공군이 보유한 F22는 183대며 4대는 추가 제작 중이었다. 공군은 내년에 20대가 더 필요하다며 40억 달러의 예산을 요구했다. 그들은 앞으로 10년 동안 200대를 추가해 387대로 늘리려 했다. 미 공군 지휘부는 수년 동안 F22 확보 계획을 열정적으로 추진했다.

연방 의회도 기꺼이 그들의 요구를 들어 주었다. 어마어마한 돈이 걸린 문제였기 때문이다(공군은 용의주도하게도 F22 제조사와 하청업체가 46개 주에 골고루 나눠지도록 조치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경제가 위기에 처했고, 국가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났을 뿐만 아니라, 현대전에 어떤 무기가 필요하느냐는 관점도 바뀌어 가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먼저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이 공군의 요구에 난색을 표했다. 오바마 대통령도 F22기가 한 대라도 추가되는 비용이 포함되면 국방 예산 전체에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말했다. 결국 F22 추가 확보 계획이 백지화됐고 얘기는 거기서 끝났다. 그러나 내부 투쟁은 그보다 훨씬 깊숙이 진행됐다.

그 결과 역시 겉보기보다 훨씬 심오하다. 왜 그럴까? 문제의 발단부터 살펴 보자. 이야기는 198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냉전이 최고조에 이른 그 때 F22가 탄생했다. F22의 임무는 공대공 전투다. 대규모 전쟁에서 폭격기가 목표에 무사히 도달하도록 보호하고 지상군이 적의 공습을 걱정하지 않고 싸우도록 제공권을 장악하겠다는 무기다.

스텔스 기술(레이더에 잘 잡히지 않는다)과 첨단 전자 장치(더 멀리 떨어진 목표의 타격이 가능하다)를 사용하는 F22는 무엇보다 공중에서 최신 소련 전투기를 쉽게 격추하도록 설계됐다. 그러나 실전 배치가 가능한 F22기는 2005년 말이 돼서야 선보였다. 거의 25년 동안 생산 지연과 기술적 문제로 막대한 초과 비용이 발생했다.

F22가 막상 활주로에 등장했을 때 냉전은 이미 끝난 지 오래였다. 당시 F22에 맞설 공군력을 가진 나라는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F15나 F18 전투기의 최신 모델에도 필적할 만한 공군 보유 국가도 없었다. 미국 연방 의회의 여러 의원들과 국방부의 몇몇 민간인 분석가들은 F22 계획을 백지화해서 손실을 줄이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F22 옹호론자들의 힘이 더 셌다. 그들은 공군이라면 빠르고 민첩한 전투기로 벌이는 공중전이 전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최신예 전투기 배치의 폐지는 공군 자체를 없애는 처사라며 강력 투쟁에 나섰다. 하지만 그들의 싸움은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는 일이었다. 1947년에서 82년까지 미 공군 참모총장을 지낸 대장 10명 모두는 폭격기 조종사 출신이었다.

82년에서 지난해까지 그 자리를 차지한 대장 9명은 모두 전투기 조종사 출신이었다. 2008년이 되자 전쟁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게이츠 국방장관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전임자들과는 출신이 다른 공군 참모총장을 임명하도록 건의했다. 노턴 슈워츠 대장이었다. 슈워츠는 폭격기도, 전투기도 아닌 C130 조종사로 대장까지 올랐다.

기지와 보급창에서 병력과 무기, 보급품을 전선으로 실어 나르는 거대한 수송기였다. ‘자원 공수(Airlift)’로 불리는 그 임무는 전쟁에서 필수적이다. 그 수송기 없이는 육군이든 해병대든 특전대든 간에 신속한 작전 투입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전투기처럼 매력적이지 않다.

공군 지휘부는 얼마 전까지 만해도 빠른 전투기나 적진 후방 깊숙이 자리한 목표를 타격하는 임무를 중시한 반면 대형 수송기의 가치를 평가절하했다. 베트남전으로 전투기 조종사들이 부상하는 길이 열렸듯이(그 전에는 핵무기 폭격기 조종사들이 최고의 지위를 누렸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공군의 새로운 문화를 요구한다.

애시턴 카터 국방부 조달 담당 차관은 “전쟁은 혁신의 위대한 교사이며, 군사 문제를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게 만드는 훌륭한 자극제”라고 말했다. “육·해·공을 불문하고 모든 군의 전통적인 문화는 지금의 전쟁에 적합하지 않다… 각군 모두가 적응하려고 치열하게 경쟁한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은 F22 랩터가 처음 설계될 때 생각했던 전쟁과 아주 다르다. 그 두 전역(戰域) 어디에서도 최신예 전투기가 동원된 적이 없다. 적은 외국 정부군이 아니라 저항세력이다. 폭격할 ‘전략’ 목표도 거의 없고 상대할 적의 공군도 없다. 따라서 공군의 주된 역할은 지상의 미군과 동맹군의 지원에 국한된다.

그에 따른 임무는 두 가지다. 첫째는 보급품 수송(슈워츠 대장의 주특기였다)이고, 둘째는 지상군의 저항세력 색출과 제거를 돕는 일이다. 그 둘째 임무는 무인항공기(UAV)에 돌아가는 경우가 더욱 많아졌다. 프레데터, 리퍼, 글로벌 호크, 워리어 알파 등의 ‘유령’ 비행기를 말한다.

지구 반바퀴 떨어진 곳에 있는 ‘조이스틱 조종사(게임기 조작과 비슷하다는 뜻)’가 이 유령 비행기를 원격으로 조종한다. 그 조종사는 UAV의 하부에 장착된 카메라가 찍는 실시간 비디오를 보며 목표를 선정한다. 이런 UAV 중 다수에는 초정밀 폭탄도 장착된다. 원격 조종사는 비디오 화면에서 목표를 확인한 뒤 버튼을 눌러 폭탄을 투하한다.

미군의 UAV는 1990년대 유고슬라비아에서 처음 사용됐고 2001년 아프가니스탄 침공 때도 활용됐다. 효과가 너무도 좋아 이라크에서 저항세력이 전쟁의 상대가 되자 해병대와 특전대를 포함해 모든 미군은 저격수들의 은신처, 노변에 설치된 폭탄 등을 찾아 제거하는 데 도움을 얻으려고 UAV를 원했다.

게이츠는 부시 대통령의 2기 중반인 2006년 말 국방부 장관에 취임하자마자 UAV의 수요가 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게이츠의 최우선 임무는 이라크의 혼란 수습이었다. UAV는 그 목표에 매우 유용한 도구였다. 게이츠는 UAV를 빠른 시간 안에 더 많이 생산하고 지원 기반 시설을 만들도록 조처했다.

그러나 미 공군 지휘부는 UAV의 이라크 작전 투입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특히 T 마이클 모슬리 참모총장이 그랬다. 게이츠는 전선의 장병들이 전쟁을 치르는 데도 국방부는 손을 놓았다고 불평하곤 했다. “모슬리 총장에게 UAV 활용 계획을 납득시키는 일은 마치 이를 뽑듯이 힘들었다”고 국방부의 한 고위 관리가 돌이켰다.

“게이츠 장관의 좌절이 매우 컸다.” 당시 국방부에서 근무했던 한 공군 조종사도 이렇게 말했다. “무인항공기 운용은 공군 내부에서 저항이 컸다. ‘섹시’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조종사 없는 비행기라고? 우린 용납 못해!’라는 태도를 보였다.” (반 세기 전 초대 전략공군 사령관이었던 커티스 르메이 대장은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 개발에 반대했다.

ICBM이 장거리 폭격기를 불필요하게 만들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는 미 공군이 “1960년대의 소리 없는 격납고 지킴이”가 되기를 원치 않았다.) 게이츠는 반대자들을 밀어내고 싶었다. 마침내 기회가 왔다. 2008년 6월 공군에서 두 가지 추문이 잇따라 터졌다.

ICBM의 핵탄두에 장착되는 전자 신관을 잘못 대만으로 보내 놓고도 대만의 군 당국이 이를 발견한 뒤에야 회수한 일이 있었다. 또 장거리 폭격기 B52의 조종사가 크루즈 핵 미사일 6기가 비행기에 장착된 줄 모르고 노스다코타주에서 루이지애나주까지 미 대륙을 횡단 비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게이츠는 핵무기 관리 부실의 책임을 물어 모슬리 총장과 마이클 윈 공군 장관(민간인)을 전격 경질했다. 젊은 시절 미니트맨 ICBM 운용 대원이었던 게이츠가 그 두 사건에 실제로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 고위 군 간부가 익명으로 전했다. 그 간부는 “하지만 단지 그 사건 때문에 그들이 면직되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게이츠는 그들을 쫓아낼 핑계거리를 찾았는데 좋은 구실이 생겼다.” (모슬리와 윈은 논평 요청에 응답하지 않았다.) 공군은 모슬리 후임으로 또 다른 전투기 조종사 출신이 임명되도록 힘을 썼다. 그러나 게이츠는 슈워츠를 원했다. 슈워츠는 그해 말 퇴역하려고 수송부 사령관 임기를 마무리하던 중이었다(그 전에 슈워츠는 특수 작전 사령부 부사령관을 지냈다).

게이츠는 슈워츠의 실용적인 성향과 타군과의 협력에 적극적인 면을 높이 샀다. 게이츠는 그 직전 육군이 구입한 고가의 신형 병력수송장갑차(APC)인 MRAP를 신속히 이라크로 수송해야 했다. 그 일은 공군의 몫이었다. 슈워츠가 그 임무를 기꺼이 떠맡았다. 게이츠는 슈워츠가 공군 참모총장으로서 무인항공기도 받아들이리라고 생각했다.

그 판단은 맞아 떨어졌다.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주둔군 사령관이던 데이비스 페트라우스 대장은 슈워츠가 UAV를 “신속히 실전에 배치해서 지상군에 큰 도움이 됐다”고 e-메일에서 치켜세웠다. 이런 협력이 대단치 않아 보일지 모르지만 기존의 육군-공군 관계에선 사실상 혁명적이다.

슈워츠가 공군 참모총장이 되기 1년 전인 2007년만 해도 어느 시점에서나 전투 공중 초계(combat air patrol)를 실시하는 UAV가 21대였다. 10만 비행 시간이 약간 넘을 정도였다. 2011년에는 54대로 35만 비행 시간에 이를 전망이다. 현재로선 원격 조종사도 전투기 조종사 자격증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슈워츠는 이 요건을 철회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늘어나는 UAV 승무원 수요를 감당할 정도로 전투기 조종사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이 실제 조종사가 될 필요가 없다”고 국방부의 한 고위 관리가 말했다. “그 요건은 말하자면 노조의 규정 같은 거다.” 올해 미 공군은 신규 전투기·폭격기 조종사보다 더 많은 원격 조종사를 훈련할 계획이다.

“실전의 중심에 서고 싶다면 UAV 조이스틱 조종사가 돼야 한다”고 슈워츠가 말했다. “일시적으로 반짝하는 현상이 아니다. 장래가 보장되는 분야다. 나는 그 점을 분명히 강조한다.” 트래비스 버다인 중령은 프레더터 원격 조종사다. 그는 슈워츠의 의도를 제대로 알아 들었다.

“우리 모두는 비행기를 타려고 공군에 입대했지만 원격 조종의 임무 만족도가 매우 높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임무를 맡으면서 매일 전투의 중심에 있다. 하루 36회의 전투 공중 초계를 실시하면서 늘 실전에 임한다.” 이제는 공군의 전투 지휘자 중 다수가 실제로 비행기를 만지지 않는 때를 상상하기도 그리 어렵지 않다.

슈워츠는 “우리가 틈새를 열었다”고 말했다. “전투 비행사를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그 정의가 점차 확대 중이다.” 그는 어떤 일이 일어나든 “추세는 변하지 않을 전망이다. 유인 비행 병력이 점차 적어지게 돼 있다.” 공군 역사가 C R 앤더레그는 1950년대와 60년대의 장성들이 대개 폭격기 조종사 출신이었듯이 70년대와 80년대의 장성들은 주로 전투기 조종사 출신이었다고 말했다.

따라서 앞으로 공군 장성들 중 다수는 UAV 원격 조종사 출신일 가능성이 크다는 설명이다. “준장 진급 심사위원회가 UAV 비행단 지휘 경험이 있는 대령 대신 그런 경험이 없는 대령을 진급시키기가 상당히 어려워질 듯하다. UAV 비행단 지휘자는 필요한 전투 경험도 쌓았고, 예컨대 랭글리 공군 기지의 F22 조종사보다 전장을 더 넓게 보고 편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전투기 조종사 출신 장성 중 다수는 이런 변화에 계속 저항한다. 바로 그들이 F22 추가 생산의 가장 열렬한 옹호자다. 그러나 그들의 동기가 전적으로 편협한 시각에서 비롯되진 않는다. 그들은 F22기 187대로는 미국 국방의 장기 수요에 턱없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한 장성은 “여러 공군 지휘자는 현재의 전쟁에 너무 집착하면 미래의 안보가 위태로워진다고 우려한다”고 말했다.

그들은 예컨대 앞으로 중국이나 러시아가 다시 적으로 부상할 경우를 상정한다. 게이츠 장관도 그런 우려를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F22 387대 확보를 정당화하는 공군의 공식 연구 보고서는 미국이 각각 거의 비슷한 수준의 공군력을 가진 두 적국과 동시에 대규모 전쟁을 벌이는 가상의 경우를 기초로 했다.

그런 상황은 있음직하지 않으며, 있다고 해도 아주 먼 미래에나 해당한다. 실제로 게이츠는 그 보고서를 보고 F22 계획을 187대에서 중단해야 옳다고 확신했다. “아주 높은 수준의 두 가지 위협이 동시에 현실로 나타나는 상황을 떠올리기가 매우 어렵다”고 무기 수요 분석 연구를 감독한 한 고위 장교가 말했다.

거의 불가능하지만 그런 일이 현실화된다고 해도, 다시 말해 두 강대국과 전쟁을 동시에 치른다고 해도, F35가 두 번째 위협을 F22와 비슷한 수준으로 감당해낸다고 펜타곤의 분석가 중 적어도 한 명은 믿는다.

더 작고 가격이 싼 F35(게이츠가 대량 구입을 원하는 기종이다)는 F22와 비교할 때 공중전에서 적 전투기를 격추하는 임무에는 뛰어나지 못해도 지대공 미사일 포대를 파괴하는 임무에서는 훨씬 우수하다. 지난 7월 17일 미 연방 상원은 58 대 40으로 F22 계획의 중단을 결의했다.

표 차이가 행정부 관리들의 예상보다 컸다. 당 노선에 따른 표결이 아니었다. 민주당 의원 15명이 그 계획의 지속을 지지했고 공화당 의원 중에서도 15명이 오바마와 게이츠 편을 들어 중단에 표를 던졌다. F22 안건 심의의 책임자도 주 계약자인 록히드 마틴사를 대변한 색스비 챔블리스 상원의원(공화당)과 엔진 제조사 프래트 앤 휘트니사를 대변한 크리스 도드 상원의원(민주당)이었다.

따라서 결국 널리 신망 받는 공화당 매파인 게이츠의 설득이 먹혀 든 결과였다. 게이츠는 상원 표결 전날의 연설에서 “적대적인 초강대국, 특히 거의 한 세대 전에 내부적으로 붕괴한 적대국과 같은 수준의 공군력을 유지하거나 그보다 앞서려고” 최첨단 무기 시스템을 설계하고 구매하는 일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고 선언했다.

어쩌면 그는 미 공군이 달라진 시대의 흐름에 맞춰 내부 문화를 바꿔야 살아남는다고 덧붙이고 싶었을지 모른다. 공군의 화려한 나날들은 끝났고 이제 새로운 시대가 시작됐다.

 

[필자는 워싱턴 포스트가 운영하는 온라인 잡지 슬레이트(Slate.com)의 국가안보 담당 칼럼니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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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글 은 펌글입니다. http://news.joins.com/article/aid/2009/10/07/3498969.html?cloc=nnc

위 주소에 동영상도 하나 링크가 되있더군요... 조이스틱을 이용한 게임을 즐기다보면

언젠가는 공군에 들어갈수 있는날도 올것이라는... 머그런 말을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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