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새로운 시리즈를 개발했당! 이 시리즈는 (세계의) 우리가 아는 위인을 자세히 다루기보단잘 모르는 위인을 간략하게 다룰꺼야. 그냥 소개하는건데 난 이제 3개 시리즈를 운영할꺼얌러시아역사 , 군사정보 , 위인러시아는 끝나면 다른나라로 ㄱㄱ하고 우선 , 이 위인 시리즈의 첫번쨰 주인공은 " 가르친링 " 이야. 여기서 100%는 처음 들어보는 사람일꺼야. 일단 , 가르친링은 7세기 토번의 명장이야.토번은 현재의 티베트(중국에 복속댐) 이며 7세기면 중국엔 당나라우린 삼국시대 ㅇㅋ? 그리고 솔직히 처음 들어보면 흥미가 떨어지겠는데이사람의 수식어나 업적을 들어보면 흥미가 생길꺼라고 자부한다. 가르친링의 수식어로는 50전 50승 불패명장아시아 역사를 180도 바꾼 명장중앙아시아 3대 명장중 한명이자티벳(Tibet) 역사상 최고의 명장이지. 그리고 또 흥미를 불러 일으킬만한건 가르친링이 있었기에 신라가 당나라를 이기고 통일신라를 건설할수있었던 점 , 가르친링이 있었기에 당나라의 간섭없이 발해를 안전하게 건국했다는 점 , 가르친링은 이와같이 우리역사와도 관계가 많아. 다른나라의 역사에는 거란의 봉기 ,서돌궐의 봉기돌궐 의 부활 ( 돌궐 제 2제국 ) 에도 엄청나게 많은 간접적인 영향을 줘. 어떄? 좀 흥미롭지? 시작전 배경지식을 말하자면 토번은 현재의 티베트이고유목민족 국가이며 가르친링 바로 전 세대에 전성기를 맞이하며당나라와 앙숙인 국가야.(그러니 주 내용이 당나라를 터는 내용이겠지?) (참고사진) -당나라(노란색), 토번(초록색) , 돌궐(회색)- 그럼 시작할께 [본문] [가르친링의 배경]?-가르 친링 (실제아님 .ForeBs 님이 그림) - 論欽陵 ( 중국 역사서 표기 - 논흠릉) ? ~ 699 토번(土番) 의 명장이자 재상이며 정식 이름은 가르 친링 첸드로(Mgar khri hbrin btsan brod) 가르친링은 출생에 대한 기록이없어 그러나 그는 토번의 명재상인가르통첸의 2쨰 아들로어렸을떄부터 군사적 지략이 뛰어났다고해 그리고 "가르(Mgar)" 라는 말은가문을 나타내는건데 군사적활동을 하는 가문이야. -소정방- 15~18세 였던 가르친링은 658년 아버지를 따라토욕혼 정벌에 참여하였고토욕혼을 구하러온 당나라의 명장소정방과 소규모 전투를 벌여 승리를 해 확실히 가르친링은 모태명장이었나봐 후에 667년 아버지인 가르통첸(왕) 이 죽자내정담당 권한은 가르친링의 형인 가르친네가 갖고군권은 가르친링이 갖게되지. 이떄부터 가르친링은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지.(668년 고구려 멸망 . 670~676 나당전쟁)
[당나라에 전쟁을 선포하다] ?-첫번쨰 출전- 666년 가르친링은 군사 10만명을 거느리고당나라가 차지한 청해지역인 황중(滉中) 을 대대적으로 공격한것이다.
-황중- 당시 황중 수비대를 맡은 이근행은토번의 침략에 전혀 대비를 하지않았는데 갑작스럽게 토번이 침략해오자 엄청나게 당황했지 그래서 이근행이 생각해낸 방법은 -제갈량- 삼국지에서 제갈량이 썼던 방법으로성문을 열고 들어옵쇼 하는 전술이었지 신중한 가르친링은 매복이 있을까 염려해약탈만 하고 돌아감. 667년 당나라가 고구려원정에 몰두하는것을 노려 가르친링은 강주(姜州) 12주(州) 를 노려 공격해점령하지 -?안서사진의 위치- 또 , 668년 가르친링은 안서사진(安西四鎭)에 모여있는당 의 토번침략군을 공격해 붕괴시키는데 성공하여 -청해의 위치- 청해일대를 점령하는데 성공하고 당의 토번침공을 1년정도 미루는데에도 성공하지 [대비천 대첩과 안서사진 점령] -설인귀- 668년 , 고구려를 운지시킨 당나라는 고구려운지의 주역인 명장 설인귀를 중심으로30만명의 대군을 편성해 토번을 침공하지. 이에 가르친링은 20만의 군대로 대응을 해. 설인귀는 보급부대는 후방에 남기고진군을하는데 -가르찬파 그림- 가르친링은 전면전을 하지않고동생인 가르찬파에게 2만의 군대를 주어 싸우고 지고를 반복해 점점 내부로 끌어들이기를 시키고 성공하며 설인귀는 가는길에 있는 토번의 오해성(烏海城)을 공격하나함락시키는데 실패하지.(오해성에는 만명정도 주둔) 그러한 떄에 가르친링은 가르찬파에게 2만명의 군사를 주어후방에있는 보급부대를 운지시키라고하지. 설인귀는 보급부대가 운지위기에 처해있단 소식을 듣자마자구원군을 보내나 , 이 또한 가르친링이 예상했기에 매복으로 격퇴하는데 성공하고 가르친링은 직접 10만명의 군대를 끌고 당의 후방으로 이동하였으니 전개가 이렇게 된거야
-대비천- 대비천(大非川) ------------------- ------------------- 오해성 설인귀 본대 가르친링군대 ------------------------------------------------ 가르친링은 오해성에서 병력을 내보내 공격하고자신또한 후미를 공격하니 당나라 군대는 큰 혼란에 빠지고설인귀는 열린길로 퇴각을 내리는데그 퇴각로로 열찌미 뛰는데호옹이? 그 퇴각로가 강이네? ㅎㅎ 그 후 , 포위전을 치르는데 당 군대는 전멸하고 당의 모든 장수는 사로잡히나가르친링은 다신오지마라..지옥탐방보내준다 라고 훈계만 한뒤돌려보내주징 그 후 , 당 최고 명장이었던 설인귀는모가지가 날라갈뻔했으나 고구려를 운지시킨 공으로모가지는 간수하고 서민으로 운지하지 ㅋ 그리고 가르친링은 승전하자마자 -토번의 최대 영토- 당나라로 진격하니 국경이 사천성에 인접하였고안서사진을 모두 함락시키니토번의 영토는 1만리에 이르게 되. - 당 고종 - 한편 , 당 고종은 빡쳐서 죽을것같은 상황에 놓였는데가르친링은 사신을 보냄 근데 이 사신이 또 매우 현명하게 토번은 워낙 호구국가라 이해좀 해줘 세계최강 당찡 데헷식으로 말하니 , 고종은 토번의 영토침략에대해서도 책임을 묻지않고 넘어가지. [대의를 위한 가르친링의 대결단] ?그 후 , 당과 토번과는 평화가 이루어졌고 토번의 약탈을 당이 수비함에따라 소규모의 전투만이 이루어졌지 그러다가 676년 토번 첸포(황제)인 망송망첸(芒松芒贊)이 갑자기 뒤짐. 토번은 전시중이었기에 이 사실을 숨기는데 금방 들통남 ㅋ
-샹슝국의 위치- 이에따라 독립을 노리던 속국 , 샹슝국이 반란을 일으키나가르친링이 잔인하게 진압을하지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왕위계승이었어 망송망첸에겐 두 아들이 있었지한명은 치토슨이고 한명은 6살난 아들임(이름기록앙댐)망송망첸은 6살난 아들을 후계자로 지목하고있었어서가르친링은 6살난 아들을 보호하지 그런데! 망송망첸의 왕비인 몰록씨와 대신인 국살약은 항상 당나라와의 전쟁을 반대하며가르친링을 견제했어으며치토슨이 이 몰록씨의 아들이었기떄문에 몰록씨와 국살약은 황명을 어기고 치토슨을 황제로 올리고샹슝국 군대를 불러오며가르친링의 형인 가르친네를 궁에 억류시킴 ㄷㄷ이 소식을 들은 토번의 장수들은 매우 분노하여가르친링에게 당장 저 새끼들 지옥견학시켜주자고 하지. 이러한 때에 당나라까지 이간계를 쓰지(토번의 내분을 위해 , 그 사이 청해를 탈환하기 위해)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가르친링은 엄청난 고민에 빠지게 되지. 당장 궁으로 쳐들어가 반란세력을 쳐죽이자니 ,당나라의 뒤치기와 조국의 세력이 약해지고 그렇다고 반란세력을 인정하자니자신이 미래의 위험해질수도있고 , 황명까지 어기게 되는거지 여기서 , 가르친링의 선택은후자였어. 가르친링은 군권은 계속 자신이 장악하는것으로치토슨을 황제로 인정하지. 이렇게 토번의 내분은 종료되었으며당나라는 이득을 챙길수 없었지. [숭풍령 대첩과 인식가 대첩 , 토번의 우세] 이렇게 쭉 평화를 유지하다가 -당의 기병- 678년 당은 결국 25만의 대군으로 토번을 침공하지. 이에 가르친링은 10만의 군대로 맞서 양군은 숭풍령에서 대치하게 되지. 숭풍령 전투는 딱히 할말이없다. 일방적으로 가르친링의 지휘에 당군은 개박살나며전멸위기에 처하지. -흑치상지- 그떄! 백제출신 유민장수 흑치상지가 나타나500명의 결사대로 가르친링을 막아 당군은 간신히 전멸은 피하지 그렇게 679년 두 나라는 화친을하나 680년 다시 전쟁을 시작하지. 그렇게 682년 가르친링의 토번은그냥 일방적으로 당의 사천일대를 약탈하여당의 사천일대는 완전 민주화되고침략또한 미뤄지지. 685년 가르친링의 형인 가르친네가 죽자가르친링은 내정의 권력까지 얻게되지이로써 토번의 실질적 권력은 가르친링이 가지게 되. -측천무후- 한편 , 당나라의 측천무후는 또 한번 토번을 침공할 계획을 세우지 당은 10만명의 군대를 이끌고 안서사진을 탈환하기위해 출발하여 인식가 강을 사이에 두고 양군이 대치하게되지. -토번의 중장기병- 당나라 군대는 가르친링의 명성이 너무 쩔기에 감히 진격하지못했어.게다가 폭설도 내렸기에 당군은 진을쳤지. 이떄 , 가르친링의 토번군은 금방 강을 넘어당군을 공격하니 당군은 대패하고퇴각하는도중 폭설에 의해 얼어죽어 거의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고말지 -라싸의 위치- 전투의 승리 후 ,가르친링은 내정일까지 관리하게 되어수도인 라싸로 이동하고 가르친링의 동생인 가르다고리가 사실상 군권을 가지고안서사진을 지키지 [안서사진을 뺴앗기고 멸망의 위기에 처하다] 692년 아직도 당나라의 측천무후는 안서사진의 탈환을 접지않았어 그리하여 -왕효걸- 왕효걸을 중심으로 돌궐군과 정예부대인 금아군 30만명을 편성해 안서사진을 공격하지 금아군 30만명을 출격시킨다는것은 당의 주력부대를 출전시킨다는것으로완전 도박이었어. 안서사진에서 , 왕효걸의 금아군 30만 군대와가르다고리의 15만 군대가 맞서 혈전을 벌이나 가르다고리는 안서사진을 뺴앗기고10만의 군대를 잃는 엄청난 손실을 맞는다. 이 소식을 들은 가르친링은 곧바로 전선에 복귀하고 -서돌궐의 영토- 당나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투쟁을 벌이던서돌궐과 연합해 10만의 군대를 받는것에 성공하지. 그러나 서돌궐의 10만의 군대가 토번으로 가는 도중왕효걸이 5만의 군대를 이끌고 완전 궤멸시키지. 이로써 토번은 순식간에 바람앞에 등불인 신세가 되어버린거야. [기적의 전투 , 소라한산 대첩] ?제목에서부터 느껴지지? 가르친링의 포텐은 여기서 한번 터지지. 당시 토번의 상황은 밖으로는 당의 정예부대 금아군 30만명이 언제올지 모르고 안으로는 국살약같은 대신이 화친하자고 떄를 쓰는등 국가적으로 결속해도 모자란 상황인데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지. 이러한 상황에 , 가르친링은 시를 한편 써. #많은 작은새가 한마리 매에 의해 살해되며많은 작은 물고기가 한마리의 수달피에 의해 죽임을 당하네 크게자란 뿔에도 불구하고수사슴은 짧은 뿔을 가진 야크를 당하지 못하네 백년된 소나무도 하나의 도끼에 베어지며강은 작은배로 건널수 있다네 평야전체에서 자라나는 대맥과 쌀은 하나의 물방아로 빻아지고뭇별들은 하나의 태양에 의해 빛을 잃네 계곡밑에서 발화된 불이 산을 태우고한 샘물의 물이 산과 평원의 모든 나무를 운반하네 하나의 돌이 평원에 있는 단단한 돌을 흙으로 만들고풀전체는 버려진 철조각보다 빨리 썩네 솥에 가득찬 물도 소금을 넣으면 짜게되고무수한 풀도 낫 하나에 베어지고가느다란 화살로 야크 여러마리가 죽는다네.# 딱 보면 삘이 오지? 다 와라 털어주겠노라 라고 여유있게 말하는게 ... 그는 많아봐야 5만의 군대밖에 없었지만절대로 화친하거나 후퇴할 생각이 없었어. 이러한 상황에 698년 7월 마침네 혈전은 시작되었어. -돌궐군- 돌궐군과 정예 금아군 30만명은 일제히 가르친링의 토번군 3만명을 공격하지 그런데 정말 기적이 일어났어698년 7월부터 699년 1월까지 전투는 계속됬으나 토번은 패배하지않았어(정말 아쉽게도 , 전투 과정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당나라에서는 10만명을 증원하지 그리고 마침네 699년 4월 양군은 소라한산에서 대대적으로 전투를 벌이는데 이 소라한산에서의 전투는 정말 말로 표현할수없는 기적이 일어나 그것은 바로 당나라 군이 전멸을 한것이야. 이 기적적인 승리는 세계의 흐름을 바꿀정도로 영향이 컸고 당나라는 이제 주변국들에게 영향력을 행세하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고토번의 영향력은 당의 수도인 장안까지 미쳐 , 당나라는 수비하는 입장이 되고말아. [가르친링의 꿈과 종결] -서돌궐-
기적적인 소라한산 전투 후 699년 당나라에서는 사신을 파견하지.당은 화친을 요구했는데가르친링은 화친을 하는 대신 서돌궐에 대한 지배권을 달라하지. 그러나 결국 당은 거절하고 가르친링은 당을 대대적으로 공격준비를 하기를 이르지 -적은 혼노지에 있다! (배신의 대명사)- 그러나 ... 진정한 적은 내부에 있었으니 , 6살이었던 치둑송첸(=치토슨)이 나이를 먹어황권을 강화하기 시작하니 대신인 국살약을 중심으로 당시 실질적인 권력을 가지던가르 가문을 탄압하기 시작하지 상황이 이렇게 되자가르친링은 당나라 침략을 하지 못하게 되지. 결국 가르친링은 , 가문의 대를 잇기위해동생인 가르찬파와 아들인 가르궁린을 당나라에 투항시키지. 그러나 가르친링은 쿠데타를 일으켜 황제고뭐고 걍 뒤엎을수있었어. 그러나 토번은 황제가 곧 신이었지. 말그대로 이 황제를 뒤엎으면토번의 질서가 무너지고 토번의 속국들이 반란을 일으킬 명분이 주어지게 되지. -청해호- 결국 가르친링은 가족들과 자신의 부하 2천명과 함께청해호 에서 집단 자결을 하고 말지 ... 국가를 위하며 , 국가에 적이되지않고 , 가문의 대를 잇는 방법을 선택한거야. 크 ... 정말 드라마틱하지? [가르친링의 자결 , 그 후] 그 아버지의 그 아들이라는 말이 있듯 당나라에 투항한 가르궁린은 명장 기질이 있었고 당나라는 가르궁린을 중심으로 토번을 털기 시작하지(가르궁린은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이렇게 되자 당은 점점 되살아났고 다시 토번으로부터 군사적 우위를 점하게 되. 마지막으로 , 가르친링은 이러한 업적에도 불구하고토번 , 즉 가르친링의 조국에선 찬밥신세를 받아.왜냐고? 첸포(황제)와 대립관계였기 떄문이었지 보통 중국은 자기나라를 털었던 사람은 안좋게 서술하는게 보통인데가르친링만은 예외였어. 가르친링만은 정말 대공무사로 기록하고있고오늘날 전해오는 가르친링의 역사는 모두 토번의 역사서가 아닌 , 당나라의 역사서야! 사이(四夷)가 비록 당나라를 모두 두려워하여 비록 나란히 있으나,바다밖 땅 사이에서 닳아 없어지거나 멸망하지 않을것이다.-가르친링- 출처 : http://www.menskorea.com/best/1448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