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에 대해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강간예찬론이다. 어떤 강간에도 사랑은 묻어 있고, '강간조차도 포용하는 위대한 사랑의 힘이여' 라는 주제라고 확언할 수 있다.
먼저 박해일의 죄목을 보자.
1. 상대에 대한 배려나 교감없이 용인하기 어려울 만큼 음란한 말을 늘어놓는다.
2. 그러한 성희롱은 자신의 직권을 십분발휘한 것으로, 교생이라는 신분의 강혜정이 거절하기 어려운 상황을 만들어간다.
3. 서로 약혼자가 있는 상황임에도 그는 자신의 성적욕구앞에 그러한 책임감을 짓밟고, 상대에게도 그걸 강요한다.
4. 말뿐 아니라 스토킹 행위를 반복했으며, 결과적으로 강간까지 범한다.
5. 무책임하게도 박해일은 스스로를 정당화하지도 않는다. 납득이 갈만한 대사나 상황제시도 없이 그는 끊임없이 뻔뻔할 뿐이다. 영화적으로는 박해일은 그저 강간범일 뿐이다.
강혜정이 이러한 박해일을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이유는 세가지다.
1. 나도 박해일이 좋다. 2. 박해일에게는 좋은 냄새가 나서 나의 불면증에 도움이 된다. 3. 성추행도 자주 당하다 보니 사랑으로 변하는 것 같다.
강혜정은 어떤 죄가 있는가.
1. 약혼자에 대한 약속을 저버린다. 이건 이해한다. 그러나 강간범 박해일과의 만남을 정당화 하기 위해 감독은 강혜정의 약혼자를 약간 비겁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린다. 강간범과의 사랑을 연결시키기 위한 치사한 방법의 장치다.
2. 강간당하고, 학대받는 여성의 대표성을 획득한 강혜정은 끊임없이 섹스를 요구하는 박해일에게 '50만원 줘. 내가 왜 너랑 공짜로 해'라는 대사를 던짐으로써 관객들에게 약간의 카타르시스를 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강혜정은 박해일에게 돈을 받지 않는다. 강간범에게 재차 몸을 허락한 최소한의 명분마저도 버렸다.
3. 두사람의 만남이 학생들에게 알려져 수사를 나온 교육부 쪽 사람들의 '남성에게 관대한 태도'를 보고 화가 난 강혜정은 '이미 박해일을 좋아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강간과 성추행을 고발한다. 이때 다시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그러나 일정 시간이 흘러 그는 또다시 박해일을 찾아간다. 다시 강간을 감싸주는 그 위대한(?) 여성성..
결론.
이 영화는 김기덕류의 끊임없는 강간이야기와 그것을 덮어주는 어리석은 여성성의 이야기를 다시 되풀이할 뿐이다. 다만 조금 더 밝고 경쾌하게, 가볍게 풀어냈을 뿐. 시나리오가 좋다는 칭찬을 많이 받은 이영화의 어떤 점이 미덕인지 나로서는 조금도 이해할 수 없다.
강간에 대한 여성의 시원한 복수극이 될뻔한, 혹은 강간범의 정당화에 대한 부담을 빠져나갈 구멍이 될뻔한 강혜정의 용기있는(하지만 동기가 불분명한) 고발은, 강혜정이 박해일을 찾아가 다시 섹스를 함으로써 무너져버렸다.
강간은 영화적으로라도 정당화되어서도 안되고, 미화되어서도 안된다. 나는 마치 나 스스로가 여성이 되어 언론과, 영화감독과, 배우들과, 이 영화를 즐기는 관객들에게 강간당한 듯한 수치심과 아픔이 느껴졌다..윤카피印
cf) ..ㅡ_ㅡ;; 마지막에 한 장면이 더 추가됐으면 걸작이 될 뻔 했습니다. 감방 구석에서 열심히 편지지 뒷면에 볼펜으로 글을 끄적이고 있는 죄수 박해일의 초라한 모습이 보이면 교관이 작은 창문 사이로 소리치길 "야.. 너는 맨날 뭐를 그리 열심히 끄적이냐. 소설 쓰냐?" 히죽히죽 웃으며 박해일 대답하길.. "제 과거 이야기로 시나리오 쓰고 있어요. 제가 영화 만들거에요."
저는 [연애의 목적]을 보면서, 이거는 여자 강간하고 감방에 들어간 죄수가, 자기 과거를 낭만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해 주관적인 공상으로 써내려간 고백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자신이 강간을 했다는 사실을 최대한 미화하기 위해서 여러 장치들을 덧붙이고 여성의 심리를 왜곡하고 자기를 영웅시해서 그렇게 꾸며낸 이야기말이에요.
이 영화는 '강간도 사랑이 될 수 있다'는 김기덕식 혹은 이창동식 연애담을 재현하기 위해서 시니리오 작가가 고군분투 하다못해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아버리며 억지로 짜낸듯한 이야기같아서 참으로 안스럽더라구요. 그래서 이 영화가 감추고 있는 그 치사하고 야비한 설정들을 죄다 끄집어내서 '니 잔머리 그게 다냐?'하고 소리치고 싶어 죽겠습니다.
그래요. 강혜정이 처음부터 박해일을 좋아했는지도 모릅니다. 굳이 강혜정의 입으로 관객들에게 직접적으로 확인시켜주지 않아도 얼마든지 추측할 수 있어요. 물론 사람이 가끔 '단순한 호기심'과 '이성적 호기심'을 헛갈리기도 하지만 그게 이성적 감정이라고 치자구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강간은 강간입니다. 분명히 상대는 '노'라고 의사표시 했거든요.
수학여행 한복판에서 교사들 사이에 강간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대도 아무런 충격파도 없이 영화는 룰루랄라 흘러간다는게 참 이상합니다. 아니, 처음 두 주인공이 대면하는 날부터 "너 맛있겠다"라는 대사를 날려도 다음날 학교에서는 조금만 서먹하게 굴면 대충 넘어갈 수 있다는게 여기가 대한민국인지 송강호의 '강간의 왕국'인지 저는 헛갈렸다는 말입니다.
가장 어이가 없는 장면은 강혜정의 집에 박해일이 열쇠를 빼앗어 쳐들어 가는 신에서, 이미 강혜정은 목욕재개를 다 하고 있었고 집안까지 깨끗이 청소해 놓았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실은 그녀도 그 남자를 집에 데려와 몸을 섞고자 욕망했던 것이다'라는 거의 정신병적인 해석까지 가능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런 논리들을 마지막 반전에 이용하고 있죠.
저는 이 영화의 가식적인 면이 결국 마지막 '성폭력 고발 부분'에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영화는 이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명백한 관계를 억지로 애매모호하게 지워놓기 위해 초강수를 두고 있는 겁니다. 여자는 남자를 성폭력범으로 고발해 버리고 한순간에 남자는 직장과 애인과 주변인들, 모두를 잃게 되고 바닥에 추락하게 되어 버리죠.
자 이제 똑같이 밑바닥까지 떨어졌으니, '성폭력을 당한 나'하고 '성폭력해서 처벌받은 너'하고 우리는 '셈셈'이 됐으니 다함께 '쎄쎄쎄'하자라는 논리가 형성이 되는 것이죠. 마지막에 강혜정은 박해일을 찾아가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헉..) 남자를 책임지겠다고 하면서 침대로 유혹합니다. 아. 정말 눈물겨운 스토리가 아닐 수 없어요. 강간범 드디어 구원받다. 흑흑.
저는 강간범을 영화에서 주인공으로 다룰 수 있다고 봅니다. 소재에 제한이 어딨겠어요. 다만 짜증나는 것은 '강간도 달리 보면 사랑일 수 있다'라는 논리를 억지로 관객에게 세뇌시키기 위해 감독이 트릭을 쓸 때는 정말 조롱당한 느낌이 듭니다. '오아시스'에서 엽집 부부의 대낮의 섹스 소리를 듣고 자기 욕망을 발견하여 강간범 설경구를 사랑하게 되는 문소리.
이창동이 아무리 장애인을 비하해서 스토리를 지어내도 강간은 강간인 겁니다. '여대생을 납치하여 창녀로 만들 수 있다'라는 극악의 인신매매를 정당화하기 위해 김기덕은 여주인공이 서점에서 몰래 화보집을 찢는 장면을 보여주고 그녀가 주인없는 지갑을 들고 도망가도록 유도합니다. 하지만 그녀가 도벽이 좀 있다고 해서 조재현의 죄가 용서가 되나요?
강혜정이 과거에 어머어마한 상처를 가지고 있었고, 그 상처를 박해일이 코딱지만큼 치유해줬다고 우기더라도 그걸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강혜정도 박해일만큼이나 애인과의 섹스를 일상적으로 여기고 있었고 그래서 순진한척 굴던게 다 내숭이라고 하더라도 그건 그녀의 자유이지 그렇다고 그녀가 '강간을 당해도 싼 년'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영화가 중반 이후 계속 신파적으로 넘어가면서 억지로 두 사람을 연인관계로 묶으려 해도 전혀 설득력도 없고 개연성도 없고 너무 구차한 변명들만 자꾸 등장하니 그나마 좀 좋게 봐주려던 장면들도 다 짜증이 나더군요. 학교 홈페이지에 뒤덮인 소문들에 흥분하며 몽둥이를 들고 날뛰는 박해일의 폭력성은 '사랑하는 이의 분노'로 이해해 주길 바랬던 걸까요?
모 포털 사이트에서 가장 추천수가 많은 독자 감상문을 읽어보니 최고의 아름다운 연애이야기라고 써놨더군요. 사랑을 할 줄 모르는 철없는 남자를 상처 많은 성숙한 여자가 만나 서로가 서로에게 부족한 것을 채워주는 이야기라고 소설을 써놨던데, 그 상상력에 탄복해 버렸습니다. 박해일 선배로 나온 교사가 박해일 역을 맡았다 해도 아름답게 보였을까요?
또 하나 궁금한 점. 왜 꼭 영화 속에서 강간피해 여성들은 혼자 집에서 청소하고 빨래하고 그렇게 구질구질하게 살아가는 장면들만 요약해서 보여주는 것일까요? '오아시스'의 마지막 장면은 남편의 출감을 기다리는 문소리의 청소장면입니다., '여자 정혜'의 집안일 묘사는 말할 것도 없고, 이 영화에서도 강혜정이 집안청소를 하다가 박해일을 떠올리더군요.
어차피 뻔한 의도인 겁니다. '그녀는 혼자이며 외롭다. 이런 여자에게는 남자가 필요하다' 뭐 이런 논리겠지요. 남자가 절실히 필요한 여성에게 그 남자가 치한이든, 강간범이든, 변태교사든, 아무때나 폭력을 쓰고, 첨보는 사람하고도 음담패설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든 다 상관없단 거겠죠. 외로운 여자는 누구나 가져갈 수 있다는 그 마초적인 이상한 논리들.
이 영화에서 박해일 말고도 강혜정 주위에는 두 남자가 더 등장합니다. 그 중 하나는 현재 그녀의 애인인 의사 남친인데요. 자신의 코고는 소리 때문에 같이 자는 애인이 불면증이 생긴다는 그 사실도 눈치못채는 정말 맹꽁이같은 남자구요. 이런 지루한 남자보다는 그래도 박해일이 조금 변태스럽기는 하지만 귀엽지 않냐고 우리에게 선택을 강요하는 것이죠.
그리고 또 한 남자. 영화 속에서 얼굴은 한번도 안나오는데 들리는 정보만으로 거의 악의 화신처럼 등장하는 미술대학 조교입니다.(근데 대학의 조교 따위가 무슨 권력이 있다고.. 영화는 너무 비현실적인 것 같더군요) 이 조교는 정말 인간쓰레기로 묘사되고 있어요. 박해일같은 말종도 흥분할 정도로(지나 잘하지..) 절대악의 이미지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죠.
그 조교같은 절대악보다는 그래도 박해일같은 남자가 상대적으로 조금(아주 조금...0.00001 프로) 더 낫지 않냐고 영화는 관객에게 귓속말로 속삭이는 겁니다. 그러니까 영화는 우리에게 밥맛 없는 두 남자들과 박해일을 놓고서, 이 중에서 제일 매력있는 남자가 누구냐고, 그 남자를 선택해서 강혜정의 애인으로 붙여주라고 우리에게 선택을 강요하는 겁니다.
이거는 아주 치시한 유도심문이죠. 강혜정 같은 애가 뭐가 모잘라서 저런 세 남자 사이에서 반드시 자기베필을 찾아야 하는 걸까요? 자신을 강간한 남자에게 한번 자주러 그렇게 일부러 찾아갈 정도로 그녀는 당장이라도 남자가 급한 겁니까? (강혜정은 조승우같은 핸섬맨이랑 사귀는데.. 요건 농담) 영화의 황당한 결론은 놀랍게도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이 여관방을 나오는데 바닥에 흰 눈이 깔려 있습니다. 마치 새로운 연애를 출발이라도 하는 듯이 두 사람은 흰눈을 밟으며 애들처럼 즐거워 합니다. 그리고 영화는 끝납니다. 어이가 없더라구요. 질펀한 섹스이야기로 영화내내 쿨한 척 하더니만 마지막에 가서는 왠 사랑의 순결성을 강조하는 걸까요. 그래봤자 3년, 아니 3개월도 못갈 호르몬일텐데요.
이 영화는 그냥 솔직한 섹스 이야기로 밀고 나갔으면 재밌었을거에요. 문제는 섹스와 강간과 사랑을 삼위일체시키려는 그 이상한 신념에서 문제가 생겨난 겁니다. 영화의 화면은 너무나 이쁘고, 배우들의 연기(특히 박해일)는 칭찬받아 마땅하지만 포장지만 이쁘고 그 안에는 유통기한 지난 상한 케익이 들어있는 그런 느낌이 드는 영화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참고로 몇 가지 덧붙이지만, 교생을 다녀온 경험이 있는 저로서는 과연 교사와 교생간의 관계가 저 정도로 권력관계가 뚜렷한 것인지 의문스럽더군요. 그리고 왜 저런 영화에서 병풍으로 등장하는 주인공의 애인들은, 남자의 여친의 경우는 항상 청순가련형이지만 답답한 여인, 여자의 남친의 경우는 미래가 짱짱한 직업을 가졌지만 보수적인 남자여야 할까요?
*출처:일다
----------------------------------------------------------- 영화의 재미만 쫓다보니 점점 폭력성에 둔감해지며 결국은 느끼지도 못하게될까봐 무섭네요.. 점점 세상이 폭력에 관대해짐과동시 익숙해져가는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