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트릭스] 매트릭스에 대한 여러가지 해석 첫번째

XEONIC 작성일 06.09.27 14:3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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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내공 : 어중간


정말 간지다. 이 분 나이가 마흔이란거 감안하면 헐리웃의 특수효과는 CG만이 아닌란 것을 알수 있다.

본론에 들어가서
누구는 개똥철학을 앞세워 어려운척 하는영화라고 하지만
그건 2편만이(?) 해당되는것 같다 1-2-3 연결해서 전체적으로 보면
상당히 심오한 스토리에 딱딱 들어 맞는 복선들
어려운척 하는 철학이 아닌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주는 화두들
하여튼 난 1편 진짜 울트라 심각하게 재미있게 봤고 2편도 볼거리는 있었지만 뭔가 빠져있는 느낌이 들었는데 3편에서 "사랑은 단어에 불과하다" 라는 말을 들으면서 전율을 느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봤을지 모르겠지만...


아래는 예전에 매트릭스 한창 재미있게 볼때 인터넷에서 본 글중에서 잘된 해석중 하나인것
같아서(내 관점이까 -.-;;) 올려본다

매트릭스 시리즈를 여러번 봐도 질리지 않는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누가 뭐래도 관객을 압도하는 영상. 둘째, 볼때마다 새롭게 발견하는 복선과 상징, 패러디(정말 놀랍다. 애니 매트릭스에 나오는 최초의 반항 로봇 B166ER이 흑인 저항 소설의 효시 "Native Son"에서 백인을 살해하는 등장인물 Bigger의 패러디였다는 사실을 오늘 처음 알았다. 이런 게 정말 수없이 많다.) 셋째, 이해하면 이해할수록 더 복잡해지는 플롯.

결말이 너무 뻔했다고? 그렇다면 당신은 영화를 너무 편하게 혹은 재미없게 본 것이다. 열린 엔딩은 안전한 선택일 수도 있다. 감독에게 있어서는 말이다. 하지만 선택은 결국 우리가 하는 것이다. 워쇼스키 형제가 115분동안 보여준 영상에서 무엇을 받아들일 것인가, 매트릭스의 어법으로 말하자면 '무엇을 믿을 것인가?'
다음에서 제시하는 것은 하나의 해석이다. 내일 아침 회사 출근을 희생하고서라도 이글을 쓰는 것은 자고 잃어났을 때 자신을 잃어버릴까 두렵기 때문이다. 환언하면, 그만큼 이 영화는 명작이란 말이다. 사설이 길었다. 그럼 Chang의 선택을 따라가 보자.
Reloaded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리로디드를 기억하는가? 리로디드에서 '리로디드'의 어의와 관련된 부분을 대강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아키텍트와의 대화 부분이다.) 네오는 오류가 발생한 시스템을 종료하기 전에 시스템의 소스를 백업하여야 한다. 그는 인류를 구원할 The One이 아니었고, 아키텍처의 말에 따르면 적어도 그 이전에 5명의 메신저(소스를 백업하기 '위해' 존재하는)가 존재했다. 그는 시스템을 리로디드해야 하는 사명 외에도 매트릭스에서 16명의 여자와 7명의 남자를 선택하여 새로운 시온을 건설해야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다. 그와 시온의 존재 자체가 시스템의 일부인 것이다. 이 단계의 매트릭스 버전들은 현실세계에 대해서까지 부분적으로 제어력을 지니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리로디드의 말미에서 네오는 선배들과는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 트리니티를 구하기 위해 시스템 유지보수의 순환고리에서 일탈하는 것이다. 이것이 리로디드의 진정한 의미다. 즉 영화는 아키텍트의 입을 빌어 끊임없이 리로드 되어온 매트릭스에 대해 설명하면서, 동시에 이런 식의 리로딩(백업-시온&매트릭스 종료-재시작)이 이제 끝났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리로디드는 수동형이 아니라 과거 혹은 과거완료형이다.

그런데 잠깐, 네오는 인간인가 기계인가?
6번째 네오 즉 영화상에서 우리의 시선이 따라가는 네오에겐 새로운 변수가 하나 추가되었다. 그것은 바로 사랑이다. 스미스의 말을 빌자면 '인간들의 전유물'인 사랑. 이후에 더 논하겠지만 이 요소가 바로 이전 버전까지의 네오와 6네오를 구별짓는 결정적인 변수이다. 네오는 본질적으로 프로그램이다. 인간의 껍데기는, 스미스가 뒤집어 쓴 베인의 육체처럼 본질적인 '코드'가 아니다. 영육이원론을 차용하자면, 네오의 영혼은 결국 프로그램된 것인 셈이다. 동시에 네오는 인간이기도 한데, 그것은 그가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사랑의 능력이 네오의 육체-인간적 부분-에서 유래한 것인지, 이것 역시 아키텍트-오라클에 의해 새로 개발된 프로그램인지를 묻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이 신의 계획 하에 설계된 것인지 아니면 순전히 그 자신의 인간적인 사랑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묻는 것과 같다. 결국 답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 외에도, 두 아포리즘은 각각 다음과 같은 사태의 결과 혹은 이유라는 점에서 구조상 동일하다. '예수는 인간이면서 동시에 신의 아들이다.' '네오는 인간이면서 동시에 프로그램이다'

사랑의 능력을 지닌 프로그램, 혹은 인간의 욕망을 베이스로 한 프로그램. 뭐라 부르건, 우리의 제6네오는 필연적으로 선배들과는 다른 길을 걷게 된다. 매트릭스 1편에서부터 그 전조를 찾아볼 수 있다.


그 전조란? 그리고 사랑이 왜 중요한가?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행위의 합리성을 벗어던짐을 의미한다. 행위가 합리적이라는 것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곧 자신의 존재이유에 따라 행위함을 의미한다. 사랑의 능력을 지닌 네오는 곧 선택의 능력, 자유의지를 지녔다. 하지만 진정 그것이 자유의지인가? 이 문제는 2편에서 반복되어 제시된 물음인데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현실의 구조와 직결된 대답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실과 매트릭스는 동형이다. 이중매트릭스설을 말하는 게 아니다. 기계들이 현실을 만든 것이 아니라, 현실이 기계들을, 더 나아가 매트릭스를 만들어낸 것이다.

1편을 보자. 우리의 네오는 자신이 The One이라는 것을 믿지 못한다. 끊임없이 회의하고 불안해하는 그는 결국 스미스에 의해 죽음을 당하게 된다. 애초에 왜 그는 2편에서와 같은 신적 능력을 지니지 못햇는가? 그것은 그가 사랑의 능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1편에서의 오라클의 이야기처럼, The One이 된다는 것은 사랑에 빠지는 것과 같다. 다만, 제6네오에게 있어서만 말이다. 이전 버전의 네오들에겐 사랑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네오는 그 자신의 방식으로만 각성할 수 있었다. 그 자신만의 방식이란 바로 사랑이다. 그는 끊임없이 회의하면서 선택한 후에 이해해야만 한다. 합리적인 프로그램이라면 우선 이해하고 선택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럴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사랑의 능력을 지닌 프로그램이므로. 그것이 그의 숙명이다.


그래서 1편에서 네오는 일단 죽는다. 그리고 사랑의 힘으로 부활한다.(이 부분을 비웃는 사람이 많은데, 이건 뒤에서 상론하도록 하겠다) 부활의 진정한 의미는 그가 The One임을 각성했다는 것이다. 네오는 스미스를 파괴하고 매트릭스 내에서 신적인 권능을 얻는다. 스미스가 파괴된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스미스가 빛을 내며 파괴된 것이 왜 중요한가? 그것의 의미는?
영화 상에서, 어떤 프로그램이 빛을 발하며 산산조각나는 것은 그 프로그램의 소스코드에 영구적인 변화가 발생했음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에이전트에 의해 덮어쓰기된 매트릭스 내부의 사람들이 사망하여 쓸모가 없어졌을 땐, 에이전트가 이동하면서 원래의 코드가 복원된다. 하지만 빛을 내며 파괴되는 경우에는 복구할 수 없는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코드의 일부가 영구 삭제되는 것이다.

스미스는 1편에서 한번, 그리고 3편에서 한번 '발광파괴'된다. 그리고 두번 모두 매우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다. 스미스의 입장에서 보자면, 1편의 발광파괴 시에는 네오의 코드 일부를 흡수해 무한 복제 능력을 얻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 우선 이점을 짚고 넘어가자. 스미스와 같은 에이전트는 일단 자신의 코드를 다른 인간의 코드에 붙여쓰기하여 그 인간을 제어할 수 있다. 단, 에이전트가 다른 인간으로 카피될 때, 동시에 시스템에 의해 이전 인간의 코드에서 에이전트의 코드가 삭제된다. (에이전트 프로그램 자신이 스스로를 삭제할 수는 없으므로, 에이전트와 시스템 자체가 언제나 메세지를 주고 받으며 에이전트 데이터의 integrity를 유지한다고 보아야한다.)

1편에서 네오는 스미스를 부분적으로 삭제한다. 완전한 삭제가 일어나기 전에 스미스는 카피이동을 통해 도망가 버리는데, 이 때 삭제된 부분이 바로 시스템과 직접적으로 상호작용하는 코드이다. 상징적으로 말해서 네오가 스미스의 리시버를 뽑아주었고, 그로인해 스미스는 시스템의 제어를 벗어나게 된 것이다. 이제, 시스템의 제어를 벗어난 스미스는 자신을 무한정 복제할 수 있게 된다. 시스템이 스미스의 지난 데이터를 삭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스미스는 자신들과만 통신한다.

레볼루션 마지막 장면에서 스미스는 또 한번 발광파괴된다. 직전에 스미스는 네오의 코드로 스스로를 덮어쓰는데, 이것은 그의 말마따나 함정이다.(여기서 함정의 의미는 중층적인데 뒤에 자세히 논하겠다) 네오에 내재된 백신 프로그램은 시스템과 스미스를 다시 연결하고 시스템은 복구된 제어경로를 이용해 스미스를 삭제해 버린다. 그가 매트릭스 여기저기 카피해놓은 모든 코드를. 그리하여 마지막 장면에서 네오를 제외한 모든 "희생자"들이 제 모습을 되찾는 것이다. 네오는 왜 복원되지 않는가? 시스템은 왜 스미스의 코드와 네오의 코드를 모조리 삭제해 버린 것일까? 그 이유는 네오 이외의 "희생자"들의 코드는 시스템 코어에 백업되어 있지만 네오는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왜냐고? 네오는 매트릭스 바깥을 경험했기 때문에, 그의 코드는 시스템이 복원시킬 수 없는 것이다. 다른 희생자들의 경우엔 일단 다 지우고 새로 깔면 되지만...시스템은 네오의 코드를 지니고 있지 않다.

두 개의 순환고리. 그 사이의 도약
결국 이 모든 것은 매트릭스 혹은 아키텍트와 오라클의 실험이다. 사랑이라는 변수를 도입해서 네오와 매트릭스가 7:16 리로딩의 궤도를 벗어나게 한 것까지도. 스미스의 출현은 예견되지 않았겠지만 우리가 영화를 보는 시점에선 이것마저도 예견된 일이다. 하지만 그것을 예견하는 '의식'은 없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두 가지 층위에서 사태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하나는 기표 혹은 데이터의 층위이다. 매트릭스 시스템의 데이터 자체는 계속 누적되며 시행착오를 반복함에 따라 업그레이드 된다. 즉 데이터는 보존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기의 혹은 의미의 층위이다. 프로그램의 '의식'은 소멸하거나 변화될 수 있다. 시스템이 필요에 의해 그것을 삭제하거나 변경한다면. 물론 대부분의 경우엔 리로드 될 때 이전 버전의 프로그램이 유지되므로 프로그램의 "의식" 또한 유지된다고 보아야할 것이다. 하지만 프로그램이 시스템의 제어를 받고 있는 한 의식 자체는 얼마든지 조작될 수 있는 것이다. (예컨대 시스템을 위해 봉사하는 에이전트에게 빙의된 인간의 의식은 일정 시간 동안 '정지'된다. 심지어 오라클조차도 -매우 권한이 높은 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외형의 변화를 강요당했다. 이는 그녀의 "의식" 변화에 대한 상징이다.)

불교철학을 차용하자면, 시스템의 리로드는 끝없는 윤회에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각 프로그램의 카르마(데이터)는 보존되지만, 의식 혹은 자아는 보존되지 않는다.

정리하면, 우리가 영화를 보는 시점(혹은 관점)에 이미 레볼루션은 여러번 일어난 사건이다. 각각의 시행에서 약간씩의 차이는 있었겠지만, 시스템의 거대한 실험인 레볼루션은 무수히 반복시행되었던 것이다. 스미스가 경험하는 데자뷔는 이러한 사실의 확증사례다.

또 한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러한 리로딩(순환)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는 것이다. 2편에서 아키텍트에 의해 설명된 것이 하나요, 3편에서 보여준 레볼루션이 나머지 하나다. 물론 1,2,3편이 보여주는 스토리는 후자의 순환 중 한 사이클이다.

Revolution의 진정한 의미는?
네오에게 사랑이라는 변수가 도입된 이유는 무엇인가? 앞서 나는 레볼루션 순환 자체가 시스템의 실험이라고 했다. 무슨 실험? 사랑의 힘을 매개로 하여 각성된 네오의 힘들을 살펴보면 그 대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네오의 힘들이 바로 실험의 성과이기 때문이다. 하나하나 정리해 보자. 네오는 1편 말미에 매트릭스 내에서 슈퍼맨이 되더니, 2편에선 매트릭스 내에서 현실세계의 트리니티를 살리기까지 한다. 게다가 현실세계의 센티넬들을 파괴할 수도 있게 된다. 종국에는 현실 세계 사물들의 코드를 읽을 수 있게 된다.

뒤로 갈수록 현실에 대한 네오의 영향력이 강해짐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시스템의 실험 목적이었다. 그들은 네오를 통해 현실세계의 코드를 제어하는 방법을 연구했던 것이다. 물론 이 실험은 하나의 전제가 참이어야만 의미있는 것이 된다. 물론 그것이 참임은 결과가 증명해주었다. 그 전제란 "현실과 매트릭스는 동형이다"는 것이다.

기계들 혹은 시스템의 놀라운 통찰대로, 현실의 사태는 비결정적이고 연속적인 것이 아니라 결정적이고 불연속적이었던 것이다. 다만 사태의 의미는 불확정적이고 연속적일 수 있다. 그것은 의미상관자 즉 관찰자에 의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허나 모든 가능한 사태는 이미 결정되어 있고 우리가 그것을 경험하는 순간 그것은 "이미" 경험한 것이 된다.

양자역학의 코펜하겐 해석을 떠올려보자. 입자들은 파동함수로 '존재'하며, 사태들은 가능한 모든 고유상태들의 확률적 총합으로만 존재하지만 관찰이 일어나는 순간 하나의 고유상태로의 수축(collapse)이 일어난다. 말하자면, 의식 혹은 관찰자의 입장에서만 사태는 비결정적이다. 자유의지란 존재한다. 자유의지란 말 자체가 의미상관자인 "의식"에 대해서만 의미있는 말이므로. 그러나 '의식'의 선택은 이미 모두 결정되어 있다. 기계들은 사실 현실을 벤치마킹하여 매트릭스를 만든 것이다. 매트릭스와 현실세계의 관계는 사진기와 눈알의 관계와도 같다.

즉 기계들은 현실세계 또한 결정적이고 불연속적인 코드들 위에 세워진 세계라는 가설을 세운 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실험을 했다. 즉 제6네오를 만든 것이다. 아키텍트가 이를 위험한 시도라고 부른 이유는 이것이 실패할 경우 매트릭스 시스템 자체가 붕괴될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매트릭스 시스템이 직접 제어할 수 없는 불확정 요소도(예컨대 스미스) 너무 많았다.

어쨌든 인간과 기계의 중간자적 위치에 있는 네오는 현실세계의 코드에 대한 통찰력까지 얻고야 말았다. 그리고 열반에 들었는가? 그렇지는 않다. 물론 네오는 죽는다. 네오는 실험 도구에 지나지 않았고 다시 레볼루션에 소환될 것이다. 이것이 스미스가 말하는 "함정"의 두번째 의미다. 영화는 수백 수만번 반복 상영될 것이다. 시스템은 거듭된 실험을 통해 축적된 데이터로 언젠가는 현실세계에 대한 완전한 제어력을 획득할 것이다.

이것이 레볼루션의 진정한 의미다. 물론 인간은 자유를 얻었다. 단 애초에 자유의지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것은 결정적 인과율을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네오는 그 사실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그는 "선택"할 수 있었고, 자신의 역할을 수행한 뒤 사라질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두려운 것은... 가상 현실이 아니다. 현실은 가상일지도 모른다는 망상도 아니다. 정말로 두려운 것은, 현실과 가상의 구조가 동형이며 '의미'란 실체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의식'에 의존적이며 기표들의 운동과는 전혀 무관한 한낱 깃털과 같은 것이라는 사실이다. 스미스의 말마따나 모든 '의미'는 결국 몽상이다. 사랑마저도. 그것들은 결국 단어에 지나지 않는다. 네오도 그것을 안다. 그렇지만 그렇기에 자신의 사명을 거부할 수 없다. 따라서 무한한 힘을 지닌 자는 논리적으로 허무주의에 빠졌어야 했지만, 그는 순교자가 됨으로써 그것을 피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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