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자는 딱히 일본 오타쿠는 아니다. 그럼에도 그들의 영화, 문학, 만화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토해낸 산유물들에는 열광하는 부분이 많다. 그건 우리가 우리만의 독특한 개성이 있듯 그들의 문화 전반에 걸쳐 나타난 특이성 때문이다. 오늘은 화자가 본 새로운 감성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같은 달을 보고 있다"는 사실 내가 여태껏 편파적으로 판단했던 일본 영화의 구조적인 형식에서 약간 벗어난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일단 멜로물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가학적인 폭력에만 취중한 영화는 더욱 아니었다. 뭐라, 딱히 꼬집어 말할 수가 없는 부류의 영화. 그런 명제가 붙는 영화가 "바로 같은 달을 보고 있다"였다. 이 영화는 줄거리도 주제도 오묘하다. "러브레터"나 "지금, 만나러 갑니다." 같은 멜로물조차 치밀한 구성으로 만들어 나를 감탄하게 만들었던 그들의 보편적인 시나리오와는 정말 달랐다. "같은 달을 보고 있다"는 정말 달이 물 아래로 점점이 흘러가듯, 흐름을 소재로 한 영화였다. 이야기 구조가 크게 있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반전이 있지도 않은, 그렇다고 또 식상한 스토리도 아니다. 그렇지만 내내 '이제는 이렇게 되겠지.'라고 예상했던 나의 생각을 어김없이 벗어났다. 그래서 결국엔 이런 생각까지 하게 만들었다. '감독이 시나리오 수정을 계속 하게 된 거 아냐?'라는.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심장병에 걸린 여자, 에미. 그런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 돈과 테츠야. 돈은 에미를 보기 위해 감옥에서 탈출하고, 테츠야는 아픈 에미를 위해 의사가 되었다.
뭐, 일단 여기까지만 하면 식상한 러브 스토리가 하나 쓰여진다. 하지만 이 영화는 앞서 말했다시피 지고지순한 러브 스토리는 확실히 아니었다. 도리어 인간의 삶에서 느껴야 하는 어떤 일탈된 부분과 우리가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무감각하게 도외시 했던 것들에 대한 참의미를 제시한다. 주인공들이 바라보는 것은 달이다. 밤 하늘에 둥실 떠올라 있는 달도 있고, 어스름하게 해가 지는 노을 아래서 바라보는 달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추구하는 달은 하나였다.
지구상에 달은 분명 하나다. 그렇지만 달을 보고 있는 사람은 수억명에 달한다. 하지만 결국에 우리는 다른 지역에서 다른 위치에 선 채로도 공존하는 단 하나의 달 밖에는 볼 수가 없는 게 아닐까. 그렇기에 우리의 삶도 하나로 일축될 수 있는 것이고. 결국 감독이 말하고자 했던 바는 이 달이 가지는 상징성이었던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