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2.0의 대담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3인 갑론을박 중 한토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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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진: 황진미씨 견해는 스스로 어떤 목적론적 서사의 방향을 예단하고 거기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창작자를 힐난하는 꼴이다. 하지만 박찬욱의 영화는 목적론적 서사의 틀에서 접근할 수 있는게 아니다.
이야기는 목적이 있어야 한다, 관객이 원하는 엔딩이 있어야 한다는 걸 예단하고 들어가다 보니 영화가 정작 그 기대에 무심할 때 좌절하고 이게 아니라며 화를 내거나 거부감을 갖게 된다.
내가 보기에 박찬욱 감독의 영화, 특이 2000년대 이후에 만든 영화들은 목적론적 서사를 꾸미는 척 하며 실은 관객의 목적지향적 이야기에 대한 기대를 좌절시키면서 전혀 다른 결론을 끌어내는 것을 개성으로 삼는다. 싸이보그는 망상의 세계로 들어가지만 망상을 하는 존재들이 치유되거나 다른 차원으로 고양되는 것을 보여주는 게 목적은 아니다. 그보다는 망상에 빠진 등장인물을 핑계로 마음껏 그 망상의 경계를 허물며 자유롭게 노니는 영화다. 나는 그 구조가 주는 해방감이 신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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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정말 너무나 많이 생각나는 수많은 서두를 쓸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인터뷰 한 토막을 서두로 쓴 이유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를 보고 재미없다고 하는 심리의 핵심은 정말 이것 외에는 설명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든 느낌은 딱 그거였습니다.
“이거 또 재미없다고 말할 인간들 많겠군.”
특이한 주위의 어떤 것들에 대해 특이하다고 생각하고 벽을 쌓고 놀려대고 짓씹어대는 그러한 풍토라는 것이 여기에도 대입된다고 생각하면, 참 재미있죠. 그리고 그건 역설적으로, 이 영화가 꽤 여타의 영화라는 고정관념을 벗어나려는 미덕을 가지고 있다는 데 대한 증명도 된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것 같더군요.
무언가, ‘영화적’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요소들이 존재한다면, 이 영화는 그런 미덕을 고루 갖추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세 가지 면에서요.
첫째로, 거기에 나오는 사물이나 아이템들은 각자의 이미지를 추구하면서도 스토리상에서 중요한 기능들을 합니다. 그것이 너무나 세세해서 다시 설명을 드리려면 영화를 한 번 더 봐야 할 수준이지만, 예를 들어 허리의 고무줄 같은 것이 그것입니다. 처음에 별 뜻 없이 비춰졌던 고무줄이 이후에는 할머니의 허리에 묶여 할머니의 이야기를 방해하는 의미의 사물로 한정된다든가 하는. 이런 수많은 자잘한 함의들을 발견하지 못하면서 이 영화의 재미를 논한다는 건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죠.
둘째로, 이런 자잘한 함의들은 영화의 큰 서사구조를 형성하는 것들이 전혀 아니라는 데서도 그 재미가 있습니다. 이제까지 우리가 봐온 영화들은 그 수많은 아이템들이 결국 하나의 플롯에 대한 목적만을 위해 죄다 달려가는 형국이었죠. 그것들이 재미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시도가 극도로 적었던 것도 주목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의 신선함을 ‘재미없다’ 한 마디로 치부할 수는 없겠죠. 그만큼의 폭넓은 시각과 생각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셋째, 정신병이라는 소재를 이만큼이나 다중적 의미로 그려준 예도 없을 겁니다. 애초에 무거운 것을 가지지 않으려 한 의도가 색다른 결과를 관객들에게 선사했다고 할 수도 있죠.
정신병이란 건 바꿔 말하면 타자로 인해 규정당하고 정의당하는 자신의 ‘고통’입니다. 이건 간단한 예시를 생각해 보면 압니다. 외눈박이 나라에서는 두눈박이가 돌연변이고 병신이라는. 이 부분에서도 의미를 부여할 수는 있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제가 생각했던 운명만큼이나 말이죠.
그들의 세계에서는 그들의 생활과 상상, 혹은 환청조차도 아무런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스스로가 불편을 느낄 뿐 그것을 문제상황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음에도, 사람들은 격리를 주장합니다. 영화 제일 처음의 할머니와 영군이 보여주는 생활상에서도 그러합니다. 거기에 오히려 정상이라고 생각되지만 더욱 기괴한 영군어머니라는 존재가 끼어드는 측면을 주목해 보면 어떨까요. 실제로 그들을 격리시키는 건 정상인이라는 그 영군어머니입니다. 더 놀라운 건, 가벼운 속에서도 그 단절을 스스로 해체하려고 하는 고통과 과정들 또한 살아있다는 겁니다. 영군이 발에서 불을 뿜으며 날아가고 일순이 남의 행동들을 훔치는 것 등등의 작은 아이템들에 정신이 어지러워 이 과정들의 의미를 놓쳤다면 이 또한 통탄할 일이죠.
스스로가 타자의 고통을 규정하고 정의함으로써 격리시켜 버리는 존재. 그건 이 영화를 재미없다고 일축하는 관객들의 모습과 겹쳐집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오던 남자 관객 두 명은 제 옆에서 이런 말을 하더군요.
“내가 다 미쳐버릴 것 같다.”
그것 또한 제게는 상당히 재미있는 현상이었습니다. 위와 같은 모습을 실제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었거든요. 그것은 일종의 벽처럼 느껴집니다. 영화란 이래야 재미있다고 믿고 있는 어떤 울타리 안에서 벗어난 상황들, 사람이란 이렇게 기능해야 한다고 믿고 있는 울타리 안에서 벗어난 존재들. 그 두 개가 충돌하고 같은 시공간을 공유하면서 기묘한 아우라를 내는 것. 그리고 그것을 기묘한 아우라가 아닌 이해해주지 못할 감독만의 겉멋으로 치부하고 실망해버리는 존재들. 허헛.
결론적으로, 이 영화는 한국영화에는 있어도 괜찮은 자산이라는 겁니다. 팀 버튼의 빅피쉬 같은 개성적인 미장센이 없어도 이만한 환상을 충분히 구현하면서, 가벼운 이야기 속에서 여러 가지 의미를 파생시키는 이런 영화를 재미없다는 한 마디로 자신의 의미 속에서 일축시켜 버린다는 것도 아까운 노릇이지요.
덧붙여: 니가 뭔말을 하건 그래도 재미없다! 라고 하는 분들에게 할 말은 없습니다. 그 분들과 수준차를 운운하려는 의도도 아니었구요. 스스로가 재미없다고 느끼는 걸 어거지로 재미있으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죠.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