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큰 플라워

hou47 작성일 07.01.27 01: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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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내공 : 상상초월


주인공 '돈' 은 한 때 잘 나가는 바람둥이였지만 지금은 그저 집 안에 틀어박혀 무력하게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중년의 남자이다. 그리고 그런 모습에 넌더리가 난 애인 '쉐리' 는 결별을 선언하고 그의 곁을 떠난다. 혼자 남은 그는 배달된 우편을 정리하던 중 분홍색 편지 한 통을 받는다. 그것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옛날 애인의 편지로써 그 내용은 20년 전에 낳은 그의 아들이 그를 찾으러 길을 떠났다는 것이다. 그 내용에 반신반의 하던 그는 추리에 열광하는 옆 집 친구 '윈스턴' 의 집요한 충고와 조사로 결국 누군지도 모르는 아들의 어머니를 찾기 위해 길을 떠난다.

짐 자무쉬의 신작 '브로큰 플라워' 는 과거로도 갈 수 없고 (성찰) 미래로도 갈 수 없는 (새로운 희망) 그래서 지금 여기 현재에 붙잡혀 살아갈 수밖에 없는 한 남자를 통해 인생의 불가해함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것을 작품은 로드 무비와 미스터리 극을 통해 보여준다.

'돈' 그는 한 때 잘 나가는 바람둥이였지만 지금은 집 안에 틀어 박혀 '돈 주앙의 여행' 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자신 만의 세계에 빠진 삶을 산다. 그것은 과거도 미래도 없는 무미건조한 삶이다. 당연하게도 그는 밖에도 잘 나가지 않고 사람들과도 별로 소통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에게도 친구 한 명은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윈스턴' 이다. '윈스턴' 은 추리에 관련된 것에 열광하는 인물로써 과묵하고 모든 것에 초연한 듯한 '돈' 과는 대조적으로 말이 많고 호기심이 무척 많은 한 마디로 매우 시끄러운 사나이이다. 자신 안의 세계에 빠진 '돈' 이 어떻게 이런 사나이를 친구로 뒀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그러나 이 '윈스턴' 이라는 인물은 겉으로 보기와는 다르게 '돈' 과 작품에게는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인물이다.

구체적으로 무기력하게 현재의 삶에 갇힌 '돈' 에게 우연히 분홍색 편지 한 통이 배달되는데 그 편지에는 '돈' 이 모르는 19살 난 아들이 있고 그 아들이 자신을 찾으러 집을 떠났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그러나 '돈' 은 발신인도 모르는 이 편지의 내용을 반신반의 하며 편지의 진위를 밝히는 것을 주저한다. 그것은 '돈' 의 현재 삶에 근간을 뒤흔드는 위력을 편지가 가지고 있기에 함부로 행동하기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그런 그를 결정적으로 편지의 세계 즉 과거와 미래의 세계로 이끌어준 (사실은 밀어낸) 인물이 바로 '윈스턴' 인 것이다. 현재라는 문을 열고 과거와 미래라는 새로운 문에 들어가도록 부추긴 '윈스턴'

이제 분홍색 편지의 수수께끼를 마치 자신의 일 인양 해결하기로 작정한 '윈스턴' 은 갖은 노력과 정성을 들여 최종적으로 4명의 어머니 후보와 그 어머니를 밝혀줄 증거 (분홍색 편지, 타자기) 를 추려내 '돈' 에게 제시한다. 결국 '돈' 은 그 앞에 어쩔 수 없이 길을 떠나야만 하는 처지에 놓인다. 헤어진 연인과의 재회, 과거로의 진입. 그런데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사실 하나는 이 여행이 과거의 세계 그 자체에 의의를 둔 여행이 아니라 과거를 통해 미래의 세계에 진입하려는데 목적을 둔 여행이라는 것이다. 애초에 이 여행의 목적이 편지 속에서 언급한 미지의 아들의 어머니를 찾으므로 해서 거꾸로 자신의 아들의 정체를 밝히려는 것이 주목적이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표면적으로 이 여행이 과거로의 여행 같아 보이지만 본질적으로는 미래로의 여행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돈' 의 이 여행은 어떤 성찰도 회고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무덤덤하게 아들의 어머니를 찾을 뿐이다. 만약 이 작품이 통상의 로드 무비였다면 오랜 간만에 만난 옛 애인을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성찰의 기회를 줬을지도 모르지만 앞서도 얘기했지만 그녀들 (과거) 은 미지의 아들 (미래) 에 대한 단서를 찾기 위한 하나의 (심하게 말하자면) 도구에 불과하기 때문에 '돈' 과 그녀들을 만남은 어색한 기운 만을 형성하며 잠시 만나고 바로 헤어지기를 반복한다. (물론 첫 번째 만난 '로라' 와의 만남은 나름대로 괜찮았지만.) 그렇다면 '돈' 은 그녀들 (과거) 을 만나면서 아들 (미래) 에 대한 단서를 찾았을까? 그러나 '돈' 은 그것조차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 한다. 한 마디로 과거도 미래도 어느 것 하나 건진 것이 없는 것이다.

사실 단서라고 내세운 것이 고작 분홍색 편지와 타자기 달랑 두 가지 밖에 없으니 수사가 제대로 될리 만무하다. 거기다 그녀들은 모두 가장 중요한 단서라 할 수 있는 분홍색과 한가지 씩 다 관련이 있다. 첫째 '로라' 는 분홍색 가운을 걸치고 있다. 두 번째 '도라' 는 분홍색 명암을 내민다. 세 번째 '카르멘' 은 분홍색 바지를 입고 있다. 네 번째 '페니' 는 분홍색 타자기를 가지고 있다. 이 처럼 4명의 후보들은 모두가 분홍색 편지에서 언급한 아들의 어머니 일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누가 아들의 어머니인가? 그러나 작품은 그 질문 앞에서 멈춰버린다. 4명 모두 어머니 일 수도 혹은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만을 남긴 체 그 질문을 방기하고 내버려 둔다. 그리고 그 결과 미래도 불투명해진다.

그렇게 '돈' 은 과거의 세계도 미래의 세계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진입하지 못 하고 하릴 없이 집 즉 현재로 복귀한다. 무기력함만이 남아있는 현재로 말이다. 그리고서 '돈' 은 식당에서 '윈스턴' 을 만나 그동안의 경과를 얘기해준다. 그 얘기를 다들은 '윈스턴' 은 '돈' 의 무기력함을 공유하며 그 식당을 빠져 나간다. 그런데 그 때 식당의 창가에서 '돈' 은 자신의 아들로 보이는 한 소년을 발견하고 부리나케 그 소년 앞에 간다. 그런 다음 '돈' 은 소년을 붙잡기 위해 음식을 대접한다. 그리고 그 소년의 가방에는 분홍색 끈이 달려있다. 바야흐로 '돈' 은 그토록 찾던 아들 즉 미래의 세계에 진입할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한 것이다.

'돈' 과 아들로 보이는 소년 (미래) 은 서로 얘기를 나누며 친근감을 표시한다. 때 마침 철학을 좋아하는 소년은 '돈' 에게 자신의 인생철학이 무엇인지 가르쳐 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돈' 은 그 질문에 "과거는 흘러갔고 미래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으니 우리가 가진 것은 현재 뿐이다"라는 말로 질문에 답을 한다. 그런 다음 '돈' 은 소년에게 기습적으로 자신이 아버지라고 천명한다. 그것에 당황한 소년은 기겁하고 '돈' 의 곁을 도망친다. 그러자 '돈' 은 필사적으로 소년을 쫓아간다. 그것은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미래를 어떻게 해서 든 잡으려는 '돈' 의 애처로운 행위인 것이다. 결국 소년 즉 미래를 놓친 '돈' 은 황망한 표정으로 소년 (미래) 의 멀어짐을 지켜본다. 그런데 그 때 자동차 한 대가 '돈' 의 곁을 지나가는데 그 차 안에 있는 한 남자가 '돈' 과 무척 닮아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서 카메라는 '돈' 의 주위를 뱅뱅 돌면서 작품은 돌연 끝이 난다.

이 처럼 작품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은 다음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에 방점을 찍고 끝을 낸다. 과거를 통한 자기 성찰도 미래를 통한 새로운 시작도 아닌 무기력한 거기다 아무것도 알 수 없는 불가해함이 추가된 현실에 말이다. 결국 작품은 현재에 갇힌 '돈' 이라는 인물의 과거와 미래로의 여행을 통해 인간의 삶은 오직 지금 현재라는 세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돈' 의 옛 애인들 즉 과거들이 어떠한 감흥도 일으키지 못 하고 그저 무덤덤하게 지나간 것은 '돈' 의 대사처럼 그것이 "과거는 흘러갔기...." 때문에 다시 붙잡을 수 없는 성질로 이미 화했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다. (거기다 그녀들 즉 과거는 앞서도 얘기했지만 어디까지나 아들이라는 미래를 도출하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기에 더더욱 그러하다.) 동시에 그녀들을 둘러싼 아들에 대한 단서들이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못 하는 것은 그것들 또한 이미 흘러간 과거에 묶여져 있기에 현재에 묶인 '돈' 에게 포착되지 못 한 것이다. 오직 가능성만을 남겨 놓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아들 (로 보이는 소년) 이라는 미래도 '돈'의 곁을 떠난 것은 그의 대사 "미래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으니...." 에서 알 수 있듯이 그것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미지의 것이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돈' 즉 현재에게서 멀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직 가능성만을 남겨 놓을 뿐이다. 그리고 '돈' 은 다시 현재로 복귀한다. 단 그 현재는 이 전의 그저 무덤덤한 그저 그런 현재가 아닌 과거와 미래에 대한 무수한 단서들과 가능성들이 뒤죽박죽 난무하는 불가해한 현재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돈' 의 과거와 미래로의 짧은 여행에서 얻은 교훈이란 뒤죽박죽 난무하는 단서와 가능성만이 존재할 뿐 그 가능성의 실체란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이 바로 인간의 삶이며 현재라는 것이다. 무척 잔인한 말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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