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쿨 오브 락]에서 락으로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었던 잭 블랙이 이번엔 레슬링으로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줍니다. 실제로 멕시코에서 있었던 어느 신부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이 영화 [나초 리브레]는 어찌보면 무척이나 썰렁한 느낌이 강한 코미디영화이면서도 은근히 따스한 웃음을 만끽할 수 있는 영화입니다. 물론 그 중심엔 잭 블랙이라는 배우의 못말리는 폭소연기가 단단히 한몫을 하고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이전에도 몇번 이야기한 적은 있지만 세계각국의 선남선녀들이 집합해있는 할리우드에서 잭 블랙같은 캐릭터의 배우가 주연을 맡는다는 것 자체가 무척이나 놀라운 일입니다. 어딜봐도 주연급이라고 하기엔 부족해보이지만 그에겐 다른 배우들에겐 찾아볼 수 없는 그만의 강력한 내공이 잠재되어 있는 배우이기도 합니다. 뭐랄까, 적어도 스크린에 등장하는 잭 블랙의 모습에선 그만의 연기에 대한 놀라운 열정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면 지나친 말일까요. 때론 그런 열정이 지나친 오버스러움으로 보일지라도 왠지 귀엽고 개구장이같은 천진함이 엿보이는 배우가 아닌가 합니다.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려서부터 수도원에서 자란 "나쵸"라고 불리우는 이그나시요(잭 블랙). 그렇다고 그가 신앙심이 두터운 것도 아니며 기껏 하는 일이라곤 매끼 식사를 담당하는 주방일이 고작입니다. 그런데 수도원의 살림이 갈수록 궁핍해지면서 어려서부터 왠지 독특한 취향을 가지고 있었던 이그나시요는 지역 프로레슬링 대회에 참가하기로 합니다. 그것도 가끔 수도원의 음식을 훔쳐먹는 "왕갈비" 에스퀼레토와 함께. 별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왠지 자신과 처지가 비슷하다는 점도 있지만 음식 훔쳐먹을때만큼은 누구보다도 날렵한 에스퀼레토와 한팀을 이루는게 그나마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친구들이 레슬링이라는 운동을 너무 우습게 생각한 것. 개나 소나 다 할 줄 알면 레슬링이 아니지, 연전연패를 거듭하며 개망신을 당하지만 그래도 인기는 좋습니다. 대전료로 받은 돈으로 아이들의 식탁을 풍성하게 해주며 만족해하는 이그나시요. 게다가 수도원에 새로 온 아름다운 엔카나시온 수녀에게 관심이 있던 이그나시요는 아이들과 그녀를 위해서 밤마다 복면을 쓴 채로 레슬링 시합에 열중합니다. 드디어 최고의 레슬러인 람세스와 한판 대결을 앞둔 이그나시요. 하지만 시합전에 그의 정체가 드러나며 레슬링을 금지하는 수도원의 뜻에 따라 이그나시요는 수도원을 떠나야할 위기에 처합니다. 과연 그는 다시 돌아와서 람세스와의 운명의 한판을 벌일것인가.
잭 블랙과 중간에 잠깐 등장하는 피터 스토메어를 제외하면 모든 배우들이 멕시코 배우들로 채워져 있으며 영화의 배경 또한 멕시코의 작은 마을을 무대로 하다보니 약간은 이질적인 느낌이 강한 영화가 바로 이 영화 [나초 리브레]입니다. 당연히 이 영화는 잭 블랙의 개인기가 그 어느 영화보다도 강하게 작용하는 영화인데요, 서두에도 이야기했지만 어떤 화려함이나 정신없이 웃기는 코미디라기 보다는 상황상황 약간은 어이없으면서도 황당한 설정 등을 통해서 은근하게 웃음을 제공하는 영화입니다. 게다가 잭 블랙을 제외한 멕시코 배우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정적이며 왠만해선 얼굴표정도 변화가 없는, 왠지 썰렁한 느낌마저 들게하는데요. 이 영화를 감독한 자레드 헤스의 전작인 [나폴레옹 다이나마이트]의 썰렁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여인과 아이들을 위해서 레슬링을 시작하는 잭 블랙의 모습은 분명 어딘지 어색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예상치 못했던 웃음을 선사하기에 충분합니다. 황당스러운 훈련과정이라든지 독수리 알을 먹으면 힘이 솟는다는 이야기에 절벽을 올라가는 모습 등은 잭 블랙이기에 충분히 어울리는 장면들이며, 그의 파트너로 등장하는 에스퀼레토역의 왠지 김C의 삘이 나는 헥토르 히메네스는 주체할 수 없는 살덩이들을 부여잡고 게임에 열중하는 이그나시요의 모습과 대비되는 왕갈비로서 보기만 해도 저절로 웃음이 나오는 캐릭터를 묵묵하지만 무척이나 친근하게 다가옵니다. 비록 어떤 특별난 재주도 없고 시합마다 주로 당하기 일쑤지만 이러한 두 사람의 독특한 캐릭터는 관객들의 사랑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왠지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위노나 라이더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엔카나시온 수녀역의 안나 데 라 레구에라는 자칫 황당한 코믹스러움으로만 흘러가는 영화에서 그나마 유일하다시피한 정상적인 캐릭터로서 이그나시요의 마음을 빼앗아가는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실제 있었던 이야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영화지만, 이 영화는 이것저것 재가면서 볼 필요가 전혀 없는 영화입니다. 터질듯한 쫄바지를 입고 링에서 구르고 또 구르는 잭 블랙의 온몸연기와 다소 썰렁한 감이 있긴 하지만 여러 조연들의 왠지 친근한 느낌의 모습들은 그럭저럭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듯한 느낌입니다. 당연히 이 영화에서 가장 볼거리라면 링에서 벌어지는 시합장면인데요. 특이한 두 주인공만큼이나 독특한 상대들이 등장해 말그대도 황당스러운 시합장면을 재현하지만 과격하고 거칠다는 느낌보다는 무척이나 코믹스러운 느낌이 더욱 강합니다. 그렇다고 마냥 황당스러운 모습만 보여주는 것도 아니며, 그런대로 프로레슬링이라는 운동의 재미를 느끼게끔 해주는 장면들이기도 합니다.
분명 독특한 캐릭터로 인해 인기를 얻으며 그 대가로 아이들에게 풍성한 식탁을 제공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만은 얻지 못했던 이그나시요가 진정으로 위기에 처한 수도원과 아이들을 위한 마음으로 람세스와의 최후의 일전을 치르면서 진정한 영웅으로 성장해가는 이야기. 비록 엔카나시온 수녀와 그 뒤에 어떻게 되었을까하고 궁금하기도 하지만 이그나시요를 바라보는 그녀의 달라진 눈빛이 어느정도 그 후의 이야기를 짐작케 합니다. 짝달만한 키에 펑퍼짐한 몸매로 프로레슬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코믹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으며, 화려한 테크닉이나 비장의 무기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결국엔 사랑의 힘이라면 불가능할 것이 없다는 다소 뻔한 스토리로 진행되는 영화지만 잭 블랙의 엉뚱하면서도 왠지 안쓰러움마저 느끼게끔 하는 온몸연기는 무척이나 인상적입니다. 전체적으로 왠지 썰렁하고 유치한 감도 있지만, 그만큼 은근하게 따스한 웃음이 절로 나왔던 영화, 프로레슬링으로 사랑을 전달했던 몸꽝 수도사의 못말리는 이야기. 저 몸뚱아리가 날아다닐줄 그 누가 예상했겠는가. 자 날아라 삼겹살아. [나초 리브레] 입니다.
이 영화의 감독인 자레드 헤스(오른쪽)과 함께. 왠지 [나폴레옹 다이나마이트]의
모델이 감독 자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