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것이 문제작 <다찌마와 LEE>의 포스터...어떤가. 보기만해도 콧끝이 찡하지 않은가?
2. 어안벙벙 <다찌마와 리>가 예전 영화의 잡스러운 취향들을 여러 층위에 걸쳐 누덕누덕 기워놓은 것 같지만 그렇다고 아무 생각없이 만들어졌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적은 제작비에 비하면 치밀하게 계획되었다고 할만큼 영리하게 제작되었다.. 영화가 시작되면 드림 인 서울을 꿈꾸며 막 상경한 젊은 처자 둘이 삼일빌딩 앞에서 새끼손가락 운운하며 닭살 멘트로 포문을 연다. 그리고 급조된 스토리에 걸답게 그녀들 앞에 건달들이 등장하고, 그녀들이 막 봉변을 당할 즈음 드디어(아니 당연히) 종로협객 <다찌마와 리>가 등장한다..그리고 이어지는 대사..."어서 그 더러운 손을 순결한 몸에서 떼어내지 못해! 버얼건 대낮에 아이들이 봐서는 안될 짓을 일삼은 한심한 녀석들" 이런 현실감이 없는 대사들은 캐릭터를 평면적인 인물로 변모시켜 조악하다는 느낌 뿐 아니라 60~70년대 한국영화의 엄숙주의에 대한 조롱을 담는데 성공한다...그리고 이어지는 화면은 담배불을 끄는 <다찌마와 리>의 공포의 빨간양말(?)을 클로즈-업한다. 특히 뒤에 보이는 커피 자판기 장면은 압권이 아닐 수 없는데, 이는 시대적 배경을 헷갈리게 만들려는 감독의 의도된 장난질이라는 점에서 폭소를 자아낸다... 이처럼 <다찌마와 리>는 의도된 어색함과 60~70년대의 과장된 연기로 묘한 쾌감을 제공하는데, 무엇보다 눈에 띄는 건 류승완 감독의 패러디와 오마주 사이를 절묘하게 오가는 기발한 영화적 문법이라 할 것이다. 폭소를 유발하는 코드도 바로 이 묘한 언밸런스에서 비롯된다... 예컨데 두 처자의 이름으로 사용된 '화녀'와 '충녀'가 다름아닌 70년대 한국영화의 이단아 김기영 감독의 연작이라는 점에서, 또 두 처자를 구출하고 난 뒤 '빵집'을 자축의 장소로 사용했다는 점이 그렇다.. 이처럼 감독의 B급 감수성을 향한 전략은 영화 곳곳에 녹아들면서 묘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데, 여기에는 임원희라는 배우가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다찌마와 리>의 성공에는 누가 뭐래도 임원희의 공을 부인할 수 없는데, 특히 세간에 화제가 되었던 '야성적인 모습으로 빵을 뜯어먹던(?) 연기'는 결코 그가 아니면 불가능한 명장면이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다찌마와 리>의 최대 명대사/명장면은 바로 '오늘 네놈에게 오동나무 코트를 입혀주마'를 인구에 회자시킨 한옥 결투씬... 골목길에서 결투를 벌이다 갑자기 배경이 바뀌는 뜻밖의 반전으로 B급 영화의 진수를 보여주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엽이 흩날리는 결투씬은 나중에 한국 액션 영화의 판도를 바꿨다고 평가를 받는 '짝패'의 원동력이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 '오동나무 코트'의 정체
3. 어쩔꺼나.. 그런 <다찌마와 리>가 8년이 지난 지금 극장판으로 탈바꿈하고 우리 앞에 돌아왔다.. 공짜로 보던 인터넷에 비해 유료관람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볼거리를 좀 더 풍성하게 만들고, 베일에 가려졌던 <다찌마와 리>의 정체에 '첩보원'이라는 뚜렷한 명함을 부여하면서 한층 세련미를 강화한다.. 물론 그렇다고 한국영화의 누추한 모습을 끌어다 웃겨주던 예전 근간이 흐트러진 건 아니다.. 임원희의 과장된 연기도 여전하고, 또 성수대교 근처의 한강 둔치를 압록강, 두만강이라고 우기는 뻔뻔함도 여전하다...뿐만 아니라 예전 '촌스러운' 분위기를 만드는 데 결정적인 위력을 발휘했던 '일백푸로 후시녹음'과 '서울 인근지역 올로케이숀'을 기본으로, 1960~70년대 코미디언들이 관객을 위해 온몸으로 주접을 떨어주던 '슬랩스틱 코미디'까지 수용했다..이에 따라 인물들의 행동반경도 만주, 상하이, 스위스 등 세계 각지로 넓어지면서 서사도 복작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전처럼 모니터 앞에 앉아 낄낄대며 웃었던 것처럼 호방하게 웃을 수 없는 건, 어딘지 모르게 이프로 부족하다는 느낌 때문이다.. 단지 조그만 간극의 차이일 뿐인데 이렇게 느낌이 다르다니, 그야말로 오묘한 조화가 아닐 수 없다.. 사실 류승완 감독의 고민이 뭔지, 다는 아니더라도 어느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예전 <다찌마와 리>의 정통성은 가져오되, 재창조까지는 아니더라도 뭔가 달라진 모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었을 것이다..그래서 2:8 가르마에서 3:7 가르마로, 의상도 시골틱한 예전의 누런 양복에서 검정양복으로 세련미를 강화하면서 변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요인들을 간과한 듯한 느낌을 받는다.. 우선, 가장 큰 차이는 인터넷용이라는 점과 극장 관람용이라는 근본적 태생의 차이다... 당시 인터넷 공개버전은 공짜라는 이유로 어떤 잘못이라도 웃어 넘길 수 있는 여유가 있었지만, 극장 관람용은 내가 돈을 내고 본다는 점에서 사소한 잘못이라도 용서할 수 없다는 차이점이 존재한다.. 더구나 요즘처럼 <배트맨:다크나이트> <미이라3>등과 같이 외산 블록버스터들이 즐비하게 개봉되는 시점에선 관객들의 요구치는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는데, 하지만 불행하게도 <다찌마와 리>의 역량으로 이 간극의 차이를 극복하기엔 요원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좀 더 뻔뻔하고, 좀 더 화끈하게 밀어붙였어야 한다... 패러디도 아니고, 그렇다고 오마주도 아닌 어정쩡한 포즈의 <다찌마와 리>라면 그냥 종로에서 '협객'생활을 하게 놔뒀어야 옳다..우리가 류승완 감독의 <짝패>에 열광했던 건, 결코 중국영화의 액션에 뒤지지 않는, 토종액션의 진수를 보여줬다는데 있다...이 정도의 연출 감각과 그의 역량을 고려하면 충분히 <다찌마와 리>라는 캐릭터를 부각시킬 수도 있었을텐데 아쉽다.. 마치 덜 구워낸 빵과 같다고나 할까? 먹을만 하지만, 맛있는 건 아니다... 선배들에 대한 류감독의 진심어린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자꾸 그것에 집착하는 것 자체가 한국영화 발전을 외면한다는 점에서 선배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좀 더 치밀하게 <다찌마와 리>라는 캐릭터를 발전, 승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어야 옳았다. 액션만 해도 그렇다...차라리 한국영화의 어설픈 액션을 선택하는 대신 좀 더 화끈하게 밀어붙이는 역발상은 어땠을까? 행동은 푼수처럼 행동하지만 일단 싸움이 시작되면 끝을 보고야마는 악착같은 캐릭터로서의 <다찌마와 리>를 기대하는 것은 나만의 과욕일까? 물론, 싸움이 끝난 후 악당들을 교화시키는 장황한 연설을 덧붙이면 금상첨화고... 전편 <다찌마와 리>에선 인터넷 공간이 주는 한계성 때문에 매니아적 성향이 짙다면, 이번 극장판 <다찌마와 리>에서 철저하게 대중의 성향을 선택했어야 옳았다. 관객들의 성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생각이다..좋은 평가를 받는 영화는 누가 보던지 호감을 표명한다... 관객들이 깔깔대며 웃었던 장면이 침과 눈물이 뒤범벅이 되었던 진상 8호 운명 장면이라는 것과, 엉터리 외국어에 자막 처리하던 기발한 장면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다찌마와 리>의 방향성은 이미 제시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예컨데 화려한 액션 씬 뒤로 흐르는 뽕짝의 애잔한 음율을 선택하겠다고 생각한 감독의 생각이야말로 관객의 허를 찌르는 기발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바라는 것이 바로 부조화에서 오는 기발함, 이런 코드를 원하는 것이다. 마치 개콘을 보는 것과 같은 슬랩스틱과 같은 몸동작이나, 유치 찬란한 언어 유희만으로는 결코 관객들을 감동시킬 수 없다... 이게 바로 같은 B급 영화를 지향하면서도 타란티노의 <데쓰프르프>나, 로드리게즈의 <그라인드 하우스>와 차별화되는 부분이다.... 그렇다고 <다찌마와 리>의 업적을 평가절하할 생각은 없다.. 분명 <다찌마와 리>는 한국영화가 갖는 모든 영화적 기법을 총동원하여 새로운 코드로 재해석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소제목으로 사용된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만 하더라도 1976년 박노식 주연의 동명 영화의 타이틀을 차용했고 주옥(?)같은 명대사의 향연은 예전 우리 영화가 가지고 있던 진지함을 비일상적인 코드로 새롭게 해석했다는 점에서 칭찬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좋게 볼 수는 없다. <다찌마와 리>가 조국의 운명을 짊어진 고독한 방랑 협객의 활극을 그렸다면 현대인에게 강렬한 삶의 모랄을 제시할 그 무엇이 있어야한다.. 그렇지만 억지 웃음을 유발하려는 장면들이 너무 많아 화면에 몰입할 수 없었다는 것은 두고두고 아쉬운 부분이다... 후반부 설원 봅슬레이 액션은 촬영이 힘들고, 아니고를 떠나 왜 이 장면을 길게 삽입해야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으며 특히 서극에 대한 오마주지만 <칼>의 장면을 너무 길게 차용한 것도 별로 바람직하게 보이지 않았다... 물론 총잡이에서 칼잡이로 변신하는 예전 영화의 황당한 설정을 설명하려는 감독의 노림수였지만, 편집이 지나치게 늘어져 지루함만 안겨주고 말았다.... ▼ 간지나게 제작된 <다찌마와리>의 다양한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