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로게이트 VS 게이머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미래, 인간의 문명은 진보와 진보를 거듭해 새로운 양상을 보여준다.
기계로 대체되어 건강한 삶을 영유하는 인간들의 세상. 써로게이트
게임을 즐기 듯 사형수의 육체를 조종하며 또 다른 유희를 즐기며 살아가는 인간들의 세상. 게이머
닮았되 닮지 않은 두 영화는 강렬한 비주얼로 시각을 자극하며 우리에게 '인간 존엄성'에 대한 하나의 화두를 던진다.
인간의 잔혹성과 광기 속에서, 극도의 자극 속에서 무감각해진 우리들. 그리고 짓밟힌 인간존엄.
그들이 보여주는 영화 속의 현실은, 우리의 가까운 미래가 아닐까.
써로게이트는 가까운 미래의 현실을 그리고 있다. 미래 어느날, 한 과학자가 뇌파를 이용해 기계를 다루는 기술을 개발한다.
이 기계의 취지는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을 위한 기계인데, 얼마 후 이 기계는 인간의 대리인으로 사용하게끔 상용화가 된다.
그 이름하여 써로게이트. 사람들은 집에서 가만히 장치를 연결해 써로게이트를 통해 젊고 완벽한 또 다른 삶을 살아가게된다.
써로게이트를 사용함으로써 사회에서 문제시 되었던 범죄들은 1%로 줄어들고 사회는 절대적 안정사회가 된다.
반면에 기계 사용을 반대하며 인간 존엄성을 외치는 무리들도 생겨나 써로게이트는 들어올 수 없는 안전지대가 생기고,
이어 써로게이트의 세계, 인간 세계가 따로 공존하게 된다.
FBI에서 근무하는 그리어(브루스 윌리스)는 써로게이트가 사망하자 써로게이트의 운영자도 뇌가 타들어 사망하는 사건을 맡게된다.
써로게이트가 죽으면 그 주인도 죽게되는 것이 가능하게 된 이상 더이상 안전된 삶은 없다.
그리어는 사건의 전말을 밝히려 하고 복잡한 양상의 사건 속에서 커다란 음모를 발견하게 된다.
게이머 또한 가까운 미래의 현실을 그리고 있다. 게이머의 설정은 꽤 독특한데,
이는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조종한다는 색다른 설정을 기반으로 한다.
가까운 미래, 전세계인들은 '슬레이어즈'라는 온라인 FPS 게임에 열광한다.
이 게임은 가상의 공간에서 가상의 캐릭터를 플레이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공간에서 실제의 인간이 사형수와 무기징역수를 조종하며 플레이 하는 게임이다.
고도로 진보된 마인드 컨트롤 시스템을 통한 플레이는 놀랍고도 잔인한 게임을 만들어 냈고
모두가 열광하는 가운데, 사이먼이 플레이하는 캐릭터인 '케이블'(제라드 버틀러)은 뛰어난 활약을 펼친다.
30판 동안 생존하면 살아 나갈 수 있는 게임의 룰. 그리워 하는 아내와 딸을 위해 그는 목숨을 건, 사투를 시작한다.
그가 달려가는 그 끝엔 인류의 미래가 달려있었다.
<터미네이터 3>, <U-571>의 감독 조나산 모스토우가 메가폰을 잡고, 8천만불의 제작비를 투입해 완성한 써로게이트.
브루스 윌리스가 나왔다고 커다란 기대는 금물. 왠지 볼거리나 액션보다는 묵직한 주제의식이 다가오는 영화다.
고의적으로 표현한 로봇의 부자연스러움과 그 부자연스러움 속의 자연스러움이 인상깊었다.
약간의 액션, 약간의 감동, 약간의 스릴. 초대형급 액션 스릴러는 아니지만, 충분히 매력적인 비쥬얼이었다.
'게이머는 액션을 제외한다면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영화다.' 모 블로거분의 리뷰 제목을 보고 조금은 공감이 갔다.
새로운 비쥬얼과 화려한 볼거리. 정신없이 몰아 붙이는 스토리라인은 시각적 측면에서 완벽했다.
제라드 버틀러의 연기는 맛깔났고, 그가 소화해낸 액션씬들은 색다른 자극으로 다가왔다.
게이머는 18세이지만 상상 이상의 잔혹함도 없었고 그렇게 선정적이지도 않았다.
게이머만의 독특한, 실제 공간에서 실제의 인간이 또다른 인간을 조정한다는 컨셉은 훌룡했고
그에 맞춘 비쥬얼은 조금은 혼란하지만 긴박감 넘치는, 꽤나 괜찮은 영상미를 보여줬다.
두 영화는 같으면서도 다른 주제를 품고 우리에게 화두(話頭)를 던진다.
21세기가 되고, 물질만능주의가 만연한 가운데, 우리는 외적인 무언가에 집착한나머지 중요한 무언가를 잃었는지도 모른다.
거리를 나서면 수많은 자극이 홍수처럼 범람해오고 그 거대한 파도 속에서 우리가 과거에 추구했던 가치들은 하나 둘 사라졌다.
행복, 희망, 그리고 의지. 타인에 대한 배려, 자기 자신을 되돌아 보는 성찰, 그리고 사랑.
모든 가치들은 마모되고 침잠했으며 더렵혀지고 오염되었다.
역겨운 악취는 일상의 일부가 되었고 그 속에서 인간 잔혹성은, 그 광기는 하나의 아름다움이 되어 우리를 집어 삼켰다.
훼손되는 인간존엄성. 추악한 광기 속에서 우리가 추구했던 가치들은 하나 둘 사라져갔다.
써로게이트의 인간들은 자기 자신을 잃었다. 외적 미모, 건강함. 그리고 아름다움을 위해 그들은 자신을 버렸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살과 살을 맞대는 즐거움도 아니요, 입술의 촉촉함도 아니요, 오직 외양에 불과했다.
집안에 자신의 몸이 안전하게 있다고 그들은 행복을 느끼고 있었을까? 뇌파에 전송된 시그널 따위로 행복을 정의내릴 수 있을까?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인간에대한 모독이자 인간존엄성에 대한 모욕이었다.
게이머의 인간들은 범람하는 자극 속에서 자신들을 타자화 시켜나갔다. 사형수와 무기징역수에 의한 새로운 삶.
그들은 자신들의 유희를 위해 타인의 삶을 빼았고 짓밟았다. 사형수들은 살 권리를 잃었고 무기징역수들은 의지를 잃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인간 잔혹성은 폭발했고, 추악하고 어두운 인간의 일면이 하나 둘 표출되었다.
자신을 위해 타인을 배제하는 삶. 아니, 아름다운 외양을 위해 자신의 내면까지도 배제하는 삶.
그것이 우리의 현실이 아닐까?
분명 두 작품이 수작이나 명작이라는 말을 듣기엔 부족한 면이 '많다.'
써로게이트는 처음에 제기했던 주제의식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채 막을 내렸고, 게이머는 부자연스러운 연결과 스토리텔링을 보였다.
하지만 이런 아쉬운 점들에도 불구하고 써로게이트와 게이머는 충분히 볼만한 영화였다.
신선한 소재의 세계관과 커다란 화두로 다가오는 주제. 무엇보다도 눈코뜰새 없는 맛깔나는 전개.
매우 스피디하고 묵직하게 다가오는, 두 작품을 보면서 단 한순간도 재미없다는 생각이 들지않았음은
억지로 이 영화들을 폄훼하는 알바들을 봤을때 조금의 분노마저 들게 만들었다.(평점 1점짜리 알바들)
어느 책에선가 이런말을 본적이 있다.
'집중하고 기대하고 염원을 담고 갈망하고, 그런식으로 영화를 보는건 아마추어나 하는 거야.
진정한 프로는 눈을 게슴츠레 뜨고 보는듯 마는듯, 아무 생각 없이 영화를 감상하지.
아무런 기대감 없이 온전히 영화에 나아가는 것. 그게 영화 감상의 포인트야.'
아직 두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이라면 두 눈에 긴장을 풀고, 티끌만큼의 기대 없이 영화를 볼 것을 권해본다.
시각과 청각을 반개한 채로 그리고 후각을 자극하는 달콤한 카라멜향의 팝콘냄새를 맡으며 그저 자연스럽게 영화를 감상해보는 것은 어떨까?
분명 두 영화는 '킬링타임'용으로 매우 적합한 영화이니까.
뭐 복잡하게 생각할 거 없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