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처럼 단언할 수 있는 이유가 있긴 합니다.
우리의 기억 속에는 원더풀 데이즈, 용가리, 디워 등등의 영화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 영화들의 특징은, 한 개인이 호기롭게 우리도 잘 만들 수 있어 하고 나왔다가
개인돈 꼴아박기까지 하면서 힘들게 제작기간 끌어오다가
내놓은 결과물이 '기술적으로는' 어떤지 몰라도 '장기적 흥행으로는' 폭싹 망했다는 데 있겠죠.
디워만 해도 애국심 마케팅으로 겨우 손익분기점 넘겼다고 알고 있는데,
언제까지 애국심 마케팅이나 하고 살 노릇인지는 차치하더라도,
형래옹은 "못해서 못하는게 아니라 안하니까 못하는 거다"라는 희한한 얘기를 하시는데,
그 형래옹의 말에 받아칠 수 있는 논리를 비유로 풀자면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일개 중소기업이 반도체로 맞붙어서 삼성을 완벽하게 따돌리고 이길 수 있나?"
인프라, 단순하게 말하자면 돈이지만, 단순히 돈의 이야기만 하는 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제가 쓴 아바타 비하인드 스토리를 봅시다.
캐머런은 분명히 타이타닉 이후로 고작 만든게 다크엔젤 정도인 공백기를 보냈습니다.
그런 사람이 골룸을 보고 아바타를 실현할 때가 왔구나, 싶어서
웨타 디지털에 문의를 하고 기술을 현재보다 더 끌어올려서 발전시키기로 하고 1년에 가까운 시간만을
기술 개발에만 쏟아붓습니다.
이 상황을 한국의 상황으로 치환해 볼까요.
현재 한국의 영화사들 상황은, 영화 시나리오 가지고 단타 투자자들 모아서
빠른 시간 안에 찍어서 쇼부보고
배급사, 극장, 투자자들, 배우, 홍보과정이 이익을 다 찢어먹는 상황에서
스스로 본전건지기만 해도 성공이라고 자축할 지경까지 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 10년 전 대박 터졌던 감독 하나가 다시 영화를 찍겠다고 나왔다,
그것도 기존 기술이 아닌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서 영화를 찍겠다고 말한다,
어떤 투자자가, 어떤 영화사가, 그것도 기술개발 비용까지 돈대주겠습니까?
현재 한국영화의 사이클의 논리는 미시적인 부분에만 집착하고 있습니다.
이게 헐리웃에서 아바타를 만드는 것 같은 식의 인프라를
가로막고 있는 인식이죠.
컴포지션, 즉 화면 합성이란 영역 하나만 하더라도
데이터가 누적되고 그게 교육되고 교육받은 사람이 일자리를 얻어서 안정적인 생활을 해야 합니다.
한국에서 그게 가능하지 못하다는 거, 새삼 말할 필요도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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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인프라를 만들면 되지 않아?
라고 혹자는 쉽게 말할 지도 모릅니다.
문제는 장기적 사이클입니다.
헐리우드 영화는 한 영화가 기술의 획을 그으면 다른 영화가
그걸 응용한 상태에서 좀더 나은 기술이나 화면들을 선보이면서 흘러왔죠.
픽사, 스타워즈, 매트릭스, 아바타까지.
그런 작품들이 계속 터져줘야 된다는 1차적 전제가 있는데,
이 1차적 전제는 일단 투자논리에서 가로막히고, (리스크가 크네?)
투자에서 가로막히면 기술적 보장이 안되고,
기술적 보장이 안되면 한껏 눈만 높아진 관객들은 당연히 외면하고.
누가 봐도 뻔한 악순환 사이클이죠.
쉬리가 대박을 쳐도, 태극기 휘날리며가 대박을 쳐도,
그런 아류들조차 나올 수 없었던 건 그런 시도의 위험도가 너무 높다는 사실을
영화사와 투자사들이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럼 남은 길은 뭐냐,
적게 들여서 단타매매로 치고 빠지면서 이익 볼 수 있는 그런 영화들을 원하게 되어 있다 이 말이죠.
그래서 배우의 유명세나 감독의 유명세에 기댈 수밖에 없는 투자구조가 형성되구요.
이게 지금 한국 땅의 인프라로 고착화되고 있는 겁니다.
상황이 이런데, 그리고 뻔히 이런 상황이 예측되어 왔는데,
스크린쿼터 운운할 때 꼭 한국영화가 헐리웃 이길 생각만 하면 되지 않는가
이런 허공에 붕 뜬 소릴 자주 접하게 되더군요.
그러면서 한국영화는 재미가 없네 화면이 빈약하네 이런 악순환의 말들을 읊조리죠.
반도체를 만들려면 반도체와 관련된 메카닉이나 기술, 학문, 그 외 자잘한 부분들에서의 일하는 방법과 프로세스,
이런 것들을 쌓는 시간과 투자가 있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런게 전혀 안된 상황에서 반도체 못하네 뭐 이러면서
야 좀 해서 삼성 이겨봐 따위의, 고민보다는 편하게 내뱉고 보는 사고방식이 참
푸른기와지붕 밑의 설치류 한 마리를 자꾸 떠올리게 해서 불편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죠.
만드는 사람들에게 원인이 있는게 아닌, 그런 사이클을 조성해온 모두에게 책임이 있는데도
관객은 그런 자신의 책임을 쉽사리 외면하는 성질을 지니고 있더군요.
이런 면면들을 볼 때, 아바타는 우리나라에서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사족으로,
정말 아바타 같은 게 만들어지려면 말이죠.
아이러니하게도, 형래옹이 했던 것처럼 헐리우드에서 쇼부를 봐야 하죠.
다만, 다른 의미로 들어가는 겁니다.
의외로 박찬욱의 올드보이는 이런 역할을 해냈었습니다.
그다지 큰 기술들이 들어가지 않은 상황에서도, 그 쪽에 한국영화의 저력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엔 충분한 작품이었죠.
(물론 원작이 일본 것이었다 해도, 여러 모로 논외로 쳐줄 구석은 많구요)
아바타에 아바타로 맞붙어서 이기려 하기 보다는
지금 하고 있는 영화들 상황이나 제대로 챙겨가면서 틈새를 노리는 형태가
오히려 이익을 많이 볼 수도 있겠다는 것이 현실적 생각입니다.
현재에서 헐리웃 쪽으로 파고들면서 이익을 노려볼 수 있는 게 있다면 최대한 행동들을 하면서
그 쪽에서 인정받을 때 그 쪽 자본으로 몇 개를 만들다가
이 쪽의 안정적 자원들이 차고 넘칠 때 본격적으로 만드는 수순을 밟는 겁니다.
이건 한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적어도 3세대 이상을 보고 가는 장기적 차원에서 언제나 공격적 행태로 이뤄져야 하는 일이죠.
즉, 우린 이런 거 만들 수 없는 거야? 라고 푸념하기보다는
당장 효과적이면서도 길게 살아남는 시스템 구축이 더 절실한 편인 겁니다.
그 과정에서 특수효과 기술에 대한 노하우들을 축적해가면,
우리도 언젠가는 만들겠지만, 그건 당분간 20년 안짝의 한국땅에서는 불가능합니다.
연간 순이익 30조 이상의 대기업이 머리가 홱 돌아서
영화사 하나 차리고 향후 15-20년 간 안정적으로 돈 뿌려 버리겠다 이런 해괴한 상황이라도 터지지 않는 바에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