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주관적인 해설입니다.
2) 스포일러가 포함됐습니다.
영화는 신하균이 애록 고지를 조사하기 위해 파견되며 시작한다.
방첩대 중위인 그는 실제 전쟁을 겪기도 했지만, 몇년간의 쟁탈이 지속된 ,
어쩌면 무의미한 싸움이 계속되고 있는 현재의 애록고지를 방문할 땐 그 자신이 관람객 입장이 된다.
그렇다.
영화 속 신하균은 관객이 되어 애록 고지를 방문한다.
그는 보수도 아니고 진보도 아니다. 그저 원칙을 따르는 군인일 뿐이다.
일반적인 국민. 관객들이 떠올리는 군대 규율에 가장 어울리는, 어쩌면 인각적이기도 한 군인.
우린 그 군인을 따라, 애록고지를 방문 한다.
애록 고지의 악어 중대.
2년간 고지를 뺏고, 빼았는, 그리고 그 수 많은 죽음 속에서.
이젠 막사의 누가 죽었는지도 가물 가물하다는 고수의 말처럼.
악어 중대는 전쟁에 지칠 대로 지쳐 일반인의 상식과 멀어져 있다.
중대를 살릴 수 있는 중대장.
포항작전. 괴멸의 위기에서, 비록 아군을 향해 총을 쐈지만 중대를 살린 이제훈은 실질적인 리더다.
영화 초반부엔 임시 중대장. 후반부엔 소대장으로 활약하는 그가 리더인 이유?
간단하다. 말 그대로이다.
2년간 계속된. 이유가 없어져 버린 전쟁에서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건 생존이다.
자신들을 살릴 수 있는 인물이 리더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들이 고지 탈환 후 북한군과 음식물을 교환하는 이야기.
이것은 이들에게 하나의 낙이자 재미일 뿐이다.
의미 없이 싸우는 전투에 한가지 의미를 부여해주는 행위이고.
나와 함께 총구를 겨누는 적들 역시 나처럼 무의미한 싸움에 지쳐있는 사람이란걸 재차 확인하는 의식이다.
영화의 중심엔 고수. 그가 있다.
1소대장이다.
과거 학도병 시절 총탄 소리에 겁을 집어먹고 움직이지도 못했던 인물이다.
그런 그가 계속된 전쟁 속에서 살아남는 것만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인물이 되었다.
승리도.
낭만도.
군법도.
희망도.
모든 것은 뒤에 있다.
그가 앞에 두는 것은 오직.
생존.
어떻게 더 많은 부하들을 살릴 것인가, 단지 그것 뿐이다.
신하균은 제일 어린 막내가 저격당해 신음하여도 꿈쩍 않는 고수에게 분노한다.
눈 앞에서 죽어가는 단 1명의 아이에게 눈물 짓는 것.
그것은 전쟁을 오래 겪지 않은 우리 관객들의 심정일 뿐이다.
수십 수 백명의 죽음을 보아온 고수에겐 그 죽음은 단지 죽음일 뿐이다.
죽은 자는 죽었을 뿐이고, 살아있는 자들을 어떻게 살릴까가 더 중요한 것이다.
고수 역시 알고 있다.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지금의 애록 고지가 바로 지옥임을.
'니가 진짜 지옥을 알아..?'
2초.
총알에 아군이 쓰러지고 2초 뒤에 총성이 울린다고 하여, 2초다.
이초는 악어 중대에게 눈엣가시 같은 존재다.
수 많은 아군을 사살한 적군의 에이스.
그런 이초가 자신이 저격하는 악어 중대와 편지/물품을 교환하는 당사자라는 것은 참 아이러니하다.
이초 역시 계속된 이 전쟁 속에 지쳐있고, 누구보다 전쟁이 끝나기 만을 바라고 있다.
남쪽에 있는 가족을 그린다.
그래서 가족에게 자신의 사진을 전달하기 위해 편지를 묻었고,
그 사진은 고수의 손에 들어 간다.
고수는 사진 속 인물인 여자'이초'는 당연히 사진을 묻은 실제 이초의 여동생이라 생각한다.
간단하다.
여군보다 남군이 당연하던 시기였고, 이름 역시 남성적인 차태경이었으니까.
하지만 이 순간의 착각이 고수에겐 죽음의 키가 되어 버린다.
2초를 마지막까지 쫓아.
자신의 가늠쇠로 마침내 2초의 머리를 겨눴을 때.
2초의 여동생이라고 생각했던 사진 속의 인물이 2초임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고수에게 또다른 비극성을 주었을 것이다.
당연히 고향에서 군인을 기다려야하는 저런 가녀린 여인까지 전장에서 사람들을 죽인다.
그 아이러니하고 웃기기도 한 상황에서 고수는 결국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고 죽는다.
그리고 차태경은 고지의 꼭대기 상자에서
자신의 사진을 가져간 고수가 보낸 편지에서, 고수의 이름을 지워버린다.
어차피 만나면 죽여야만 하는 상대의 이름 따윈 모르는 편이 마음 편한 것이다.
그렇듯 영화 속의 군인들은 모두 잔인한 인물이 되어 버렸다.
낭만 사랑 우정 따위의 감정은 생존이란 두 글자 앞에서 초라해 진다.
그런 영화 속 군인들 중 가장 잔인해진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유일한 여성인 이초다.
자신의 고글을 지닌 이등병을 망설임 없이 쏘아 버리는 이초에게 여성이란 성별은 면죄부가 아니다.
가녀리고 예쁜 외모의 김옥빈이 연기한 이초는 관객들에게 연민을 불러 일으킨다.
실제 영화를 보고온 사람들 중 이초의 죽음 역시 안타까워 하는 이들이 많다.
그렇다.
관객인 신하균은 이초와 영화 초반부에 처음 조우한다.
그는 여성의 모습을 한 저격수에게 경계를 풀고 당연스럽게 그녀를 의심하지 않는다.
오히려 초콜릿을 건낸다.
관객의 역활인 신하균이 건낸 초콜릿.
면죄부란 이름의 그 초콜릿을 이초는 영화의 주인공인 고수를 사살한 뒤 달콤하게 베어문다.
하지만 애록의 마지막 전투.
12시간 전투에서 결국 이초는 신하균의 손에 목숨을 잃는다.
영화의 중심인 악어중대가 모두 몰살된 상황에서 관객은 이초에게 자비로울 수 없다.
그녀는 악어 중대가 몰살된 그 시점에서 용서 받을 수 있는 연민의 대상에서.
용서 할 수 없는.
아니, 어쩌면 용서할 순 있지만 '너 역시죽어줘야' 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내래 확실히 알고 있었는데.. 근데, 잊어 버렸어. 너무 오래되서 잊어 버렸어.'
다른 누군가가 주권과 영토를 위협한다면 그들과 맞써 싸워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것은 국민으로써 우리가 지녀야할 당연한 의무이다.
하지만 영토가 국민보다 우선시 되어,
수십 수만의 국민들이 죽어나가는 전쟁이 지속되는 일은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애록고지의 지옥이 훗날 이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