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ent Of A Woman, 1992 마틴브래스트
20여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영화이지만 뒤늦게 이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여인의 향기... 그것은 장님이 되어버린 주인공 슬레이드 예비역 중령(알 파치노)을 살아있게 한 원동력이었고
그 향기를 느끼는 것은 그가 살아있다는 증거였습니다.
고학생인 찰리(크리스 오도넬)는 추수감사절 연휴에도 집에 갈 차비가 없어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려 합니다.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고 계부가 있긴 하지만 사이마저 좋지 않습니다.
찰리는 전통있는 명문 고교의 장학생입니다. 성실하고 착한 학생이지요.
그런 그에게 부자집 방탕아들이 비꼬듯이 스위스에 같이 놀러가자고 제안을 합니다.
찰리와 슬레이드 중령의 첫 만남입니다.
그는 과거에 대통령의 참모를 했을 정도로 유능하고 화려한 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부심 또한 대단합니다.
슬레이드 중령은 결혼도 하지 않았고 부양해 줄 자식이 없어 여조카에게 얹혀 살고 있습니다.
이제는 앞을 전혀 볼 수 없고 명암마저 구분할 수 없게 되어버린 그는...
비비꼬일대로 꼬여 언제나 가시돋혀 있습니다. 연휴기간 동안 가족들이 모두 떠나 홀로 남아있게 됩니다.
찰리는 연휴기간 동안 그를 돌보는 아르바이트를 찾게 된 거죠.
첫만남에서 자신의 말에 토를 달았다는 이유로 찰리를 내 쫒아버리지만 그의 본심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사실 너무나 외롭고 사람이 그리운 앞을 볼 수 없는 노인일 뿐입니다.
찰리에게 짐을 챙기게 하여 억지로 뉴욕까지 와서 형의 집을 방문하지만 싸늘한 시선과 냉대가 있을 뿐입니다.
이젠 아무도 그에게 관심과 애정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가 가시돋혀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에게 남은 것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눈앞과 쓸쓸한 노년뿐인 것 같습니다.
그는 앞을 볼 수 없지만 그동안 모아놓은 보상금으로 뉴욕에 와서 온갖 호화 찬란한 것들을 누리려 합니다.
최고급 호텔에서 묶고, 맞춤 양복과 고급 식당...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자살을 위한 여행의 마지막 만찬이었을 뿐입니다.
더 이상의 상세한 내용은 스포가 심해지기 때문에 자제하겠습니다.
만나는 아름다운 여인마다 무슨 비누와 향수를 쓰는지 물어보고 말을 거는 장님 슬레이드...
아무래도 이 장면이 이 영화의 가장 명장면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탱고를 추는 늙고 눈이 멀어버린 장님과 젊고 아름다운 여인
그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여인에게 안겨 아침에 잠을 깨고 그녀와 함께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비록 장님이고 나이가 들어 초라해졌지만 그런 그에게도 그런 것들을 꿈꿀 자유와 권리는 있는 것이죠.
화려하고 아름다웠던 과거로부터 상실의 시대를 살고 있는 슬레이드.
이제는 아무에게도 관심과 한영을 받지 못하고 냉대받는 맹인 노인일 뿐입니다.
그런 그가 끝까지 갈망하는 삶에 대한 애착을 볼때마다 저는 엉엉 울어버리고 싶었습니다.
"나는 지금도 인생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언제나 바른 길을 알고 있었죠.
잘 알지만 그 길을 뿌리쳤어요. 왜냐면 그 길이 너무 힘들고 어려워서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과거를 이렇게 회고합니다. 비록 눈이 멀고 늙고 아무에게도 관심을 받지 못해도
다시금 과거를 회고하며 여지껏 걸어오지 못한 올바른 길을 마음의 눈으로 보고있습니다.
인생 말년에 쓰디쓴 술을 마시고 있는 우울한 노인의 랩소디 같지만
감독은 인간을 향한 따뜻한 시선과 애정을 버리지 않고 희망을 주고 있네요.
이런 면에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같은 잔인하고 섬뜩한 영화와 크게 비교가 됩니다.
물론 어떤 것이 좋고 나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당신에게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당신도 보이지도 않는 여인의 향기를 느끼고 다가가 말을 걸 수 있나요?
외롭고 절망한 가슴에 따뜻한 위로가 필요하다면...
계속되는 실패로 소중했던 많은 것을 잃어버려서 쓸쓸한 상실의 시대를 살고 있다면...
이 영화를 권해 드리고 싶습니다.^^
참고로 이 영화로 알 파치노는 93년 골든글러브에서 남우 주연상을 받게 되는데요,
이 영화는 그가 왜 뛰어난 배우인지 알게 해줍니다.
부족한 리뷰 끝까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