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rmans World-Exploits of a Hollywood Rebel

NEOKIDS 작성일 12.12.16 01:0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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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다큐멘터리는 로저 코먼을 따라가는 다큐멘터리입니다. 


로저 코먼은 어쩌면, 우리가 가지고 있던 마지막 작은 영역을 지키고 있는 사람 같습니다. 

저예산 B급 영화라는 제작환경에서도 영화를 만들고 재미를 만든다는 것에 대한 철학이 있던 사람이었고,

지금의 헐리우드 블럭버스터 문화는 그에게 모든 것을 온전히 빚지고 있는 형국입니다.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그의 이름에 대한 찬사가, 단순히 영화사적 문제라는 것만은 아닌 것을 깨닫게 될 겁니다. 

그의 작업 아래에서 수행한 마틴 스콜세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제임스 카메론, 조 단테, 론 하워드, 잭 니콜슨 등등 쟁쟁한 영화인들,

57년 한 해만 해도 10편을, 그것도 일주일 혹은 이틀안에 한 편을 찍어대는 무대뽀와 괴력, 

그리고 60년대에 이르러 자기자본의 뉴월드 픽쳐스를 스스로 설립하고

기회가 없는 젊은이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며 돈과 명예욕 따위를 버리다시피 하면서 영화를 전쟁하듯 찍어왔던

그 자신이 자본의 간섭과 영향을 무척이나 싫어하며 피하려 했던, 


그런 그의 이력은 

단순히 B급영화의 대부 같은 찬사 정도로 전달될 수 있을만한 크기의

가치와 역사들이 아니기 때문이죠. 


스필버그가 죠스에서 '훔쳐가다시피 한' 장면들로 뜬 것과,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로 묻혀버린 그의 가치관과 지평이

못내 아까운 점이 그것입니다. 


그래도, 지금도 그는 영화를 만들고 있지요. 2010년 아카데미 공로상을 수상했습니다. 






다음은 이미 절판된 그의 저작 번역본

나는 어떻게 헐리우드에서 백편의 영화를 찍고도 한푼도 잃지 않았는가 

라는 제목의 서적에 나오는 이야기를 발췌한 것입니다. 




영화가 말이 안 되는 수준일 때 내가 자주 써먹는 방법을 썼다. 내레이션을 집어 넣는 방법이다. 갑자기 영화의 줄거리가 부드럽게 연결되고 이야기가 분명해졌다.


나를 칭찬했던 부서 책임자는 많은 보너스를 받았다. 나는 아무것도 받은게 없었다. 화가 났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냈다. 유럽으로 가서 세계를 보는 것이다. 하루종일 남이 쓴 시나리오를 쌓아 놓은 책상 앞에 앉아있는 내 모습이 정말 싫었다.


나는 질서 자체를 깨뜨리려는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뭔가를 해보려고 하는데 규정이 문제가 된다면, 어떤 식으로든 법적인 근거를 찾아서라도 그 규정을 바꾸고 내가 원하는 대로 해왔다.


"지금은 자네한테 한푼도 못 줄 형편이야. 그런데, 자네는 시나리오를 한 편 써주면 얼마나 받나?" 하고 물었다. "전에는 4천 달러 받았어요." 라고 바니가 대답했다. "좋아, 2천 달러만 투자하게. 그럼 자네를 감독으로 데뷔시켜 줄게."

이제 제대로 된 제작자가 된 것 같았다.


우리는 리퍼트 배급 회사의 제의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선수금을 주겠다는 회사는 거기밖에 없었으니까.(중략) 저예산 영화 제작의 함정이 바로 이런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있는 돈, 없는 돈을 끌어 모아서 영화를 만든다. 그리고 배급한다. 영화가 배급되어 수입이 들어오려면 1년을 기다려야 한다. 그 1년동안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예산이 빠듯해서 배우를 많이 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저예산 영화 제작을 위한 중요한 수단 중의 하나인 '고립된 상황'을 설정했다. 6만 달러는 예를 들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같은 영화의 한 장면 촬영도 불가능한 예산이다.


인디언이 나오는 장면은 필름 라이브러리에서 샀다. 자욱한 먼지를 뚫고 인디언들이 말을 타고 달리는 장면을 보는 관객들은 그 필름이 어디서 나왔는지는 따지지 않는다.


촬영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힘들어했다. 항상 위트가 있고 농담을 잘 하던 앨리슨 헤이스라는 여배우조차 하루는 나에게 와서 "로저, 어떻게 해야 이 영화에서 빠질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큰 불이 나는 장면이 필요했다. 사탕수수를 재배하는 사람들은 정기적으로 사탕수수 밭에 불을 질러서 줄기와 덤불들을 태운다. 그때에 맞춰서 그 장면을 찍었다. 그 광경은 10만 달러짜리 영화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장면이다.


웨스트우드 지역에서 집을 빌려 촬영을 하고 있는데, 그 옆집에 한 노파가 살고 있었다. 그 노파는 우리에게서 돈을 뜯어내려는 생각에서 스프링클러를 틀어놓고 그걸 꺼주는 대가로 돈을 내라고 했다. 게다가 그걸 틀어놓지 않으면 잔디가 상할지 모르니 그에 대한 보상도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나는 조감독을 보내서 내 답을 전했다. "스프링클러가 켜져 있는 배경을 놓고 촬영하니 아주 그림이 좋다. 그러니 밤새 그걸 틀어준다면 물 값을 지불하겠다. 단, 조건이 있다. 여러 장면을 계속해서 촬영해야 하니까 잠시라도 스프링클러를 끄면 안 된다." (중략) 그래서 스프링클러 배경 없이 촬영을 했다.


다른 사람을 찾을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그 역할을 내가 직접 하기로 결정했다. 내가 스키를 탈 줄 모르고 독일어도 할 줄 모른다는 사실만 빼면 전혀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그리스 제작자들이 노조를 인정하지 않고 스태프들을 마구잡이로 부려먹는다는 데 있었다. 그래서 나는 스태프들 대표와 계약을 체결했고, 임금을 주급 5달러로 인상했다. 그 결과, 나는 그리스 최초로 노조를 만든 제작자가 됐고 그리스 영화 노조는 그날 탄생했다.




로저는 절대 남을 위해서 일을 하지 않는다. 그 대신 남이 그를 위해서 일을 하게 만든다. 대단한 설득력을 지닌 사람이다.(중략) 나는 한창 인기있던 비제이 킹이라는 우등생 금발 미녀를 핑계댔다. "비제이와 함께라면 해볼수도 있지"라고. 한 시간도 안돼서 나는 비제이와 같이 모금을 하러 돌아다니고 있었다. 물론, 로저의 솜씨였다. 그는 누구에게든,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는 친구였다.

- 리처드 슈프


콧구멍을 넓히는 데 쓰는 코마개도 쓰지 않고, 그냥 검은 분장만 한 채 인디언으로 출연했다. 일주일 후에 로저가 말했다. "카우보이 역 하나 맡으시겠소?" "좋죠,하겠습니다. 영화를 또 한 편 찍으시나보죠?" "아뇨,같은 영화예요." 그래서 나는 한 영화에서 인디언과 카우보이로 출연했고, 영화 끝에서 나는 내 총에 맞아 죽는다.

- 딕 밀러


한 영화 안에서 세 번 죽고, 자신의 장례식에 참석해 본 배우는 나밖에 없다.(중략)

"여기서 뭐하고 있어?" "로저, 이건 내 장례식이야. 부족민들이 내 죽음에 애도를 표하고 있다고." "아무도 널 못 알아봐. 가서 장례식에서 북치는 사람 역할을 해." - 비치 디커슨


로저는 항상 직선적이었다. 그는 결코 다른 사람에게 헛된 희망을 불어넣지 않는다. 상대방이 무엇을 해야하고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를 분명하게 말하곤 했다. 그와 같이 일했다는 것은 돈보다도 더 소중한 경험이었다.

-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그가 유럽 촬영에 데려갈 만한 녹음 기사 하나 아는 사람 없느냐고 했다. 나는 "그럼요. 잘 알죠. 제가 바로 그 사람이에요" 라고 대답했다. 나는 즉시 사무실 창고에서 나그라 녹음기를 꺼내 집으로 가서 제품 사용법 안내서를 읽었다.

-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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